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항상 한 발짝씩 늦는 사람이라 후기도 뒤늦게 남겨봅니다. 소중한 기억은 바로 기록하기보다 오래 곱씹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믐밤 북토크에는 처음 참여했는데, 역시 그믐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직접 뵈니 더 반갑고 따뜻한 시간이었습니다. 마치 원래 알고 지낸 사이였던 것 같이, 작가님과 편집자님 그리고 독자님들 모두 오랜만에 뵌 것처럼 내적 반가움을 느꼈습니다. 저는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 작가님께 직접 질문드리진 못했지만⋯ 다른 분들의 귀한 질문 덕분에 풍성한 시간이었습니다.
정아은 작가님의 말씀을 직접 들을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무엇을 쓰고 싶은지가 중요하다’, ‘초고는 되도록 빨리 쓰자’, ‘꿈이 현실을 살게 하자’ 라는 조언들 가슴에 품고 돌아왔습니다. 소설 쓰는 사람은 사회학 책 열심히 읽어야 한다는 말씀에는, 미루고 있던 논픽션을 다시 펼쳤습니다 ㅎㅎ.
사인받았던 『잠실동 사람들』도 곧 읽고 후기를 남기려 합니다. 기존에 한국문학을 주름잡던 ‘3김’이 있었다면 제 마음속에는 ‘3정’이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물론 정아은 작가님을 포함한 세 분의 다른 정 작가님들이고, 다른 두 분은 그믐을 통해 차차 밝혀 보겠습니다⋯.)
사회 맡아주신 장강명 작가님, 오랜만에 뵈어 반가웠습니다.(사인받고픈 다른 책도 많았지만, 매번 번거롭게 해드렸던 것 같아 어렵게 고른 한 권을⋯ 다음에 뵈면 또 다른 책을 꼭!) 준비해 주신 출판사와 그믐 관계자분들 덕분에 특별한 시간 보낸 것 같습니다. 모두 감사드립니다.
[그믐밤] 18.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with 마름모출판사
D-29

지호림

지호림
작가의 핵심 정체성은 무엇인가. ‘거절’이다.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 쓰기의 기술부터 작가로 먹고사는 법까지, 누구도 말해주지 않은 글쓰기 세계의 리얼리티』 <작가의 말>, 정아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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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림
끝으로 제 가슴 속 깊이 남은 마지막 문장을 남깁니다.
어느 작가는 거절당한 게 100번이 넘어갔을 때부터 더는 세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저의 미래가 험난하게만 보여 막막하기도 했습니다. 불안감에 스스로 너무 몰아붙인 탓인지, 올해 초엔 번아웃이 온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 다』 완독과 북토크 이후에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어쩌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쓰고 싶은 걸.’ 이 마음을 갖고 일단 달려보려고 합니다. 힘이 들 때마다 자주 이 책을 다시 찾아올 것 같습니다. 저도 언젠가 ‘이렇게 작가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써보고 싶습니다. 좋은 책 써주셔서, 만들어 주셔서, 작가님과 편집자님께 모두 감사합니다.

거북별85
@지호림님의 글이 사람들에게 스며들수 있길 응원합니다!! 나중에 <이렇게 작가가 되었다>라고 말하실 때 이번의 에피소드를 떠올리며 웃음지을 수 있길 바랍니다^^

고우리
"힘이 들 때마다 자주 이 책을 다시 찾아올 것 같습니다." 책을 낸 자로서는 최고의 찬사입니다. 작가님도 마찬가지일 테구요. 저희 책을 이렇게 깊이 깊이 받아들여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힘들 때마다 지호림 님의 응원 꺼내 읽겠습니다.

꿀돼지
책을 읽으며 가장 공감했던 파트는 원고 거절을 다룬 부분이었습니다. 농담을 반쯤 섞으면 읽는 내내 PTSD가 오더군요. 저도 투고를 정말 많이 해봤고, 단 한 번도 투고에 성공해 출간까지 이어진 적이 없습니다.
그래도 써야지 별 수가 없습니다. 쓰지 않으면 작가가 될 수 없으니 말이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많이 쓰고 끝까지 써야 한다는 이 책의 메시지는 정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이든 뭐든 글 쓰기는 정말로 그게 전부더라고요. 정말 좋은 책입니다.

