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보르헤스 읽기] 『불한당들의 세계사』 같이 읽어요

D-29
제가 미쳤나보네요;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바다로 도망하는 것 run away to sea 은 아버지의 권위에 대한 전통적인 영국식 결별, 즉 영웅적 출발을 의미한다.
불한당들의 세계사 P29,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그 역시도 다른 주검들에서 엿보이는 그런 지친 표정을 하고 있더군요. 그는 그 당시 바떼리아 지방으로부터 시작해 남쪽 지역에 이르기까지 가장 드센 자였지요. 그가 죽은 것을 알게 되자 나는 그에 대한 증오심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지요.
불한당들의 세계사 p98,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그 마법사는 환영들과 고요함을 이용해 방문객들을 속였다. 방문자들이 떠나자마자 가난과 회벽이, 이따금은 그들이 떠나기도 전에 조금 먼저 나타나곤 했다.
불한당들의 세계사 p103,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위장한 염색업자 하킴 데 메르브] 사실관계를 정정합니다. 알 무칸나는 '하킴 데 메르브'와 동일인물입니다. 한국어판 제목에는 '하킴 데 메르브'가 인명인 것처럼 옮겨졌지만, 영어판 제목을 보면 그게 아님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영어판 제목은 "The Masked Dyer, Hakim of Merv"이며, 굳이 옮겨보자면 '복면을 쓴 염색업자, 메르브의 하킴'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메르브(Merv)는 중앙아시아 지역에 있는 과거 투르크메니스탄의 한 도시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온라인상에서는 알 무칸나에 관한 자료가 혼재되고 있어서 많이 헷갈립니다. 심지어 알 무칸나라는 스펠링도 어느 곳에서는 Al-Moqanna라고 돼 있고 또 어느 곳에서는 Al-Muqanna라고 돼 있습니다. 그나마 신뢰할만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따르면, 알 무칸나는 아랍어로 '베일에 가려진 자'라는 뜻의 별명이며 그의 본명은 하심 이븐 하킴(Hāshim ibn Ḥākim)입니다. 그는 8세기 옛 이란에서 활동한 종교 지도자, 군사가로 당시 아바스 왕조에 맞선 반란군을 이끌었습니다. 옛 이란의 북동부에 위치한 광대한 지역인 호라산(Khorasan)의 메르브 출신으로서, 원래 직업은 축융공(fuller, 縮絨工) 그러니까 천을 바래고 다듬는 직공이었다고 합니다. 헷갈리는 게 또 다른 자료에 보면 직공인 것은 동일하나, 주름공(clothes pleater)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심지어 소설에서는 염색업자라고 하고 있으니, 이쯤되면 뭐가 사실인지 모르겠습니다. 뭐가 됐든 알 무칸나는 직물(textile)을 가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착안해서 이 소설이 시작되고 있다고 볼 여지도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직공이었던 하킴은 이후 '아부 무슬림 알 코사라니'라는 장군의 지휘관으로 합류했습니다. 훗날 아부 무슬림이 정쟁에 휘말려서 죽자, 그의 지위를 이어받아 이슬람과 조로아스터교를 결합한 교리를 설파하며 반란군을 이끌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본문에서 보여지는 여러 마술을 행하며 자신이 신의 현현이라고 주장하고 다닙니다. 이때부터 하킴은 알 무칸나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는 것 같은데, 항상 얼굴을 가리고 다닌 때문입니다. 여기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금색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녹색 비단을 드리우고 다녔다고 합니다. 추종자들은 알 무칸나의 얼굴이 너무 빛나서 볼 수 없기 때문에 베일로 가리고 다녔다고 했지만, 그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가 대머리에 외눈박이이고 추악한 외형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베일로 가렸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또 재밌는 게, 혹자는 그의 얼굴에서 광휘가 뿜어져 나오는 마술이 속임수라고 말합니다. 그가 거울을 얼굴 가까이에 대어 태양빛을 반사시켜서 신의 광휘를 연기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알 무칸나 얘기로 돌아가자면, 추종자들은 아바스 왕조의 검은색 의상에 저항한다는 의미로 흰 옷을 입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알 무칸나는 사남(Sanām)의 요새에 거점을 두고 2년간 전쟁을 이어가다가 패배하고 자살했다고 알려집니다. 훗날 시인인 토머스 무어가 〈랄라 루크 Lalla Rookh〉라는 서사시에서 등장시키기도 했다고 합니다. 참고 자료입니다. 1. https://www.iranicaonline.org/articles/moqanna 2. https://baheyeldin.com/history/veiled-prophet-of-khorasan.html 3. https://medium.com/@amirmj/the-veiled-prophet-contrasting-tales-of-mystery-and-symbolism-in-history-cfa1354e47f7 4.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al-Muqanna
