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설이 좋아서 2> 정진영 소설가와의 온라인 대화

D-29
안녕하세요. 저는 소설을 쓰는 정진영 작가입니다. 그믐에서 제 장편소설 『젠가』를 함께 읽고 여러분과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질문, 답변, 토론, 넋두리 모두 좋습니다. 조직에 불만이 많은 분 환영합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장편소설 『젠가』를 쓴 정진영 작가입니다. 지난 2020년 10월에 작품 초고 집필을 마쳤는데, 2년 만에 이런 기회를 통해 독자 여러분과 만나는 날이 올 줄 몰랐습니다. 소설은 쓸 때도 외롭지만, 세상에 나온 뒤에는 작가를 더 외롭게 합니다. 독자 여러분이 어떻게 작품을 읽었는지 무척 궁금한데, 책(E-Book 포함)은 매체 특성상 작가가 즉각적인 독자 반응을 체감하기 어렵습니다. 종종 북토크나 강연을 통해 독자 여러분을 만나지만, 깊은 이야기까지 나누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실시간으로 상당한 기간에 걸쳐 독자 여러분과 만날 수 있다는 건 작가에게 흔치 않은 귀한 기회입니다. 여러분과 작품을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생각을 하니, 오랜만에 반가운 친구를 만나는 일처럼 설렙니다. 『젠가』는 가상의 지역 중견기업을 배경으로 대한민국 조직 사회의 부조리를 조명한 작품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조직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저마다 독립된 인격체인 개인이면서 가족의 일원이고, 동시에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구성원입니다. 작은 조직이 모여 큰 조직을 이루고, 큰 조직이 모여 국가를 구성합니다. 하부 조직을 들여다보면 가장 큰 상위 조직인 대한민국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보일 것 같았습니다. 이 작품을 집필하게 된 계기입니다. 일독한 소감, 인상 깊었던 장면이나 구절 공유, 작품 속 상황과 비슷한 자기 경험, 궁금한 점 등 작품에 관한 이야기는 무엇이든 좋습니다. 쑥스럽지만 저에 관해 궁금한 걸 물어보셔도 좋고요. 앞으로 29일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정진영 작가님,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너무 영광입니다. 조직에 불만이 많은 사람 환영! 라는 문구를 보고 바로 참여 신청을 눌렀습니다. 그리고 한국 소설이 좋아서 2에 소개된 서평도 읽어보았습니다. 드라마를 보기 전에^^ 원작을 읽게 돼서 참 다행이다 싶어요!! 29일 동안 『젠가』 함께 하면서 종종 소감 올리겠습니다. 그전에 궁금한 것도 물어봐도 좋다 하셔서 질문 드립니다. 11년 간 기자 생활을 하셨던데, 갑자기? 소설가로 전향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이구~ 영광은 무슨요. 이렇게 찾아와 말을 걸어주시는 게 더 영광이죠. 갑자기 소설가로 변신한 건 아닙니다. 20대 말에 여기저기 장편소설 공모에 지원하고, 출판사 수십 곳에 원고를 투고했는데 안 됐습니다. 글 쓰며 먹고 살 방법이 없는가 고민하다가 기자로 취직했습니다. 기자로 일하던 도중 별 기대 없이 예전에 썼던 소설 원고를 한 장편소설 공모에 넣었는데, 그게 제 데뷔작인 <도화촌기행>입니다. 책 내면 여기저기서 청탁도 오고 환대를 받을 줄 알았는데 아무 일도 안 생겼습니다. 기자 일이 바빠서 새로운 무언가를 쓸 여력도 없었고요. 그러던 중 다니던 신문사에서 윗사람과 싸우고 뛰쳐나와 7년 만에 내놓았던 신작이 <침묵주의보>였습니다. 그 작품을 쓸 땐 다시 기자로 일할 생각이 없었는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결국 다른 신문사로 기어들어 가 몇 년 더 기자로 일했습니다. 나중에 <침묵주의보>의 드라마 제작이 결정됐을 때도 기자 일을 그만둘 생각까지는 안 했습니다. 회사는 전쟁터이지만, 회사 밖은 지옥이라는 걸 실감했거든요. 그런데도 퇴사한 이유는 교통사고 때문이었습니다. 새벽에 출근하다가 사고로 죽을 뻔했고, 차를 폐차했습니다. 사람 운명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정말 하고 싶은 걸 해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출근하다가 죽긴 싫더라고요. 그게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이제 퇴사한 지 2년 7개월 정도 됐는데, 어떻게든 살아졌습니다. 새로운 길도 열리고요. 내년에 출간할 예정인 장편소설이 출간 전에 드라마 제작이 결정됐는데, 각본 집필까지 맡게 돼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퇴사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팟캐스트 '책걸상' 통해서 젠가를 읽게 되었습니다. 너무 재미있는 소설 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작가님이 직접 주최하시는 온라인 독서모임에 참여하게 되어 영광입니다!(2)
책걸상 독지가 여러분은 언제나 사랑입니다. 반갑습니다!
