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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맥주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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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탠저린 익스프레스 헤이지 IPA와 심폐소생술

금요일 밤에 나는 제발 이제 퇴근하라며 맥주를 들고 재택근무 중인 HJ가 앉은 식탁 옆자리로 갔다. 그리고 같이 탠저린 익스프레스 헤이지 IPA, 버드와이저, 덕덕구스를 마셨다.

탠저린 익스프레스 헤이지 IPA는 IPA로 유명한 미국 수제맥주 회사 스톤 브루잉의 2017년 신제품이다. 오렌지향이 강렬한데 홉만으로 낸 향은 아니고 진짜 탠저린과 파인애플 과즙을 첨가했다고 한다. 첫 향은 상큼하지만 마시다 보면 꽤 쌉쌀하고 알코올 함량도 적지 않다.

토요일 아침에는 올해 들어 처음으로 자전거를 탔다. 프린스를 들으며 한강까지 자전거를 몰고 나갔다. 우리 아파트 앞에서 TV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었다. 한강에 나갔더니 강변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대고 있었다. 자전거를 세우고 가까이 가보니 한강 제방에서 119 구조대원과 경찰이 바닥에 누운 한 젊은이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는 중이었다.

경찰이 젊은이의 가슴을 쉬지 않고 눌렀는데 한번 누를 때마다 다리와 발이 위로 뛰어 올랐다가 바닥에 내팽개칠 정도로 격렬했다. 그 작업이 굉장히 힘이 드는지 경관 두 사람이 교대로 심폐소생술을 벌였다. 쓰러진 젊은이의 상의를 걷어 올렸는데 배의 피부가 마치 액체처럼 출렁였다. 심폐소생술 중에 왜 갈비뼈가 부러진다는 건지 알 수 있었다.

구조대원 두 사람은 기기를 살피면서 경찰들에게 바쁘게 무언가를 지시했다. 구조대원들의 집중과 긴장이 주변 사람들을 압도했다. 구조대원 한 사람이 다급하게 “아빠! 아빠!” 하고 외쳐서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노인의 쓰러진 젊은이의 아버지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아빠’가 아니라 ‘압박’이었다.

구조대원 옆에서 한 중년 백인 남성이 수액 봉지를 들고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그냥 행인으로 보였다. 하도 상황이 다급해서 지나가는 이에게 그 역할을 맡긴 건가 싶었다. 앰뷸런스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쓰러진 사람을 차로 옮기지 않고 길바닥에서 CPR을 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인 듯했고.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진 건가 싶었는데 쓰러진 사람이 젖은 것 같지는 않았다. 깨끗한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조깅 중에 심장마비나 뇌졸중이 온 걸까? 아마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사람들 모두 그 점을 궁금히 여겼겠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 광경 앞에서 무슨 말을 해도 무례하고 불경스러운 일이 된다고 느꼈던 것이다.

쓰러진 이는 코에서 피를 조금 흘리고 있었고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으며 얼굴은 완전히 납빛이었다. 사실 ‘얼굴이 납빛이 되었다’는 표현을 그날에야 이해했다. 소생술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그 광경을 구경한다는 것에 대해 죄책감이 들었고, 나는 얼마 안 있어 자리를 떴다.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그 자리에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드라마 촬영팀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었다. 집에 와서는 여전히 일하고 있는 HJ를 데리고 나와 목욕탕에 갔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피로를 좀 풀라고. 나는 헬스장에 가서 몸을 씻었다. 그날 설치한 휴대폰 간편결제 앱으로 HJ의 목욕탕 입장료를 치르려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헬스장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어느 노인이 차도에서 길을 막고 중년의 승용차 운전자와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모습을 보았다. 승용차 운전자는 차에서 내려 노인에게 삿대질을 했고 노인은 휴대폰을 꺼내 차량의 번호판을 카메라로 찍었다. 아마 자동차가 횡단보도 앞 정지선을 지키지 않은 것이 싸움의 발단인 듯했다.

데이비드 린치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은 날이었다. 집에서 인터넷으로 간편결제 앱들을 연구했는데 사용법이나 차이점을 잘 이해하기 어려웠다. 국내 3대 간편결제 앱의 이용자 수가 각각 1000만 명을 넘는다는데, 이렇게 시대에 뒤쳐지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내가 설치한 간편결제 앱이 잘 작동하지 않은 이유는 내 잘못이 아니라 앱의 오류인 것 같았다. 그 앱은 오류가 잦아 이용자들의 불만이 많다고 했다.

목욕탕 앞에 가서 씻고 나온 HJ를 만나 식당에 갔다. 그녀가 먹고 싶다고 한 꼬막비빔밥과 해물파전을 먹었는데 맛있었다. 대학 시절 우리가 자주 갔던 해물파전집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저분하고 파전이 크고 값이 싼 식당이었다. 거기서 막걸리를 자주 마셨다. 나이가 들어 다시 그 가게에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하도 맛이 없어 놀랐던 적이 있다.

