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원제인 ‘What should I do with my life’와 번역 제목인 ‘내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는 뉘앙스가 다르고, 인생이라는 재료로 뭔가를 하기는 해야 한다는 원제의 어감이 더 와 닿는다. 이직과 구직 활동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 그리고 뚜렷한 교훈이나 결론이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이 책 형식을 좀 더 발전시켜서 한국 버전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포기 상태.
미완성 원고, 에세이, 서평 등을 모은 단행본. 퇴고를 덜해서인지 미발표 단편들은 밀도가 확실히 떨어진다. 에세이는 밍밍하고, 의외로 서평이 까칫하니 재미있다.
입담이 아주 예술이라서 독자도 여러 번 웃게 된다. 설교조가 아닌 푸념조라서 더 미덥고 사랑스럽다. 나는 이 책을 읽었다는 사실을 잊고 종종 장바구니에 담곤 한다. 웃으며 살고 싶고, 죽음을 잊지 않고 싶고, 그런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김포공항으로 떠나는 날 새벽에 출판사로 보내는 1600자 분량의 원고를 겨우 다 써서 보냈다. 아침에는 헬스장에 가서 근력운동을 하고 왔다. HJ가 캐리어를 끌고, 내가 더플백 끈을 목과 어깨에 두르고, 각자 백팩을 하나씩 메고, 지하철을 타고 공항에 갔다. 짐은 그냥 내가 다 들 수도 있을 정도였다.
김포공항의 분식점에서 2인 세트를 먹었다. 그렇게 떡볶이, 어묵, 김말이, 순대, 김밥을 먹을 때까지도 서울을 한동안 떠난다는 실감이 들지 않았다. 흥분되어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고 반대로 심드렁하기도 했다. 좁은 공간에서 내내 붙어 있으면서 우리가 싸우지 않고 잘 지낼지도 걱정스러웠다. 서로 마음의 에너지가 바닥인 상태라 그런지 우리 사이가 미묘하게 살갑지 않음을 얼마 전부터 느낀다.
지난번에 출연했던 영화 소개 프로그램 방송작가의 문자메시지를 김포공항에서 받았다. 제주공항에서 통화했다. 한 번 더 출연해달라는 제안이었다. 촬영일은 그로부터 28일째 되는 날이었다. 나도 모르게 “제주도에서 한 달을 머물 예정이라 어렵다”고 대답했다. 통화 중에 HJ를 보니 그녀도 거기에 동의한다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제주도를 여행하는 기간이 한 달로 정해졌다.
제주공항에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서귀포로 왔다. 차창 밖 풍경을 보니 벌써부터 마음이 조금이나마 말랑말랑해지는 것 같았다. 제주도에는 벚꽃과 유채꽃이 피어 있었다. 소철과 야자수도 반가웠다. 샛기정공원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예약해 둔 숙소에 도착했다. 한적한 해안 절벽 위에 있는 호텔 별관이었다.
프론트에 직원이 없어서 한참 기다리다가 전화를 걸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비대면 체크인을 한다는데, 아무리 봐도 진짜 원인은 경영난인 것 같았다. 우리가 예약한 객실 문은 열려 있었고, 카드키도 키홀더에 꽂혀 있었다. 도둑이나 무단침입을 걱정하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방은 복층 구조였다. 나도 HJ도 복층 공간에서 잠을 자는 건 처음이었다. 내 경우에는 복층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 호텔을 떠날 때까지 그 환상이 깨지지 않고 만족스러웠다. 개방감도 컸고 전망도 좋았다. 청소가 힘들 것 같기는 하다.
의외로 구역이 분리되어 잠시였지만 생활하기에도 편리했다. 나는 2층에 테이블을 놓고 거기서 글을 썼고, HJ는 1층 창가에서 등과 벽 사이에 베개를 두 개 대고 앉아 책을 읽었다. 변기에 비데가 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다 만족스러웠다.
창문 밖에는 대체로 비어 있는 2차선 도로가 있고 맞은편에 아담하고 예쁜 단층 카페 하나가 있었다. 도로 이쪽 편에는 전봇대와 높이가 2미터쯤 되고 작고 빨간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과실수가, 건너편에는 야자수가 가로수로 심어져 있었다.
야자수 뒤로 소철과 소나무, 억새들이 자라는 들이 있고 그 너머는 파란 바다였다. 서쪽으로 작은 만과 곶이 있었다. 곶이 있는 방향으로 수평선 근처에 제법 규모가 있는 바위섬이 보였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풍경이었다.
좋아라 하며 짐을 풀고 잠시 쉬었다. 그러다 해가 지기 전에 주변을 둘러보자고 나갔다. 한갓지게 걷다가 끌리는 식당이 있으면 들어가 저녁을 먹고, 어두워지면 근처에 있는 고부루비어컴퍼니에 가서 수제 맥주를 마셔볼 참이었다. 양조장과 펍, 비어 스파를 즐길 수 있는 숙소가 한 건물에 있는 스타트업 맥주 회사라고 했다.
제주도는 최근 국내 맥주 애호가들의 성지로 뜨고 있다. 제주맥주가 대성공을 거뒀고 맥파이가 양조장을 제주도에 세웠고 도 차원에서 맥주 브랜드를 개발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소규모 양조장울 둔 수제 맥주 회사들이 생겼는데 고부루비어컴퍼니도 그런 곳이었다.
