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HJ와 목포를 다녀왔다. 즉흥적으로 결정해 갑작스럽게 떠난 여행이었다. “기차를 타고 가면 목포가 의외로 금방이네, 1박 2일로 갈까?” 내가 제안했더니 HJ는 “그럼 자기가 계획을 짜”라고 말했다. 인터넷 지도와 여행 블로그들을 보면서 내가 짠 일정표는 아주 간단했다.
낮에 SRT를 타고 목포역 도착. 늦은 점심으로 꽃게 요리 먹음. 호텔에 감. 저녁에 수제 맥줏집에서 지역 맥주 마심. 둘째 날 낮에 목포해상케이블카 탐. 이번에도 늦은 점심을 먹는데 메뉴는 낙지 요리. SRT 타고 서울로 올라옴.
HJ는 그 계획표를 보더니 “잘 짰네” 하고 칭찬을 해주고 전국 5대 빵집(이런 말은 누가 지어내는 걸까?) 중 한 곳이라는 코롬방제과점에 들르는 일정을 추가했다. 새우바게트와 크림치즈바게트가 유명한 지역 빵집이라고 했다.
우리는 거의 계획대로 움직였다. 기차가 출발하기 20분쯤 전에 수서역에 도착했다. HJ는 공차에서 블랙 밀크티를 사고, 나는 편의점에서 스텔라 아르투아를 한 캔 사 마셨다. 기차에서 HJ는 내가 추천한 일본 추리소설들을 읽었다. 나는 전자책을 읽다가 멍하니 창밖을 보다가 졸다가 했다.
나는 먹을 걸 가리거나 음식에 조예가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남도음식은 좋아한다. 누군가 “목포에는 맛집이 따로 없다. 모든 집이 맛집이기 때문이다. 역전 식당에서 콩나물국을 먹어도 맛있다”고 자랑했는데 동의한다. 실제로 목포고속버스터미널에 있는 식당에서 콩나물국을 먹은 적이 있는데, 아주 맛있었다.
그냥 큰 욕심 없이 기차 타는 재미를 즐기고 남도음식이나 간단히 즐기고 오자 싶었다. 민어나 병어, 갈치는 제철이 아니라기에 먹을 음식으로 꽃게와 낙지를 골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꽃게와 낙지도 제철은 아니었다. 홍어를 먹을까 싶기도 했는데 옷에 냄새가 배어 돌아오는 길에 민폐가 될 것 같았다.
목포역에서 내려서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식당에 갔다. 다른 것 없이 꽃게살비빔밥 2인분과 카스를 한 병 주문했다. 껍질을 다 발라내고 양념에 무친 게살만 담은 접시가 밥과 함께 나왔다. 매생이, 파래, 마른갈치조림 등 반찬도 푸짐했다.
나는 게살과 밥을 한 번에 비벼 먹고 HJ는 조금씩 섞어 먹었다. ‘이걸 먹기 위해 목포에 가야 한다’는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목포에 와서 먹어 보니 재미있고 좋네’ 정도의 맛? 우리 부부가 이 정도 여행은 돈 걱정 없이 즐기게 됐다 싶어 뿌듯했다.
식당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호텔로 갔다. 택시 기사가 우리에게 목포에 뭐 볼 게 있어 왔느냐며 말을 붙였다.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요즘 먹을 만한 게 뭐가 있느냐고 물으니 그는 “제철 따위는 중요하지 않고 다 양념 맛”이라고 대꾸했다. 케이블카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았다.
호텔에서 몸을 씻고 잠시 쉬었다. 바다가 보이는 방이어서 HJ가 좋아했다. 나는 섬이 많은 서해 바다의 매력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수평선이 보이는 탁 트인 전망이 좋다, 나는. 침대가 두 개인 객실은 크기가 제법 컸다. 그런데 뜨거운 물은 나오다 말다 했다.
저녁께 신도심으로 걸어갔다. ‘파머스브루어리’라는 수제맥줏집에 가보고 싶었다. 전북 고창에 양조장이 있는 한국 수제맥주 회사 파머스맥주의 매장이다. 유달산 스타우트, 갓바위 엠버에일처럼 목포의 명물 이름을 따온 크래프트맥주도 판다고 했다.
