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제목만 들으면 작법서 같지만, 실은 어떻게 작가가 되었는지, 왜 쓰는지에 대해 미국의 유명 작가 스무 명이 답하는 아주 좋은 에세이 모음집이다. 미국 출판계 분위기도 들을 수 있다. 몇몇 상황은 한국과 무척 비슷해 보인다. 미국 소설 시장에서 남성 독자들이 심각할 정도로 이탈하고 있으며, 여성과 달리 남성 독자는 남자 작가만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고. 순문학과 대중문학의 반목도 상당한 듯.
롱테일 이론과 정반대 주장을 펼친다. 적어도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는, 성공하려면 블록버스터를 만들거나 슈퍼스타를 고용하라는 것이다. 위험을 고려해도 그 편이 투자 대비 수익이 높다는 것. 소비자는 늘 최고를 찾기에 디지털 기술은 그런 경향을 오히려 더 강화할 거라고. 설득력도 있었고, 또 그와 별개로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예약일이 되어 정신과 병원에 갔다. 의사는 잘 지냈느냐고 물었고, 나는 잘 지냈다고, 즐겁다고는 할 수 없어도 위험한 상태는 아닌 것 같다고 대답했다. 의사는 지난번에도 물었던 질문을 똑같이 던졌다. “우울증을 앓기 전에도 그런 기분이었느냐?” 그렇지는 않다. 지난해와 비교해서도 그렇고, 3년 전이나 4년 전과 비교하면 확실히 더 가라앉은 상태다.
“나이도 들었고, 저도 좀 변한 것 같습니다. 저한테는 이게 큰 사건이었으니까요.” 그렇게만 말했다. 지금도 경사로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고, 언제든 마음을 다잡은 끈을 느슨하게 풀면 컴컴한 아래로 굴러 떨어질 것 같으며, 며칠 전에도 자살 충동을 느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약은 주지 않을 테니 석 달 뒤에 와서 점검 받으라”는 말을 들었다.
이날 낮에는 어느 문화예술재단에 고용된 컨설팅 회사 팀장을 만났다. 이 재단은 문학 레지던시를 새로 운영하려 하는데, 소설가들을 만나 사전 조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평소 같으면 거절할 요청인데, 나중에 문학 레지던시가 지어지면 나도 신세를 지고 싶어서 인터뷰를 하겠다고 답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당일이 되니 약속 장소인 카페까지 나가는 게 몹시 귀찮았다. 그래서 인터뷰를 하면서도 심드렁한 티를 숨기지 못했는데, 카페에서 나올 때쯤에야 그런 태도가 후회가 되었다. 컨설팅 회사 팀장은 예의 발랐고 질문도 요령 있게 던졌다.
태도와 상관없이 내 답변이 시큰둥하게 들릴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레지던시와 도심을 연결하는 셔틀버스가 없어도 괜찮고, 식사는 정해진 때에 구내식당처럼 배식하는 편을 선호하며, 지역사회와 어울리며 영감을 받고 싶지 않고, 도서관은 없어도 괜찮다고 대답했다. 6개월이나 1년씩 거주하는 것보다 두 달 정도 머물 수 있는 편이 더 낫다고도 답했다.
재단 측에서 제공하려고 고민하는 혜택들을 죄다 거부하는 모양새였다. 레지던시를 글 쓰러 잠시 들어가는 감옥이라 여기고 있고, 영감은 일상에서 충분히 얻고 있으며, 전자책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마칠 때쯤에 팀장의 말을 들으니 나와 정반대로 대답한 작가들도 있고 나처럼 답한 사람도 있는 듯했다.
내가 문화예술재단에 고용된 컨설턴트와 인터뷰를 하는 동안 HJ도 반차를 내고 한 외국계 식품 회사에서 면접을 봤다. 이미 안양에 있는 자동차 부품 회사에서 출근일을 통보 받은 상태이긴 했다. 그러나 그 전에 입사 원서를 낸 식품 회사에서 면접 요청이 오자 거절하지 않고 간 것이다. 외국계 기업 직원들은 이직이 비교적 잦고, 회사를 옮길 때 이런 식으로 한 곳에서 합격 통보를 받아도 다른 회사 면접을 추가로 보는 게 일반적인 관행이라고 했다.
