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Q84

D-29
소설 속에 들어가면 내가 지금 소설 속에 있는지 현실에 잇는지 분간이 안 갈 때가 있다. 이게 나에게 맞는 좋은 소설이다. 그 속에 깊이 들어가 현실을 잊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거다.
나는 글을 쉽게 쓰려고 한다. 알고보면 별 것도 아닌 것 갖고 있어보이게 하려고 괜히 뱅뱅돌려 어렵게 쓰는 인간들이 있다. 윤수일처럼 쉽게 노래를 부르고 일본 작가나 드라마처럼 좀 쉽게 하자.
글을 쓸 때 한글 문장에서 화면으로 보는 것하고 프린트해 보는 것하고는 다르다. 더 정학한 것은 인쇄한 종이로 보는 것이다. 물론 독자는 내 글을 화면으로 보더라도 내가 이전에 프린트 종이에서 수정한 것이 더 정확하다는 생각이 든다.
글에 미친 작가의 마음 히가시노 게이고,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인간들은 (너무 좋아하면 오히려 반대로 안 좋은 호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일본어의 반말-남을 하대하는 말이 아니라-이 친근감 있는 표현이라면 우리말은 안 좋은 표현이 오히려 친근감 있게 들려서) 거의 작품에 목숨을 건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만일 이제 글을 그만 쓰고 그냥 평범한 생활인으로 돌아가라고 하면 차라리 자기를 죽여달라고 할 것이다. “나에게 글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그들에게 글을 앞서는 건 이 세상에 없다고 보면 된다. 만일 사랑하는 여자가, 그에게 “글이 좋아, 내가 좋아?”라고 물으면 속으론 글이 훨씬 좋지만 그 여자를 생각해 네가 더 좋아, 라고 할 것이다. 아니면 이렇게 돌려 말할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거짓말할 수는 없는 것이고, 작가는 거짓말에 대한 결벽증 환자가 좀 있고 특히 자신이 사랑하는 글과 관계된 것은 더욱) “너와 글은 하나라도 없으면 안 돼. 너는 글을 돕고, 글은 너를 돕기 때문이지.” 이렇게. 이 말은 맞는 말이긴 한데, 지금도 글이 좀 위에 있는 것을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불필요한, 공연한 분란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그들은 현실(사랑)과 이상(글)을, 가능하면 끊어버리려고 한다. 둘을 별개로 보는 것이다. 이 정도까지 얘기하면 자존심 강한 여자 같으면 그 남자를 단념하지만, 그 남자에게 너무 꽂힌 나머지 “그래도, 글 아래가 아니라 같이 취급하니까. 괜찮아!” 라며,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해 버린다. 속지 마라. 작가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은 글뿐이다. 글이 없으면 그가 존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존재하지 않는데, 여자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가 존재하지 않아도 글은 남는다.) 그들은 여자 없이는 살아도 글이 없으면 못 산다. 그들에게 가장 잔인한 고문은, 더 이상 책을 못 읽게 하고, 글을 못 쓰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속에 있는 걸 다 털어놓을 것이다. 아주 간단하고 쉽다. 무인도에 뭐를 갖고 갈 거냐고 물으면 책이라고, 단번에 말한다. 당장 글과 그 여자를 더이상 못 만나게 그들로부터 떼어놓아봐라. 그는 여자를 팽개치고 글에 매달릴 것이다. “날 버리지 마!” 제정신(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여자는, 토사구팽(兎死狗烹)! (그건 한여름 밤의 폭풍우처럼 그 누구도 못 말리지만, -엔카를 부르는 아름다움과 슬픔이 동시에 보이는 게이샤에게- 신비감과 설렘으로 확 끓어오른 것은 식기도 순식간이다. 그 낙하 속도는 정신을 못 차릴 정도다. 