데니즈가 자신의 인생을 행복해한다는 사실에 대해 느낀 안도감이 갑자기, 묘하게도 뭔가 소중한 것을 잃은 듯한 상실감으로 변한다.
『올리브 키터리지』 「약국」, 55쪽,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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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호
소설을 읽으며 기적 같은 순간을 만날 때가 있다. '어떻게 이런 걸 썼을까' 하는. 그럴 때면 작가의 탁월함에 감탄하게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캐릭터로 밀고 나가는 작품. 대화의 흐름이나 내면 풍경의 묘사가 탁월하다. 왜 드라마화되었는지 알 것 같다. 가히 걸작 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온갖 테크닉을 참고하기에 좋은 소설이다. 여러 번 읽고 또 읽고 싶은 그런.
헨리 키터리지는 약사다. 그는 인간관계에 처방을 내려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약국 직원이자 자신과 이름이 같은 사람의 아내인 데니즈의 인생에 처방을 내리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그가 가졌던 어떤 확신마저 노화와 함께 흔들리고 만다. 마침내 그는 자신이 데니즈를 사랑했다는 걸 깨닫고 나서부터 상실을 경험한다. 스스로 내리는 처방으로는 상실을 극복할 수 없는 걸 앎에도, 그는 처방을 선택한다. 이런 게 인생이고, 인간이라는 걸, 빈틈없이 짜인 이야기 속에서 체험할 때 느껴지는 서늘함.
임지호
「약국」을 처음 읽었을 때 남겼던 감상평입니다. 좋았던 문장도 많아서, 추리고 추렸는데도 여전히 많네요. 공통점이 있다면 인물의 심리와 내면 풍경을 탁월하게 묘사한 지점이라는 것? 그리고 인간의 삶과 죽음 사이에서 드러나는 아이러니를 잘 포착했다고 생각한 부분입니다.
윤ㅅㅓ
헨리 키터리지는 불안정한 인간의 내면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데니즈의 삶이 나아지기를 바라면서 모순적으로 그녀가 완벽하게 행복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사람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무력하지 않아." 올리브가 말하지만 헨리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의 도움 없인 데니즈가 불행해질 것이라는 믿음, 제리의 청혼을 알게된 후의 허무함, (헨리의 삶에서) 데니즈가 사라진 후 데이지에게 감정을 쏟아내는 모습이 좀스러우면서도 인간적이다.
타인의 불행을 바라는 것은 정말 인간의 본성일까? <약국>을 읽으며 헨리에게 '자신의 일부'라고 생각되는 것들과 아닌 것들을 구분할 수 있었다. (올리브와 크리스토퍼, 혹은 책에 언급되지 않았을 가족이나 친구) 헨리가 데니즈를 사랑했을지라도 올리브에 대한 사랑과는 확연히 다른 감정이 느껴진다. 타인이라는 경계를 허무는 요소는 무엇일까? 가족공동체? 오랜 시간 형성된 유대감? 혈연?
별개로 데니즈의 삶의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책에 자세히 언급되진 않지만 당시 미국에는 마리화나와 자유연애, 히피 등이 득세했고 이에 대해 데니즈는 말한다. "저는 여성 해방 따윈 관심 없어요. 저는 집을 갖고, 침대를 정돈하고 싶을 뿐이에요." 그녀는 "우리는 로마처럼 망해가고 있어"라고 말하는 올리브보다 주어진 삶에 감사하고, 하루하루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아간다. 이런 삶은 적절한가? 자식을 키운다면 어떻게 교육시켜야 할까?
임지호
좋은 질문이었습니다. 더불어 오늘 언급된 책 소개합니다. ‘성별 임금 격차의 핵심 원인을 밝혀냈다.’라는 스웨덴 왕립과학원의 평가와 함께 2023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하버드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클라우디아 골딘이 썼고요, 이 책에서 남녀 소득 격차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저도 곧 읽어볼 예정.
커리어 그리고 가정 - 평등을 향한 여성들의 기나긴 여정, 2023 노벨경제학상골딘 교수는 주로 역사적 고찰을 통해 현재 이슈들의 기원을 탐구하는데 성별 소득 격차, 여성 노동력, 소득 불평등, 기술 변화, 교육, 이민 등 다양한 주제를 연구해 왔다. 이 책에서는 평생 연구해 온 성별 소득 격차라는 문제의 원인을 밝히면서 그 해결책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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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dbwls
하지만 데니즈는 그의 딸이 아니었으므로 그는 가사를 돌보는 것도 고귀한 일이라고 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