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밤] 18.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with 마름모출판사

D-29
저도 1번 질문에 대한 대답은 소설입니다. 다른 글 능력을 다 팔아서 소설 잘 쓰는 능력을 사고 싶습니다. 그런데 대표님 말씀처럼 소설 쓰기는 다른 글쓰기 능력이랑 결이 다른 거 같아요. 서평-칼럼-에세이-논픽션은 성실함이 있으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를 수 있고, 한편으로는 성실함 없이는 그 궤도에 오르지 못할 것 같은데, 소설은 성실함 외에 다른 요소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며칠 그믐에 들르지 못한 사이에 정아은 작가님이 등장하셨네요! 반갑습니다^^ 멍석 깔리면 떨리는 편이지만, 궁금한 점이 있으면 질문드려보겠습니다. 이곳에서 나누는 쓰기에 관한 풍성한 대화를 읽으면서 쓰는 일을 좋아하고 잘 하고 싶은 분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은 팁도 공유해주시니 반갑고 감사하게 따라 해봅니다. @장맥주 님이 알려주신 네이버 클로바 노트는 굉장히 유용하네요. 일상에서 두루 사용하고 있답니다.
그러니 펜대를 손에 든 당신이 할 일은 그저 자신의 내면에 있는 그 인물, 모든 준비를 마친 채 밖으로 나갈 기회만 노리고 있는 그 인물을 끄집어내 언어로 형상화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 쓰기의 기술부터 작가로 먹고사는 법까지, 누구도 말해주지 않은 글쓰기 세계의 리얼리티 p165, 정아은 지음
타인의 삶을 엿보고 내 삶의 밑거름으로 삼는 데 소설은 가장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도구이다. 작은 소설책 한 권을 손에 쥔다면, 우리는 어디서든 타인의 삶에 빠져들 수 있다. 비소설이 우리에게 '말'로써 방향성을 제시해준다면, 소설은 '삶'으로써 방향성을 제시해준다.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 쓰기의 기술부터 작가로 먹고사는 법까지, 누구도 말해주지 않은 글쓰기 세계의 리얼리티 p. 136, 정아은 지음
소설을 읽지 말라는 이들은 궁금할 것이다. 대체 그 쓸데없는 걸 왜 읽는단 말인가? 이런 물음에 소설을 읽는 이들은 간단히 응수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되어보고 싶어서.' 우리는 저마다 자기 몸 안에 갇혀 있기에 다른 사람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잘 쓰인 소설을 읽으면,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경험에 매우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소설을 읽지 않았으면 알지 못했을 타인의 내면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소설을 통해 체험한 타인의 인생은 알 수 없고 두려운 내 인생 행로에 환한 가로등 불빛이 되어준다.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 쓰기의 기술부터 작가로 먹고사는 법까지, 누구도 말해주지 않은 글쓰기 세계의 리얼리티 p. 137, 정아은 지음
가장 좋아하는 장르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소설!이라고 답하면 돌아오는 대답들이 상처가 될 때가 많았어요. 가볍다고 평하는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딱히 유용한 정보도 없이 재미만을 추구하는 게 아니냐는 무례한 말도 들었죠. <일의 기쁨과 슬픔>을 쓴 장류진 작가도 "소설 쓰기가 이상하게 부끄러웠다"고도 말했는데, 그 부끄러움은 "소설 쓰고 앉아 있네"라는 관용구처럼, 그녀가 소설 쓰기를 좋아하지만 소설이라는 자체가 허무맹랑하게 여겨지는 경향이 있어 자신의 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고 합니다. 근데 이 책에서 소설의 순기능을 제대로 찾은 것 같아 너무 반가웠어요(이제 누군가 물어보면 방패로 내밀겠습니다). 저는 관계를 맺을 때도 상대의 정보만을 납작하게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제가 직접 상대를 경험하면서 천천히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요. 소설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고 직접적으로 말하기보다는 글로 천천히 보여주면서 독자가 스스로 이해하고 납득하게끔 만들어주는 느낌?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인물들과 정이 들고, 감정을 이입하게 되고, 비로소 타인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공감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소설 쓰는 작가들을 거의 신 취급하는데... 소설 쓰기를 부끄러워한다거나 소설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충격적이어요... 정아은 작가님 원고를 읽으면서도 소설 읽기를 시간 낭비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구절에서 사실 고개를 갸우뚱했거든요. 제가 살면서 그런 사람을 겪어보지 못했나봐요.
정식으로 데뷔하기 전 기자실에서 노트북으로 소설을 쓰다 옆 자리 기자에게 들킨 적이 두 번 있었는데 어찌나 부끄럽던지... 그게 대학원 숙제 같은 거였으면 그렇지 않았을 텐데요. 그러고 보니 소설공모전 응모 원고를 우체국에 접수할 때에도 처음에는 우체국 직원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어라라? 기자실에서 기사는 안 쓰시고 소설을 쓰셨단 말이시죠? 실망입니다? 작가님? 농담이고요. 저는 올해 처음으로 소설을 쓰고 공모전에 응모해 봤는데, 겉봉투에 붉은 글씨로 응모 부문과 작품 편수를 쓰라는 제출 방식 덕분에 진땀을 흘렸죠. 저도 우체국 직원분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실패했습니다. 머쓱해서 씩 웃어 보였어요(헷).
