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1980년대에 PC 잡지를 통해 이 소설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번역본을 처음 읽은 것은 1995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이후 원서로 정독했고, 새 번역본이 나왔을 때에도 꼼꼼히 다시 읽었다. 읽을 때마다 감흥이 줄어들었다. 그래도 영화 《매트릭스》 1편이 나왔을 무렵에는, 아, 《매트릭스》보다 『뉴로맨서』가 훨씬 나은데, 하고 투덜거릴 정도의 애정은 있었다. 사이버펑크라는 단어와 분위기는 그때가 끝물이었던 것 같다. 안철수 씨가 첫 출마선언문을 발표했을 때는 ‘생뚱맞게 웬 윌리엄 깁슨?’ 하고 고개를 갸웃할 지경이었다.
『뉴로맨서』 쓰다가 남은 재료를 모아서 만든 섞어찌개 같은 느낌. 장식 다 떼고 보면 서사는 퍽 빈약하다. 그 장식 때문에 깁슨을 읽는 것이겠지만.
정말로 스마트폰과 SNS가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일으키는 걸까? 아니면 신기술에 대해 늘 나오던 근거 없는 공포의 새 버전일까. 관련 서적을 쭉 찾아 읽는 중이다.
보수주의 역사가가 쓴 1920~1990년대. 나더러 부제를 붙이라면 ‘사회공학의 비극’이라고 하겠다. 독재자들의 초상을 탁월하게 그려내며, 간디나 네루 같은 인물에 대한 평가도 신랄하다. 특히 2권 전반부는 정말 재미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오전 10시에서 11시쯤 나가서 커피를 사 마시고, 돌아와서 숙소에서 쉬다가 점심을 먹고, 또 돌아와서 숙소에서 쉬고, 오후에 주변 산책을 나가고, 다시 숙소에서 쉬고, 또 나가서 저녁을 먹는다. 그렇게 한 숙소에서 3일이나 4일 가량 머물다가 자동차로 10분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다른 숙소로 옮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까지 제주에서 일정은 거의 매일 이러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자동차가 없고 의욕과 정력은 부족하고 대신 시간이 넉넉한 우리에게 적합한 여행 방식인 것 같다. 그렇게 서귀포에서 시작해 반시계방향으로 돌고 있으며, 4월 중순에 제주시 부근에 이르게 될 듯하다.
이걸 한 달 여행이라고 불러야 할지 한 달 살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행과 생활의 중간인데, 바쁘지도 지루하지도 않아 좋다. 하루걸러 하루씩 오전에 근력 운동을 하고 있고, 그렇게 운동을 한 날 저녁에 맥주를 마신다. 총 비용은 500만 원 정도 들 것 같다. 이런 호사를 누려보려고 여태껏 그렇게 열심히 돈을 벌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제주 여행 4일차에는 하늘이 맑았다. 오전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그러자 바다 반대 방향으로 한라산이 제대로 보였고, 산의 거대한 규모를 그때서야 제대로 알게 된 나와 HJ는 크게 감탄하고 이제 남쪽이 아니라 북쪽을 바라보며 걸었다. 이날과 그 다음날에는 뜻대로 안 되는 일이 많았지만 이미 마음이 너그러워져 있어서 크게 개의치 않았다.
허세 부리는 가게처럼 보여 HJ가 탐탁지 않게 여긴 숙소 근처 브런치 카페에 들어갔는데 내부 구조도 재미있었고 한라산 전망도 끝내줬다. 낮에는 택시를 불러 차로 5, 6분 거리인 서귀포매일올레시장에 갔다. 1960년대에 설립된 재래시장이다.
