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세계사 독서모임] 염기원 작가와 함께 읽는 『여고생 챔프 아서왕』

D-29
poiein님, 반갑습니다. 시를 좋아하시나봐요. :) 즐거운 독서 되시기를 바랍니다.
염기원 작가님 글을 월급사실주의 동인의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에서 처음 접했습니다. 이 독서모임을 신청하고 작가님 이름이 머릿속에 들어왔었는데 얼마 전 도서관에 갔다가 신간 란에 위 책이 있어서 살펴 보니 작가님 이름이 딱 들어가 있더라고요. 군무원 이야기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술이 웬수지요...ㅎㅎㅎ 심각한 문제를 굉장히 재치있게 그려낸 글솜씨가 일품이었습니다.
아, “혁명의 온도”도 읽으셨군요. 고맙습니다. :) 술이 웬수지만 술 덕분에 뭔가 풀리기도 하고... 삶이란 아이러니로 가득한 것 같아요. 단편을 잘 쓰지 않지만 대개 어두운 내용이었는데, 모처럼 꽤 재밌게 썼습니다. (그런데 군무원 얘기는 아무래도 흥미를 끌기 힘들더라고요.)
작년, 이꽃님 작가님의 <여름을한입베어물었더니>에는 유도하는 여학생이 주인공이었어요. 우리가 열광하는 프로스포츠가 대부분 남성들이 주인공이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야구는 국내 여자 프로리그 조차 없어요. 운동장은 축구하는 남자들 차지이고요. 작품속에서 다양한 생활환경에서 고통받는 여성들의 모습들이 등장한것도 인상적이었어요. 주인공을 운동하는 여중고생을 설정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특별히 권투였던 이유도요.
장편을 마치고 나면 짧게라도 여행을 가곤 합니다. 낯선 곳에 가서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며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게 좋더라고요. 그러다가 글감을 얻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가 집필한 순서와 출간한 순서가 달라서 그런데요. “구디 얀다르크” 이후로 남성 화자의 글만 쓰다가 3년 만에 여성 화자를 등장시켰어요. 이후 성인 남성이 주인공인 두 편을 더 쓰고 나온 게 “오빠 새끼 잡으러 간다”입니다. “여고생 챔프 아서왕”의 얘기는 단 한 줄로 시작한 “오빠 새끼 잡으러 간다”보다 이야기 얼개를 더 빨리 잡았어요. 작가의 말에서도 언급했지만, 집필 속도도 역대급이었습니다. 하루에 46.8매를 썼거든요. 사실 주인공을 여성 중에서도 미성년자인데다가 가난한 환경에 처한 인물로 설정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이면서 소수자인 XXX’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고요. 제가 생각한 이야기 구조, 그러니까 시련을 극복한다는 큰 줄기에 대응시키다 보니 나왔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몇 가지 구기 종목을 제외하면, 운동이란 게 배고픈 이들에게 희망 고문이 되는 경우가 많지요. 그중 맨주먹으로 가난과 역경을 날릴 수 있을 것 같은 복싱이 대표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좋아했던 종목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자기 주먹으로 희망을 연다는 기대에 찬, 아직 어린 여고생이, 극복할 수 없는 위기에 처한 상황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이 소설의 알레고리인 모순과 역설이라는 구조가 만들어지는데요.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것 같은 것들입니다. 제가 이달 말에 출간할 책의 최종 교정을 내일까지 보기로 해서 일단 미흡하나마 답변을 드렸어요. 추가 질문 주시면 더 맑은 정신으로 정성껏 답해드리겠습니다. :)
이 문장이 좋았는데… 완벽한 복선이었네요 :)
앗 그렇군요. 복싱으로 끝내는 이야기였어요. 복수로 끝낼 줄 알았는뎅... ^^
PD님 반갑습니다. :) 언제 오시나 기다렸어요.
