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인간미 있고 유머러스한 물리학자가 생활 속 사례를 들어 말하는 통계물리학 이야기. 특히 내게는 출판 시장 분석이 눈길을 끌었다. 본문보다 조금 목소리 톤을 높여 쓴 듯한 부록의 ‘직언’들도 무척 좋았다.
도발적인 상상력으로 풀어낸 신라의 풍경. 작가의 패기가 느껴진다. 불교가 전파되면서 토착 문화가 점점 사라져가는 가운데 열정적으로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교합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린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소련군이 베를린을 점령했을 때 그곳 여성들에게 벌어졌던 일들. 참혹하고 기괴하다. 자신의 이름을 숨긴 채 일기를 쓴 저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지금 우리는 성폭력을 집단 경험으로 여긴다. 성폭력은 이제 사방천지에서 일어나며 심지어 협상의 대상이 되어버렸다.’(181쪽) 인간, 혐오스럽고 가엾고 슬프고 강한 존재.
거침없이 쭉쭉 뻗어나가는 서사와 탄탄한 취재에 바탕을 둔 사실적인 묘사. 저마다 이기적인 욕망을 품고 제각각 끝 모를 지옥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다양한 인물들. 붕괴를 예감하지만 그것이 언제, 누군가에 의해, 어떤 식으로 일어날지 예상할 수 없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그러면서 한 회사, 한 도시, 결국에는 한국 사회를 뒤덮은 부조리를 정밀하게 고발한다.
문제의식에는 물론 동감한다. 그런데 몰라서 실천을 못하는 내용은 아닌 것 같다. 원서가 나온 건 2013년이고, 그 사이 우리의 집중력은 더 떨어졌고.
내용이 어렵고 문장은 더 어렵다. 그래도 인간 존엄성을 둘러싼 네 가지 상반되는 해석을 소개하는 5장을 접한 것만으로도 참고 읽을 가치가 있었다.
지난해 가을에 촬영한 온라인 강연의 강연비가 들어오지 않아 중개업체에 돈이 왜 안 들어오느냐고 문의했다. 강연 중개업체에서는 회계 착오가 있었다며 이달 말까지 입금해주겠다고 답장해왔다.
“참 이상하단 말이야. 착오로 돈을 안 보내오는 곳은 많은데 착오로 돈을 더 보내오거나 중복 입금하는 곳은 없거든.”
HJ가 말했다.
출판사나 강연업체, 언론사로부터 돈을 떼어먹히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게 4년 전이었다. 그 뒤로 장부를 만들어 관리하는데 그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해는 한 해도 없었다. 이 주제로 칼럼을 쓴 적도 있다.
그러면서 보다 근본적인 의문이 생겼다. 과연 출판사에서 팔렸다고 보고하는 책의 부수 자체는 애초에 믿을 만한가? 과거처럼 인지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검증 수단이 없는 작가 입장에서는 무조건 출판사를 믿는 수밖에 없다.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이 있는 영화업계와 달리 출판계에는 전국적인 도서 판매 통계 자체가 없다.
친한 편집자에게 물었더니 별로 불편해 하는 기색도 없이 이렇게 답해주었다.
“속이려면 속이기 너무 쉬운 업종인 건 맞죠. 대표와 경리가 가족인 경우도 많고요. 그래서 작은 출판사와 일하지 않으려는 작가들이 꽤 있어요. 큰 출판사라고 해도 개인 대표일 경우 성실하지 않은 회사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출판사들은 규모도 작고 국가에서도 일종의 보호업종으로 보고 있어서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그 편집자가 다니는 회사도 수십 년 동안 세무조사를 한 번도 받지 않았다고 했다. 이런 푸념을 다른 소설가에게 했더니 그는 “출판사의 투명성 문제는 반만 믿는다. 작은 곳, 가족 껴있는 곳, 1인 출판사와는 절대 일 못하겠다”고 말했다.
루이즈 애런슨의 두툼한 벽돌책 『나이듦에 관하여』를 다 읽었고 토요일에 이웃 동네 도서관에 가서 반납했다. 집을 나설 때 가방에 수퍼 스윙 라거를 한 캔 넣고 나가서 가는 길에 마셨다.
