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북클럽 1기] 『올리브 키터리지』 함께 읽기

D-29
아직 어린 그녀의 인생에서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행복을 믿지 못하게 만들었을까, 헨리는 생각했다. 아마 어머니의 병 때문에 그리 되었겠지. 그가 말했다. "즐겨야지, 데니즈. 앞으로도 행복할 날이 수십 년이나 남았는데." 아니면 천주교 신자라서 그런지도 모르지, 다시 페니실린 상자 쪽으로 돌아가면서 그가 생각했다. 천주교에서는 뭐든 내 탓이라고 가르치니까.
올리브 키터리지 「약국」, 21쪽,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하얀 교회당은 헐벗은 단풍나무들 근처에 웅크리고 있다. 왜 이렇게 유난히 데니즈 생각이 나는지 헨리는 알고 있다. 지난 이십 년 동안 그녀로부터 늘 제때 날아왔던 생일 카드가 지난주에는 오지 않았다.
올리브 키터리지 「약국」, 32쪽,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데이지의 남편은 이 년 전에 죽었다. 퇴직한 경찰관으로 데이지보다 스물다섯 살이나 많았던 그는 실로 죽도록 담배를 피워댔다.
올리브 키터리지 「약국」, 33쪽,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헨리는 마음속으로 그 장면을 떠올려보았다. 거실에서 올리브의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 아들이 직감적으로 예를 갖췄던 모습이 떠올랐다. "이런 불쌍한 것," 전혀 그녀답지 않게 낙담했던 올리브의 목소리를 헨리는 그후 영원히 기억하게 된다. "이 불쌍한 걸 어째, 불쌍해서 어째."
올리브 키터리지 「약국」, 36쪽,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죽음이 믿기지 않는 와중에도 헨리는 사람들이 같은 잔을 돌아가며 쓰는 데 놀라고, 모두 한 모금씩 마신 후에는 코가 눈에 띄게 큰 신부가 머리를 뒤로 젖히고 남은 포도주를 몽땅 마셔버리는 데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올리브 키터리지 「약국」, 37쪽,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사람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무력하지 않아." 올리브가 말했다.
올리브 키터리지 「약국」, 41쪽,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그 일이 저를 많이 변하게 했어요." 데니즈가 썼다. "경험이란 그런 거죠. 삶의 우선순위가 한꺼번에 정리되고, 그후론 제 가족에게 깊이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매일을 살고 있어요. 가족과 친구보다 더 중요한 건 없으니까요."
올리브 키터리지 「약국」, 54쪽,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데니즈가 자신의 인생을 행복해한다는 사실에 대해 느낀 안도감이 갑자기, 묘하게도 뭔가 소중한 것을 잃은 듯한 상실감으로 변한다.
올리브 키터리지 「약국」, 55쪽,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소설을 읽으며 기적 같은 순간을 만날 때가 있다. '어떻게 이런 걸 썼을까' 하는. 그럴 때면 작가의 탁월함에 감탄하게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캐릭터로 밀고 나가는 작품. 대화의 흐름이나 내면 풍경의 묘사가 탁월하다. 왜 드라마화되었는지 알 것 같다. 가히 걸작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온갖 테크닉을 참고하기에 좋은 소설이다. 여러 번 읽고 또 읽고 싶은 그런. 헨리 키터리지는 약사다. 그는 인간관계에 처방을 내려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약국 직원이자 자신과 이름이 같은 사람의 아내인 데니즈의 인생에 처방을 내리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그가 가졌던 어떤 확신마저 노화와 함께 흔들리고 만다. 마침내 그는 자신이 데니즈를 사랑했다는 걸 깨닫고 나서부터 상실을 경험한다. 스스로 내리는 처방으로는 상실을 극복할 수 없는 걸 앎에도, 그는 처방을 선택한다. 이런 게 인생이고, 인간이라는 걸, 빈틈없이 짜인 이야기 속에서 체험할 때 느껴지는 서늘함.
「약국」을 처음 읽었을 때 남겼던 감상평입니다. 좋았던 문장도 많아서, 추리고 추렸는데도 여전히 많네요. 공통점이 있다면 인물의 심리와 내면 풍경을 탁월하게 묘사한 지점이라는 것? 그리고 인간의 삶과 죽음 사이에서 드러나는 아이러니를 잘 포착했다고 생각한 부분입니다.
