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미.. 인풋과 아웃풋이 언제나 정비례하지는 않죠. ㅠㅠ 그래도 인풋이 많으시다니 어디여요. 저는 언제부턴가 인풋도 없는 것 같은... 원고 보다가 세월 다 가요~ ('원고'와 '책'은 동의어가 아닙니다ㅡ.,ㅡ;;)
[그믐밤] 18.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with 마름모출판사
D-29
고우리
장맥주
저도 인풋은 많은데 아웃풋으로 잘 변환되지가 않아서 함께 웁니다... 인풋을 좀 줄여야 할 거 같다는 생각마저 드네요. 아웃풋으로 변환할 생각을 안 하고 무언가를 읽거나 보는 행위 자체를 편안히 즐기는 것 아닌가 하는 죄책감도요.
글쓰기 자체 가 생각을 이끈다는 점에 저도 엄청 공감했어요. 특히 ‘코딩’이라는 표현에 맞다, 저거다, 했습니다.
수은등
1. 작가는 ‘생계’와 ‘업데이트’를 위해 외부 요청을 그것이 칼럼 청탁이든, 유튜브 출연이든 강연이든 모두 수락했다고 했습니다. 공모전 당선 이후 기고 요청에 응하는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양을 쓰게 되었고 일정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고요. 외부와 소통하며 계속 많이 쓰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되는데, ‘그 쉽지 않은 것을 꾸준히 지속하느냐 내키면 하느냐'에 따라 전업 작가와 취미 글쓰기가 구분되는 건가?’라고 생각하면서 인상 깊게 봤습니다.
2. 일상의 경험에서 스쳐 지나가는 단상이나 통찰을 ‘나의 언어’로 잡아두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3. 이 과정을 통해 나는 알게 되었다. 진정한 배움은 실전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지식을 전수받기 위해 작정하고 앉아 있었던 학창 시절이나 소설 공모전에 당선되기 위해 앉아서 하루의 대부분을 각 잡고 글을 쓰던 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분량과 강도의 배움이, 발전이, 작가가 되어 맡은 여러 생경한 역할들을 소화하던 때에 일어났다. p39
고우리
저도 외부 요청, 칼럼, 청탁 등을 닥치는 대로 수락했다던 작가의 말을 듣고 아, 이것이 '작가'와 나의 다른 점인가 했습니다. 저에게도 어쩌다 한 번씩 강연 요청이 들어오는데, 저는 해본 적도 없고 무섭기도 하고 솔직히 귀찮기도 해서;; 언제나 숨어버리거든요. 성장하고 발전하는 사람은 그런 문턱을 한 번씩 꼭 넘는 것 같아요. 반성 반성.... ㅠㅠ
장맥주
@수은등 @지호림 저한테는 지금도 아주 고민되는 지점이에요. 글쓰기 외의 다른 제안들을 어느 선에서 끊고 맺을 것이냐. 수입만 놓고 보자면 본업인 소설 쓰기만큼 시간당 순익이 낮은 업무가 없고, 에너지 레벨도 낮고 성격도 내향적이어서 다른 사람 오래 만나고 들어오면 지쳐 나자빠지고요. 그런데 분명히 그런 제안들을 하고 돌아오면 여러 방면에서 제 실력이 늘어나는 것도 느끼고 또 세상사에 대해 업데이트가 되기도 합니다. 실은 얼마 전 신문 칼럼 연재를 다 그만두는 결정을 내리고 강연도 대부분 줄이자는 결정을 내렸는데, 그렇게 내려놓고 나서는 과연 잘한 선택이었는지 하루에도 몇 번이나 생각이 왔다갔다 합니다. 게다가 그렇게 글 쓰는 시간을 확보한 뒤 정작 글은 안 쓰고 있네요.
정아은
외부 기고나 행사 요청은 언제나 갈등하게 되는 요인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일단 그런 요청이 아주아주 많지 않아서 대부분 받아들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 편인데요. 외부 기고나 강연, 행사가 갖는 성격에 대해 그때 그때 작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른 관점을 갖게 될 것 같아요.