앗 그렇군요. 작가님을 기다리시게 하다니! 죄송합니다. 제가 실은 지난주에 제주에 다녀오느라 책을 못 읽었어요. 한라산 산행을 포함한 여행이라 짐이 많아서 책을 두고 갔거든요. 추천사도 있고, 1월 말에 나올 새 책 마무리 작업도 있고, 일이 밀려 아서왕 완독이 늦어졌습니다. 그런데요, 작가님 책은 실은 아껴두는 재미가 또 있어요. 일하다 지칠 때 보면 훅 빨려들거든요. ^^
제주도에서 홍길동 놀이하시는 거 이미 SNS로 염탐했습니다. ^^;; 저도 겨울 한라산이 궁금한데 게을러서 못 가고 있네요. PD님도 월말에 새 책을 내시는군요. 축하드립니다! 아껴두고 보신다는 말에 또 심쿵합니다. :)
아, 제가 복선을 즐겨 쓰기는 하는데요. 이 부분은 저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복선이었군요! :)
"복싱? 무서워. 사람을 어떻게 때려?" "네가 아는 것과 달라. 제대로 몸 쓰는 법을 가르쳐서 사람을 완전히 개조시키는 거래."
여고생 챔프 아서왕 p.11, 염기원 지음
(…)나는 서운함을 표현하지도, 가라앉지 않은 분노를 나타내지도 않았다. 다만 그들처럼 치사하게 살지는 말자고 다짐했다. 지영 언니(…) 욕을 하는 대화에 나는 끼어들지 않았다.
여고생 챔프 아서왕 p.90, 염기원 지음
안녕하세요, 작가님. 방금 막 아서왕 다 읽고요. 작가의 말을 읽고 <해에게서 소년에게> 노래를 찾아서 듣고 있어요. 호수공원을 돌며 이 노래를 들으셨다는 대목이 와닿네요. 저는요... 한때 복수를 꿈꾼 적이 있어요. 그때마다 영화 <영웅본색>에 나오는 <풍림각> 장면을 들으며 복수를 상상했지요. <아서왕> 완전, 좋아요. 최고의 복수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복수는요, 사람을 갉아먹거든요. 최고의 복수는 내가 더 행복해지는 거지요. 이번 작품도 참 좋았어요. 특히 막판에 마구 달리게 되는 이야기였어요. (초반에는 안타깝고 답답해서 진도가 좀 안 나갔어요...) 엔딩을 보고 난 후, 약간 멍했는데요. 아, 좋네요, 이런 복수. 멋진 작품을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 책을 조신하게 기다립니다.
앗, 다 읽으셨군요. 고맙습니다! 그 노래 들으며 울면서 달린 적도 많았답니다. 김포로 이사 온 뒤로는 호수공원 대신 생태공원을 달려요. (풍림각 장면이라면, 음악이 줄어들면서 캬! 윤발 형님 멋지죠.) 복수에 대한 기준도 기대도 저마다 다르겠지만 이번에도 저는 많은 분이 실망(?)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시놉시스 단계에서 이미 속 시원하고 화끈한 복수는 염두에 두지 않았거든요. 문체와 캐릭터는 발랄하게 하면서 이면에 무거운 고찰을 담는 것에 신경을 썼습니다. 이번에도 좋게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 교정 보고 있는 차기작, 보름 후쯤 나올 소설이 꽤 재미있네요.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을 썼다고 기억했는데 다시 보다가 몇 번 웃었어요. :)
작가님, 책을 막 다 읽었을 때는 좀 더 후련하고 통쾌한 복수를 해주셨으면 어땠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새벽에 문득 깨달았어요. 아서왕이 이야기 내내 지내는 공간의 의미요. 교도소잖아요. 그 중에는 사적인 복수를 행하고 죗값을 치르기 위해 들어온 이들이 있지요. 그리고 수감이라는 것이 어쩌면 국가가 개인을 대신해 복수해주는 행위일 수도 있고요. 복수란 무엇일까? 사적인 복수의 끝이 어디일까? 그걸 끝없이 고민하게 만드는 공간이 교도소가 아닐까. 그래서 서아는 교도소를 나와 최고의 복수가 무엇인지 깨닫고 그걸 실행하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너무너무 좋은 이야기 구조더라고요. 캬아아아아! 멋지십니다. 고행의 행군을 하시며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다 짜내셨는지. 역시 염기원 작가 만세입니다! 다음 책도 기다려집니당~
사실 고민이 되는 부분이었어요. 영화와 OTT 관련 제작사와 함께 검토한 곳이 있는데, 요즘 트랜드에 맞게 좀 수정해서 영상화 계약과 출간을 동시 계약하자는 제안을 받았거든요. 그럼에도 애초의 주제를 벗어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아쉽기도 하지만 후회는 없어요. 맞아요. 속 시원한 얘기로 푸는 대신 서아에게 최고의 복수란 무엇일까, 그걸 넘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정답은 없겠습니다만, 제가 생각하는...)에 천착하기로 결심하고 만든 이야기 구조입니다. 서아에게는 담금질을 위한 공간과 시간이 필요했지요. 오래도록 품었던 생각이었기에 이야기 얼개를 짜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네요. 날이 조금 춥지만, 오늘도 PD님답게, 뜨거운 하루 보내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되시길.