좀더 언급하자면, 보르헤스가 초반에 언급한 참고 도서 중 알 무칸나의 예언서인 『장미의 폐멸』은 실존하는 책인지 확인이 어렵습니다(제가 살펴본 바로는 확인이 안 되네요!). 보르헤스는 이 책에 쓰여진 내용을 인용하기도 합니다만, 원본이 소실되었다고 미리 언급해두었던 터라 그 내용의 진위를 보증할 수 있는 사람은 서술자인 보르헤스 외에는 없습니다. 과거 기사도 소설의 작가들도 비슷한 수법을 사용했다고 어디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작품을 다 써놓고 그 작품이 우연히 입수한 책의 불완전한 필사본이나 번역본이라고 하면서 원본이 소실되었다고 말하는 식입니다. 그로써 작품은 가본임을 가장하고, 원본의 진의와 씨름하지 않고 그 독자적인 작품으로 인정받으면서도, 작가는 책의 내용에 뒤따를 위험이나 파급 효과를 어느 정도 경감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 거울상이 실재 모습과 달리 좌우가 반전돼 있고 거울의 미세한 곡면으로 인해 왜곡돼 있지만 현실에서는 실용적으로 쓰여지는 것과 같습니다. 거울은 원본과 가본이 교차하는 공간이며, 그 거울상은 원본과 가본 그 사이 즈음에 놓인 독특한 이미지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거울이라는 물건 자체로만 보면 원본이지만 그 앞에 선 대상을 왜곡시켜서 되비춘다는 점에서는 가본인데, 그 앞에 서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는 반드시 어떤 시선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초반에 언급되는 동전에 새겨져 있는 페르시아의 시가 대구(對句) 형식으로 돼 있다는 점도 의미심장합니다. 거울은 참 독특한 물건입니다. 많은 문학 작품에서 거울이 등장한 것도 위와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다음 책인 『픽션들』에 나오는 단편 '바벨의 도서관'에도 유사한 대목이 나오니 참고하셔도 좋겠습니다😀
우리들이 기거하고 있는 지상은 하나의 실수, 덧없는 패러디이다. 거울들과 아버지는 저주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그러한 패러디를 증식시키고, 확인해 주기 때문이다. 혐오감은 본질적인 미덕이다. (···) 하킴의 천당과 지옥은 마찬가지로 절망적인 것이었다. 그의 말을 부정하는 사람들, “보석달린 베일”과 “얼굴”을 부정하는 사람들에게는 “경이로운 지옥이 약속된다. 왜냐하면 그 각 지옥은 999개의 불의 제국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각 제국에는 999개의 불의 산들이, 각 산에는 999개의 불의 성들이, 각 성에는 999개의 층들이, 그리고 각 층에는 999개의 불의 방들이, 그리고 각 방에는 그 사람들 하나하나가 들어갈 것이고, (얼굴과 목소리를 가진) 999종류의 불들이 그를 영원히 고문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불한당들의 세계사 84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장미의 폐멸이 존재하는지 궁금해져서 저도 찾아보았는데 아무래도 찾기가 어렵네요. 다만 또 흥미로운 이야기를 보게 되었는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Le Masque Prophète라는 이름으로 하킴에 대한 소설을 썼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 소설에서는 하킴에게 질병이 찾아와서 얼굴을 훼손시켰다는 설정까지 들어가 있습니다. 참조글을 쓴 저자는 보르헤스가 아무래도 나폴레옹의 글을 읽고 이 내용을 여기에 쓴 것 같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나폴레옹이 소설을 썼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서 이런 추정들이 굉장히 기묘하네요. https://www.cubaencuentro.com/cultura/articulos/como-jorge-luis-borges-intertextualizo-una-narracion-de-napoleon-284949
나폴레옹이 쓴 소설이라니.. 너무 궁금하네요. 지금이야 보르헤스의 명성과 업적을 아는 상태에서 읽으니 괜찮습니다만 당시였다면 표절 논란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르헤스의 스타일에 대한 연구도 지금처럼 진척되지는(?) 않았을테니 오해도 있었을 테고요.
