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책이 궁금합니다

D-29
인생책 이야기 나오면 저는 의외로 당당합니다. 왜냐하면 제 인생책은 단편소설이기 때문이지요. 음하하핫! 짧습니다. 여러분. 금방 읽습니다. 비/교/불/가 바로 마쓰모토 세이초의 <어느 고쿠라 일기 전>입니다.
인생이란 저에게 참 이해할 수 없는 무엇입니다. 착하면 살면 복을 받는다를 마지막으로 믿은 건 초등학교 5학년 때였구요. 그렇다고 사회적 금기나 도그마를 깨면서까지 하고 싶은 무언가도 딱히 없었고 그럴 배짱도 없습니다.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고 살면 그만인걸까요? 안분지족? 그래도 저는 우리가 어디서 흘러와서 어디로 가는가가 항상 궁금했습니다. 인생이란 무얼까, 인간이란 무엇일까 존재론적 질문들을 던지다 보면 최종적으로 흘러가는 곳은 종교의 영역이더군요. 혹은 어떤 의미의 영성. 하지만 저는 한편으로 아주 확고한 유물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쪽으로는 웬만하면 발길을 돌리지 않으려고 하는 편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예전의 우람님과 굉장히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저의 어느 날 하루는 세상의 모든 것은 다 결정되어 있고, 나는 손가락 하나 꼼짝 할 수 없는 것 같은 숨 막히는 패배감이 지배합니다. 그 다음 날은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근거 없는 낙관론에 흥얼거리며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 주문을 외웁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은 다시, 내가 정말 인간인가? 로봇이 아니라는 증거가 무엇인가. 여긴 어디고 난 무얼 하고 있나.. 그리고 또 그 다음 날은 이만하면 꽤나 행복한 삶이지, 모든 것에 감사하자. 그리고 또 그 다음 날은… 흠. 여기서 그만하겠습니다.
저의 머릿속에는 늘 물음표가 일곱 개 쯤 떠있습니다. 인생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하루를 꾸역꾸역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물음표가 열 두 개로 늘었습니다. 이 책은 장애를 가진 주인공의 인간 승리 이야기도 아니고, 못되게 굴던 빌런들을 핵사이다로 때려 눕히지도 못하고, 묵묵히 무언가를 했더니 결국엔 세상이 알아주었더라 도 아닙니다. 물음표로 가득 찬 저에게 또 하나의 물음표를 더해 준 저의 인생책.
<어느 고쿠라 일기 전>을 읽으며 저는 정확히 글로는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습니다. 그 슬픔이 저에게는 또 다른 오늘을 살아가는 데 힘이 되어 주네요.
책 내용이 정말 궁금하게 써주셔서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오! 제가 영업에 성공했군요. 이 소설을 읽고 난 다음에는 어느 겨울날, 눈은 날리는데 하늘 한 쪽은 빛이 쨍한 그런 이상한 날. 저랑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실 겁니다.
대답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책. 그것도 신기하네요. 인생책이라는 것이 굉장히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해석도 마음에 드네요. 질문을 던지는 책은 개인적으로 종교 서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찾아서 읽는 게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페이지가 잘 안 넘어가더라고요.
종교 서적은 정말 읽기 힘든 것 같아요. 번역의 문제일까요? 어떤 문장이 이해가 안 되서 다섯번씩 읽어보는데 그래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구요. 한 페이지를 오랫동안 붙들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종교 서적은 저도 즐겨 찾지 않게 되더군요.
번역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생각을 예전에 했는데, 한국인이 한국어로 쓴 책을 봐도 페이지가 안 넘어가는 걸 보면.. 그냥 이 분야 책들이 전부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 중에선 밀란 쿤데라의 불멸을 인생작으로 꼽습니다. 지금까지 읽어본 쿤데라의 작품 중에서 가장 세련됐습니다. 밀란 쿤데라가 천착한 소설의 주제인 '인간의 감정적인 측면' 그리고 작가의 전작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보다 사유, 구성, 문체, 형식, 서술*묘사적인 등등 작품 내적인 모든 측면에서 크게 발전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선술한 인간의 감정적인 측면에 대한 사유는 가히 현대의 고전이라 부르기 아깝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줬습니다. 형식 면에서는 에세이즘 소설의 한 지평을 열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전위적이고 잘 다듬어지고 짜임새 있었습니다.