이른 점심밥을 먹고 오후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좀전에 완독했습니다. 읽는 내내 서아를 응원하면서, '어, 나 해피엔딩 좋아했네.' 어리둥절해 하면서요.^^ 복싱 용어와 체급, 한국 여자복싱계의 현실, 구치소와 교도소 관련한 용어들까지 생소한 내용도 서아의 상황과 사건들속에 유기적으로 얽혀 있어서 책장이 잘 넘어갔어요. 반가운 내용도 있었죠. 영화 <가버나움> 같은, 2NE1 같은.ㅎㅎ^^ 무엇보다 '너 지렁이 같은 야곱아'(p.220)에서 서아의 복수가 확연해지고, 영신 이모의 "딸아, (...) 웃어라. 이길 때마다 활짝 웃어."(p.231) 에서 해피엔딩을 확인하면서 굉장히 행복해 지더군요. 특히, 서아의 곁을 지킨 어른들 중에서 면회 온 할배의 외침이 오래 남습니다. 세상 사람들 신경 쓰지 말고 네 템포로 네 스타일로 네 게임을 하라는. (p.140) 복수의 외피를 두른 성장 소설을 읽었더니 어느새 내 템포와 스타일로 내 게임을 하고 있는지 살펴 보는 일요일 저녁입니다. 고맙습니다.
완독하느라, 우리 서아를 응원하시느라 수고하셨어요. 고맙습니다. “가버나움”은 제 인생작이라 꼭 넣고 싶었는데 마침 들어맞는 상황을 연출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속한 문학회 분들은 할배를 가장 좋아하시더군요. :) 복싱을 비롯한 격투 종목과 교정시설에 관해 심도 깊게 취재한 적이 있었어요. 웹소설을 쓸 때였는데 인터뷰하고 조사한 분량이 엄청 많았음에도 얼마 쓰지는 않았습니다. 취재한 것 중 작중 상황에 맞는 일부만 풀어내야 했기 때문이죠. 다행히 그게 이 작품에서는 도움이 됐네요. 결말을 예측하면서 읽으셨군요. 작품마다 많은 힌트를 담는데도 결론에서 뜨악했다는 의견을 가끔 듣는지라 더욱 반갑습니다. 복수의 외피를 두른 성장 소설, 맞습니다. :) 재밌게, 그리고 깊이 읽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평안한 밤 되시길.