급격한 상승 속도의 비례를 훨씬 능가한다. 그 광경은 애첩을 버리고 조강지처에게 돌아가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함께 갈 동반자는 여자가 아니라 글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가 여자를 아직도 데리고 있는 것은, 글에, 뭔가 예술의 여신(Muse)으로서 여자가 영감(Inspiration)을 주기 때문이다. 글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고, 여자는 다른 여자나 영감을 주는 다른 것으로 얼마든지 대체가 가능하다. 실은 유명 작가 중엔 글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족속들이 수두룩하다. 신들려 마구 영감이 떠올라 미친 듯이 글을 휘갈겨 쓰고 있거나, (한때나마 그녀와의 깊은 사랑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고 걸작을 남겼을지도 모른다.) 기발한 착상이 막 떠오르던 찰나, 누가 툭 치거나 말을 걸어 그게 쏙 들어가면 그 자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장담 못 한다. 그래 그들은 글을 쓸 때 핸드폰 전원을 꺼놓고, 문을 걸어 잠근 다음 두문불출한다. 그 누구의 방해도 받기 싫은 것이다. 그 결과 불미스러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차원도 있고. 글과 책, 독서와 글쓰기는 다른 것으로 대체가 안 된다. 대체가 아니라 유(有)와 무(無)로만 존재한다. 있으면 그들도 있는 것이고, 없으면 같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존재 이유다. 그들과 책은 동격(同格)이다. (여자와 동격이 아니라) (그들이 예부터 작부(酌婦)들과 통하는 것은 그들이 다른 여자들처럼 일상어를 쓰지 않고 (그들은 이런 시간을 몹시 지루해하고 힘들어한다.) 이른 나이에 벌써 사람과 인생에 대한 것에서 뭔가 통하기 때문이다. 그런 대화에서 일상어를 쓰는 여타 여자들에게보다 더 많은 힌트와 영감을 얻기 때문이다. 더 많이 그들이, 그의 글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모든 건 자기 글로 향해 있다.) 여자와 사랑은 일탈이지 일상이 아니라는 것도, 글은 그들의 생존과 직결되며 평생 함께할 일상(日常)이란 것도 너무 잘 안다. 하나가 사라지면 나머진 자동으로 사라진다. 나타나면 자동으로 소생(蘇生)하는 것처럼.
일본은 왜 그런지 다르면 앙따를 당해 기를 쓰고 같아지려고 하는 것 같다. 일제가 끝나고 우리나라 사람이 재일 한국인으로 당한 수모를 생각하면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자기들이 지배한 식민지민이기 때문에 더 혐오하고 무시했을 것이다. 이들은 같아지려고 안달하고 튀는 걸 싫어하는 것 같다. 개인보단 집단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는 생각도 든다.
인간들은 감정노동자에게 갑질 상처를 주지만 그것을 또 자기 자식이 보거나 자식이 알거나 자신에게 피해가 가는 것은 극구 바라지 않는다. 왜 자기 자식에겐 그렇게 잘하면서 노동자에게 왜 그런 못된 갑질을 행하나? 아직 성숙되지 못한 시민의식 때문이다. 정신적인 선진국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소설에서 대화에서는 구어체를 써도 지문에선 문어체를 쓴다.
소설에서 방점과 고딕체는 뭔가 특별히 중요한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럼 그것을 굳이 혼란스럽게 왜 쓰는지 모르겠다. 그냥 작가가 자기만의 무슨 의미를 그 글자에 부여하는 것 같다. 그에겐 그게 중요하지만 독자인 나는 별로다. 독자가 백 명이면 그 해석도 백 가지인 것이다.
인용할 때 쌍따옴표 안에 든 문장이 하나의 문장으로 끝날 때 그 안에 문장부호를 붙이지만, 대신 바로 다른 구가 이어지고 문장으로 단독으로 안 쓰일 때는 문장부호를 안 붙이는 것 같다. 단독으로 안 쓰일 때 뒤따라 오는 구와의 띄워쓰기는 문장 호흡으로 봐서 알아서 쓰면 되는 것 같다.