[냉혹한 살인자 빌 해리건]을 읽었습니다. 읽으면서 [플라워 킬링 문]이 생각나더군요. 서부시대를 백인들의 개척 시대가 아닌 토착민들이 느끼는 침입 시대로 그렸기 때문에. '빌리 더 키드'라는 이름이 나오자, 아 이름은 한 번 들어본 적 있는 사람이었구나와 함께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 어째서 이 사람 (이름조차 아닌) 별명만 알게 된 걸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지어 지금까지 '빌리 더 키드' 인물 자체보다는 그를 차용하거나 모델로 삼은 다른 캐릭터들을 통해 이름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멕시코 인들의 분통에 더 관심을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무례한 예절선생 고수께 노 수께]를 읽었습니다. 아무래도 일본 이름이니 고스케 노스케가 아닐까 하고 잠깐 찾아보니 기라 고즈케노즈케吉良上野介로 불리나 봅니다. 이름을 음차하는 방식에 따라 글맛이라는게 정말 달라져서, 가까운 일본 이야기가 아니라 끊임없이 뭔가 들어본 적 없는 어떤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리면서도 익숙한 일본 배경이 자꾸 다시 그 일본을 덧씌우는 기묘한 경험을 했습니다. 어렸을 때 이 부분을 읽었다면, 잘 모르는 나라의 익숙하지 않은 이름의 사람이 나오는 특이한 옛날 이야기로 읽었다면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하고 아쉽기도 하군요.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문화가 사람을 자살하게 할 정도의 위력을 낸다는 것에 소름끼침을 꾸준히 느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예절선생이 다른 이야기들의 불한당들에 비해 악당으로 이야기 될 정도의 사람인가 싶은 악당성에 의문이 생기는 동시에, 남이 처형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 자발적으로 자기 목숨을 끊도록 하는 끔찍한 자발성을 계속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마치 차라리 직접 처벌하는 부모가 자발적으로 아이 자신에게 죄책감을 들도록 하는 부모보다 낫다는 육아론도 떠오르며.) 심지어 마지막에 복수자를 의심했다는 이유로 자기를 죽이는 제3자도 나옵니다. 세상에 명예살인 습속은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명예자살은 한술 더 뜨는 것 같습니다. 현대 일본의 몇몇 컨텐츠들에서도 인간의 목숨을 에너지삼아, 혹은 자발적으로 자신들을 바쳐 동력을 구성하는 이야기들이 흔히 보이는 이유는 이런 기반에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닐지. 꽤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화적 상대성으로 덮히지 않을 정도로.)
이미 복수를 성취한(그러나 분노 없이, 주저함 없이, 회한의 감정 없이) 장수들은 주인의 유골이 모셔져 있는 사원으로 향했다.
불한당들의 세계사 무례한 예절선생 고수께 노 수께, 73p,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분노도, 주저함도, 회환도 없는 그들에게 있는건 대체 무엇인지. 그들의 피에는 문화라는 예절 규칙만이 흐르고 있는 것인지. (따져보면 예절선생에게 자신의 신발끈을 묶으라는 것 자체가 그들의 엄격한 규칙 아래에서는 무례 아니었는지.)
[위장한 염색업자 하킴 데 메르브]를 읽었습니다. 아마 앞으로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게 될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면 뒤로 갈수록 보르헤스의 리듬감에 익숙해져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알 무칸나라는 스펠링이 혼재된 이유는 아무래도 원어가 페르시아어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مقنع인 것 같은데 위키백과에서는 아랍어나 우르두어보다 페르시아어 분량이 가장 많습니다. (그리고 '알 무칸나'에서 무칸나란 말 자체가 아이러니컬하게도 Masked, 즉 '가면을 쓴'이란 뜻으로 보입니다.) 