그렉 클라크가 글을 쓰고 몬티 보챔프가 일러스트를 그린 『알코올과 작가들』을 읽었다. 시인과 소설가들이 사랑했던 술 이야기와 그들의 음주 일화를 재미나게 엮었다. 와인이나 위스키, 압생트 같은 다른 술에 비해 맥주를 사랑한 작가는 적었나 보다. 맥주를 사랑한 소설가라고 하니 무라카미 하루키가 떠오르는데 이 책에 나오지는 않는다. 그리고 하루키는 위스키도 좋아했다.

 

흐릿하고 이상한 날들

소심하게 조용히 있으려 해도

옆에서 일어나는 일들

 

386. 나이트 스쿨 (리 차일드)

잭 리처 시리즈 『퍼스널』 다음 편. 『자칼의 날』이나 『피닉스』와 흡사한 의문의 국제범죄자 찾기인데 시대 배경은 1999년으로 잡았다. 뒤를 봐주는 조직 없이 적당히 한정된 공간에서 맨몸으로 적 일당을 맞닥뜨릴 때 매력을 뿜어내는 리처라는 캐릭터가 이런 이야기에 어울리는지 모르겠다.

나이트 스쿨
나이트 스쿨
385. 음식의 언어 (댄 주래프스키)

요리 이름과 묘사에 쓰이는 말들을 살피는 맛있는 사회학, 인류학, 역사학. 이렇게 풍성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 줄이야. 비싸고 맛있는 음식은 섹스에, 싸고 맛있는 음식은 마약에 빗대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음식의 언어 -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인문학
음식의 언어 -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인문학
384.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성장물, 로맨스, 미스터리 스릴러가 섞였는데, 초반엔 각 부분들이 어디서 다 조금씩 본 거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종국엔 아름답고 강력한 하나의 이야기로 우뚝 선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종종 생각하곤 한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
가재가 노래하는 곳
383. 과학을 만든 사람들 (존 그리빈)

전에 들녘에서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이라는 시리즈의 한 권으로 출간된 적이 있었다. 그때는 『과학』이라는 제목이었는데 새 제목이 내용에 더 적합한 것 같다. 차분하고 점잖게 서양과학사를 인물 위주로 서술하는데, 논쟁적인 면도 있다. 고대와 동양의 업적을 배제하고, 과학혁명 개념을 ‘사회학자들의 신화’라고 부정한다.

과학을 만든 사람들
과학을 만든 사람들
382. 레이먼드 카버 (캐롤 스클레니카)

전체적으로 평전의 분위기가 카버에게 우호적임에도 불구하고 카버의 삶 자체가 읽기 고통스럽다. 그는 적어도 한동안은 그냥 술꾼이 아니라 상습 가정폭력범이었다. 첫 번째 부인 메리앤에게 행사한 폭력의 수위는 간담이 서늘할 지경이다. 옮겨 적기 끔찍할 정도.

레이먼드 카버
레이먼드 카버
381. 퍼스널 (리 차일드)

잭 리처 시리즈 『네버 고 백』 다음 편. 영국 작가가 만든 미국 영웅이 영국에서 영국을 잘 모르는 외국인처럼 활동하고, 주연이나 엑스트라나 ‘여기는 영국이니까’ 같은 말을 많이 한다. 그런데 범인 추적 과정도 상당히 엉성하고, 흑막의 동기도 너무 억지스럽다.

퍼스널
퍼스널
380. 걸 (오쿠다 히데오)

1959년생 남성 작가가 도시 여성들의 속내를 이렇게 그럴싸하게 묘사할 수 있다니. 별 사건이 없는데도 흡인력이 강해서, 작가가 도대체 무슨 재주를 부린 건지 궁금해질 지경이다.

걸
걸
379. 무한 공간의 왕국 (레이먼드 탤리스)

뇌를 제외한 머리의 나머지 부분에 대한 과학적, 철학적, 문학적 고찰. 박물학자 기질이 있다면 매우 즐거울 책이다. 그런데 귀지는 다루면서 코딱지는 왜 빼먹는가!

무한 공간의 왕국
무한 공간의 왕국
36. 클라우드 클리어 제로와 화상회의

새 회사에 출근하고 나서 HJ는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일주일을 보냈다. 처음 2, 3일은 무척 흥분했고 열의에 불타 있었다. 여러 면에서 전에 다닌 회사와 반대라고 했다. 업무량은 늘어났지만 권한과 책임도 그만큼 커졌다. 일의 우선순위도 명확했고 조직이 움직이는 방식도 논리적이라고 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사장도 합리적인 성격인 듯했고, 이상한 동료도 없었고, 부하 직원도 성실한 편이었다. ‘그만 하면 기대 이상인데?’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사는 집의 전세 계약이 끝나면 HJ의 새 회사 근처로 이사를 가게 되겠다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사실 더 일찍 이사를 가고 싶었는데 HJ가 반대했다.

안양 아파트 가격을 알아보면서 근처 기타 학원과 술집도 찾아봤고, 동네에 보틀숍이 있는지, 부모님 댁까지 어떻게 가면 좋을지까지 찾아봤다. HJ의 새 회사 근처 아파트에서 부모님 댁까지는 버스를 타고 가도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고 자전거를 타고 가도 비슷했다. 그러면 그냥 자전거를 타고 가면 되겠군.

