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츠발 독서모임 18회차: <마이너 필링스> / 캐시 박 홍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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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익명 커뮤니티 사이트 <8(에이츠)>에서 파생된 독서모임입니다. 18회차 도서는 캐시 박 홍 저, <마이너 필링스>입니다. 정해진 기간까지 책을 완독하신 후 해당 게시글에 감상을 남겨주세요. 감상에 정해진 분량은 없으며 타인의 감상에 대해 피드백을 다는 것 역시 자유입니다. 작품을 감상하는데 도움이 되는 자료나 읽을 거리가 있다면 단체톡방이나 그믐, 에이츠 등을 통해 공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간 내로 감상을 올리지 못하신 분은 다른 책에 대한 100자 평을 에이츠에 남겨주셔야 합니다. 중간 점검은 기간 중 불시에 시행되며, 진도가 가장 빠른 분은 선정 도서 추가 or 책에 대한 발제가 가능합니다. 모임에 대한 피드백은 카카오톡을 통해 언제든지 받고 있습니다. 그럼 이번 회차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모든 문장을 형광펜치고 싶은 책이었다. 이 책에 대해 내가 느낀 전반적인 감정은 마지막에 실린 번역가의 후기와 비슷한데 아무래도 내가 외국에서 오래 산 한국인이어서 그런 듯 하다. 나는 한국계 미국인이 아니며 미국이 아니라 같은 아시아권 나라에 살고 있으니 아무래도 작가의 경험과 내 경험이 같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일정 부분에서는 너무나 크게 공감을 한 책이다. 외국에 오래 생활한 사람 특유의 어떨 땐 그래도 내가 한국에 속한다고 느끼고 어떨 땐 현재 살고 있는 나라에 속한다고 느끼고 어떨 땐 걸쳐져 있어 어느 곳에도 완벽히 속하지 않는다고 느끼고 또 어떨때는 그저 이런 식으로 내가 어느 곳에 소속감을 느끼는지 규정하는 행위 자체가 의미 없다고 느끼기도 하는 그런 감정을 너무 잘 표현해낸 책이라고 느꼈다. 나도 내가 어떤 외모를 하고 있는지, 이 곳의 사람들과 어떻게 다르게 생겼고 다르게 말하는지따위가 딱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게 나를 판단하는 요소로 작용하는 순간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편견을 나의 힘으로 벗어날 수 없다는 것도. 평소에는 딱히 신경쓰며 살지는 않는데 한 번씩 그런 시선들이 나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 벽을 치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그야말로 '마이너 필링스'라는 제목이 딱 걸맞는 듯하다. 별개로 이 제목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이것저것 가제를 만들어보다가 결국 이만큼 이 감정을 완벽히 표현해낼 수 있는 단어가 없을 거라는 생각에 결국 한글 여섯 글자 그대로 출판해내기로 결심한 편집부의 노고가 느껴지는 제목이기도 하다. 전체적인 내용도 그렇지만 세세하게 공감되는 부분이 진짜 많았는데 지금 떠오르는 건 동양계 작가가 출간한 책이면 인종 얘기를 다룰것만 같아 읽지 않았음에도 피곤함이 느껴져 피한 적이 있다는 부분이라던가 인종 차별을 당했다고 얘기를 꺼내기가 어려운 부분, 특히 그게 백인이 아닌 다른 인종한테 당했을 경우 더더욱 그렇다는 거, 작가의 경우 흑인이었고 나의 경우 동아시아인이 아닌 아시아인이었고... 그런 부분들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인종 문제를 메인으로 다룬 책이긴 하지만 여기서 아시아인이 느끼는 감정은 아시아인이 아니라 다른 소수자, 예를 들면 여성으로 대체해도 비슷하게 공감할 수 있는 듯 하다. 이게 차별이 맞는건지 내가 예민한건지 헷갈리는 부분, 차별이 맞다고 생각하는데도 입 밖으로 꺼내면 과연 누가 공감해줄까 두려움이 생겨 말하지 못하는 부분, 일부 사람들이 (당사자건 당사자가 아니건) 집단의 문제를 개인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라고 착각하는 부분, 그렇기 때문에 개인이 잘하면 이 상태에서 벗어나 '강자'의 무리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는 부분, 가끔은 같은 약자로서 또 다른 약자를 차별하거나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것 등등... 솔직히 이 책의 내용에 대해 하루 종일 얘기할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사실 나는 이 책이 출간된 지 얼마 안 됐을때 한 번 읽어보고 이번에 재독하는 건데 처음 읽을때는 그냥 너무 공감가는 내용이라는 생각에 미처 신경쓰지 못했던 부분이지만 재독해보니 새삼 작가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뛰어나다는 걸 느끼기도 했다. 특히 작가와 에린과 헬렌의 대학 생활 부분은 마치 미국 대학에 다니는 한국계 학생들을 주제로 한 하이틴 드라마 한 편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정말 재밌게 읽었고 학경 차의 사건에 대해 서술한 부분도 그 내용에 화가 나긴 하지만 흥미로웠다. 시를 즐겨 읽는 편은 아니지만 이전에 냈던 시집도 궁금했는데 안타깝게도 내가 사는 나라에서는 구하기가 어려운 것 같았다. 한국에도 일단 이북으로는 출간이 안 된 것 같고. 언젠가 다음 작품이 나온다면 장르 불문하고 꼭 읽어보고 싶은 작가다.