시장 골목을 돌아다니며 이곳에서만 판다는 꽁치김밥, 우도 땅콩만두, 흑돼지 꼬치구이, 오메기떡을 사 먹었는데 오메기떡을 제외하고는 다 조잡한 맛이었다. 신기하니까 딱 한번, 이라는 기분. 서울이고 지방이고 유명하다는 전통시장에 찾아가서 젊은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특이한 먹거리를 맛보고 나서 흡족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서귀포매일올레시장에서 남쪽으로 이중섭로를 따라 1분 정도 걸으면 이중섭 거리가 나온다. 그 거리에는 이중섭 미술관, 이중섭 거주지, 이중섭 공원, 이중섭 창작 스튜디오가 있다. 이중섭로는 볕이 잘 드는, 소박하게 아름다운 언덕길이었는데 신카이 마코토나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속 일본 소도시 배경을 연상케 했다. 금방이라도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자전거를 타고 옆을 지나갈 것 같았다.
서귀포매일올레시장에서부터 천장에 이중섭의 소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중섭로에는 각각 ‘중섭이네’와 ‘중섭23’이라는 이름의 식당이 있고, 이중섭의 작품을 모티브로 해서 작품 활동을 한다는 ‘중섭공방’도 있다. 심지어 소고기구이 식당 앞에도 이중섭의 그림을 본 딴 소 조형물이 있었다. 이중섭이 지금의 이중섭로 풍경을 본다면 흐뭇해할지 “살아 있을 때 좀 잘해주지 그랬냐” 하면서 허탈해 할지 모르겠다.
정작 이중섭은 제주 출신이 아니고, 제주에 머문 기간도 1년이 채 안 된다. 6․25 전쟁 때 서귀포로 피난 와서 11개월 간 머물다 부산으로 올라갔다. 그 11개월 동안 작품 활동을 열심히 했다지만……. ‘서귀포에 그렇게 다른 인물이 없나’ 싶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어느 예술가를 기리는 거리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자못 감동적이기도 했다. 한국에 이런 공간이 또 있던가?
이중섭 거주지는 방 세 칸짜리 초가집에 있었다. 관람객은 가장 오른쪽, 부엌 안쪽에 있는 협소한 방만 볼 수 있었기에 거기가 작업실이었나 보다 했다. 아무런 가구가 없는 1.4평짜리 공간이었다. 그런데 잠시 뒤에 안내문을 읽어 보니 그 방에서 이중섭과 이중섭의 아내, 그리고 두 아들까지 네 식구가 살았다는 것이다!
그조차 세를 얻은 게 아니라 그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 집 주인이 그냥 내준 것이었다. 화가는 그 정도로 가난했다. 거기서 반찬도 없이 배급 쌀과 고구마로 연명하며 배가 고파 바닷가에서 게를 잡아먹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담뱃갑 은박지 등에 꾸준히 그림을 그렸다고 하니 예술은 뭐고 인생은 또 뭔가 싶었다.
이중섭 미술관은 정기 휴관일이었다. 그런데 바로 옆에 있는 정방동주민센터에서 대로로 내려가는 인적 없는 계단 옆에 화가의 작품 수십 점이 작게나마 그려져 있어 그걸 천천히 감상하며 내려왔다. 길 떠나는 가족이나 바닷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그림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저렸다.
이중섭 창작 스튜디오에서는 어느 현대서예 화가의 전시전을 무료로 볼 수 있었다. 입구에서 우리에게 열정적으로 작품을 소개한 중년 여성이 화가의 아내이고, 안에서 다른 관람객과 대화 중이던 훤칠한 신사가 화가 본인이지 않나 싶었다.
가볍게 둘러보고 나와 그 옆 서귀포관광극장에 갔다. 1999년에 문을 닫은 옛 극장인데 지붕은 사라져 하늘이 보이고, 담쟁이 넝쿨이 벽 안쪽을 타고 올라왔다. 폐허가 되다시피 한 장소를 허물지 않고 조금 단장해 다시 공연장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냥 숙소로 돌아가기 서운해서 동쪽으로 조금 더 걸어갔다. 소암기념관도 정기 휴관일이라 패스. 서복전시관은 입장료가 500원밖에 안 된다니 한번 구경해 보자고 결정. 그런데 서복이 누구더라? 어디서 들은 이름인데. 설마 진시황 불로초 설화의 그 서복? 장용민의 『불로의 인형』에 나오는 그 서복?