지난번에 대기 줄이 길어서 가지 않았던 일본식 우동․소바 전문점에 이번에는 가보았다. 이번에도 입장하기까지 10분 이상 기다려야 했다. 우리 앞에 대기하고 있는 팀이 한 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세 팀이었다. ‘그렇게 대단한 가게야?’ 하고 내심 툴툴거리며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어라? 분위기가 괜찮았고 무엇보다 음식 맛이 훌륭했다. 가격도 그만하면 합리적이었다. 시금치 소바 샐러드, 쌀 대신 소바를 넣은 초밥, 그리고 카쯔동을 주문했는데 다 맛있었다. 이만하면 기다려서 먹을 만한데,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메뉴판에는 자신들의 소바는 매장 내 제면실에서 100퍼센트 메밀로 만들고, 간장과 가츠오부시 등을 전부 일본 현지에서 가져온다고 적혀 있었다. 반일 감정이나 방사능 때문에 일본산 식재료를 피한다는 사람도 많은 시절인데, 대단한 자부심이었다.
식당에서는 프리미엄 에비스 생맥주를 마셨다. 역시 맛있었다. 일본에서 19세기부터 인기가 있었다는 유서 깊은 맥주이고, 도쿄에는 이 맥주 이름에서 따온 지명과 지하철역도 있지만, 역시 에비스 하면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떠오른다. 극중 인물인 카츠라기 미사토가 집에서 식사할 때마다 괴성에 가까운 탄성을 질러가며 마시는 맥주다.
미사토는 연상 미녀에 대한 십대 소년의 환상을 겨냥해 만든 캐릭터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보는 동안 이미 미사토보다 나이가 많았던 나는 이 인물 설정에 자주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에비스 맥주는 궁금해서 찾아 마셨다. 에반게리온 오타쿠가 주인공인 내 소설 『열광 금지, 에바로드』에도 에비스 맥주가 한번 언급된다.
멋진 도서관 옆에서
소년 애니메이션에 나오던 맥주
메밀면 먹으며 마셨네
이날 저녁에는 집에서 HJ와 닭가슴살 샌드위치를 함께 만들어 먹었다. 맥주도 또 마셨다. 다음날인 일요일에는 낮에 부모님 댁에 갔다. 동생의 생일이라 간단히 가족이 간단히 파티를 하는 동안 강아지는 신이 나서 뛰어다녔다. 매제와 나는 부모님 댁 거실에 반려견용 안전 울타리를 설치했다. 부모님이 주무시거나 외출을 할 때 새롱이가 집 안에서 위험한 상황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부모님은 침실에서, 나는 손님방에서, 강아지는 울타리 안에서 밤을 맞았다. 강아지는 한참 낑낑대며 앞발로 울타리를 긁고, 길고 구슬프게 울었다. 나는 자다가 몇 번이나 거실로 나와서 울타리 안에 손을 넣어 개를 쓰다듬었고 그 옆에서 누워 자기도 했다. 개가 울타리 안에서 잠이 든 걸 확인하고 나서 방으로 돌아왔다.
줄다리기라는 표현이 절묘하네. 모든 이가 ‘돈까쓰’라고 발음해도 옳은 표기법은 ‘돈가스’인 모순을 지적하는데, 듣고 보니 과연 그렇다. 이것도 짜장면-자장면의 전례를 따라 복수표준어로 만들어야 할까?
국내 유일의 이란 전문 통·번역회사 대표인 젊은 저자의 이야기. 이란이라는 나라, 회사를 차린 과정, 사업 초기 분투 모두 흥미로웠다. 어느 회사에서나 사장님들이 왜 그렇게 엄격한지 알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다 보면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고, 하기 싫은 일을 피하려다 보면 하고 싶은 일을 못하는 게 세상의 법칙인가 보다.
유전공학과 나노공학,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조만간 기술이 현재의 인류가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을 넘어설 것이고, 그 지점부터는 의식도, 문명도,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질 거라고 주장한다. 우스꽝스러운 과대망상인가, 아니면 묵시록과 같은 비전인가. 어느 쪽이건 압도적. 나는 꽤 설득되었다. 특이점 앞에서는 지금 의미를 두는 일들이 다 허망하게 느껴진다. 마천루 전망대에 올라갔다 내려온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