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함께 읽기] #52.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의 철학자 몽테뉴에게 인생을 묻다>

D-29
그는 자신의 과거 모습이 어떤 파티에 모인 사람들의 모습이 각기 다른 것처럼 다양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한 방에 모여 있는 지인들에 대해서 어떤 판단도 내리려고 하지 않았다.
어떻게 살 것인가 - 삶의 철학자 몽테뉴에게 인생을 묻다 17장, 419p, 사라 베이크웰 지음, 김유신 옮김
그의 작품에는 자유가 유일한 규칙이고 여담으로 빠지는 샛길이 유일한 길이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 삶의 철학자 몽테뉴에게 인생을 묻다 17장, 423p, 사라 베이크웰 지음, 김유신 옮김
18장까지 읽었는데, 와아 - 할 말이 정말 많아서 어디가서 막 이야기 하고 싶어지더라구요 ^^ 먼저, 9장까지 읽고 “몽테뉴는 철학자인가?“라는 섣부른 의문을 가졌던거 반성합니다. (가상의)디너파티에서 묻고 싶은 첫 번째 질문이라고 썼었는데, 이 질문했다간 “책 더 읽고 와라”라고 몽테뉴 경에게 한 소리 들었을듯 합니다. 몽테뉴 스타일로 신중하게 기다리며 (에포케) 계속 읽어나갔어야 했습니다. 본인이 직접 ‘계획적으로 철학을 연구한 적이 없는 우발적인 철학자”라고 했다니, 더 이상 의문을 가질 여지조차 없네요. accidental philosopher - 철학에 무지한 저한테는 이 명칭이 대단히 신박하네요. 존 플로리오의 번역 이야기는 너무 웃긴게, 직관적이고 실용적인 언어인 영어보다 프랑스어가 훨씬 미사여구도 많고 표현적이라서 같은 텍스트를 번역하면 당연히 프랑스어 쪽이 더 길게 마련일텐데요, <에세> 영어버전이 훨씬 길어 보이니 저 양반은 남의 글을 가지고 대체 얼마나 “거미줄을 뽑아”댄 것일까요? 근데 그게 또 영국에서 먹혔다고 하니 뭐라고 해야 할지…
17장까지만 읽고 자려고 했는데, 17장 마지막 문장 - ”그의 인생에 끼어든 비범하고 젊은 여자, 마리 드 구르네이다.“ - 아니, 사라 베이크웰 씨, 시즌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떡밥 던지고 끝내는 미드도 아니고 17장을 이런 식으로 끝내면 어떻게 합니까? 갑자기 장르 바뀌는 느낌이 팍 들면서,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다음 페이지 넘기고 있더군요. “예수와 사도 바울의 관계, 마르크스와 레닌의 관계”라니요오오.. 하아- 18장은 왜 그리 길던지.. 하지만, 두둥 (넷플릭스 시작할때 나는 효과음) 마리 드 구르네라는 또다른 문제적 인물의 등장! 여주랑 머리핀 사건으로 1차 당황, 갑분 수양딸 시츄에이션으로 2차 당황하는 순간이 있었지만, 대단히 흥미로운 인물이더라구요. 정리를 하자면, 몽테뉴라는 슈퍼스타 만들기 프로젝트의 기획,제작,홍보 책임자 - 그러니까 오늘날로 치자면 여자 방시혁? 여자 이수만? 여자 박진영? 뭐 이런 거겠죠? 당대에 혹은 후세 사람들이 뭐라고 떠들었던 간에, 16세기에 자력으로 라틴어를 깨우칠 정도의 지성을 갖춘 여자가 <에세>라는 작품의 위대함을 한 눈에 알아볼 정도의 안목을 갖추고 직접 몽테뉴에게 컨택해서 덕업일치로 편집을 해냈다는 이야기 - 정말 놀랍더군요. 이 밖에도 할 얘기가 많은데 쓸데없는 도배글 될 거 같아 이만하겠습니다. (원래 “성찰하되 후회하지 말라” 이런 격조있는 말로 감상을 써야하고 또 그렇게 쓰려고 했는데, 왜 이런 글이 되버렸을까요..)
너무 재밌어서 어디가서 막 말하고싶다에 공감합니다(그러라고 그믐이 있는거 아닐까요. 그믐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18장은 16세기 '성공한 덕후'인 마리 드 구르네의 일생이 미니 평전 같이 들어가 있어서 빠져들었고, 이어지는 editing wars도 흥미로웠습니다. 긴 글의 최종본을 만드는 문제를 읽으며, 사회생활 초년에 제 보고서가 결재라인 상사들의 빨간펜, 파란펜으로 수정이 거듭되면서 파일명을 '..._최종.docx' '..._최최종.docx' '...이게진짜최종.docx' 으로 바꾸어가며 저장하다 언제부터는 나도 뭐가 최종인지 미궁에 빠져버리던 나날들이 생각났습니다. ㅜㅜ 궁금해서 찾아보니 민음사 에세가 1588 보르도본을 완역한거군요. 마리 드 구르네의 이야기를 읽고보니 그녀의 편집자적 능력에 결함이 있었다는 주장보다는 보르도본은 구르네에게 전해지지 않았고 또다른 판본으로 작업을 했을거라는 이야기가 더 신빙성이 있어 보입니다. 더 믿고싶은 버전이기도 하구요.