제주도에 있는 기간 동안 제주 수제 맥주 탐방을 해보겠다고 하니 HJ는 혼자 다니라면서 코웃음을 쳤다. 그녀의 반응을 보고 나니 그게 무척 어리석은 계획인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 숙소는 읍내 중심가에서 떨어진 곳에 있었고, 바다가 보이는 조용한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느긋해졌다. 낮은 건물과 인적이 드문 풍경, 나무, 꽃, 새 소리가 점점 좋아진다. 어렸을 때는 마천루, 크롬과 네온 빛, 전자음에 끌렸는데.
빨간 열매들이 달린 나무 이름은 먼나무라고 했다. 야자수들이 자주 쓰러져 제주도에서는 가로수를 먼나무로 교체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는데, 야자수가 더 이국적이고 멋지다며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고 한다. HJ는 먼나무 열매를 뜯어 맛보기도 했다.
예상과 달리 해안가로 가는 길에는 식당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조경이 잘 된 작은 공원이 있어서 들어갔다. 공원의 이름은 칠십리 시공원. 곳곳에 시비(詩碑)들을 세워 시공원이다. 공원에는 꽤 큰 연못이 있었고, 징검다리로 물 위를 가로질러 갈 수 있었다. 징검다리는 중간에 꺾이는 부분이 있었는데 거기에 커다란 문틀이 있어 그 틀을 통과하도록 되어 있었다.
징검다리를 걷다가 문틀 앞에 가보니, 틀 안에 거울이 있었다. 우리가 틀 너머라고 생각했던 경치는 사실 거울에 비친 이쪽 편 상이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하나 하고 당황해 할 때 자동문이었던 거울이 열리고 반대편 징검다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징검다리와 거울문 전체가 전종철 작가의 설치미술 작품인 《경계선 사이에서》라고 했다.
별 기대 없이 고부루비어컴퍼니에 들어갔는데 매장이 크고 분위기가 세련되어서 놀랐다. 1층에는 양조 시설이 있었고, 2층이 펍이었다. 멕시칸 요리를 안주로 팔았고, 주문은 테이블마다 설치된 태블릿 PC로 하게 되어 있었다. 손님이 우리밖에 없어서 걱정을 했으나 시간이 지나자 다른 손님들도 찾아왔다.
고부루에서 만들어 판매하는 맥주는 여섯 종류였는데, HJ와 나는 똑같이 IPA인 천지연과 페일에일인 대학로를 마셨다. 천지연에는 감귤 껍질을 첨가했고, 대학로는 새내기 대학생의 상큼함을 느낄 수 있기에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안주로는 퀘사디아와 나초를 주문했는데 비싸지 않고 맛있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는 부슬비가 내렸다.
제주 여행 첫날
이래도 되는 건가 아직은 어색해
귤 내음 맥주로 긴장 풀어요
야심이 거대하고 설정도 방대하다는 점은 인정. 캐릭터와 이야기도 그만큼 풍성했으면 좋았을 텐데 싶었다. 너무 길고 자세한 설명 때문에 중간에 좀 지치기도 했다. 1권보다 2, 3권이 더 재미있었다.
하긴, 생각해보면 하루에도 수백 수천 건은 보게 되는 각종 홍보 마케팅 문구들이 다 내 생각을 움직이기 위해 누군가 공들여 작업한 결과물들이다. 그런 환경을 나는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간다. ‘선택 설계자’라는 용어는 나중에 한번 써먹어봐야겠다. 인터넷 여론 조작을 다룬 부분이 재미있었다. 미국이 친정부 성향의 가짜 SNS 계정을 만들고 관리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추진했다는 정황 증거가 있다고.
『표백』을 쓸 때도 참고했고 단편 「한강의 인어와 청어들」에서도 인용했다. ‘모든 견고한 것은 대기 속으로 녹아버리고, 모든 신성한 것은 더럽혀지며, 인간은 마침내 자신의 진정한 생활 조건에,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 냉정히 직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같은 문구는 은근히 시적이지 않나. 펭귄클래식의 단행본은 모두 342쪽인데, 이중 실제 선언문은 50페이지가 안 되고 개레스 스테드먼 존스의 해설이 200쪽이 넘는다. 이 해설이 꽤 유용하다.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가 리처드 스타크라는 필명으로 썼던 악당 파커 시리즈 두 번째 편. 인물과 문장은 매력적인데 이야기는 다소 심심하다. 전편과 후편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책이라 그런지. 아마추어들을 믿고 일하면 손해 보기 쉽다는 교훈을 준다.
저녁식사 위주로 정리한 남녀관계. 꼭 묘사해야 할 대상을 빼놓음으로써, 부재를 통해 그 중요함을 강조한 소설적 전략일까? 메디치상 수상작인 줄 모르고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다소 뻔하게 시작해서 재미없다가 재미있다가 재미없다가 재미있다가 제법 무서운 장면이 두세 번 나오고 반전도 있는데 결말은 마음에 안 든다. 그리고 열 살짜리들이 너무 똑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