별 기대 없이 찾아갔는데 가게 분위기가 너무 좋아 깜짝 놀랐다. 천장이 높은 복층 구조였는데 거리를 향하는 면은 커다란 통유리 창으로 되어 있어 개방감이 뛰어났다. 실내는 우리가 딱 선호하는 정도로 어두웠고 벽에 걸린 커다란 스크린에서는 고흐의 일생을 그린 애니메이션 영화가, 반대편의 조금 작은 스크린에서는 한국 액션 영화가 나왔다.
우리는 아래가 내려다보이는 2층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테이블 위에는 초가 놓여 있었는데 종업원이 불을 붙여주었지만 히터에서 나오는 바람 때문에 곧 꺼졌다. 우리는 샘플러를 주문했다. 맥주는 파머스 드라이, 필스너, 유달산 스타우트, 갓바위 엠버에일을 골랐다. HJ는 필스너와 갓바위 엠버에일이 맛있다고 했고 나도 같은 의견이었다.
종업원은 친절하고 동작이 빨랐다. 우리가 주문한 모듬 소시지 외에도 서비스라며 감자튀김을 가져다주었다. 소시지도 감자튀김도 아주 푸짐하고 맛있었다. 이것도 목포라서 그런 건가? 다이어트는 잠시 잊기로 하고 포크를 든 손을 부지런히 놀렸다. 샘플러 잔을 다 비운 다음에는 필스너와 헤페바이젠, 골든에일을 마셨다. 맥주들도 다 전용 컵에 따라져 나왔다.
기분 좋게 마시고 다시 숙소로 걸어왔다. HJ는 반신욕을 시작했고 나는 양치질만 한 뒤 침대에 누워 일찍 잤다. 오후 9시 반에 잠을 청했는데 다음날 오전 9시가 넘어 일어났다. 밖에 나가 커피를 마실까, 하고 HJ에게 물었으나 귀찮다고 했다. 그냥 객실에 있는 주전자로 물을 끓여 인스턴트커피를 마시고 느긋하게 샤워를 했다.
체크아웃을 하고 택시를 불러 목포해상케이블카 북항 승강장으로 갔다. 이 케이블카는 목포시가 오랫동안 준비한 야심찬 관광객 유치 프로젝트로, 재작년에 개통했다. 서비스를 개시하자마자 큰 인기를 모았고, 이제는 지역경제에 미치는 경제적 효과가 1000억 원에 이른다나? 그런 말도 ‘전국 5대 빵집’이라는 표현과 마찬가지로 실체 없게 들리지만.
케이블카에 대한 내 감상도 꽃게살비빔밥에 대한 감상과 같았다. 그걸 타기 위해 목포에 갈 필요는 없지만 간 김에 타 보면 재미있고 좋다는 것. 우리는 일반 캐빈보다 5000원이 더 비싼 크리스털 캐빈에 올랐다. 아래 바닥이 투명 창으로 되어 있는 객실이었는데, 타고 보니 전망을 즐기기에는 일반 캐빈도 충분해 보였다.
해상케이블카 정류장은 북항, 유달산 정상 아래, 고하도, 이렇게 세 군데에 있었다. 우리는 북항에서 타서 유달산 정류장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고 고하도로 갔다. 유달산은 작은 규모 치고는 둘러보기에 풍광이 괜찮은 바위산이었고, HJ는 유달산과 고하도 사이의 좁은 해협 경치도 아름답다며 감탄했다.
고하도에서는 케이블카 승강장에서 500미터쯤 떨어진 전망대에 올랐다. 판옥선을 쌓아놓은 형태로 만들었다는 디자인이 독특한 전망대였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는데 우리는 그냥 운동화 차림이었기 때문에 천천히 걸어 올랐다.
전망대는 5층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없고 대신 계단 옆에 ‘끝까지 올라간 보람을 느끼게 해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해가 질 때 왔더라면 더 아름다웠겠다 싶었다. 섬 남쪽의 해안데크 길을 걸어볼까 했으나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 포기했다.