수많은 마음이 모두 한 가닥 실에 꿰어 서로 엮여 있다.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의 마음도 플라톤과 에우리피데스의 마음과 아주 똑같다. 이렇게 공통적인 마음이 온 세상을 하나로 묶는다. 그러므로 온 세상 그 자체가 마음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 삶의 철학자 몽테뉴에게 인생을 묻다 460쪽, 사라 베이크웰 지음, 김유신 옮김
18장 마지막에 나온 버지니아 울프의 인용문 너무 멋지지 않아요? 역자 선생님도 따로 인용하고 있는 멋진 문장입니다. :)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많은 밑줄을 그어댔는데, 그 중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 3개 중 하나가 바로 이 버지니아 울프의 이야기였어요. 너무 좋아서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고 또 읽어 봤었습니다. 또다른 부분은 앞에서 인용했던 “연결 고리가 망가진 세상을 복구할 수 있는 해법은 개개인이 각자 연결 고리로 되돌아가서 현실 세계에 발을 붙이는 기술부터 시작해서 ‘사는 법’을 배우는 것” 이었습니다. 허황되거나 뜬 구름잡는 말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핵심을 쉬운 언어로 제시하는 이 부분에서 표현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공감을 했습니다. 마지막 한 부분은 이 책 마지막에 사라 베이크웰이 쓴 “감사의 말”에 있던 문장이었습니다.(아래 인용) 읽으면서 뭉클했어요. 이 마지막 말로 인해 주변이 환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살아가면서 주문처럼 중얼거리고 싶은 문장이었어요.
18장 통제를 포기하라 팬이 편집을 하는 게 좋은 걸까 나쁜 걸까? “몽테뉴의 미망인과 딸은 그저 구르네가 적당한 인쇄업자에게 그 책을 전해주기만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구르네는 그 책을 받자 중요한 편집 작업을 맡았다고 해석하고 편집 작업에 착수했다. 그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그녀보다 경험이 많고 여건이 좋은 편지자들도 질릴 만큼 어려운 작업이었다. 오늘날까지도 <에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내용이 서로 다른 이본이 많고, 본문이 복잡하고, 몽테뉴가 언급한 내용과 임시의 출처를 찾아내는 일은 매우 방대한 작업이다. 그러나 구르네는 그 일을 훌륭하게 해냈다.”(435p) "<백경>에서 기름 덩어리를 너무 많이 떼어 내버리면 고래가 없는 작품이 될 위험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몽테뉴의 ‘정신’은 편집자들이 가장 빼버리고 싶어 하는 그의 일탈, 여담, 변심, 태도, 변화, 그리고 한 가지 생각에서 다른 생각으로 쉴 새 없이 옮겨 다니는 그의 습성에 깃들어 있다. 몽테뉴 자신이 “좋은 책을 축소한 요약판은 모두 어리석은 것이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알 만하다."(453p) “사람들은 몽테뉴가 말하려고 한 적이 없는 것을 그의 작품에서 계속 찾아낼 것이다. 그런 말을 새로 창조하는 것이다. 능력 있는 독자는 저자가 집어넣었거나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완벽한 것을 그 저자의 작품에서 찾아내 그 작품에 더욱 풍부한 의미와 해석을 얹어준다.”(459p) "수백 년에 걸쳐서 책이 이렇게 해석되고 재해석되는 과정을 통해서 한 저자와 미래의 모든 독자를 연결하는 기다란 사슬이 만들어진다. ~ 고전은 각자의 마음에서 다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동시에 수많은 독자의 마음을 하나로 모은다.“(460p) "몽테뉴의 경우에는 ‘아모르파티’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포괄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 중 하나였으며, 그의 작품이 불멸성을 얻을 길을 열어주었다. 그가 남긴 작품은 불완전하고, 모호하고, 부정확하고 왜곡되기가 쉬워서 오히려 더욱 사랑 받게 되었다. 몽테뉴는 이렇게 외치고 싶지 않았을까? “오 주여! 부디 사람들이 저를 오해하게 해주소서!”"(460p)
화제로 지정된 대화
말씀드렸듯이 어제(12월 28일)와 오늘(12월 29일) 19장 '평범하고 불완전한 사람이 되라'와 20장 '인생, 그 자체가 해답이 되게 하라'를 읽으면서 함께 읽는 여정을 마무리합니다. 아, 이 책의 마무리는 언제 읽어도 정말 멋집니다. 여러분도 얼른 확인해 보세요.
추천해주신 덕분에 사라 베이크웰이라는 매력적인 작가를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책의 마무리와 비슷한 수준의 감동을 주는 멋진 마무리로 꼽을 만한 건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돌베개) 정도가 있을 것 같아요.
