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인문학 미스터리라고 불러도 되려나. 포의 작품을 큰 기둥으로 삼고, 니체, 바그너, 말라르메, 베르그송 등을 끌어들인다. 귀여운 로맨스도 있다.
다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한 주인공이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채 400년 전 수수께끼를 푼다. 영국 역사를 잘 안다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은데, 모르는 사람은 따라가기 버거운 부분도 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기보다 끝까지 우겨댄 자들의 기록인 것 같다. 그 말이 그 말인가?
얇고 쉬운(?) 이론물리학 강연집. 양자이론과 중력이론을 결합한 루프양자중력 이야기가 흥미로웠는데, 저자가 그 개념의 창시자라고 한다. 이렇게 접해봐야 수박 겉핥기도 못 되겠지만….
올해 1월에 헬스장이 영업을 재개한 뒤로 두 달간 꾸준히 다녔다. 격일로 웨이트트레이닝을 했고, 근력 운동을 하지 않는 날에는 트레드밀에서 시속 11킬로미터의 속도로 5.5킬로미터씩 달렸다. 2월 말까지 헬스장이 문을 열었는데도 웨이트트레이닝이나 달리기를 하지 않은 날은 이틀뿐이다.
운동하기 참 싫다. 단 하루도 상쾌한 마음으로 피트니스클럽에 간 적이 없다. 그리고 남들도 그런지 나만 이런지 모르겠는데, 웨이트트레이닝보다 달리기가 더 싫다. 근력 운동을 설렁설렁 하는 건 아니다. 이마와 겨드랑이에 땀이 날 정도로, 한 시간 가까이 한다. 달리기를 하는 시간은 30분이다. 그런데 달리는 게 훨씬 더 싫다. 전에 마라톤 풀코스는 어떻게 뛰었는지 모르겠다. 미쳤었나?
미루고 미루다 밤에 달리기를 하고 돌아왔다. 지친 몸으로 컵라면을 끓여 먹고 양이 안 차서 냉동 만두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렸다. 접시에 물을 뿌린 냉동 만두 다섯 알인지 여섯 알인지 올리고 그 위에 전자레인지용 투명 덮개를 얹었다.
주방 장갑을 낀 손으로 뜨거워진 접시를 전자레인지에서 꺼내 식탁으로 가져왔다. 그런데 뚜껑이 들어지지가 않았다. 만두가 익으면서 내부의 기압이 떨어져서 뚜껑과 접시가 찰싹 붙어버린 것이었다. 이미 만두 한 알은 뚜껑의 홈 사이에 찰싹 끼어 뭉개져 있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뚜껑과 접시를 떼어낼 수가 없었다. 그 사이에 사람을 놀리듯이 만두는 투명 뚜껑 아래서 천천히 하나씩 뭉그러졌고 거기서 육즙이 흘러나왔다. 한동안은 뚜껑만 들어낼 수 있으면 좀 괴상한 만두 수프라고 여기고 그 육즙과 찢어진 만두피들을 먹을 생각이었다. 그 정도로 배가 고팠다.
그러나 몇 분이 지나도록 뚜껑과 접시는 떼어지지 않았고, 그 안에 있는 물건은 점점 더 사람이 먹는 음식 형태에서 멀어진 몰골이 되어갔다. 허기도 사라졌다. 나는 울화가 치밀어 욕을 내뱉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화를 식히려 침대에 가서 잠시 누워 있었다.
자기 전에 설거지라도 하려고 접시와 해체된 만두와 뚜껑을 개수대에 넣었다. 그 빌어먹을 결합체는 식어 있었지만 그때까지도 분리될 기미가 없었다. 찬 물을 아무리 끼얹고 뚜껑과 접시 사이로 숟가락을 넣어 보려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나는 그냥 접시를 깨버릴 작정으로 그걸 높이 들어서 힘껏 내팽개쳤다.
그런데 접시는 깨지지 않았고 뚜껑과 분리되지도 않았다. 대신 어이없게도 플라스틱 뚜껑이 찢어졌다. 그래 씨발, 나는 그 뚜껑을 손으로 다 찢어버리고 한때 만두였던 것을 음식물 쓰레기에 버리고 접시를 닦았다.
양치를 하고 누웠는데 잠시 잠이 들었다가 새벽 한 시쯤에 눈이 떠졌다. 더러운 기분이었다. 요즘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을까? 왜 이런 일들만 벌어질까? 그런 생각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내가 겪은 억울한 일들, 나에게 무례하게 대한 인간들, 나를 속인 자들, 내가 저지른 실수들, 부끄러운 짓거리들…….
잠이 오지 않아 전자도서관에서 요코제키 다이의 『루팡의 딸』을 빌려 읽었다. HJ가 얼마 전에 읽고 ‘장난스럽고 유치한데 책장을 덮을까 하다 어쩌다 보니 그냥 끝까지 읽게 됐다’고 평가한 게 기억났다. 어쩌다 보니 끝까지 읽게 됐다는 말은 흡인력이 있다는 얘기로 들렸고, 장난스럽고 유치한 글로 기분을 전환하고 싶었다. 프라모델 오타쿠인 신출내기 경찰서장이 거듭되는 우연으로 사건을 해결한다는 가와사키 소시의 『서장 다나카 겐이치의 우울』을 유쾌하게 읽은 참이기도 했다.
