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크레딧 읽기.

D-29
성매매 업소에 여성을 충원함으로써 업주는 성매매를 통해 수익을 올리는 동시에 이들 여성들을 상대로 '이자 장사'를 할 수 있다. 만약 선불금이 5000만 원인 여성의 하루 벌금 또는 하루 '할당량'이 100만 원이라면 이는 이자율 730%에 해당한다. 성매매 업주가 지역 신협에서 40%의 이자로 5000만 원을 빌려 여성들에게 선불금을 제공한 것이라고 가정하면 그는 690%의 이자를 남긴 것이 된다.
레이디 크레딧 - 성매매, 금융의 얼굴을 하다 p.99, 김주희 지음
(전략) 사람들뿐 아니라 금융회사, 신용정보회사, 채권추심회사의 다양한 경영진, 직원과 투자자까지 포함된다. 여성들의 채권에 대한 권리가 양도되는 시장까지 고려한다면 금융 활동을 영위하는 거대한 인구집단이 성매매에서 발생하는 수익과 관련을 맺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레이디 크레딧 - 성매매, 금융의 얼굴을 하다 p.64, 김주희 지음
이 책을 통해 2010년대 성매매 산업을 대략적으로 개괄할 수 있었다. 사업자들은 여성들의 미래 수익을 담보한 신용을 바탕으로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었고, 그를 통해 거대 사업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다. 동일한 주제의 다른 책에서 자주 나오는 협박이 '너 이러다가 더 아래등급 업소로 보내질 거야'라는걸 떠올려보면, 계급화와 세분화가 어떤 동인에 의해 구성된 것인지도 대략 알 수 있었다.
이 책에서 문제 해결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지만, 국가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성매매를 기반으로 한 미래 수익을 계산한 대출을 강력하게 규제한다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해체는 어렵되 축소는 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이 책에서 얻을 수 있었던 몇몇 키워드들, '일수방', '마이킹' 등을 검색해보니 여전히 (당연하게도) 최근에도 똑같은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읽어나가면서 깊은 무력감과 분노를 느꼈다. 이 책에서 '매춘사회화'라는 말이 있다. 성매매 내부의 시스템과 가치관을 이해하고 그에 맞춰 사고하고 행동해나가는 것을 뜻하는데, 우리의 일상 사회에서도 얼마나 매춘사회적 사고가 반영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룸나무' 같은 말들, 영업이 얼마나 더러운가 하고 쉬쉬하는 말들.)
일반론적으로 어떤 사람들은 한국이 일본에 비해 성적으로 규제도 많고 서양에 비해 보수적이라고 하지만 어쩌면 다른 나라에 비한 한국의 강한 특성으로 성매매 산업을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놀랐던 부분 중 하나가 외국에서 쓴 논문에서 '한국화'라는 말이 나온다는 것이다. 타국에 한국의 방식이 수출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한국이 성형에 돈을 많이 쓴다는 식으로 편견이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어쩌면... 이란 생각이 들었다. 더 높은 계급의 업소에서 일하려면 외모에 비용을 들여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성형 브로커와 협업해서 비용을 대출하게 된다.)
도서관에서 [키스방 이야기]라는 책을 이어 읽으려고 빌렸는데, 목차와 소주제를 보면 낭만화된 내용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저자의 이후 저서들을 확인해보니, 한참 다수가 모인 책의 한꼭지를 써왔나보다. 아마 다음 책으로는 [불처벌]을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실질적인 활동의 영역에서 뭘 할 수 있는지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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