저는 한겨레 신문에 <정아은의 책들 사이로>라는 짧은 문학 서평 칼럼을 쓰고 있는데요. 사실 짧은 글쓰기를 아주 선호하는 편은 아니라서 그리 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쓰라고 권해주신 기자님이 제가 너무 좋아하는 분이라, 그분과 메일이라도 주고 받아보고 싶은 마음에,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놓고 후회했지요. 근데 쓰다보니 와, 이런 글쓰기가 의외로 또 재미가 있더라고요.
저는 단편소설을 많이 안 읽었고, 그래서 단편을 거의 안 쓰는 편인데, 이 칼럼을 맡게 되면서 단편소설을 많이 읽게 됐어요. 읽다보니 또 단편만이 주는 묘미가 있어서 재미있고, 어, 나도 단편을 좀 써볼까? 하는 마음도(아아, 머릿속에서는 무엇인들 못 쓰겠습니꽈~~)들더라고요. 이 경험을 통해 '외부', 혹은 '타인의 의지'에 대해 생각을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바깥에서 들어오는 나 아닌 누군가의 의지가 내게 '우연' 같은 절대적 계기나 배움의 시작이 되는 현상에 주목하게 된 것이죠. 또한 무엇인 진정한 '나'만의 의지인가? 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고요.
이를테면 내가 작정하고 선택해 씨디를 걸어놓고 들은 음악과, 라디오에서 우연히 들은 음악이 주는 파급효과의 차이 같은 것 말입니다. 전자에는 기대심리와 그로 인한 선입견과 미리부터 실망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후자에는 '갑자기' 찾아온 선물같은 효과와 그 의외성에서 오는 깜짝 효과가 있더라고요. 인생의 전반에서 제 '의지'를 중요시하고 살아왔는데, 후반에 들어서서는 이렇게 '타의'와 '자의'간의 경계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게 나이들수록 '보수화'된다는 말과 통하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아, 쓰다보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인지...제가 감기 중이라 좀 정신이 혼미합니다아. 크리스마스이니 너른 양해를 구합니다아아~~메리 크리스마스 되시길요, 작가님~~~
장맥주
와! 작가님이 직접 등장하시다니, 영광입니다.
저는 생각해보니 칼럼을 다 그만둔 건 아니고 한 달에 한 번 쓰는 독서 칼럼 하나는 그대로 하고 있네요. 제가 애정이 있어서. 그 칼럼만큼은 저도 재미있게 쓰고 있습니다.
저는 칼럼 연재와 외부 일정을 올 가을에 확 줄이면서 생긴 가장 큰 부작용이 일상이 무너진 거였어요. 자잘한 마감들이 일상을 지켜주고 있었던 거죠. 작품에 몰두하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막상 책상에 앉아서 쓰는 글은 없고, 몸이 게을러지면서 마음도 게을러져서 급기야는 무기력증에 빠져 항우울제 처방을 받게 되었습니다(전에도 받은 적 있어요). 그러면서 전에는 투덜댔던 ‘아르바이트들’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아침 햇빛을 쬐는 게 우울증에도 좋고 신체 리듬을 세팅하는 데에도 중요하다고 해서 아침마다 산책을 나가려 합니다. 회사 다닐 시절에는 이럴 필요도 없었지, 강제로 아침에 햇빛을 쬐어야 했지, 생각하면 허탈한 웃음이 나옵니다.
그렇다고 다시 칼럼 연재나 외부 일정들을 만들고 싶지는 않고, 2025년 말까지는 한번 이렇게 살아보겠다, 뭐가 될지는 몰라도 아무튼 해보겠다,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까지 버틸 자신이나 내다 볼 여유가 없네요. 저도 의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을 산다고 생각했는데, 타의라고 하기는 애매하고 한계라고 불러야 할까, 아무튼 자의는 아닌 어떤 저항을 거세게 느끼고 있어요. 저도 크리스마스에 맥주 마시면서 혼미한 정신으로 썼습니다(항우울제 복용하면서 술 마시면 안 된다고 하던데). 감기 빨리 나으세요!