오.. 밀란 쿤데라 작품은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네요. 확실히 느슨한 책보다는 더 촘촘하고 확실한 짜임새의 책이 더 '인생책'에는 맞는 거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이 책을 인생작으로 꼽으신 건 완벽한 책이라고 생각해서인가요? 작품 그 자체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알겠지만, 왜 이 책이 선생님께 인생책이 되었는지는.. 설명을 더 듣고 싶습니다. 아직 잘 모르겠어요. 인간의 감정적인 측면을 확실하게 드러내었기 때문인가요? 그렇다면 선생님은 원래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에 대해 궁금증이 많으셨나요? 그리고 문학 중에서, 라고 한정하셨으니 비문학 책에서는 어떤 게 가장 좋았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그런데 '살면서 읽어본 가장 완벽한 책'도 인생책을 고르는 기준이 될 수도 있겠네요. 새로운 시각 감사합니다. 이런 식으로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소설을 읽다 보면 주인공에 너무 제대로 취해서 수동적으로 텍스트를 받아들이는 경향이 좀 있습니다. 그 책 안에 어떤 위험한 이야기가 있든, 논픽션보다는 더 자연스럽게, 부드럽게 아무 거리낌 없이 받아서 먹더라고요. 주인공에 이입하기 전까지는 뭐든 반(反)하고 보는 게 버릇이지만요. 오히려 그래서 '인생 소설'을 찾는 게 어렵나 싶기도 합니다.
밀란 쿤데라의 <불멸>은 로베르트 무질의 작품과 같은 에세이즘 소설 중 가장 세련되고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에세이즘 형식의 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생각도 읽으면서 적잖게 했고요. 제가 <불멸>을 문학 중에서 인생책으로 꼽은 이유는 그러한 '문학의 가능성'에 있었습니다. 현대에 들어서 다양한 문화 컨텐츠, 매체가 발달하면서 텍스트는 뒷전으로 물러난 느낌인데. 밀란 쿤데라는 그럼에도 책이 할 수 있는, 책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가치를 드러냈다고 봅니다. 인간의 실존, 세계의 한 단면, 텍스트로 표현할 수 있는 예술의 가능성 등등과 같이 말입니다. 좋은 문학이니 일독을 권합니다. 비문학 쪽은 많이 안 읽어서 아직 인생책으로 꼽을만한 걸 못 찾은 것 같습니다. 이 모임에 참가해주신 분들이 추천하고 꼽아주신 책들도 괜찮아보이는데 나중에 한 번 도전해봐야겠네요.
쿤데라도 너무 오래된 이름인 듯한 느낌이 들고, 제목이 솔직히 안 와닿아서 손을 뻗지 않고 있었는데 이리 극찬을 하시니 안 볼 수가 없네요. 추천 감사합니다. ^^
오래된 작가이긴 합니다. 아직 살아계신데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나 <불멸>은 꼭 고전 문학 같다는 시간적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하지요. 좋은 책이니 일독을 권합니다.
덕분에 딥워크앱도 다운받았습니다. 제 경우엔 인생책은 시간이 지나면서도 자주 펼쳐보는 책들인 것 같습니다. 인생참고도서라고 볼 수 있겠네요. 다만 인연이 끝나는 책들은 정리하게 됩니다. 물론 후회하고 다시 중고서점에서 제 책 찾아서 회수한 적도 종종 있지요. 장서인을 찍진 않지만 소장하는 기간에 본인만의 책특성을 다 남기지 않나요? 가지고 있던 책 다시 찾을 때, 이 책이 내게 의미가 컸구나 싶더군요. 궁금한 게 페이지마다 모임방마다 머무는 시간도 체킹하는 그믐시스템인지 궁금합니다. 그럼 사용자특성화하기 매우 쉬워지니 더 많은 아이템을 확보하시게 될 듯 합니다.
인연이 끝나는 책이 정확히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더는 보지 않아도 되겠다, 참고할 필요가 없겠다 하는 책인가요? 아니면 이제는 나와 맞지 않아서 더는 읽고 싶지 않은 책인가요? 궁금합니다. 저는 책을 좋아하지만 소중히 다루지는 않아서..ㅎㅎ 분명 낙서도 안 하고 책장도 안 접는데 제 손을 탄 책은 티가 확 나요..
책을 많이 읽지 않는 사람으로써 몇 권안 읽었지만. 제가 어렸을때 읽었던 홍당무라는 책이 있었는데, 홍당무와 나, 엉엉 울면서 읽었습니다. 그때는 어머! 이것은 나의책이야! 이렇게 생각했지요.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흘러 40대가 넘어서 향수라는 책을 단숨에 읽고 숨이 막힐것 같은 주인공과 나, 그리고 눈먼자들의 도시라는 책을 읽고 나에 대한 찝찝함. 애기때 부터 지금까지 읽은 책은 많지는 않지만 지금 기억나는 책은 이 3권이네요. 그게 인생책아닐까 생각 됩니다. 그냥 그 책들이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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