그 서복이 맞았고, 기실 서귀포(西歸浦)라는 이름 자체가 ‘서복이 서쪽으로 돌아간 포구’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렇다 해도 변변한 유물도 없는, 출발지도 최종 도착지도 한국이 아니었던 외국 인물이다. 전시관을 짓고 공원까지 조성해 이곳에서 그토록 거창하게 기념할 일인가 싶었는데 아마도 중국인 관광객을 노린 시설인 듯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중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끊긴 이제, 전시관 관람객이라고는 우리뿐이었다. 나는 서복이 진시황을 등친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는데 HJ는 그의 고생과 외로움을 상상해보라고 했다. 전시관은 시진핑이 저장성 당서기 시절 그곳을 다녀갔다는 점을 내내 강조하고 있어서 조금 코믹했다. 그냥 시진핑도 아니고 ‘시진핑 님’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서복전시관과 함께 조성된 서복공원은 절경이었고 입장료 500원 덕분에 다른 관광객도 없었다. 절벽 아래 푸른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택시를 불러 잡아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에는 숙소 근처 게스트하우스 겸 치킨 카페라는 곳에 갔다. 꼬마전구로 옥상을 장식했는데 거기서 맥주를 마시면 근사할 것 같아서였다. 들어가 보니 과자나 음료수가 있는 잡화점이기도 했고 독립출판물과 그림, 엽서도 팔았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사진과 기념품이 곳곳에 걸려 있거나 놓여 있었다.
공기가 차가워 옥상에 앉을 수는 없었고 그냥 실내에서 순살 마늘치킨을 주문해 먹었다. 제주도의 전통 발효 음료인 쉰다리도 함께 주문했다. 남은 밥을 모아 뒀다가 거기에 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시켜 만드는 음료라고 한다. 쉰다리도 주인 부부가 직접 만드는 것 같았다. 전망은 즐기지 못했지만 치킨은 맛있었다.
다음날 오전에 호텔을 체크아웃하고, 서쪽으로 6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바닷가 펜션으로 방을 옮겼다. 호텔 맞은편 도로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 펜션으로 가려 했으나 카페 문이 닫혀 있었다. 택시를 불러 펜션으로 갔는데, 체크인은 오후 3시부터임에도 불구하고 펜션 주인아주머니가 그냥 방을 내주었다. 거기까지는 운이 좋았다.
계속해서 돈가스니 치킨이니 하는 음식들을 먹다 보니 속이 거북했기에, 읍내에 들어가 현지인들이 다니는 식당에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서귀포 시내에서 그랬던 것처럼 읍내 거리를 몇 분 걸으니 쉬 피곤해졌다. 또 괜찮아 보이는 식당들은 모두 정기 휴일이거나 식사 준비 시간이었다. 우리는 신선식품을 사려고 마트에도 찾아갔는데, 규모는 작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갖춰 놓은 물품은 별로 없는 곳이어서 조금 어리둥절해져서 나왔다.
해안가 식당이나 카페도 들어가기 망설여졌다. 우리가 머물게 된 펜션의 전망이 그보다 더 나은 것 같았기 때문에. 우리는 2층 방을 잡았는데, 잘 가꾼 마당과 그 너머로 탁 트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근사한 테라스가 있었고, 거기에 앉아 있는 게 어지간한 주변 카페에 있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결국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서 펜션으로 가져와서 먹었다. 캔 맥주를 몇 캔 샀고, 그 중 제주 백록담 에일을 마셨다. 제주맥주에서 만든 화이트 에일로, 제주도 물을 사용하고 한라봉을 첨가해 오렌지 향을 냈다고 한다. 상큼하니 좋았다. 편의점에서 날달걀과 바나나도 사 와서, 펜션에 있는 조리기구로 계란을 삶아 먹었다.