우리 두 사람의 인터뷰는 비슷한 시간에 끝났다. 우리는 HJ가 면접을 본 식품 회사 근처에서 만났다. 그녀는 점심을 먹었지만 나는 먹지 않은 상태였다. 길을 걸어가는데 ‘빵집입니다만…’이라고 적힌 간판이 있기에 궁금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에 있는 어둑어둑한 가게였는데, 제빵사 옷을 입은 청년이 와서 쾌활하고 약간 엉뚱하게 우리를 맞았다.
내가 간판을 보고 궁금해서 들어왔다고 하자 무슨 일본 애니메이션의 제목에서 따온 문구라고 했다. 모르는 작품이었고 정작 빵집 상호는 그 문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그냥 구경만 하고 나오기 미안해서 단팥빵을 사들고 나와 거리에서 먹었는데, 맛은 평범했다.
전부터 궁금했던 계란 샌드위치 전문 체인점에도 들어가서 기본 메뉴를 하나 주문해 먹었다. 빵 사이에 부드러운 스크램블 에그를 넣어 파는 곳이었는데, 보기와 다르게 꽤나 자극적인 맛이었다. HJ나 나나 한 입 먹어보고서는 ‘라면 스프 맛이 난다’는 평가를 내렸다.
추운 날이었고, 낮에 잠시 눈이 내렸던 터라 길이 미끄러웠다. 나는 HJ에게 고속터미널역에 있는 맥줏집 데블스도어 센트럴시티점에 가보자고 했다. 지하철로 몇 정거장이면 가는 거리였고, 나는 그곳이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와 연결되어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대기업인 신세계푸드에서 운영하는 곳이니 수제맥줏집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매장마다 양조설비를 갖추고 다양한 맥주를 판다고 들었다.
내 오해 때문에 고속터미널역 지하에서 한참 헤매다가 겨우 찾아갔다. 오후 5시도 되기 전이라 널찍한 공간에 손님은 거의 없었다. 폐공장 같은 실내 분위기는 확실히 근사했고, 안주로 주문한 비프스테이크 푸틴도 맛있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마신 데블스 페일에일과 데블스 IPA는 거기까지 찾아가서 경험해야 한다고 추천하기에는 좀 망설여진다. 둘 중에는 데블스 페일에일이 더 나았다.
집에 와서는 빔 프로젝터로 공포 코미디 영화를 보았다. 옆집에 사는 매력적인 누나가 알고 보니 악마를 숭배하는 집단의 우두머리라는 내용이었다. 주인공 남녀 배우가 잘생기고 예뻤고, 그냥 피식거리면서 웃을 만큼은 재미가 있었다. 제목은 《사탄의 베이비시터》.
악마의 페일에일을 마시고
악마의 베이비시터 영화를 보고
무슨 악마의 하루인가
뉴욕타임스 북리뷰 편집장인 저자가 유명 작가 55명에게 이런저런 독서 경험에 대해 묻고 답을 받아 만든 인터뷰집. 나는 너무 너무 재미있게 읽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떨지 모르겠다. 작가들이 꼽은 ‘과대평가된 책’ 목록은 이렇다. 모비 딕, 오만과 편견, 위대한 개츠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로드, 헤밍웨이의 책 전부… 율리시스는 세 표, 호밀밭의 파수꾼은 두 표다.
사이코패스 성향을 공감능력 부족이 아니라, ‘보상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위험과 처벌을 얼마나 감수하느냐’에 관한 문제로 정의한다. 그리고 그런 성향을 고성능 스포츠카에 비유한다. 사고를 낼 확률이 높지만, 기업 경영이나 응급 수술 등에서 종종 탁월한 업적을 내며 주변의 찬사를 얻기도 한다는 것. 이는 인간이 과도하게 위험을 회피하는 방향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라는 가설을 제시한다.
코난 도일, 모파상, 푸슈킨 등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활동했던 문호들이 쓴 괴기소설을 모은 단편집. 어릴 때 다른 책에서 읽었던 찰스 디킨스의 「신호원」이 제일 재미있었다.
야한 듯 안 야한 듯, 정신없이 빠져들어 읽다가 진상에 이르면, 이거 너무 배배 꼬인 거 아닌가 싶기도 한데, 빅토리아 시대에는 진짜 이런 일이 일어날 것 같기도 하고.