소설이 너무 재미있어서 하루만에 다 읽었습니다. 소설에 나오는 표현 중 '기사를 엿으로 바꿔먹었네'라는 표현이 있는데 너무 찰지고 입에 착착 감겨서... 혹시 경험이 반영된 표현인지 궁금했습니다.
기자들 사이에 관용구처럼 자주 써먹는 표현입니다. 예를 들어 특정 기업에 불리한 기사가 나올 상황인데, 해당 기업이 광고비로 기사를 막는 경우에 그런 표현을 씁니다. 저도 몇 번 그런 경험을 해봤습니다. 기분 더럽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조직에서는 성골은 학부졸업 후 수련까지 해당 기관에서 받은 경우를 지칭하고, 로열패밀리는 주로 교수님 자녀분들을 부르는 용어였습니다.
소설에 나오는 성골은 대전의 ㅊ고, ㅊ대 출신이 생각난건... 제 뇌피설이겠죠? ^^;;;;
뇌피셜 아니고요. 그보다 훨씬 넓습니다. 예를 들어 한전은 전남대 출신들, LH는 경상대 출신들, 대구·경북 혁신도시내 공공기관들은 경북대 출신, 전북혁신도시 공공기관들은 전북대 출신이 대거 자리를 차지하고 있죠. 지역 거점 대학이 지역에서 자리를 차지하는 게 나쁜 일은 아니죠. 하지만 여기에서도 서열화가 이루어져 지역 거점 대학이 아닌 다른 대학 출신은 홀대를 받는 현상이 보입니다. 마치 대기업에서 서울 소재 명문대 출신들이 지역 거점 대학 출신보다 우대를 받는 것처럼요. 그런데 서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언론을 통해 제대로 드러나지 않거든요. 뉴스는 늘 서울을 중심으로 돌아가니까. 드러나지 않으니 더 개판이에요.
답글 감사합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답이 없는 고민을 했던 것을 적어봅니다. "지방에 있는 회사임원이 서울에서 내려와서 꽂히는 게 나은 것인가, 그 지역출신 성골이 차지하는게 나은 것인가?" 지방의 국공립병원에서 일하는 후배가 "여기는 서울/수도권 출신 대부분이고 장거리 출퇴근을 하거나 주말부부인 사람들이 많아서 이직률이 높아서 병원이 지역사회에 뿌리를 못 내리는 것 같다." 라고 호소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후배도 출퇴근에 지쳐서 이직할 기회만 보고 있더라고요. 상대적으로 지역에 뿌리를 잘 내린 국공립병원들은 그 지역 출신 성골 비율이 높은 것 같고요. 답이 없는 문제 같습니다. 대전광역시에서도 사람구하기가 힘들다는 얘기를 보면 서울공화국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상적으로는 지역의 기업엔 지역출신 인재가 많이 입사하고, 입사해서는 공정하게 경쟁해서 우수한 직원이 출신과 상관없이 주요직에 근무한다... 라고 되면 좋겠지만.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현실이 바뀌긴 어렵다고 봅니다. 하지만 언론의 감시와 견제 기능이 작동한다면 대놓고 그런 일들이 벌어지지는 않겠죠. <젠가>는 지역 기업의 현실을 다룬 소설이기도 하지만, <침묵주의보>처럼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지 묻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상대적으로 지역에 뿌리를 잘 내린 국공립병원들은 그 지역 출신 성골 비율이 높은 것 같다는 말에는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다만 그런 곳에서도 철저하게 서열화가 이뤄진다는 게 문제죠. 언젠가 제 앞에서 한 지역거점국립대 출신 인물이 같은 지역에 있는 사립대를 '똥통'이라고 표현하며 멸시했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그 지역 사립대는 해당 지역에서 꽤 입지가 있는 대학인데도 말이죠. 그런데 그 지역 사립대 출신 인물이 그보다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 다른 지역 사립대를 '똥통' 취급하는 모습도 봤습니다. 서울과 달리 지역에선 이런 현실이 잘 공론화되지 않아 문제죠. 그 문제의 근원에 제 역할을 못하는 지역 언론이 있습니다. 