이 글을 읽기 시작했을 때, 보르헤스의 독서량이 많을거겠지만 뭔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는 사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계의 불한당들을 한 명 한 명 뽑으라고 한다면 어느 지역에 편중된 그림이 나올 수 있는데 이 정도면 정말 자기가 아는 범위 내를 샅샅이 뒤져 마음에 드는 이야기들만 골라 배치한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처음 소머리를 쓰고 등장했을 때, 당연하게도 다들 믿지 않았으나 그들을 믿게 만든 수완, 999의 거듭제곱으로 이뤄지는 내세, 보르헤스가 구상했을 결말들로 내용 전체가 기묘한 완결성을 지닙니다. 실제 내려오는 이야기들에서는 가면 뒤에 무엇이 있는지 말씀하셨듯 정확하게 말해진 바 없지만 보르헤스는 나름의 해답을 넣어놨습니다. 어쩌면 진부하면서도, 그럭저럭 종교인으로 알려진 이에게서 떠올릴 수 없었던 답이 아닌가 싶습니다. (문둥병자들을 껴안고 잘 대해줬다는 복선도 있고.) 전 후궁이 말했던 비밀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가면이 벗겨지고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교리에 대한 간결한 정리도 그렇고, 이 단편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여러 나라의 소설 뿐 아니라 민담, 설화, 전설까지 섭렵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합니다. 실제로 보르헤스는 편집자였던 데다가 나중에는 도서관 관장까지 했으니까요. 한국에서는 바다 출판사에서 시리즈로 출간됐습니다. 여러 작가들의 중단편을 모아서 선집 형태로 '바벨의 도서관' 세계 문학 시리즈로 출간했으니 한번 확인해보시기 바랄게용:)
화제로 지정된 대화
[장밋빛 모퉁이의 남자~] 간단히 인상만 말하자면, 재미있는 표현과 묘사가 많아서 읽는 동안 즐거웠습니다. 이 단편은 황병하 선생님이 각주에서도 썼듯이, 처음으로 역사적 사실 관계와 실존 인물을 주인공을 내세우고 있지 않은 작품입니다. 구성에 주목할 만한데, 보르헤스에게 '나'라고 칭하는 인물이 경험한 일화를 들려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내용만 보면 '하룻밤의 칼부림 사건'에 불과해 보입니다. 처음 읽었을 때 의아했던 점은 '나'의 태도였습니다. 로센도 후아레스가 '새장수' 프란시스꼬 레알과의 결투에서 도망가고, 루하네라와 함께 파티장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면서 '나'가 왜 이토록 비통함을 느끼는지 이해하가 어려웠습니다.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이 소설은 1인칭 화자인 '나'가 보르헤스라는 청자, 나아가 독자에게 얘기를 건네는 방식으로 서술돼 있습니다. 따라서 처음에는 전적으로 '나'의 말을 진실이라고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무도곡이 마치 불길처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번져갔지요. 레알은 아주 둔중하게 춤을 췄지만 이미 힘들이지 않고 그녀를 정복해 가고 있었어요. 둘이 문 가까이에 이르렀고 그가 소리를 치더군요. "자, 문을 열라그, 신사분들. 나에게 홀딱 빠진 이 여자를 데려가야겠으니 말이오." 그는 말했고, 둘은 이마와 이마를 맞댄 채 마치 탱고의 거대한 음률 속에 처박힌 듯, 마치 탱고가 자신들을 삼켜버린 듯한 그런 모양을 하고 나갔지요.
불한당들의 세계사 94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저는 바로 이해했던게 묘사상 자기 자신과 춤을 추던 사람을 빼앗긴 거 아니었나요? 아니면 같이 춤을 추지 않았다고 해도 꾸준히 애정과 경탄의 대상이었던 상대를 이방인에게 빼앗긴(?) 마음이었겠죠. 너라도 막아줬어야지 하는 마음에. 그래서 자신이 위험해질 상황을 무릅쓰고 루하네라가 굉장히 곤란해질 상황을 막기도 하고요. (맨 처음에 '그 날 루하네라가 자기 집에 와서 묵은 날'이라 또렷히 기억이 난다, 라고 했으니 자기 집 불을 켜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알 수있고...)