신나는아름쌤
타의와 자의의 경계에 의심의 눈초리를 세운다.는 표현 너무 좋네요~좋은게 다 좋은게 아니고 반대로 나쁜 상황도 성장과 성숙의 계기가 될 수 있으니..시간 소모없이 결이 닮은 사람들과 담소 나눌수있는 그믐 공간이 참 감사히 여겨집니다~♡
연해
1. '잘 쓰지 않겠다'라는 소제목에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처음부터 너무 완성도 높은 글을 쓰려고 하다가 문장 하나 하나를 검열하고 있는 저를 발견할 때면, 그 자체만으로 부담스러울 때가 있거든요. 물론 제가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있지는 않지만 워낙에 읽고 쓰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서요.
어떤 날은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한참 탄력받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보통 별생각 없이 쓰던 글이 쭉쭉 잘 써질 때인 것 같아요. 잘 써야겠다던가, 꼭 해야만 한다던가 하는 부담 없이요.
그리고 글쓰기에는 정답이 없다는 말씀도 좋았어요. '해결'과 '성과'를 만들어내길 좋아하는 국가 분위기가 국민 개개인에게 스며들어 너무도 당연하게 성과(혹은 정답)를 바라지 않았나 싶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사람은 평소 제 안에 집어넣었던 것들을 밖으로 꺼내 놓게 된다는 말씀도 좋았습니다. 흔히 자극적인 콘텐츠를 보고도 잊어버리면 그만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저는 사실 그 잔상이 오래 남는 편이라서요. 일단 안 좋은 것(자극적인 콘텐츠나 가십거리?)을 보면 그게 제 삶에 꼭 파장을 일으키곤 하더라고요. 그래서 되도록 좋은 것, 건강한 콘텐츠만 접하려 하는 편입니다. 피상적으로 돌고 도는 가벼운 매체들을 부러 피하는 편이에요. 알게 모르게 저의 알고리즘에 녹아내리기 시작하면 제가 지각하지도 못하게 제 몸(말이나 행동)에서 흘러나올 것만 같아서요. 그런 의미에서 평소에 많이 보아왔던 것과 접해왔던 것을 쓰게 된다는 작가님의 말씀에 너무 공감했어요. 마치 습관이라는 게 말이나 행동에서 자연스레 묻어 나오는 것처럼 글쓰기 또한 마찬가지구나 싶더라고요.
장맥주
뒷부분에 적어주신 내용 보고 여러 생각이 들어요. 제가 건강한 콘텐츠만 접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인터넷 뉴스와 게시판 보는 시간을 확 줄이다 못해 거의 없앴거든요. SNS도 끊다시피 하고요. 주된 정보를 접하는 통로를 책(단행본)으로 하자고 마음 먹었더랬죠. 그런데 이후에 가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세상 소식을 잘 못 쫓아간다는 자각을 하곤 합니다. 이게 단순히 화제가 되는 뉴스를 모른다는 수준이 아니라 점점 뒷방 늙은이가 되어가는 수순인 것 같아서 솔직히 겁도 나요. 학계의 연구자라 해도 자기 분야의 동향은 파악해야 할 텐데, 저처럼 상품을 대중 앞에 내보여야 하는 사람은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닐까, 그런 걱정이 드네요. 고급 문화-저급 문화를 가른다는 행위에 젊은 시절 내내 무척 거부감이 있었는데 유튜브나 틱톡에 올라오는 ‘콘텐츠’들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묘한 기분도 듭니다.