주기율표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 사후 20주기를 맞아 그의 대표작 두 권이 국내 최초로 번역되었다. 극단적인 개인의 경험에서 끌어낸 심오한 통찰을, 보편적이면서 아름답기까지 한 언어로 풀어낸 수기 <이것이 인간인가>와, 명상록과 회고록의 성격을 지닌 기발하고 독특한 구성의 책 <주기율표>이다.
결국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은 이렇게 결점을 지닌 채 살아가고 결점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 철학도 실생활에 적용할 때에는 “투박하고 애매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모든 일을 속속들이 밝힐 필요는 없다.” 자신의 천재성에 눈이 먼 타소처럼 산다면 무엇을 얻겠는가. 온건하고, 겸손하고, 다소 흐리멍덩하게 사는 게 더 낫다. 그러면 나머지는 자연이 해결해줄 것이다.(467p)
어떻게 살 것인가 - 삶의 철학자 몽테뉴에게 인생을 묻다 19장, 467p, 사라 베이크웰 지음, 김유신 옮김
인생은 그 자체의 목표이자 목적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 삶의 철학자 몽테뉴에게 인생을 묻다 20장, 476p, 사라 베이크웰 지음, 김유신 옮김
21세기에는 몽테뉴의 인생관이 득이 된다. 지금까지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마다 몽테뉴적인 정치절학이 전적으로 필요했다. 21세기는 몽테뉴의 온건주의, 친화력과 정중한 태도에 대한 그의 사랑, 판단을 보류하는 그의 태도, 그리고 대립이나 충돌이 일어났을 때의 심리적 작용에 대한 그의 섬세한 이해를 이용할 수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 삶의 철학자 몽테뉴에게 인생을 묻다 20장, 477p , 사라 베이크웰 지음, 김유신 옮김
고양이와 서로 마주 보고 있다가 몽테뉴는 어느 순간 고양이의 눈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 둘 사이에 가로놓인 틈을 뛰어넘었다. 바로 그런 순간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반복되면서 그의 철학이 탄생하였다.
어떻게 살 것인가 - 삶의 철학자 몽테뉴에게 인생을 묻다 사라 베이크웰 지음, 김유신 옮김
한 달동안 매일 자기 전에 몽테뉴라는 인물에 대해 읽고 궁금해하고 또 골똘히 생각해보는, 그래서 세상의 소란에서 물러나 고요한 시간을 가지게 되어서 무척 좋았습니다. 사라 베이크웰이 이끄는 대로 이리저리 쫓아가면서, 무려 500년 전에 살았던 호기심많고 매사에 신중하며 자신에게 집중하되 남에게는 너그러웠고, 무엇보다 땅 위에 두 발 단단히 붙이고 서서 인간다움을 잃지 않았던, 그래서 결국 우리 모두처럼 ‘불완전했던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에 푹 빠져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 장 넘기고 나니 한 해도 저물어가고 있네요. 18장에서 1933년에 몽테뉴 생일 400주년 기념으로 보르도 축제가 열렸다는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그렇다면 2023년은 몽테뉴 탄생 490년 되는 해인데, 올해가 가기 전에 몽테뉴 경을 만나게 되어 더더욱 뜻깊었습니다. 십 년 후, 2033년에는 몽테뉴 탄생 500주년 기념하러 보르도에 가봐야 할까요? ^^ 오바마가 2023년 올해의 책을 발표했는데, 그 리스트에 사라 베이크웰의 신작 humanly possible이 올라 있는 걸 보고, ‘아, 이 책은 또 얼마나 좋을까’ 하게 되더라구요. 좋은 책과 함께 하는 의미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주신 @YG 님께 감사드립니다. 권해주시지 않으셨다면 읽어볼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책이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좋은 일은 자신이 바라는 것을 얻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일어난다는 몽테뉴의 말은 진리였다.
어떻게 살 것인가 - 삶의 철학자 몽테뉴에게 인생을 묻다 사라 베이크웰 지음, 김유신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12월 31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의 철학자 몽테뉴에게 인생을 묻다』 함께 읽기가 끝납니다. 끝까지 따라오신 분들은 다들 즐거운 독서 경험이셨던 것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올해 고생 많으셨고, 새해에도 벽돌 책 혹은 다른 좋은 책으로 좋은 인연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새해에는 벽돌 책 가운데 (숨어 있던) 좋은 책 구간과 신간을 적절히 섞어서 함께 읽는 시간을 꾸려보려고 해요. 함께 읽고 싶은 책 추천도 받겠습니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해피 뉴 이어!
화제로 지정된 대화
앞에서 예고했던 대로, 2024년 1월에는 실비아 나사르의 정말 재미있는 벽돌 책 『사람을 위한 경제학』(반비, 2013)을 함께 읽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https://www.gmeum.com/gather/detail/1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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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누워서 쓰는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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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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