고우리
정진영 작가님 출연!!! 여기서 뵈니 더욱 반갑습니다 작가님~ 거절 파트에 대해선 특히 작가님들의 반응이 무척 뜨겁더라고요. '도대체 왜 아무도 거절당한 이야기를 쓰지 않는 것이죠?!'라던 정아은 작가님의 기획 의도가 정확히 들어맞았음을 확인했지요. 누구나 겪지만 아무도 선뜻 쓰지 않는 이야기의 힘! 편집자도 한 거절 당하는 직업이라 무조건 '을'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을'이라고 생각한다며 정아은 작가님이랑 웃었던 기억도 있네요. 작가님이 써주신 추천사 정아은 작가님도 정말정말 좋아하셨어요. 각 잡고(의뢰받고) 쓴 추천의 글이 아니어서 너무나 자연스럽고 유머러스하고 꾸밈 없어서 정말 읽고 싶게 만드는 추천사라고. 이 책 내가 정진영 작가님의 응원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작가님.

장맥주
그믐밤 행사 마치고 든 생각 한 가지인데요, '지독한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건 정말 거의 모든 소설가들의 로망인 거 같아요. 저도 그렇고, 같은 소망 말씀하시는 소설가들을 많이 뵈었습니다. ^^

고우리
오오, 장강명식 '지독한 사랑 이야기'는 어떨까 무지 궁금해집니다. 언젠간 쓰시겠죠?!

장맥주
한번 썼다가 실패해서 그 원고가 고스란히 하드디스크에 있습니다. 나중에 실력이 더 붙으면 고쳐 쓰고 싶은데 아마 거의 다 뜯어고치게 될 거 같습니다.

연해
저는 작가님의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에 수록된 "데이터 시대의 사랑"도 너무 재미있던걸요.
'야비하게 잘생긴 남자'와 '잔인하게 잘생겼다'는 표현이 흥미로워 피식피식 웃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이게 우리야"라는 문장도요. 읽을 당시에 이 작품의 풀버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도 있었고, '오! 이런 글(?)도 잘 쓰시는구나' 하며 새삼 낯설었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하드디스크에 숨어있는 그 원고, 언젠가 빛을 볼 날이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장맥주
'지독한 사랑 이야기'를 쓰는데 좋은 참고가 될 작품들이 뭐가 있을까요? 레퍼런스가 필요합니다. ^^ 노르웨이의 숲? 폭풍의 언덕? 가시나무새?