내려올 때에는 ‘보행약자용 등산로’라고 적힌 우회로로 왔는데, 그 길이 더 미끄럽고 걷기 힘들었다. 그런데 전망대보다 보행약자용 등산로의 경치가 더 아름다웠다. 길이 좁고 나무에 눈이 쌓여서 눈앞이 온통 하얬다. 사람도 거의 없었다. HJ가 감탄을 거듭하는 바람에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당초에는 점심을 목포역 근처의 낙지전문점에 가서 먹을 생각이었으나, 계획을 바꿔 고하도 케이블카 승강장에 있는 푸드코트에서 먹었다. 그곳 전망이 굉장히 멋졌고, 지역 요리 메뉴도 있었고, 손님이 없어 한적했기 때문이다. ‘목포에서는 어느 식당이나 다 맛있다고 하니 푸드코트도 맛있겠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
연포탕과 꼬막비빔밥을 먹었는데 맛이 괜찮았다. 느긋하게 먹고 내려오다 유달산 승강장에서 다시 내려 커피를 마셨다. 북항 승강장에서 택시를 불러 코롬방제과점에 갔고, 거기서 새우바게트와 크림치즈바게트를 샀다. 유당불내증 때문에 생크림이나 치즈를 먹지 못하는 나는 새우바게트만 맛을 봤는데 무척 맛있었다. 하지만 HJ는 나와 의견이 달랐다.
그렇게 짧은 목포 여행을 마무리했다. SRT에서 HJ는 요네자와 호노부의 단편집 『진실의 10미터 앞』을 읽다가 표제작에 감동받아 눈물을 글썽였다. 나는 롤프 도벨리의 『불행 피하기 기술』을 읽었는데 동의하는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었다. 집에 돌아와 바게트로 저녁을 대신했다. 기타 연습을 하겠답시고 조율을 하다가 줄을 끊어 먹었다.
목포에 왔습니다
산은 케이블카로 오르는 게 좋아요
맛있게 먹고 잘 놀다 갑니다
『골목길 자본론』을 인상 깊게 읽어서 이 책도 집어 들었다. 『골목길 자본론』이 로컬 비즈니스 3부작의 1부였고, 이 책은 완결편이라고 한다. 골목 상권이 뜨는 것은 ‘로컬 지향’이라는 더 큰 트렌드의 한 풍경이며, 로컬 지향은 다시 라이프스타일 변화로 빚어지는 현상이다. 고로 골목에서 팔리는 것, 팔아야 하는 것은 전과 다른 라이프스타일이다. 그런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는 사람이나 공간을 저자는 ‘로컬 크리에이터’라고 부르는데, 상점들뿐 아니라 지역 도서관이 그런 역할을 맡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골목을 상권이 아니라 문화산업으로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에 설득되었고, 뒷부분의 정책 제안들도 흥미롭게 읽었다. 골목 상권이 뜨면서 ‘몰링 상권’과 대로변 상권은 가라앉았다고 한다. 몰링 상권이 뭔지 몰랐는데 동대문이라고 하니 바로 알 수 있었다. 젊은 세대가 도심을 선호하는 현상이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실리콘 밸리 인재들도 샌프란시스코에 살면서 차별적 도시문화를 즐기기를 원한다는 것. 기존 강남 문화, 신도시 문화, 골목 문화가 소비지역을 형성하며 수도권 산업의 미래를 이끌 거라고 한다.
수원 골목잡지 《사이다》에 늘 관심이 있었다. 2018년 이 매체가 지역 역사를 수집하고 기록하는 활동가들을 양성하기 위해 마을기록학교를 열었는데, 그 프로그램의 강의 여덟 편의 내용을 묶어 펴낸 게 이 책이다. 강원재 영등포문화재단 대표의 세운상가 재생활성화 사업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구술사에 대한 윤충로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의 설명에 기자 시절 경험이 겹쳐 맞장구를 여러 번 쳤다.
두 한겨레신문 기자가 창업컨설팅업체에 잠입해서 쓴 르포. 창업컨설팅업체라는 곳이 있었는지도 몰랐는데, 세상 진짜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작정하고 속이려 드는데 거기에 걸려들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나. 의사와 짜고 신도시 상가건물의 가격을 올리는 수법에 소름이 끼쳤다.