지역 언론은 몇몇 매체를 제외하면 사실상 감시와 견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앙 언론은 지역 현실을 잘 모르고 관심도 없습니다. 계속 사각지대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죠. 제가 기자 경력을 지역지 기자로 시작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런 현실을 더 답답하게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직마다 성골, 진골, 6두품을 나누는 기준이 모두 달라 흥미롭더라고요. 지방에선 고교 인맥이 꽤 여러 분야에서 유용하게 작용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특히 언론계에선 조선일보를 보고 혀를 내둘렀습니다. 조선일보 편집국장은 서울대 출신(그중에서도 법학과, 정치학과)이 아니면 그 자리에 앉지 못하더군요. 반세기 넘게 그래왔습니다. 다른 중앙 언론사도 이 정도까진 아니지만,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언론이 지나치게 권력에 관심이 많은 이유가 이런 인적 구성 때문이라고 봅니다.
작가님! 젠가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소설 구상은 어떻게 하셨나요?
우리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 일인데 시끄럽지 않은 사건을 소설로 다루고 싶었습니다. 그때 제가 떠올린 사건이 2013년 원전비리 사건이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만큼 위험한 일인데 지나치게 조용하게 넘어가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제 기자는 아니지만 소설로 르포 기사처럼 문제 제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제 집 근처 공원에서 걸으며 소설을 구상했습니다. 걷다 보니 소설이 조금씩 머릿속에서 만들어지더군요. 정읍에 있는 권번문화예술원이 제게 집필실을 마련해줘 그곳에서 소설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치밀하게 설계도를 그렸고, 그 설계도에 따라 소설을 써 내려갔습니다. 마치 블록을 짜 맞추듯이. 이런 식의 소설 집필은 저도 처음이어서 새로운 경험을 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쓴 소설 중에서 쓰면서 가장 즐거웠던 소설입니다.
작가님 인터뷰나 블로그에 쓰신 걸 보면 매번 소설을 쓰실때마다 집을 떠나서 글을 쓰시는 걸 선호하시는 것 같습니다. 집에서 집필하실 때보다 낯선 환경에서 집필하시는 것이 더 집중에 도움이 되나요? 저도 논문을 쓸때 집에서는 절대! 안 써지고, 직장에도 잘 안써지고, 스터디카페나 카페에 가야 써지더라고요. 물론 장편소설 집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작업이긴 하지만요.
일단 저는 집이 아니면 다 좋습니다. 집에선 눕고 싶고 먹고 싶고 자고 싶고... 도저히 저를 제어할 수 없더라고요. 히트 작가와 중견 작가 대부분 따로 작업실을 두고 집필합니다. 저는 그럴 형편이 되지 않기에 작가들을 대상으로 집필공간을 지원해주는 레지던시에 지원하고, 운이 좋아 선발되면 들어가서 작품을 집필합니다. <젠가>를 비롯해 <침묵주의보>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 등의 작품을 모두 외부 집필실에서 작업했습니다. 집에서 작업이 가능하신 분을 존경합니다. 저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소설 시작할때 습관 같은거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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