그런데 『루팡의 딸』은 『서장 다나카 겐이치의 우울』과 달리, 읽을수록 화가 나는 소설이었다. 경찰 집안의 아들과 도둑 집안의 딸이 연인 관계라는 만화 같은 설정이야 그렇다 쳐도, 전개가 너무 허술해서 도무지 몰입이 되지 않았다. 결국 다 읽었지만 읽는 내내 ‘이걸 끝까지 읽어야 하나?’ 하는 심정이었다.
아침을 뜬 눈으로 맞고 오전에 잠이 들었다. 충분히 잠을 자고 난 다음에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고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방에서 나오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나 자신이 한심하고 싫었고 세상도 짜증났다. 그대로 베란다 창문을 열고 뛰어내려 모든 것을 끝내버리는 일을 골똘히 상상했다. 그렇게 급속도로 어두운 감정에 빠졌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였다.
토요일이었다. 오후에도 내내 그런 상태로 방에 틀어박혀 있자 HJ가 나를 억지로 잡아끌어 밖으로 나왔다. HJ는 나더러 걷는 데까지 걸어보자고, 한강까지 걷자고 터무니없는 소리를 했다. 아마 얼마 전 만화가 기안84가 그렇게 서초동에서 대부도까지 56킬로미터를 달리며 자신감을 되찾는 모습을 TV에서 봤기 때문인 듯했다. 하지만 공원을 걷는데 의욕이 없고 기운도 없어서 얼마 걷지 못하고 벤치에 앉아 쉬었다.
그렇게 걷다가 인근 재래시장에 들어가 저녁을 먹었다. 문을 연 곳을 찾다가 곱창볶음을 파는 작은 식당에 들어갔다. 야채곱창과 막창볶음을 주문하고 카스 생맥주를 한 잔, 테라 병맥주를 한 병 마셨다. 야채곱창과 막창볶음은 첫 입에는 자극적이고 맛있었으나 조미료를 너무 많이 쓴 탓에 나중에는 속이 메슥거렸다.
국산 맥주를 25년 간 마시면서 카스를 좋아한 적은 없었다. OB 골든 라거와 OB 프리미어, 하이트 엑스트라 콜드를 상당히 괜찮다고 여겼고, 하이트 드라이피니쉬 d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카스도 마시기는 많이 마셨을 것이다. 아마 처음처럼 소주와 섞어서 마신 양이 그냥 순수하게 카스 맥주로 마신 양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갑작스러운 우울
뚜껑이 접시에 붙어버려서
만두가 약을 올려서
곱창볶음 가게에는 열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하나가 테이블에 혼자 앉아서 휴대폰 게임에 푹 빠져 있었다. 봐주는 어른 없이 어두컴컴한 가게 구석에 앉아 있는 모습이 애잔했다. 가게에 직원이 세 사람이었는데 젊은 남자 직원이 아이의 아버지인 것 같았다.
식당 일이 조금 한가해졌을 때 젊은 남자 직원이 아이 맞은편에 앉아 말을 걸었고 아이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조금 나이 들어 보이는 다른 남자 직원과 여자 직원이 그 젊은 아버지의 형과 형수인지, 혹은 형과 부인인지, 아니면 가족관계는 아닌 회사 동료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음날에는 비가 내렸다. 종일 무기력하게 있다가 ‘이렇게 무너져서는 안 된다, 운동을 해야지’ 하고 마음먹고 헬스장에 갔다. 간신히 웨이트 트레이닝을 마치고 터벅터벅 길을 걸어가는데 버스가 빠른 속도로 옆을 지나가면서 물벼락을 뿌렸다.
우산을 쓰고 있어서 머리와 얼굴은 괜찮았지만 가슴부터 발끝까지, 점퍼부터 속옷까지 온 몸이 다 젖었다. 살면서 그렇게 지독하게 물벼락을 맞은 적이 없었다. 화를 낼 기운조차 없었다. 그날 밤에도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유명한 독자들을 만나 인사를 나눴다. 햄릿, 엠마 보바리, 돈키호테, 안나 카레니나 등. 심지어 그들도 책이라는 함정에 빠져 인생을 망쳤다며 이를 갈고 있었다.
‘무슨 얘기일지 알 것 같네’라던 삐딱한 영혼도 치유하는 소설. 몰입해서 읽었고 감동받았다. 잔인하도록 상세한 심리묘사, 격식에 매이지 않는 구어체 문장도 인상적. 작가의 본업이 영화감독이고 이 소설로 영화도 만들었는데, 무슨 사정인지 영화보다 책이 훨씬 좋았다.
문장도 난해한데, 읽는 이가 주인공 캐릭터에 대해 느낄 수밖에 없는 혐오감에 주인공의 자기혐오가 겹쳐 책장 넘기기 힘들었다. 작가가 지적장애가 있는 장남을 낳은 다음해 발표한 작품이라 그냥 픽션으로 읽게 되지 않는다.
헨리 제임스의 초기 대표작. 순진하고 맹한 젊은 여인이 남자들과 어울리기 좋아한다는 이유로 부당한 비난을 받고, 다소 뜬금없는 결말을 맞는다. 작가가 그런 시대를 고발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영국천문학회, 영국지리학회, 영국행성학회 회원인 저자의 과학 에세이. 주로 천문학에 대한 내용이고, 가끔 외계인 관련 음모론들을 신랄하지만 가볍게 조롱한다.
저자가 ‘무역이 아니라 노동 차익거래’라고 비난하는 그 경제행위가 지구적 관점에선 부의 재분배일 수도 있지 않을까. 테러방지법 등 논점이 빗나가는 대목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