선구자들의 일화와 더불어, 고고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어떻게 발전했는지 재미있게 소개. 관광 산업과의 갈등, 주민과 함께하는 발굴 등 현대의 과제도 흥미롭다.
『신은 위대하지 않다』를 쓴 세계적으로 유명한 무신론자가 식도암에 걸린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용기, 자존심, 신랄함, 종교에 대한 적대감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글을 쓴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하루였다. 새벽에도 잠이 오지 않아 한참 깨어 있었다. 글은 거의 쓰지 않았다. 그래도 새벽 6시 반에 일어났고, 바닥을 청소했고, 전화 영어 수업을 받았고, 기타를 연습했고, 근력 운동을 했다. 하강 나선을 그리며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그런 일들을 했다. 그런 나를 조금은 칭찬해줘도 될 것 같다.
쓰고 있는 소설에서는 주인공 형사가 수상한 참고인을 만나러 지방에 내려갔다. 참고인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형사와의 만남을 피한다. 형사는 이 사내를 꼭 만나야 하는데……. 그 다음에 어떻게 써야 할지 생각이 막혔다. 이런 때 진짜 형사라면 어떻게 하려나.
여태까지 쓴 원고 분량이 200자 원고지로 1700매가 넘었다. 요즘 기준으로는 단행본 두 권이 충분히 나올 양이다. 앞으로 써야 할 분량도 300매는 넘을 것 같다. 완성 원고가 2000매를 넘지 않는다면 출판사에 두툼한 한 권으로 내자고 요구해볼 참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분권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온갖 사변으로 가득한 두 권짜리 장편소설을 요즘 세상에 선뜻 집어 들 사람이 몇이나 되려나. 이게 팔릴 책인가. 쓸수록 자신이 없어진다.
기분이 싱숭생숭해서 오전에는 또 일본 추리소설을 한 권 읽었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안녕, 드뷔시』다. 피아니스트 탐정이 등장하는 시리즈라니, 책장을 펼칠 때에는 진지하게 들리지 않았는데 푹 빠져 읽었다. 앞뒤가 잘 맞아 떨어지는 웰메이드 추리소설이기도 했고, 음악소설이자 인간 드라마이기도 했다. 주인공이 겪는 고난이 가슴 아팠고 그녀의 노력이 감동적이기도 했다. 나도 저렇게 노력해야 하는데.
HJ도 요사이 몹시 우울해한다. 그 우울감의 원인 상당 부분은 나 때문이어서 많이 미안하다. 우울증은 마치 전염병처럼 곁에 있는 사람까지 우울하게 만든다. 한편으로는 그녀는 회사에서도 쉽지 않은 상황에 있었고, 부동산 투자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 때문에도 괴로워했다.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힘든가? 나도 HJ도 궁금해 했다. 이 우울감은 우리가 중년에 접어들었기 때문인가? 우리 부부에게 아이가 있거나 종교가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아니면 여기에 보다 근본적인 외부 요인이 있을까?
한국 사회, 더 나아가 세계 전체가 지금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불행해지는 환경으로 변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일자리를 찾기 어렵고, 보람이 있는 일자리를 찾기는 더 어렵고, 노동으로 부자가 될 가능성도 희박해지는 세상이 시작된 것은 아닌가.
HJ는 요즘 경제 공부를 열심히 한다. 기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도 경제와 투자 관련 서적들이 점령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이 주식이나 부동산 시장이 과연 정상인지, 지금이라도 영혼까지 끌어 모아 뛰어들어야 하는 건지, 이러다 버블이 터져서 장기 불황이 오는 건 아닌지 속 시원히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다.
낮에는 마트에서 사 온 닭다리를 혼자 먹었고 저녁에는 남은 닭다리와 가래떡을 안주 삼아 맥주를 마셨다. 수퍼 스윙 라거, 칼스버그 대니쉬 필스너, 1866 블론드를 마셨다. 만사 심드렁하던 차에 아무 생각 없이 수퍼 스윙 라거를 한 모금 넘겼는데, 눈이 번쩍 떠질 정도로 맛있었다. 어, 이거 뭐야……. 덕분에 가라앉아 있던 기분도 조금 올라왔다.