그런데 3일가량 지나자 HJ가 회사에 대해 ‘뭔가 이게 아닌데?’ 하고 느끼기 시작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전임자가 주말을 포함해 하루도 쉬지 않고 야근을 하다가 석 달 만에 그만두고, 전임자의 전임자가 사장에게 계속 새로 직원을 뽑아달라고 요청하다 넌더리를 내고 그만둔 이유가 그것이었다. 세 사람이 해야 할 일을 둘이서 하고 있었다.

HJ도 매일 야근을 했다. 노트북을 가져와서 집에서도 밤에 일했다. 새 회사의 장부를 보니 허술한 구석이 너무 많았고 전임자들이 기본적인 처리를 하지 않은 채 손 놓아 버린 대목도 많다고 했다. 그들이 게으르거나 도덕적으로 해이했던 게 아니다. 너무 바빠서 맡은 일을 다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전임자도, 전임자의 전임자도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완전히 소진된 상태에서 회사를 욕하며 떠났다.

그녀는 금요일에 재택근무를 했는데 자리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고 14시간 동안 집중해서 일했다. 저러다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으로 쓰러지는 게 아닌가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내가 저렇게 소설을 써야 하는 건데. 그런데 옆에서 지켜보면 HJ는 정말 똑 소리 나게 일을 잘한다. 같이 일을 하고 싶을 정도다.

HJ가 토요일에도 12시간 가까이 일하는 모습을 보다 못한 내가 “그래봐야 회사에서는 자기가 열심히 일하는 줄 몰라”라고 말하고 그녀의 노트북을 덮어버렸다. 그녀는 아무래도 회사가 이상한 것 같다고, 사람을 더 뽑아주지 않으면 더 다닐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주말에 그녀는 우울해 했고, 근육통을 앓았고, 심장이 빨리 뛰었다. 토요일에 그녀는 자낙스를 한 알 먹었다. 전에 불안장애로 병원에 갔을 때 받은 약이었다. 다음 주 월요일에 사장과 면담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그때 인원 충원을 건의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계속 다니지 말자고 이야기를 나눴다. HJ도 나도 사장이 그 요청을 들어주리라, 최소한 ‘검토해보겠다’는 식으로 대응할 거라고 예상했다.

이 회사의 회계 부서는 HJ가 오기 전까지 엉망이었고, 한국인 사장도 호되게 혼이 난 상황이었다. 전전임 팀장이 밤과 휴일에 아르바이트 식으로 꼭 필요한 업무만 처리하고 있었다. 직원 채용 요구를 계속 거부한 사장에게 화를 내고 다른 회사로 이직한 바로 그 사람 말이다. 사장이 고개를 숙여 몇 번이나 사과하고 본사의 외국인 상사가 어르고 달래 간신히 그렇게라도 급한 일이나마 처리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었다.

HJ의 외국인 상사도 그녀가 맡은 일이 너무 많다며 업무를 줄여주려 했다. 내가 밤에 부엌에서 온라인으로 독자와의 만남 행사에 참여할 때 그녀는 자기 방에서 외국인 상사와 사장과 화상회의를 했다.

내가 참여한 화상 북토크는 이메일로 에세이를 보내주는 회사가 기획한 이벤트였다. 사회자들이 맥주를 마시며 캐주얼한 분위기를 유도했다. 나는 무알코올 맥주인 클라우드 클리어 제로를 마셨다. 클라우드 클리어 제로는 하이트제로보다 거품이 곱고 좀 더 달큰하다. 하이트제로를 계속 마시다 보면 클라우드 클리어 제로가 더 나은 것 같은 느낌이 들고, 클라우드 클리어 제로를 계속 마시다 보면 정반대의 생각이 든다.

 

아내가 아프니

내가 정신이 번쩍 든다

이직 참 힘들구나

 

그 사이에 케이트 아이크혼의 『Z세대 부모를 위한 SNS 심리학』, 마크 모펫의 『인간 무리, 왜 무리지어 사는가』, 이언 모리스의 『가치관의 탄생』을 읽었다.

『Z세대 부모를…』은 주로 ‘잊힐 권리’의 차원에서 소셜미디어가 청소년들에게 미칠 악영향을 우려한다. 사람이 건강하게 성장하는데 망각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내 생각에 소셜미디어의 악영향 중 이 문제는 가장 중대하고 시급한 것은 아니다.

『인간 무리…』는 인간이 익명 사회를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영장류보다 오히려 곤충 군집과 더 닮은 구석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과연 그런 것 같다. 사회는 구성원의 불만을 없애는 게 아니라 그걸 외부로 향하게 만든다고 하는데 그 말도 옳은 것 같다.

『가치관의 탄생』은 수렵채집 시대, 농업 시대, 화석연료 시대마다 가치관이 달랐고, 그 가치관들은 큰 틀에서 1인당 에너지 획득 수준에 의해 결정됐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펼친다. 조금 거친 구석은 있지만 이런 커다란 주장을 읽는 건 늘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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