헨리 키터리지는 불안정한 인간의 내면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데니즈의 삶이 나아지기를 바라면서 모순적으로 그녀가 완벽하게 행복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사람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무력하지 않아." 올리브가 말하지만 헨리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의 도움 없인 데니즈가 불행해질 것이라는 믿음, 제리의 청혼을 알게된 후의 허무함, (헨리의 삶에서) 데니즈가 사라진 후 데이지에게 감정을 쏟아내는 모습이 좀스러우면서도 인간적이다. 타인의 불행을 바라는 것은 정말 인간의 본성일까? <약국>을 읽으며 헨리에게 '자신의 일부'라고 생각되는 것들과 아닌 것들을 구분할 수 있었다. (올리브와 크리스토퍼, 혹은 책에 언급되지 않았을 가족이나 친구) 헨리가 데니즈를 사랑했을지라도 올리브에 대한 사랑과는 확연히 다른 감정이 느껴진다. 타인이라는 경계를 허무는 요소는 무엇일까? 가족공동체? 오랜 시간 형성된 유대감? 혈연? 별개로 데니즈의 삶의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책에 자세히 언급되진 않지만 당시 미국에는 마리화나와 자유연애, 히피 등이 득세했고 이에 대해 데니즈는 말한다. "저는 여성 해방 따윈 관심 없어요. 저는 집을 갖고, 침대를 정돈하고 싶을 뿐이에요." 그녀는 "우리는 로마처럼 망해가고 있어"라고 말하는 올리브보다 주어진 삶에 감사하고, 하루하루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아간다. 이런 삶은 적절한가? 자식을 키운다면 어떻게 교육시켜야 할까?
좋은 질문이었습니다. 더불어 오늘 언급된 책 소개합니다. ‘성별 임금 격차의 핵심 원인을 밝혀냈다.’라는 스웨덴 왕립과학원의 평가와 함께 2023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하버드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클라우디아 골딘이 썼고요, 이 책에서 남녀 소득 격차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저도 곧 읽어볼 예정.
커리어 그리고 가정 - 평등을 향한 여성들의 기나긴 여정, 2023 노벨경제학상골딘 교수는 주로 역사적 고찰을 통해 현재 이슈들의 기원을 탐구하는데 성별 소득 격차, 여성 노동력, 소득 불평등, 기술 변화, 교육, 이민 등 다양한 주제를 연구해 왔다. 이 책에서는 평생 연구해 온 성별 소득 격차라는 문제의 원인을 밝히면서 그 해결책을 제시했다.
하지만 데니즈는 그의 딸이 아니었으므로 그는 가사를 돌보는 것도 고귀한 일이라고 말했다.
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헨리는 사람들이 혼자 있는 걸 원치 않았다.
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헨리는 올리브가 짐 오케이시를 사랑했으며, 어쩌면 짐도 그녀를 사랑했을지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데이지한테 남자가 있대." 그가 입을 열었다. "곧 두 사람을 초대해야겠어."
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관성에서, 자기자신에서 진정으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누구든 자신만의 패턴을 반복하며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헨리 키터리지도 그렇다. 흰머리가 나고, 시대가 바뀌어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줄어든 현재도 그 대상이 데니즈에서 데이지로 바뀌었을 뿐, 패턴은 같다. 올리브도 또 다른 짐을 찾아냈을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의 예외성을 믿는다. 올리브는 남자들은 자기 엄마 같은 여자와 결혼한다고 말하면서도 남편인 헨리는 예외라고 한다. 그건 헨리를 위한 위안이면서도 올리브 자신을 위한 위안이다. 자신은 인간 본연의 습성에서 벗어나 자율적인 선택을 내릴 수 있다는 믿음. 종교에 대한 믿음만큼이나 강한 믿음이다. 그러나 거짓일 가능성이 다분한 것이기도 하다. 작가가 인물을 나타내는 은근한 방식과 주변인물이 중심인물과 연결되도록 하는 설계가 인상 깊었다. 서로 다른 사람에게 끌리면서도 바로 그렇기 때문에 유지되는 부부 사이 욕망, 자신을 지배하는 습성, 종교, 사회 풍조(심지어는 제리에게서 나타난 가부장제까지)에 의한 움직임들. 시간에 따라 바뀌는 사회와 고정된 패턴. 사람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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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약국」의 중심인물 데니즈는 큰 비극을 한차례 겪고 (위에서 제가 수집한 54쪽 문장에서 볼 수 있듯) 삶의 우선순위가 변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작년 한 해를 돌아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2023년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 Top3를 꼽아 본다면?)
화제로 지정된 대화
1-3. 「밀물」을 읽으며 좋았던 문장과 그에 대한 감상을 자유롭게 나눠주세요.
면도날로 제 몸을 죽죽 긋는 것이 정신병자다. 허벅지와 팔을. 완전히 미친 클라라처럼.
올리브 키터리지 「밀물」, 76쪽,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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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누워서 쓰는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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