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제목이 멋있고, 부제인 ‘디지털 거대 기업에 맞서 인간적 삶을 지키는 법’에도 관심이 많아서 읽기 시작했다. 인공지능 세상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효능감을 품을 수 있을까? 기본소득은 수령자들이 삶의 중요한 가치들에서 소외되는 현상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선거로 정치인들을 뽑지만 그들에게 아무런 권력이 없으며, 겉으로만 그렇게 민주주의처럼 보이는 제도를 ‘포스트 민주주의’라고 부르는데 그럴싸하다. 금융거래세 아이디어가 무척 솔깃하다. ‘모든 것을 바꾸지 않고는 무언가를 바꿀 수 없다’는 마르틴 부버의 말에 밑줄.
이 책도 나온 지 15년이 넘었으니 이제 거의 사료로서의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당시 독자 서평을 찾아보니 ‘강남아파트 투자가 아직 늦지 않았다고 봅니다’ 같은 구절이 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단지별로 자세히 분석이 되어 있고 단점도 나와 있어서 의외로 읽는 재미가 있다.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을 비롯해 은행을 이용하기 어려운 사람이 25억 명 가량 있다고 한다. 선진국 국민들은 잘 체감하지 못하지만 현재 금융거래의 비용은 결코 적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내연기관의 작동 원리를 잘 알지 못하면서 자동차를 잘만 타고 다닌다. 비트코인을 추상적인 구조라고 하지만 돈 그 자체도 그렇다. 37코인스와 이송이 창업자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었다.
앤솔로지에 실을 단편의 2차 저자 교정을 마쳤다. 생활지 칼럼 원고와 메일링 서비스용 에세이도 각각 써서 보냈다. 밀렸던 이메일 답장도 전부 보냈다. 중요한 용건이 있는 내용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속이 시원했다.
설 연휴 첫날에는 HJ와 처가에 갔다. 낮에 집에서 사과를 한 알 깎아 먹고 점심께 조금 넘어 출발했다. 처가는 우리 집에서 지하철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동안 HJ는 최근 어느 배구 선수가 화제에 오른 사건을 설명해주었다.
HJ는 배구나 농구 같은 종목 선수들의 신구 세대 갈등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었다.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는 왕년의 스타들이 업계를 부흥시키겠다고 이런저런 시도를 하고, 신세대 선수들은 그런 모습을 시큰둥하게 바라보고, 왕년의 스타들은 거기에 서운해 한다는 내용이었다.
양쪽이 조금씩 이해가 되기도 했고, 처음에는 언론의 호들갑 아닌가 싶었던 한국판 사토리 세대가 실제로 등장해서 이미 널리 퍼져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생각하다 보면 퍽 냉소적인 결론에 이른다.
이 사회의 미래에 대해 우울한 상상도 한다. 증시나 부동산 시장에서 내년쯤 사소한 사건이 방아쇠가 되어 거품이 터지고 본격적으로 일본 같은 장기불황이 오지 않을까? 지금 이런 사회 경제 상황이 과연 정상인가? 나는 내가 내심 그런 파국을 기대하고 있음을 깨닫고 두려워한다.
춥지는 않지만 흐린 날이었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처가로 걸어가는 길에 아파트단지 하늘에서는 까마귀 한 마리가 불길하게 울어대며 낮게 날아다녔다. 들어주는 다른 새도 없는 것 같은데 왜 저렇게 우는 걸까. 그 영역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건가. 짝을 부르는 걸까. 그저 감탄사일까.
빌딩 경비원으로 일하시는 장인어른은 출근해서 댁에 안 계셨고, 장모님만 계셨다. “아버님이 일하는 건물은 설에도 문을 여나요?” 하고 물으니 그렇단다. 장모님은 라디오로 올드 팝을 듣고 계셨다. 늘 라디오로 팝송을 들으신다. HJ도 그렇다.
장모님, HJ, 나, 이렇게 세 사람이 이른 저녁을 먹었다. 분식집을 운영하기도 했던 장모님은 요리 솜씨가 좋다. 떡국, 갈비, 전을 해주셨고 맛있게 잘 먹었다. 우리가 목포에 갔던 이야기, HJ가 이직하려는 이야기 등을 했다.
떡국을 배불리 먹고 졸려 하는 나를 보고 HJ가 안방에 들어가 자라고 했다. 장모님도 그러라고 계속 권해서, 조금 쑥스러웠지만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눕자마자 잠에 빠져들었다. 한 시간쯤 지나 눈을 떴을 때 내가 어디에 있는 건지 몰라 잠시 혼란스러웠을 정도로 깊이 잤다.
그렇게 식사를 하고 낮잠까지 잔 다음 HJ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장모님 댁 근처에 있는 작은 천변을 걸었다. 좁은 개천에는 오리가 많았고,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왜가리도 보았다. 주변은 온통 고층아파트였는데, 사람에게도 새에게도 너무 작은 숨통이었다. 몇몇 아파트 단지에 리모델링주택조합이 승인됐다며 자축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 동네는 재건축이 아니라 리모델링이 인기인가?
2킬로미터 남짓 걸어 다음 지하철역이 있는 곳까지 갔다. 거기서 지하철을 타고 HJ는 친정으로 돌아갔고, 나는 혼자 집에 왔다. HJ는 하루 묵고 다음날 아버지, 동생과 점심까지 먹고 올 예정이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파운더스 포터와 다른 맥주들을 마셨다. 책도 안 읽히고 달리 손에 잡히는 일도 없어서 볼 만한 영상 없나 하고 넷플릭스를 뒤적거렸다. 옛날 영화들을 조금씩 보다 말았다. 《다이 하드 3》와 《인디아나 존스》였다. 《다이 하드 3》는 대학생 때, 《인디아나 존스》는 중학생 때 봤다. 두 편 모두 다시 봐도 재미있었다.