기자실에서 소설 쓴 시간보다 엎드려 잔 시간이 더 길 거예요... ^^;;; 저는 처음 원고 응모할 때는 무인우체국을 찾아가기도 하고 직접 언론사에 가서 로비에서 접수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그냥 누가 보면 어때, 소설 응모하는 게 부끄러울 일인가, 하고 우체국 대면 창구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 마음가짐 변화도 어떤 발전이었던 듯해요.
와... 무인우체국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작가님처럼 거물(이 표현은 제가 자주 가는 책방 사장님이 장작가님을 지칭할 때 자주 쓰시는 표현...)작가님도 이런 경험이 있으시군요! 음, 근데 저는 소설을 응모하는 게 부끄러웠다기 보다는요. 우체국 직원의 표정과 눈빛이 뭐랄까, 그... '너 따위가?'라고 눈으로 말씀하는 것만 같아서(제 기분 탓일 거라 믿어요), '그래, 나 따위가 감히 소설을 쓰겠다고...'라는 생각을 하며 혼자 쭈구리가 되어 터덜터덜 우체국을 나섰다죠. 그래도 제출은 했답니다(하하...).
비소설이 우리에게 '말'로써 방향성을 제시해준다면, 소설은 '삶'으로써 방향성을 제시해준다.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 쓰기의 기술부터 작가로 먹고사는 법까지, 누구도 말해주지 않은 글쓰기 세계의 리얼리티 정아은 지음
저도 이 문장에 밑줄을 그었습니다. 저는 그 동안 주로 소설만 읽어왔는데, 앞으로 누가 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소설을 읽는가 라고 물으면 이 문장을 인용해서 답하려 합니다.
이처럼 사람의 외양과 말, 행동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소설이 가진 힘이다. 구체적으로 묘사된 인물의 인생을 들여다보면서 독자는 하루하루를 살아내면서도 총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했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삶을 거울에 비추듯 들여다보게 된다. 만나보지 못했던 종류의 사람의 내면에 들어가본다. 낯설기만 했던 타인의 감정에 이입해 들어가면서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게 된다.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나의 심정, 주변 사람의 심정,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타인의 심정에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 쓰기의 기술부터 작가로 먹고사는 법까지, 누구도 말해주지 않은 글쓰기 세계의 리얼리티 정아은 지음
학교를 졸업하고 얼마전까지도 비소설을 주로 읽어왔습니다. 무언가를 명확하게 설명하는 게 더 빠르고 정확해서 삶에 도움이 된다고 여겨왔거든요. 그런데 그믐에서는 소설 모임이 많아서 처음으로 소설들을 많이 접하게 되었는데 신기했어요. 영상매체나 비소설과는 다른 독자를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훅' 잡아끌어서 그곳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하는 마력이 있더라구요. 그 속에서 예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생각이나 감정들도 느꼈구요.오랫만에 느낀 이 감정이 무얼까 했는데 이번에 정아은 작가님의 글을 읽으니 설명하기가 아니라 소설의 '보여주기' 때문이라는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소설가분들은 펜으로 완전히 새로운 공간을 창조해서 그곳으로 독자들을 훅 밀어넣고 느끼고 생각하게 하는 창조자같은 능력이 있으신거군요. ^^
의심을 품고 의문을 던지는 이 의례는 소설을 쓰는 내내 반복해야 한다. 소설에 '개연성'과 '연결성'을 불어넣어주는 데 그보다 더 중요한 키는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 쓰기의 기술부터 작가로 먹고사는 법까지, 누구도 말해주지 않은 글쓰기 세계의 리얼리티 정아은 지음
초고를 쓴 다음에는 그 내용이 머릿속에 떠다닌다. 세수할 때, 밥을 먹을 때, 회사에서 상사와 대화를 주고받을 때, 친구와 통화할 때, 써놓은 초고 속의 내용이 둥둥 뜬 상태로 따라다닌다. 그것이 초고의 위력이며, 초고를 이른 시기에 토해놓아야 하는 이유이다.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 쓰기의 기술부터 작가로 먹고사는 법까지, 누구도 말해주지 않은 글쓰기 세계의 리얼리티 정아은 지음
저는 논문을 쓸 때 게을러서 미루고 미루다가 초고를 겨우 완성해서는 퇴고도 별로 못 하고 공저자들에게 보내거나 학술지에 투고하곤 했습니다. 석사논문, 박사논문 모두 제출기한 직전까지 작성을 했습니다. ㅠㅠ @정아은 작가님께서는 초고를 빨리 완성하시는 비법 같은게 있을까요? 아마도 ‘그냥 쓰면 되는거를…’ 이라고 생각이 드시더라도 불쌍한 중생을 위해 가르침을 주시면…
☾열여덟 번째 오프라인 그믐밤 공지 -언제 : 1월 10일 수요일 (음력 그믐날) 저녁 7시 29분 -어디서 : 북카페 디어라이프(마포구 서교동) https://naver.me/5pNENBuZ -진행 방식 : 1부: 정아은 작가님 북토크 / 사회: 장강명 작가님 (45분) 2부: 참가하신 분들과 함께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눕니다. (44분) -참가 비용 : 10,000원 (디어라이프에서 도서 구입시 10퍼센트 할인됩니다) -신청 방법 : https://forms.gle/zKNEFNok4FJ68SX49
결국 에세이는 ‘거리 두기’의 예술이라는 것. 내게 일어난 일을 기술하되, 그 일을 어느 정도까지 드러낼지, 어떤 톤으로 드러낼지를 저울질하는 기예라는 것.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 쓰기의 기술부터 작가로 먹고사는 법까지, 누구도 말해주지 않은 글쓰기 세계의 리얼리티 102쪽, 정아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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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그믐,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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