수퍼 스윙 라거는 일산에 있는 한국 수제맥주 회사인 플레이그라운드 브루어리의 제품이다. 라거지만 알코올 도수를 높이고 홉 풍미를 강조해 인디아 페일 라거라고 부른다고 한다. 2000년대 들어 미국에서 탄생한 신생 장르다. 전에 플레이그라운드 브루어리의 제품들을 몇 종류 마시고 별 인상을 받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다음날에는 HJ가 재택근무를 했다. 나는 평소 사용하던 책상에서 작업하지 않고 HJ와 함께 식탁에 앉아 글을 썼다. 노트북으로 글이 잘 써지지 않는 것 같아 기분 전환 삼아 공책을 꺼내 거기에 볼펜으로 썼다.
각자 일을 하면서 가끔 잡담을 나누기도 했는데, 그러다 내가 현재 구상 중인 논픽션 두 편 중 한 편의 내용에 대해 HJ에게 설명했다. 한국 독자가 아니라 해외 독자들을 겨냥한 논픽션이었는데, 무모하다면 퍽 무모한 프로젝트였다. 크게 성공할 수도 있지만 끝내 해외에 소개되지 않고 국내에서 몇 부 팔리고 말 수도 있다.
HJ는 그 구상을 듣고 약간 감탄한 듯 보였다. 그 모습에 용기를 얻은 나는 다른 논픽션 구상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더 황당하고 더 도박 같은 도전이었다. 성공할 확률은 매우 낮다. 하지만 성공한다면 전과는 차원이 다른 작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HJ는 이 단행본의 주제는 더 높이 평가했다.
“난 전부터 자기가 이상한 생각들을 하는 모습이 좋았어. 엄청나게 크고 얼토당토않은 꿈을 꾸고 그걸 추진하려는 태도가 멋있어 보였어. 요즘은 그런 생각 안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HJ가 말했다.
“우울증으로 고생할 때도 계속 이런 생각은 하고 있었어. 그리고 이 구상들 다 안 풀릴 수도 있어. 모 아니면 도야.”
“알아. 그래도 멋있어.”
이날 저녁에는 헬스장에 가서 달리기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수퍼 스윙 라거를 네 캔 사 왔다. 수퍼 스윙 라거도 냉장고에 늘 몇 캔 두면 좋겠다 싶었는데 밤에 혼자서 그 네 캔을 다 마셨다. HJ는 옆에서 버드와이저와 호가든을 마셨다.
안주로는 아구포와 납작만두를 먹었다. 처음 먹어 본 아구포는 쥐포와 거의 비슷한 맛이었는데 좀 더 살집이 있었다. 내가 꾸는 꿈을 이해하고, 그런 꿈을 멋지다고 생각하는 여인과 함께 살고 있다니, 나는 얼마나 운이 좋은가 생각했다.
스윙 스윙 스윙
인생의 작은 기쁨들을 되찾겠어
큰 꿈도 놓지 않겠어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무겁고 복잡한 문제에 대한 통찰에 현장감 넘치는 르포와 인터뷰를 붙여 아주 술술 읽히게 썼다. 책의 통찰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극한 갈등의 수렁에 빠지게 되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분석이다. 두 번째는 그 수렁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에 대한 실질적인 조언이다. 보다 작고 사적인 갈등 상황을 다루는 데에도 유용할 것 같다.
무척 재미있는 책이고 또 귀한 책이기도 하다. 어마어마한 액수의 투기자본을 굴리는 이들의 집과 사무실, 머릿속을 구경할 수 있게 해준다. 그들이 무엇을 기회라고 보는지, 어디에 투자하는지, 어떤 술을 어디서 마시는지, 평범한 사람들을 어떻게 깔보는지 혹은 동정하는지. 그런데 그런 매크로 트레이더들조차 ‘지금의 금융시장은 완전히 미쳤다, 곧 붕괴가 온다’고 두려워한다. 자본시장뿐 아니라 민주주의와 정신문화 영역에서까지 몰락의 징후를 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