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빌린 책 읽기

D-29
아침에 영화의 얼굴을 쭉 봤다. 1950 ~ 1980 의 포스터를 나열하고 있는데, 한참 보다가 화녀 포스터에서 멈췄다. 너무나 그 당시 흐름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모던한 디자인이 갑작스레 튀어 나왔기 때문이다. 한국 최초의 영화는 1919년에 나왔다고 하는데 그럼 20 ~ 50 사이의 영화는 어디 갔단 말인가. 가끔 일제강점 시대가 이렇게 문화적으로 빠져 있을 때 의구심이 생긴다.
일제강점 시대의 영화을 찾아보니 이런 기사가 잡힌다. http://www.reader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5851 그리고 기사 내에서도 나오지만, [한국 영화사 개화기에서 개화기까지]라는 책이 보인다. 더 찾아보니 [한국영화 100년사 일제강점기]라는 더 그 시대만을 다룬 괜찮은 책이 보였다. 책 목차에 따르면 가장 오래된 원본이 남아 있는 영화가 [미몽] (1936)이라고 하니 언젠가 봐야겠다. 아래와 같이 Youtube에 고스라니 올려져 있었다. (더 찾아보니 그 사이 복원을 해서 [청춘의 십자로] (1934)가 가장 오래된 영화라고. 다만 이 쪽은 무성영화.) https://www.youtube.com/watch?v=wai0DcfjiKI
점심시간에 읽고 있는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는 제목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저자가 담담하게 서술한다. 저자가 유능한 작가이기도 하겠지만, 그렇게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자신의 아들 이야기 한 꼭지, 조현병에 관련된 이야기 한 꼭지를 번갈아 가는데, 서양의 정신병원 역사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수 백년 동안 방치되고 착취된 병자들. 도로시어 린더 딕스Dorothea Lynde Dix의 행보에 눈물이 조금 났다. 퀘이커 교도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이 있었는데, 정신병원의 개선에 큰 도움을 줬다니 조금 수정 되었다. 얼마나 오랜 기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방치되어 있었을까.
[영화의 얼굴들] 포스터만 쭉 다 봤다. 화녀 포스터 이후로도 그렇게 모던한 포스터는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마지막 작품이 1988년작인데, 저자가 포스터를 수집하기 시작한 1989년 직전까지로 마무리지은듯 하다. 70년대 말 기미가 보이던 섹슈얼(성적 물화?)는 80년대 들어서 굉장히 활개친다. 독재정권에서 찍을 수 있는 영화가 한정되어서일까. 작품성은 차라리 70년대 이전이 훨씬 높아보였다. 그런데 과거 사람들도 영화를 그렇게 많이 봤던 걸까. 어느 정도로 얼마나 영화를 많이 봤는지 궁금하다. [노란문: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에 의하면 독재 종료 이후 청년들은 굶주린 듯이 영화를 공부하고 찍었다. 다른 세대가 시작된 것이다.
[남양 섬에서 살다]를 138쪽까지 읽었다. 일제 시대에 대학까지 나온 저자는 남양척식회사에서 식민지에 파견되어 일하게 된다. 식민지 회사에서 일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주 자세하게 적혀있고, 심지어 저자는 뛰어난 일잘러다. 미크로네시아의 작은 섬들에서 어떤 일들을 해왔는지 선명하게 그려지고, 이제 막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 초기라 일본은 승리의 열광에 취해있다. 1930년대에 벌써 너무나 회사원 같은, 해외 주재소 한직에 발령 받은 느낌이 나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버마의 나날]을 다시 읽고 싶어진다.
[영화의 얼굴들] xx년대 설명들만 뛰어넘어 읽었다. 한국영화사는 참 평탄한 적이 별로 없었다. 독재 아래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없었을까. 70년대에 TV가 도입되고 검열에 의해 자극/선정이 강해지고 80년대 전두환 정권이 신체 노출 수위를 파격적으로 허용하며 그 피크를 찍는다.
[지구의 마지막 숲을 걷다]를 조금 읽었다. 도저히 순서대로 읽지 못하겠는 책이 있다. 이 책도 처음 빌릴 때도 지금도 되는대로 펼쳐서 읽고 있다. 아마 미래인들에게 이 시기는 정작 중요한 것에 별 관심이 없었던 인간들의 시대로 기록에 남겠다.
[산책]을 읽었다. 김이은의 담담한 제목 짓기와 간결한 내용진행은 어쩌면 심심하게 느껴졌다. 부동산에 대한 강렬한 양가감정이 거슬린다.
[세리의 크레이터]를 읽었다. 정남일은 조금 황당스러운 소재를 밀고 나가는 재미가 있다. 소설계에 신도심 거주자라는 새로운 인구 집단을 계속 그리기로 했나?
[부표]를 읽었다. 이대연은 내가 문장을 잘 쓴다고 생각하는 스타일이다. 어떤 이들은 가끔 단편 소설을 글을 채워 넣어 완성하기도 하는데 이는 심혈을 기울여 썼다. 이 작가의 다른 책을 더 읽고 싶어 보니 [이상한 나라의 뽀로로] 단 한 권만 있었다. (단편집으로 보인다.) 경인 일보에서 1년 정도 영화평을 연재했다. 소설을 사서 읽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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