이런저런 딱딱한 조언만 있지는 않다. 디지털 시대 청소년문화에 대한 고찰도 있고, 전자기기나 컴퓨터게임에 대해서도 상당히 열린 자세다.
‘(긴 기사를 제외한) 뉴스는 무익한 게 아니라 해로우며, 전혀 안 읽어도 된다’는 과격한 주장을 펼치는데, 은근히 설득력이 있다. 대안은 몰라도 일단 비판은 그럴듯하다.
새롱이를 데려온 뒤 일주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부모님 댁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 중 5일은 그 집에서 잠을 잤다. HJ는 “바람났다”며 나를 놀리기도 하고 새롱이를 ‘첩’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민망하고 쑥스러워서 아버지나 어머니가 그러듯이 새롱이에게 말을 건네지는 못한다.
조카들도 강아지를 보러 부모님 댁으로 놀러왔다.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도 그 사이 조금 완화되었다. 두 조카는 제 나름의 방식으로 개를 아끼고 사랑했다. 첫째 조카는 좋아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과격한 애정 표현을 삼가고 멀찍이서 쉼 없이 개의 이름을 불렀다. 둘째 조카는 저러다 개가 다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거침없이 껴안고 흔들어댔다. 개는 둘째 조카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새롱이는 불과 일주일 만에 우리를 가족으로, 부모님 댁을 자기 집으로 완전히 여기게 된 것 같았다. 데려온 지 이틀쯤 지나자 낯가림은 사라졌고 집안 구석구석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키우시던 화분이 덕분에 잎이 다 뜯어 먹히는 수난을 당했다. 개는 특히 포인세티아 잎을 좋아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포인세티아 잎에 독성이 있다고 했다.
예방접종을 다 마치기 전에는 산책을 시키지 말라고 해서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는 않았다. 개는 아직 대소변을 가리지는 못한다. 분양인의 집에서는 가렸다고 하고, 부모님 댁에 데리고 온 첫날에는 배변 패드에 소변을 눴는데 그 뒤로는 그냥 집 아무 곳에나 싼다. 그리고 입질을 엄청나게 해댄다. 내 손가락, 발가락, 옷자락을 끊임없이 물고 뜯으려 한다.
세게 무는 것이 아니라서 그리 아프지는 않은데 이빨이 은근히 날카로워서, 물린 자리에서 피가 나는 걸 나중에야 알아차리게 됐다. 그것도 두 곳이나. 이거 괜찮은가? 광견병 주사라도 맞아야 하나? 우물쭈물하다가 백신을 맞아야 한다는 시기도 지나버렸다. 광견병에 대해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물린지 48시간 안에 백신을 맞아야 한다고 나와 있었다.
한편 광견병에는 좋은 면도 있었는데, 일단 발병하면 치사율이 거의 100퍼센트라는 점이었다. 증상이 나타나면 힘들게 치료받고 투병하고 할 것 없이 그냥 죽는 수밖에 없는 병이라고 했다. 깔끔하네.
처음 며칠 동안은 내가 한 방에서 침대 옆에 개 방석을 두고 데리고 잤다. 개는 그 방석에서 잘 자려 하지 않았고 침대 밑으로 들어갔다. 지붕이 필요한 걸까? 내게 다가오는 모든 사람과 동물을 의심하는 인간인 나는 새롱이가 침대에 올라오려고 버둥거리는 모습을 보고서야 이 녀석이 내 곁에서 자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강아지는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침대 아래서 정자세로 앉아 침대를 빤히 바라보기도 했고, 펄쩍펄쩍 침대를 향해 뛰기도 했다. 두 발로 서서 입을 벌리고 뛸 때에는 수면 아래서 올라오는 상어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불쌍한 마음에 개를 끌어올려 침대 위에서 껴안고 몇 분 정도 같이 누워 있기도 했다.
부모님 댁에 데려온 지 5일째 되는 날에 새롱이를 근처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다. 3차 예방접종을 받게 하기 위해서였다. 동물병원은 걸어서 10분 조금 넘게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강아지를 슬링백에 넣어 가슴에 안고, 첫째 조카와 함께 갔다. 생후 2개월짜리 어린 개와 9살 먹은 어린 인간, 그렇게 두 생명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제법 긴장이 되었다. 다행히 둘 다 무척 얌전했다.