그렇군요. 다시 천천히 읽어보시면 뭔가 이상한 게 좀 느껴지지 않을까 합니다. 일단 '나'가 춤추고 있던 여자가 루하네라라는 근거는 없는 듯합니다. '나'가 춤춘 여자는 "한 끈끈한 여자애"라고만 나오고 있어서, '나'가 아무리 로센도를 동경한다고 해도 저 정도로 분통스러워 하는 감정 변화가 저에게는 조금 갑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자기 자신이 모욕당한 것도 아니고, 루네하라를 빼앗겨서 그렇다고 하기에는 이미 루네하라는 로센도의 애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법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또 하룻밤의 술집에 모인 사람들에게 그 정도로 끈끈한 공동체 의식이 있어 보이지도 않습니다. 한편, '나'가 열을 식힐 때 나가서 만나는 사람은 새장수 프란시스꼬 레알이 아니라 "홀로 마을을 도망치고 있던 로센도"입니다. 이 소설은 1인칭 화자인 '나'의 목소리만 나오고 있다는 게 매우 중요한 지점 같습니다. 굳이 처음부터 3인칭 전지적 시점에서 쓰는 게 아니라, 왜 이런 우회적인 1인칭 형식을 취했는지도 더불어 생각해봐야 할 테고요. 소위 '신뢰할 수 없는 화자'를 내세우는 것은 보르헤스의 다른 작품에서도 구사하는 특징적인 기법입니다. ⟪픽션들⟫의 '칼의 형상'이라는 작품을 봐도 좋을 겁니다. 이런 스타일이 조금더 예각화되서 작품으로 형상화되고 있으니까요. 수고하셨습니다😀
앗, 다시 읽어봐야겠네요. 부끄럽습니다. 저는 로센도를 3번 만났다는 이야긴지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그 동네 마켕이었죠. 저는 주인공이 로센토를 동경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뭐라고 할까 동네에서 가장 험악한 깡패지만 그래도 우리편 깡패 정도로 생각했다고 봤어요. 자릿세 내주는 수준을 넘어 약간 심정적 동질감까지 느끼는? 그런데 루하네라가 단검을 쥐어줘도 밖으로 던저버리고 도망가니... 저는 이 이야기에서 나오는 사람이 진짜 존재하지 않기보다는 왠지 보르헤스가 직접 들은 이야기를 조금 각색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알쏭달쏭합니다. 처음부터 다시 차근차근 읽어봐야겠어요. (왠지 이 소설은 잘 안 읽혀서 혼자 읽을 때 목소리를 내서 좀 읽어봤는데 그제서야 이해가 잘 되더군요. 밖에 들고나가서 다시 속으로 읽었지만, 다시 읽을 떈 전부 소리내서 읽어봐야겠어요 :( )
작성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
💡독서모임에 관심있는 출판사들을 위한 안내
출판사 협업 문의 관련 안내
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중간 참여할 수 있어요!
2025년에는 어떤 책을 읽을까요?
[그믐밤] 31. 새해 읽고 싶은 책 이야기해요.
🍷 애주가를 위한 큐레이션
[그믐밤] 30. 올해의 <술 맛 멋> 이야기해요. [그믐밤] 19. <주종은 가리지 않습니다만> 부제: 애주가를 위한 밤[서강도서관 x 그믐] ④우리동네 초대석_김혼비 <아무튼, 술>
🧱🧱 새해에도 벽돌책 같이 격파해요! (ft. YG)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8. <행동>[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7. <노이즈>[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6. <마오주의>[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4. <메리와 메리>[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2.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bookulove님의 별점 서평 블로그
24-098 | 유수연, 사랑하고 선량하게 잦아드네24-096 | 정다연, 다정의 온도24-095 | 데니스 루헤인, 작은 자비들24-093 | 이반 투르게네프, 사랑은 죽음보다 더 강하다
혼자 읽기 어려운 보르헤스, russist 님과 함께라면?
(9) [보르헤스 읽기]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1부 같이 읽어요(1) [보르헤스 읽기] 『불한당들의 세계사』 같이 읽어요(2) [보르헤스 읽기] 『픽션들』 같이 읽어요
'하루키'라는 장르
[Re:Fresh] 4.『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다시 읽어요.[그믐밤] 16. 하루키 읽는 밤 @수북강녕 하루키가 어렵다면!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함께 읽기에이츠발 독서모임 16회차: <기사단장 죽이기> / 무라카미 하루키 저
스토리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모였어요.
스토리 탐험단의 첫 번째 여정 [이야기의 탄생][작법서 읽기] Story :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함께 읽기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함께 읽으실래요?
<책방연희>의 다정한 책방지기와 함께~
[책방연희X그믐] <책 읽다 절교할 뻔> 번외편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읽기[책방연희X그믐] <책 읽다 절교할 뻔> 번외편 <내가 늙어버린 여름> 읽기[책방연희X그믐] 책 읽다 절교할 뻔
❄겨울에는 러시아 문학이 제 맛
[문예세계문학선] #01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함께 읽기[그믐밤] 8. 도박사 1탄, 죄와 벌@수북강녕[브릭스 북클럽]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커다란 초록 천막》 1, 2권 함께 읽기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 채식이 궁금한 사람들은 이곳으로~
12주에 채식 관련 책 12권 읽기 ② 채식의 배신 (리어 키스)12주에 채식 관련 책 12권 읽기 ① 채식의 철학 (토니 밀리건)
모집중밤하늘
내 블로그
내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