리뷰글 정리해서 알라딘 서점과 인스타 그램에 올렸습니다. 해당 글을 본문에도 같이 올려 놓겠습니다. 서점 : https://blog.aladin.co.kr/749940190/15223277 인스타 : https://www.instagram.com/p/C2FWCOiP6J-/?igsh=MjdpdXh6cDBnMjF5 <아서왕의 엑스칼리버는 아발론에 잠들고> 여고생과 아서왕이라니. 참 낯선 것들의 조합이라 궁금증이 더 차오른다. 표지에는 또렷하게 정면을 응시하는 여고생 복서의 당찬 모습이 그려져 있다. 아서왕은 엑스칼리버를 뽑아 자신의 나라를 건국하였고, 사랑하는 여자와 믿고 있던 부하의 배신에도 그들에게 처절한 복수를 가하지 않았다. 엑스칼리버는 복수의 도구가 아니라 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예물이 되었다. 왕서아의 복싱도 그러했다. 복싱으로 인생을 또렷하게 살기 시작한 그녀는 마지막까지 복싱으로 말했다. 복싱이야말로 어떻게 보면 복수의 도구가 아니면서도 그렇기도 했다. 읽어나가면서 후반부의 내용을 요즘 입맛에 맞게 냈다면 2차 창작까지 흥행의 흐름을 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렇게 바뀐 이야기를 생각하니 입맛이 또한 썼다. 요즘 넷플릭스에서 나오는 드라마들을 보면 치밀하게, 잔인하게, 통쾌하게 복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많은 이들이 사이다를 원한다. 사이다를 마시지 않으면 목에 걸린 고구마를 내려보내지 못하는가 보다. 그 사이다의 뻥 뚫림을 인정한다. 그러면서 나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 사이다를 기꺼이 마시고 싶지는 않다. 급하게 사이다를 꿀꺽 들이키면 목 넘김 시 통증이 있다. 다들 그런 통증을 느낄 것 같은데 워낙 세상이 흉흉하니 그 다음의 쾌감을 위해 참나 보다. 나는 아프다. 못 넘기겠다. 복수의 탈을 쓴 무차별한 육체적, 정신적 폭력이 너무나 당연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너가 그 상황에 놓이면 그런 복수를 안 하고 싶겠니, 누군가가 반문할 수도 있고, 감히 나도 그렇게 하지 않을 거다 라고 지금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냥 불편한 건 불편한 거다. 막판에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작가님도 나와 같은 생각이라 묘했다. 여러 수정 제의에도 굴하지 않고 이렇게 결말을 내준 작가님에게 감사하다. 특별히 작가의 말에서 '인과율을 믿는다'는 문장이 마음에 와닿았다. 세상에는 모든 것을 자신의 손으로 투쟁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이 대다수다. 그 생각도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왕서아처럼 부정적인 상황에 놓여 있을 때 그것을 갚아주기 위해 나를 포기하고 또다른 나를 만들어 내는 것은 참 지난한 일이다.(물론 사람마다 그것이 더 가치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각자의 가치관이니 존중한다.) 최고의 복수는 나를 누르는 압력과 나를 괴롭게 하는 상황과 나를 적대하고 이용하는 사람들에게서 나란 존재를 오롯이 지켜내는 것이다. 그것들에게 휘둘리는 존재가 아닌, 단단한 뿌리 위에서 흔들림없이 정면으로 마주보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표지의 캐릭터처럼) 그렇게 내 자신이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 왕서아는 인간의 도리를 지키며, 강인한 육체 속에 연약한 내면을, 그리고 연약함을 죄가 아닌 선으로 바꾸는 선택을 하게 된다.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구른 후 약속의 땅에 들어선 것처럼, 예수가 세례 후 광야에서 바로 시험을 받은 다음 기적의 사역을 시작한 것처럼 왕서아도 광야와 같은 단절된 땅인 교도소로 들어가 그곳에서 담금질을 하게 된다. 내면으로, 외면으로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갈고 닦는다. 다행히 작가님의 따스한 안배 덕분에 악질적인 사람들만이 아닌, 정말 괜찮은 사람들을 교도소에서 많이 만남으로써 그 수양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결실을 맺는다. 심청이로 시작한 왕서아의 인간적 매력은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하다. 케케묵은 전통적인 감성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적 정서에 대한 공감이라고 말하고 싶다. 비록 심청이처럼 자신의 실제 부모를 봉양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지만 그럼에도 교도소에서 나와 프로 선수로서 자기 길을 가는 왕서아는 돌아가신 어머님에게 부끄럽지 않은 딸로서 살아갈 것이다. 그것 또한 효도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그녀의 마지막 선택을 사회적 자본을 극복하지 못한 수동적인 결정, 거대한 불의에 침묵하는 태도라고 보기보다는 자기 삶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용기있는 선택으로 평가하고 싶다. 복수물이 범람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오래된, 그렇지만 가치있는 영감을 전하는 책이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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