파운더스는 흑맥주를 잘 만들기로 유명한 미국 브루어리고, 파운더스 포터도 맥주 리뷰 사이트들에서 평가가 아주 좋다. 커피와 다크초콜릿 향이 강하고, 쓴 맛과 단 맛이 동시에 난다. 병 라벨에는 검은 드레스를 입고 검은 모자를 쓴 여인이 그려져 있고, 그 아래 ‘다크, 리치, 앤드 섹시’라고 적혀 있다.
그 라벨을 보고 나는 왠지 안나 카레니나를 떠올리는데, 민음사판 『안나 카레니나』의 표지 그림과 닮아서임을 조금 뒤에 깨닫는다. 무슨 관련이라도 있나? 인터넷을 검색해봤지만 라벨의 그림에 대한 정보는 찾지 못하겠다. 민음사판 『안나 카레니나』의 표지 그림은 러시아 화가 이반 크람스코이의 작품인 《미지의 여인》이라고 한다.
까마귀는 깍깍
검은 옷 여인의 신비한 미소
달콤한 붕괴의 향기
다음날 낮에는 HJ가 돌아오기 전에 청소를 했다. 점심은 걸렀다. HJ는 장모님이 싸주신 반찬을 잔뜩 들고 오후에 돌아왔다. 지하철역까지 마중을 나갔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반찬통을 열어 전과 나물을 데워 먹고 또 잤다. 자고 일어나서 세탁을 했다.
“엄마는 자기가 든든히 먹고 푹 자는 모습이 그렇게 보기 좋았나봐. 밥집으로 여기고 자주 오라더라.” HJ가 전해주었다. 민망해하면서 방으로 들어가더니 바로 곯아떨어져 한 시간이나 자는 내 모습이 자기는 웃겼다고도 했다.
2006년에 발간되었으니 이제는 이 책 자체가 사료로서 가치를 지니게 됐다. 무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나오기 전에 인터넷과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해 사람들이 어떤 상상과 우려를 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인터넷과 민주주의의 관계는 여전히 오리무중인데 책을 발간한 삼성경제연구소는 기관 이름을 바꿨고 이런 연구에세이도 더 내지 않기로 했다. 그야말로 격세지감. 유용한 시리즈였는데.
평화롭게만 보이는 미국 교외가 자동차가 없는 십대나 빈곤 계층에게는 유배지나 다름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동차가 처음 보급될 당시 사망 사고를 낸 운전자는 살인죄로 기소됐다. 도로가 넓은 도시는 소방차가 길을 다니기 쉬운 만큼 소방서가 주거 구역에서 멀어서 화재 사망자 수가 다른 지역과 별 차이가 없다. 면적을 기준으로 삼으면 대형 마트보다 지역 상점 밀집가가 더 많은 일자리를 제공한다.
스마트 도시에 관한 여러 가지 실험을 먼저 가상공간에서 운영해보고 실제 세계에 이식하자는 제안을 하며 그 개념을 ‘이데아 시티’라고 명명한다. 그런 시뮬레이션이 잘 될지, 효과가 있을지는 차치하고, 책이 1, 2년쯤 뒤에 나왔으면 메타버스라는 단어를 어떻게든 활용했을 것 같다. 필진에 아는 이름이 나와 반가웠다.
글을 읽기 전에 먼저 저자를 알았고, 그 다음 독립출 판물로 접했고, 그 다음 이 책을 읽었다. 절에서 행자로 2년을 살았다는 작가를 결코 평범하다고는 할 수 없겠고, 솔직히 책장을 넘기다 보면 내 관점에서는 위태롭거나 아슬아슬하게 느껴지는 대목도 꽤 있다. 하지만 읽다 보면 재미있고, 호감이 들 수밖에 없고, 다음 행보가 무척 궁금해진다.
낙원과도 같았던 작은 공동체에 탐욕스러운 외부인이 들어오고, 마을은 점점 망가져 마침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된다. 2008년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독재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 쓴 작품이라고 하지만 2022년 한국 독자들에게도 울림이 크다. 이 소설 속 ‘전직 대통령’이 가리키는 바는 상상력이 부족하고 두려움에 시달리는 권위주의적 정치인에 한정되지 않는다. 선동가, 악덕 대기업, 자본주의, 혹 은 문명 그 자체로 해석해도 자연스럽게 읽힌다.
작품의 힘은 낙원의 파괴자에 대한 단순한 고발을 넘어, 평범한 사람들이 그 작업에 동참하는 과정과 그 후폭풍을 대단히 설득력 있게 살피는 데서 나온다. 왜 우리는 번번이 그런 권위에 굴복하는가. 왜 그런 선동에, 유혹에 휩쓸리는가. 왜 우리는 항상 뒤늦게 깨닫게 될까.
마케팅을 다루는 뒷부분에는 동의하는 내용도 있고 아닌 내용도 있으며, 맞는 말 같지만 귀찮거나 내키지 않아서 따르기 싫은 조언도 있다. 하지만 창작을 다루는 서론과 1부는 연신 고개를 주억이며 읽었고 그러면서 용기도 많이 얻었다. 그렇다. 나를 포함해서 창작자 대부분이 입으로는 오래 살아남을 작품을 말하지만 실은 즉각적인 보상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관심 경제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작가들에게 보통 진짜 수익은 연설, 강의, 컨설팅에서 나온다’는 대목에서는 미국도 마찬가지구나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