소설에서 오타쿠가 자위를 하고 정액이 책상 아래로 안 떨어지고 만약 그가 쓰고 있는 두꺼운 안경의 안경 닦이에 뭍었다고 표현하면 이건 서건의 개연성 면에서 안 좋아 쓰면 안 될 것 같은데, 이런 것이 바로 글은 더 그럴듯하지만 실제 현실을 진짜 받이들이는 건 아니라는 걸 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만 일본을 안 좋고 하찮게 보는 것 같다. 그런 나라는 절대 아닌 것 같은데. 아마 식민 지배를 받아 열등감에서 그러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일본인을 왜놈이라고 표현한다.
일본인은 '과자'를 선물하는 걸 즐기는 것 같다.
한국노총에서 노동자를 우습게 본다며 이번 정권을 자근자근 집요하게 괴롭힌다고 한 게 엊그제인데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고개를 숙이고 지금은 권력에 협력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지금도 그 굳건한 투쟁을 집요하게 계속하고 있다. 한국노총이 사이비 노조여서 조합원이 더 많지만 진짜로 투쟁과 연대라면 면에선 진짜 노조는 한국에 민주노총밖엔 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선 미인이나 이런 말은 해도 되고 헬스나 필라테스, 크로스핏에서 그렇게 몸매를 가꾸는데도 그것에 대한 남자의 언급, 몸매가 좋다, 이런 말은 성희롱으로 고발당한다, 왜 그럴까? 몸매는 왜 가꾸고 리즈 때의 기념 사진은 왜 찍나? 자기 만족이나 자기가 마음에 드는 남자만 감상하고 평하라고, 뭔가 논리가 안 맞는다. 작가들도 그것에 대해 표현하는데 있어 너무 조심스럽다. 하도 난리라서. 일본은 아직은 그래도 이것에서 자유로운 편이라 부럽다.
소설가는 사기꾼처럼 어떤 상황을 드닷없이 소개하면서 헌꺼번에 그 이유를 가르쳐 주지 않는다. 천천히 별로 주용하지도 않은 것 같은 다른 것을 표현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독자에게 배급을 주는 것 같아 못마땅하다. 독자는 이야기에 말려들어간다.
사람들의 관심이 지대한 것의 용어들이 자꾸 일상으로 튀어나오는 것 같다. 지금은 게임을 많이 해 게임 용어가 일상어로 굳어지거나 일상어 중에서 비슷한 것을 그 용어가 대체하거나 그 의미를 그것이 확장하기도 하는 것 같다.
일본은 왜 이리 불륜이 많은가. 그것에 대해 쉬쉬하는 것 같지도 않다.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인간들도 자기가 고초를 겪은 것만 언급한다. 한국에서 한 일은 모르고 자기 동포들이 만주나 시베리아에서 당한 것만 줄줄이 나열한다. 이걸 보면 인간이란 동물은 가해자로 산 것은 잘 모르고 누구나 피해자로 산 것만 기억한다. 아마도 이건 인간 사회에서 진리로 통할 것 같다.