개는 다행히 아픈 데 없이 건강하다고 했다. 약간 마른 편이라고도 했다. 나는 새롱이가 소리를 잘 내지 않는 개라고 생각했는데, 녀석은 주사를 맞을 때 아주 병원이 떠나가라 비명을 질렀다. 수의사는 아주 친절하고 호감이 가는 인상이었는데 “애가 좀 엄살이 있네요”라며 웃었다. 주사를 맞히고 수의사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으며 내용을 메모했다. 그는 내가 광견병에 대해 물으니 전혀 가능성이 없다며 웃었다.
수의사는 개를 한 방에 데리고 자지 말라고 했다. 한 방에서 같이 자기 시작하면 곧 개가 침대에 올라오고 싶어 하며, 사람이 없는 공간에서 잠을 자지 못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처음 며칠 동안 낑낑대며 울더라도 거실에서 혼자 자는 버릇을 들여야 나중에 분리불안증세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설명을 들으면서 개가 나와 같이 자고 싶어 한 데 감격한 것이 무안하기도 했고, 무조건적인 애정 표현보다 훈육이 중요하다는 교훈에 새삼 놀라기도 했다.
밥그릇에 늘 사료를 놔두고 아무 때고 개가 자유롭게 먹을 수 있게 하는 자율 배식에 대해서도 수의사는 “절대 하지 마라”고 충고했다. 사료의 향이 날아가고 맛이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강아지가 자라면서 안 그래도 사료 먹기 싫어하게 될 텐데 그 정도가 더 심해질 거라고 했다. 가족이 밥을 먹을 때마다 사람 식사 장소에서 떨어진 곳에 사료를 주고 먹지 않으면 다시 거둬들이라는 조언이었다.
들으면서 다소 혼란스러웠다. 자율 배식을 해야 개들이 먹을 것에 집착하지 않게 하고 주인과 건강한 신뢰 관계를 맺게 된다는 설명을 전에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의사의 설명을 듣고 보니 그건 개를 지나치게 사람처럼 대하는 애호가의 희망 섞인 의견에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그 외에도 입질과 배변 교육, 목욕, 양치질 등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들었다. 산책은 앞으로도 한 달 뒤에나 가능할 거라고 해서 아쉬웠다. 강아지용 물품 중 집에 없는 것들을 몇 가지 추천 받아 샀다. 수의사는 반려동물보험은 그다지 혜택이 없다며 그냥 개 이름으로 적금을 드는 편이 낫다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개를 껴안고 팝송을 나지막이 부르며 왔다. 인생은 미로고 사랑은 수수께끼지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조카나 새롱이가 차도로 갑자기 뛰쳐나가는 악몽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엉뚱한 건물 앞으로 향하는 나를 조카가 일깨워주고 길을 가르쳐주었다.
백신을 맞은 개가 하루 이틀 정도는 풀이 죽어 있을 거라 했는데 별로 그래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발톱을 깎고 발 주변의 털을 자른 덕분인지 미끄러지지 않고 더 신나게 달리게 된 듯했다. 그날 밤부터 나는 밤에 개를 침실로 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새벽에 나와서 소파에 개를 올리고 함께 누워 자기도 했다. 침대가 아니라 소파니까 괜찮겠지, 하면서.
부모님 댁에서 저녁에 테라를 몇 캔 마셨다. 마트에 이보다 싼 다른 수입 맥주도 많은데 왜 굳이 테라를 샀는지 궁금하기는 했다. 회식 자리가 아닌 곳에서 마시기는 처음이었고 병이 아니라 캔으로 마신 것도 처음이었다.
캔맥주 테라는 어떤 때에는 살짝 거친 듯한 청량함이 좋았고 어떤 때에는 풍미 없는 탄산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클라우드와 테라 중에서 고르라고 하면 나는 테라를 택할 것 같은데, 블라인드 테스트로 맛을 구분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면 자신은 없다.
부모님이 사신 맥주
반주로 마실 때는 제법 괜찮음
발치엔 곱슬털 강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