연해
정아은 작가님의 이 문장이 생각납니다.
"내가 품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 중 가장 간절한 이야기,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가 소설이 되어 나온다는 사실을."
제 경우에는 '지독하다'는 점에서 이미 이루어질 수 없는 게 아닌가, 헤어져야만 지독해지는 게 아닌가 싶긴 합니다. 물고 뜯으면서, 가슴 절절하게 상처 주면서, 놓지 못하는, 그럼에도 결국 놓을 수밖에 없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외람된 말씀이지만, 작가님이 겪어오신 일화를 담아보시는 건 어떨까 하는 소박하고도 다소 건방진(?) 바람을 담아봅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담을 살짝 나눠보자면 제가 그동안 만났던 지난 연인들 중 가장 짧은 기간 만났던 사람이 있어요.
6개월 정도?
근데 그런 사람은 처음 만나봤어요. 굉장히 즉흥적이고 다혈질인데다 폭력적인 성향까지 띄는 사람이었죠. 저는 보통 누군가와 다툴 때도 대체로 큰소리를 내본 적이 없고, 평화주의자이길 선호하는데, 그 사람과는 정말 지독하리만치 싸웠어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말이죠. 그 사람의 집착과 소유욕에 지쳐 만나고 헤어지기도 반복하면서요. 이 연애가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붙잡으면 붙잡히고, 멀어지면 제가 다시 붙잡고,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위태로웠는데, 그때의 저는 그게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이게 우리야"라는 작가님의 문장처럼요). 서로를 해하면서도 놓지 못하는 구질구질하고도 질펀한? 독인 줄 알면서도 계속 삼키는?
결국 그 과정에서 제 자신이 점점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고, 연애라는 게 나한테 맞지 않는 건가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죠. 지금 생각해 보면 다 정말 끔찍했는데 말이죠.
결국 그 사람과 헤어지고 원래의 저로 돌아오기까지 꽤 힘든 시간을 거쳤습니다(정신과도 그때 처음 가봤어요). 그리고 저는 그 사람과의 일화를 각색한 소설을 쓰기 시작했죠(일단은요). 가제는 "피나는 연애"라고(써 놓고도 웃음이ㅋ) 지었는데, 빌런같은 글이 될 거라 생각하며 일단 뭐든 막 적어내리고 있기는 해요. 3~4년 전 일이라 그때의 기억을 살리되 더 지독하게 각색하면서요.
그래서 다시 또 뜬금없고도 조심스러운 궁금증으로 돌아가봅니다.
작가님은 '사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작가님이 추구하시는 사랑의 속성에 대해서 말이죠.
더 나아가 작가님이 생각하시기에 사랑에서 지독하다는 건 어떤 걸 뜻하는지도 궁금합니다(이를테면 집착으로 점철된?).
더더 나아가 지독한 사랑을 원하셨던 적이 있으신가요?
(쓰고 싶은 것과는 별개로 경험을 말이죠)
이제 내일이면 종료되는 이 모임의 문을 예쁘고 따뜻하게 닫으려 했는데, 때아닌 질문 폭탄 죄송합니다...
늘 그래왔듯 답변은 주셔도, 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부담갖지 말아주세요:)

고우리
우와 연해님, 감히 말씀드리지만 소설의 주제가 될 만한 이야기 같아요.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사랑하게 되는 것이 사랑의 불가해함이라고 늘 생각해왔어요. 머리로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끌리는 것은 왜 때문인가!!!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그려내는 것이 소설이라는 측면에서... 작품 꼭 완고하시길 기대해봅니다~

연해
감사합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을 끄적거릴 때면 자체적으로 열을 뿜어내면서 흑화(?)되는 기분인데(하하), 그럼에도 이제는 또 하나의 경험이었다 생각하고 있어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사랑하게 되는 것이 사랑의 불가해함이라고" 늘 생각해왔다는 말씀이 인상 깊어요. 그러게요. 사랑의 감정은 정말이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정답이 없어서 더 좋은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퀴즈의 정답을 맞췄다는 게! 너무나 기쁩니다(정말 열심히 검색했거든요). 아쉽게도 출판계 내부자는 아니지만, 내부자를 흉내 내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 빛을 발한 듯 하여 매우 뿌듯하다는 소회를 전해봅니다.
29일 동안 이 공간을 정아은 작가님의 책으로 가득 채워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주신 질문들이 좋아 대화가 더 풍성했던 것 같아요. 정성스러운 고우리님의 답변도요.
마지막으로 저도 따라 외쳐봅니다. 그믐이여, 영원하라~

고우리
감사해요 연해님. 그...그리울 거예요...

연해
저도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마름모 출판사도 애정을 듬뿍 담아 계속 응원할게요:)