랭랭님의 말씀대로 몇번이나 형광펜으로 밑줄을 치고 싶은 책이었다. 나의 첫 밑줄은 작가가 아시아인 심리치료사를 찾는 부분이었다. 나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없으니까, 내 배경을 설명안해도 이해할 수 있을테니까! 선택한 모습에서 난 벌써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 외에도 드라마속 아시아인이 우스꽝스럽게 나올까 긴장하는 모습, 나의 정체성을 진부하다 여기는 것, 백인 청중을 이해시키기 위한 통역된 시를 쓴 것, 같은 소수자면서 다른 소수자를 배척하는 행위 등, 비록 외국에서 산 경험은 없지만 어쩐지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미묘하지만 분명한 차별적 발언을 애써 좋게 넘기거나, 내가 가진 소수자성 때문에 긍정적인 인상을 주려고 노력하거나, 소수자의 연대를 외치면서 다수에 속하고 싶어하는 마음 등 애써 외면해온 내 모습과 마주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것이 ‘또’ ‘뻔한’ ‘피해의식’ ‘예민하다‘ 취급받았던 나의 ‘사소한 감정’들을 이해하는 과정같아 좋았다. 그리고 나 또한 편견에 갇혀 있진 않은지, 다른 사람을 멋대로 재단하고 있지는 않은지 새해동안 자주 이 책을 떠올릴 것 같다.
살면서 한번은 문득 떠올린 생각들, 내가 ‘지나치게 생각하는 거겠지’ 하며 외면하고 싶었던 감정들을 낱낱이 해부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몇몇 부분에서는 지나치게 노골적인 탓에 거북하고 피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겪었던 경험과 그 순간의 감정들은 전혀 사소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런 현실이 거부당할 때 느끼는 부끄러움과 자기 의심 등의 감정들에 이름을 붙일 수 있고 누군가는 그것을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 큰 위로로 다가왔다. 특히 마음에 크게 와닿았던 부분 중 하나는 자기혐오에 대한 저자의 문장들이었다. 모든 문장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을 정도였다. 백인의 시선으로 아시아인을 바라보는 자기 자신을 저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이 아시아인들을 다 누가 들여보낸 거야? 속으로 투덜거린다. 다른 아시아인들과 함께 있으면 결속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내 경계선이 흐려지고 한 무리로 뭉뚱그려져서 더 열등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스스로의 감각과 생각을 불신하게 되는 경험들을 “자아는 자유 낙하하는데 초자아는 무한대로 커져서” 라는 말로 표현한 것도 마음을 울렸다. 그리고 다른 문화나 인종적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저자의 고민 역시 내가 평소에 하고 있던 고민들이었기 때문에 공감이 갔다. “죄책감은 상대에게 용서를 요구하고 따라서 이기적이다. 바꿔 말해서 나는 상대에게 용서를 요구하지 않고 사과할 수 있을까?” 라는 구절이나 베트남 전쟁, 그리고 “백인 세상은 이미 우리를 집단 학살 전쟁의 하급 파트너로 모집”했다는 구절에서 저자의 고뇌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아시아계 미국인이 아니어서 저자의 문제의식에 100% 공감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한국에 사는 다수인종 사람으로서 종종 내가 누군가에게는 가해자라는 생각을 갖는다. 개그 프로그램에서 희화화되는 타인종을 볼 때, 돈벌이를 위해 모두가 기피하는 일을 하는 그들을 볼때 마음이 불편해진다. 한편으로는 그들이 볼 때 이렇게 죄책감을 느끼는 내가 얼마나 가증스러울까, 싶기도 하다. 이미 “집단 학살 전쟁의 하급 파트너”이나 “흑인을 적대하고 피부색을 구분하는 일에 징집”된 한국인으로써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를 꽤 오랜 시간 고민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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