어떻게 되나 인간을 그냥 둬보자 영화 <데스노트>와 소설 <1Q84>에서, 사회에서 우리와 함께 사는 나쁜 놈들을 처단하려고 한다. 사적 보복이다. 그러나 이런 인간들은 그 씨가 마르지 않는다. 없애면 다시 태어나고 다른 지역에서 다시 창궐한다. 괜히 풍선 효과만 반복될 뿐이다.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가 멸종돼야 해결되는데, 어느 천년에? 그러기 전에 지구가 먼저 멸망한다. 그들은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간다. 이런 건 인간 중에서 일정 비율로 존재하는 것이다. 착한 사람이나 사이비 교주, 사기꾼, 성소수자의 비율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처럼. 소설이나 영화에서 자꾸 이걸 시도하려 드는데, 그래봤자 현실 세계에선, 이런 인간들은 계속 등장하게 되어 있다. 멈추지 않으니까 이런 픽션들이 연이어 생산되는 것이다. 필요악이다. 나쁘지만 원하고 필요하니까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저 단순한 꿈이거나, 잠시 속만 시원한,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근본 대책이랄 수 없다. 흐름에 편승해, 영화 관객이나 더 늘리고, 소설 많이 팔리게 하려는 마케팅 수법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힘도 쓸 곳이 있고, 쓰지 말아야 할 곳이 있는 것이다. 책상머리에 앉아 생각을 정리한 다음, 움직여라. 나대기만 한다고 일이 잘되는 게 아니다. 그냥 그대로 살게 두고 스스로 자체 정화(자정작용(自淨作用))되도록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인력으로 해봐야 괜히 힘만 빼고 변하는 건 전무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뭐든 해봐야지.”가 안 통한다. 자연법칙, 아니면 우주 법칙에 맡기는 것이다. 그냥 굴러가는 대로 두는 것이다. 용써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이다. 그 끝이 어떻게 되나 지켜보는 것이다. 무책임하다고 해도, “해도 안 되는데 어쩌라구?” 지구가 폭삭 망하고 인간들은 그 씨가 마르고 어쩌다 다시 물이 생기고 그게 얼고 용암으로 다시 녹고 그 과정에 우연히 미생물이 생기고 개구리가 육지에 오르면서 자꾸 뛰다 보니 그것에 날개가 돋고 그러는 과정에 인간 비스무리한 게 다시 탄생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구의 역사는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지구가 리셋되는 순간이다. 그렇지만 또 인간은 진화해 정신 못 차리고 다시 폭삭 망한다. 권력을 손에 쥔 미치광이 정신병자나 독재자에 의한(뜻대로 안 되자 마지막 발악으로) 핵폭탄이나 기후 위기 같은 것으로. 다른 별도 이런 과정에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은 기술이 딸려 우리가 발견을 못 해서 그렇지. 그걸 발견하기 전에 먼저 지구가 망할 것 같지만. 아마 지구도 이미 이런 과정을 몇백 번 거쳤을지도 모른다. 그때 안 살아봤는데 어떻게 아나? 그걸 전부 겪은 인간이 어딨나? 모르는 일이다. 그냥 둬보는 것이다. 그 끝이 어딘지? 어리석은 인간들이니 무슨 사달이 나도 곧 날 것이다. 말을 안 듣니, 나도 모르겠다. 지금 인간에겐 뭔가 기대하지 말고 다른 대안을 찾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수 있다. 극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런 생각(발상의 전환)이 오히려 인간에게 위험한 게 아니라 안전으로 가는 첩경일 수 있다. 인간 중심적인 사고가 더 위험할 수 있다. 인간 중심적인 게 더 위험을 키웠을지 모른다. 지금까지 인간 중심적인 사고 때문에 지구가 이 지경까지 되고 말았다.) 개선의 기미가 안 보이는데, “어쩌라구?”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그것의 목적을 생각해야 한다. 효과를 생각해야 한다. 그게 없으면 헛발질만 하다가 자살골을 낼 수도 있다. 뭐든 이걸 명확히 한 다음 행동해야 한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깊이 생각한 다음, 행동해야 한다. 우리가 이러는 이유가 뭔가. 사적 보복을 안 해도 되게끔 그런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가해자와 희생자가 더이상 나오지 않게 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사적 보복 갖고 그걸 달성할 수 있을까, 생각해봐야 한다. 방향이 없으면 엉뚱한 곳으로 갈 수 있다. 세상일이란 게 대개는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게 정상이다. 냉정하고 유유히 흘러갈 뿐이다. 우리 사정 안 본다. 봐서, 헛수고일 것 같으면 그 관점을 달리해야 한다.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월드컵 승부를 점치는 문어, 파울에게 물어보거나, 아니면 인간 중에서 순수한 백지상태의 어린이에게 묻고, 토 달지 말고 그대로 따르든가 해야 한다. 입만 살아 이것저것 재는, 이미 많이 가진 인간들에게 물어봐야 도로아마타불이다. 해결할 마음은 없고 딴생각뿐이다. 염불엔 관심도 없고 젯밥에만 눈독들이고 있다.
일본엔 한국처럼 커피 전문점이 많지 않다. 그리고 자판기가 그렇게 길거리나 건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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