장맥주
연해님,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헤어져야만 지독한 사랑’이라는 관점은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동의할 수밖에 없네요. 지독한 사랑이란 뭘까 하고 오래 생각하다 보니 제일 비슷한 게 마약 중독이나 알코올 중독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게 나를, 내 인생과 미래를 모두 망칠 거라는 걸 알고 멀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너무 처절하게 갈구하는.
지독한 사랑을 뭐라고 정의하든, 저는 지독하다 할 만한 사랑은 경험해보지 못했어요. 놓지 못하는 사랑은 있는데, 그 상대와 결혼해서 잘 살고 있습니다. 관계가 뜻대로 되지 않아 서로에 대한 갈망으로 괴로웠던 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늘 그 고통 속에는 얼마간 달콤함도 있었습니다. 저희도 당연히 물고 뜯고 서로 상처 준 적이 있기는 하죠. 하지만 ‘이 관계가 나에게 해롭다, 위험하다, 이대로 가면 우리 둘 다 파멸한다, 이 사람과는 헤어지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상대는 어찌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저한테 그런 맹독성의 사랑은 간접 경험의 영역이고 상상의 나라에 있어요. 그런 사랑을 원한 적이 있느냐. 어렸을 때 그런 적이 있죠. 철이 덜 들어서, 제 자신에 대해 잘 몰라서 그랬던 것이고, 문학의 부작용이었다고 봅니다. 지독한 사랑을 지금 원하느냐. 혹은 지독한 사랑을 하지 못한 게 아쉬우냐.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그런 큰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걸 이제 압니다. 지독한 사랑을 포함해서 그런 강렬한 경험들, 좋은 소설의 소재가 될 만한 사건들을 다 피하면서 소박하고 평화롭게 살고 싶어요, 진심으로.
그런데 그런 강렬한 경험들을 제 소설에 담고 싶기는 합니다. 지독한 사랑도 그러합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제가 그런 강렬한 경험에 대한 소설을 쓰지 못한다면 그건 글쓰기 실력이 부족해서이지 그런 경험을 해보지 못해서는 아닐 것 같아요. 강렬한 경험을 한 작가가 강렬한 작품을 써내기도 하지만, 그런 경험을 한 작가라고 작품이 다 좋은 건 아니기도 하고, 그런 경험을 하지 않고도 강렬한 작품을 써내는 작가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저한테는 희망이 없는 셈인데... 저한테는 선택지가 없는 듯해요. ^^
p. s. 지독한 사랑을 하는 커플을 두 커플 정도 비교적 근처에서 본 적도 있는데 조금도 부럽지 않았습니다(그리고 이야기로서도 별 매력이 없었습니다, 그저 지독했을 뿐).
p. p. s. 모든 개들이 주인을 향해 지독한 사랑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이상해집니다.

연해
아... 작가님, 마지막까지 이렇게 정성스러운 답변이라뇨. 감동입니다. 적어주신 내용을 몇 번이나 다시 읽어봤어요. 꼭 지독한 사랑을 경험하지 않아도 소설로 담아낼 수 있다는 점,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작가님들의 모든 소설이 오롯이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닐 테니까요.
맹독성의 사랑보다는 소박하고 평화롭게 살고 싶다는 말씀도, 그런 큰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말씀도, 공감합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예요. 다만 저는 지독하게 겪었고, 이제는 학을 떼버린 듯 합니다. 그때는 왜 그게 가능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데, 뚜렷한 이유가 없는 것 같아요. 이것 또한 그릇된 사랑의 모습이려니 하고 있습니다. 물론 다시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지만요(징글징글 합니다).
작가님의 글을 읽다 보니 오래전에 읽었던 <5년 만에 신혼여행>이라는 어떤 분(ㅋ)의 책도 떠오르네요? 그 책을 읽을 당시만 해도 작가님에 대해 잘 몰랐는데, '정말 귀엽고 솔직한 부부다'라고는 생각했던 것 같아요. (친)오빠의 책장에 꽂혀 있길래 우연히 집어 들고 읽었던 기억이 생생한데 말이죠.
저는 근데 작가님이 답변 주신 여러 문장 중에서 이 문장이 가장 좋아요.
"놓지 못하는 사랑은 있는데, 그 상대와 결혼해서 잘 살고 있습니다."
제가 다 감동받네요. 두 분의 진솔한 사랑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그 뒤의 문장을 제가 감히 이어드리고 싶어요.
"그 둘은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책과 함께요."

장맥주
감사합니다. ^^
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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