챠우챠우
최신 트렌드에 뒤쳐지더라도 인터넷뉴스와 SNS를 끊을 수만 있다면 끊는 게 뇌를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물론 저도 그게 안 돼서 잘 못하고 있긴 하지만요. 하루에 한 시간 정도 라디오를 듣고 종이신문을 읽는 정도만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디지털 미니멀리즘] 에서 추천하는 방법이긴 합니다.
그러면 ‘댓글부대’ 같은 작품은 이제 나오기 힘드려나요? 하지만 절약된 에너지로 ‘1Q84’ 나 ’1984‘ 같은 작품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팬심으로 주제넘은 말씀드려봤습 니다.
디지털 미니멀리즘 - 딥 워크를 뛰어넘는 삶의 원칙《딥 워크》의 저자이자 컴퓨터공학자인 칼 뉴포트는 우리를 좀먹고 있는 디지털 과잉 환경에서 우리가 기술과 맺은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디지털 미니멀리즘’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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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맥주
『디지털 미니멀리즘』 저도 인상적으로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 즈음에 비슷비슷한 책들을 많이 읽었던 터라 조언들을 막 뒤섞어 듣기도 했고(소셜미디어를 아예 끊으라는 내용도 있었던 거 같습니다. 재런 러니어의 책이었던가?), 종이 신문 기자였던 주제에 종이 신문은 구독하기 부담스럽고, 극단주의적 기질도 있어서 그냥 소셜미디어+인터넷+뉴스 자체를 다 피하게 되었네요. 『댓글부대』... 같은 소설은 아마 앞으로 안 쓸 거 같은데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1984』 같은 소설 한 편 쓰고 죽을 수 있으면 원이 없겠습니다. (『1Q84』 말고... 저는 하루키는 높이 평가하지만 『1Q84』가 하루키의 대표작인 거 같지는 않더라고요.)
거북별85
작품들 제목만 보아도 예전의 감동으로 떨리네요~~^^;;
전 <1984>나 <동물농장> 읽고 너무 무서웠고 그래서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조지오웰에 대해 잘은 몰랐지만 이런 작품을 쓴다는것 자체가 놀랍더라구요 어떻게 이런 공간과 스토리를 쭉쭉 풀어내시는지~글 속에서 공포와 전율이 느껴져요!!
<댓글부대>를 읽으면서도 어떻게 이런 조작들과 이런 사건들이 벌어지는지 놀라웠어요 와!! 모두 대단하신거 같으세요~(장작가님 '1984' 가능하실듯요!!^^)
전 생각보다 <1Q84>에서는 그런 감동을 못 느꼈는데 무라카미 하루키는 <노르웨이의 숲>이나<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 대표작일까요???^^;;
장맥주
제가 꼽는 하루키 대표작은 "노르웨이의 숲"입니다~. tmi... ^^
거북별85
ㅎㅎ 감사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님 책들이 너무 많아 다 읽을 자신도 없고 애초에 매력을 못느끼면 훌륭한분 알아보지도 못할거 같구 그래서 혜안있으신 분들의 조언이 좀 필요하지요
책읽기도 왠지 처음 음식을 접할 때 느낌같아요 아이에게 시금치가 몸에 좋다며 억지로 먹이고 혼내기보다는 아이들이 좋아할 식감과 풍미로 음식을 준비해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즐기게 한다면 그 기억으로 이후에도 스스로 찾아서 먹게되잖요
워낙 유명하신 분들 작품을 접할 때도 나만 안읽었다 말하기 쑥스럽고 그러다 읽은 책에 매력을 못 느끼면 편견 생겨서 다른 소리하며 읽지않고 하게 되는것 같습니다 ^^;;
고우리
저도 대공감합니다~ 조지 오웰도 그렇고 <댓글 부대>도 그렇고~ <댓글 부대> 같은 경우는 어떻게 그렇게 정교하게 구성을 짰는지 정말 혀를 내둘렀내요~ 장강명 작가님 천재? 저도 <일큐팔사>는 크게 감동을 못 느꼈고요, 아래 장맥주 님 말씀처럼 하루키의 대표작은 <노르웨이의 숲>이 맞는 것 같습니다~
연해
아, 작가님. 이 글은 읽다가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뒷방 늙은이라뇨(맙소사). 근데 저도 여기저기서 애늙은이 취급을 자주 당하는 편이라 이제는 많이 무던해지긴 했어요. 약간 미개인(?) 보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웃자고 하는 얘기).