이날은 낮 내내 전자도서관이 켜지지 않아서 지우고 다시 설치하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데, 알고 보니 구글에서 업데이트한 안드로이드 시스템 앱이 기존에 설치된 앱들과 충돌했기 때문이었다. 주요 앱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전국 이용자들이 골탕을 먹었다고 한다. HJ는 이날 종이책을 읽었고, 나는 전자도서관 외에 다른 앱을 거의 사용하지 않아 그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서울에서 벗어나 제주까지 왔는데 멀리 미국에 있는 개발자들의 행동에 이렇게 타격을 입은 것이다. 그 사실이 초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어지간해서는 도시의 복잡한 사정에서 내가 벗어날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구글은 사과는 커녕 제대로 된 대응 조치조차 하지 않았고, 한국 이용자들은 불만을 터뜨리기는 했지만 국내 기업을 대할 때와는 온도 차이가 컸다. 거대 기업이 지배하는 세상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기도 했다.
저녁에도 어슬렁어슬렁 바닷가 산책로를 걸으며 술을 마실 만한 곳을 찾았으나 마땅치 않았다. 결국 들어간 곳은 어느 프랜차이즈 맥줏집이었다. 테라스 전망이 좋았으나 추워서 밖에 앉을 수는 없었다. 가게 안에는 신장개업을 축하하는 화환과 화분이 빼곡히 놓여 있었는데 코로나 탓인지 우리 외에는 손님이 없었다.
이 프랜차이즈는 ‘요리 전문 맥줏집’을 표방하고 있었는데 실제 모토는 ‘뭐든지 판다’인 듯했다. 메뉴 책자가 16쪽이나 됐다. 주류 사정도 비슷했다. 수입 맥주, 크림 생맥주, 국산 맥주, 수제맥주라고 주장하는 자체 브랜드 맥주, 칵테일, 칵테일 소주까지 다 마실 수 있었고, 그런 다양성이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사실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고, 엠버 라거인 자체 브랜드 맥주의 맛도 좋았고, 안주도 만족스러웠다. 콘셉트가 문제였다.
아마도 원래 그 자리에서 오래 술집을 운영하던 사장님이 하던 장사를 접고 프랜차이즈에 가입한 게 아닌가 싶었다. 술을 마시고 있으려니 20대 취향의 가게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중년 남녀가 들어와서 직원에게 “마시던 거 주라”고 말했다. 그러자 직원은 키핑해 놓은 양주를 내왔고 손님들은 맥주를 함께 주문해 양주 폭탄주를 만들어 마셨다. 중년의 여성 사장님이 잠시 그 옆에 앉아서 얘기를 들어주었다. 그런 모습이 좋아 보이고, 또 어쩐지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제주도 물에 한라봉 향
맛보다는 콘셉트려니 짐작합니다
내 인생 콘셉트는 뭘까
몇몇 장면의 질감은 인상적이나 큰 줄기 자체가 새롭다거나 강력하다고 말하진 못하겠다. 그럭저럭 재미있었으나 이만하면 됐다 싶어, 속편에는 별 관심이 가지 않는다.
실제로 지하인을 만난다면 얼마나 우습고 불쾌할까. 그런데 지하인을 절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 현대인은 몇이나 될까. 내 얼굴 역시 달아오른다.
공감각에 대한 글은 언제나 재미있다. 나는 영원히 알지 못할 미지의 세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현실이라는 건조한 사실, 매혹적이지 않나.
사무실이나 침실, 소지품을 보고 주인의 성격을 파악하려는 심리학자들의 연구는 흥미진진하고 글 읽는 맛도 좋다. ‘이 물건이 있으면 이런 성격’이라는 식의 책은 아니다.
하루키에 대한 분석이 국내 출간 당시 언론에 주로 나왔는데, 실은 그 챕터가 가장 억지스러웠다. 다치바나 다카시와 무라카미 류에 대한 글들이 날카롭고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