제 직업 특성상 트렌드를 기민하게 따라가야 하는 위치가 아닌지라 저는 작가님과는 조금 다른 입장인 것 같아요. 마음껏 무시(?) 당해도 그러려니 하며 살아가고(는) 있습니다. 다만 그건 명확히 하려고 해요. 건강한 콘텐츠만 접하는 것도 맞지만, 세상 돌아가는 굵직굵직한 흐름은 전반적으로 알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그 외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가십거리에는 눈을 돌리는 편이고(시간 낭비 같아서요),그런 대화에 동참하지도 않는 편입니다(회사에서는 대체로 수다 문화에서 이탈했죠). 그 외에는 제가 좋아하는 건강한 생활들로 가득 채웁니다. 가끔은 그런 생각도 들어요. 산속에 들어가 혼자 살고 싶다는 생각이요. 하지만 SNS와 아예 거리를 두고 살 수는 없더라고요. 건강한 콘텐츠(이를테면 그믐이라던가, 그믐이라던가...)도 있고, 사고의 영역을 넓히려면 인풋이 있어야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배움은 실전에서 일어난다는 정아은 작가님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게 됐죠. 다만 맺고 끊음을 확실하게 하는 것처럼 도파민의 노예가 되지 않게 자제하는 것은 중요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말이 점점 길어지는 데(이건 좀 자제가 안 되네요), 최근에 읽었던 책이 저에게 조금 더 이쪽으로 가도 괜찮겠다는 자각을 넣어준 것 같기도 해요.
나의 빛을 가리지 말라구글 전략가 출신 옥스퍼드대학 철학자 제임스 윌리엄스는 이 책 『나의 빛을 가리지 말라』에서 주의 뺏기 경쟁 시대에 자기통제력을 지키는 법을 소개한다. 저자는 디지털 기술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통념부터 되짚는다.
책장 바로가기
장맥주
『나의 빛을 가리지 말라』 장바구니에 잘 모셔놨습니다. 책 추천 감사합니다. ‘기술윤리학’이라는 학문에도 관심이 가네요. (그런데 뒷방 늙은이가 되는 거 같은 기분은 약간 서글프기는 한데 아주 나쁜 건 아니에요... 뒷방에 숨어 있는 편이 제 적성에 더 잘 맞을지도... ^^;;;)
연해
으앗, 감사합니다. 작가님. 영광이에요.
작가님이 그 책을 읽고 어떤 감상을 느끼셨을지도 궁금한데,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작가님의 블로그를 참고해 보겠습니다(아니, 근데 책을 어쩜 이렇게 많이 읽으실 수 있는 건가요?). - 작가님 블로그 애독자 중 1인
뒷방 늙은이라는 표현 저는 좋은데요(입에 착착 붙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그렇게 나이 들어 가고 싶고요. 사람들과 와글와글 몰려다니기보다는 그냥 조용히 제 할 일 하면서, 시대에 좀 뒤떨어진(?) 사람으로 사는 게 속 편하고 좋더라고요.
장맥주
저야말로 책 추천 감사합니다. 뒷방에서 열심히 읽겠습니다. 딱히 다른 취미가 없어서 남들보다 책 읽을 시간이 많은 것뿐이에요. 게임, 운동, 춤 등 몸으로 하는 건 전부 못하고 음악이나 미술, 공연 등 다른 분야 예술도 거의 모르고 사람 만나는 것도 싫어하고... 그냥 누워서 소설이나 교양서 읽는 게 세상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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