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종교는 종교 전쟁을 낳는가. 저자는 ‘아니다’라고 말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다. 근대에 이르러 종교의 의미가 협소해지고 근본주의적이 되었다는 주장은 이전부터 암스트롱이 펼쳤던 것인데 여기에서도 다시 활용한다. 세속주의의 폭력을 지적하기도 하고, 종교가 아니지만 종교 같은 성격을 띠는 이데올로기가 종교 전쟁과 흡사한 전쟁을 불러일으킴을 말하기도 한다. 근대 이후의 종교적 폭력과 종교 전쟁에서 종교를 제외한 부분을 살피기도 한다.
건조하면서 축축한 소설, 이라고 불러도 될까. 문장과 묘사는 건조한데,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작품의 정서는 축축하다. 좋은 축축함이다. 사회 구조의 병폐와 개인의 오래 묵은 감정들이 만나 벽에 곰팡이 피듯 악의가 자란다. 트릭의 허점을 따지고 들자면 끝이 없겠지만 나는 무척 인상 깊게 읽었다.
저자는 30년 동안 꾸준히 독서 모임을 운영해 왔다. 그런 경험에서 나온 조언들이 도움이 됐다. 독서모임 멤버나 토론 수준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 마음의 상처를 받지 말라는 것, 독서모임에도 생명 주기가 있어서 마무리를 준비해야 하는 시점이 있다는 것, 운영규정이 있어야 모임이 활발해지고 건강한 긴장감이 생긴다는 것 등. 첫 번째로 필요한 운영규정은 참가 기준에 대한 것, 두 번째는 회원 자격 상실에 대한 것이라고 한다.
2021년 제주 여행 첫 번째 숙소와 두 번째 숙소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좋았다. 첫 번째 숙소는 호텔이었고, 해안 절벽가에 위치해 있었고, 새 것 느낌이 나는 미니멀리즘 디자인의 복층 객실이었다.
두 번째 숙소는 가족이 운영하는 펜션 하우스였다. 첫 번째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인데도 주변 풍경은 꽤 달랐다. 땅은 낮았고 바다는 가까웠다. 펜션 하우스는 2층짜리 아담한 목조 건물이었는데 흰색과 녹색으로 도장이 되어 있었다. 어떻게든 유럽풍을 내보려 했으나 결국 한국 사람이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는 분위기의 모습이었다.
널찍한 마당에는 잔디가 깔려 있었고, 야자수와 동백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한 켠에는 바베큐 공간이 있고 반대쪽에는 진돗개 한 마리가 묶여 있었다. 나는 그 개와 종종 놀았다. 우리가 머문 3박 4일 동안 개가 산책하는 모습을 볼 수 없어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펜션 주인 가족을 탓할 수도 없는 게, 그들은 해야 할 할 업무가 너무 많았다. 2층 테라스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펜션 운영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다. 방 일곱 개에 하루도 빠짐없이 숙박객이 든다 해도 벌 수 있는 수입에는 한계가 있을 텐데.
우리는 2층에 묵었다. 테라스에는 넉넉한 크기의 테이블 하나와 의자 두 개가 있었다. 거기에 앉아 있으면 남색 바다가 정면으로 보였고 파도소리와 새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렸다. 식사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기에 충분한 공간이었고 우리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러면 까치나 되지빠귀 같은 새들이 곁에 날아와 앉아 있다가 떠나곤 했다.
그 테라스만 한 카페를 찾을 수 없었기에 결국 체크아웃 할 때까지 우리는 다른 카페는 가지 않았다. 다른 이용객들과는 참 달랐다. 사람들은 오후에 차를 몰고 와서 저녁에 바비큐를 해먹고 다음날 아침 일찍 떠났다. 우리는 테라스에서 시간을 보내다 끼니때가 되면 바닷가 산책로를 걸어 인근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돌아왔다. 특히 노을이 질 때는 꼭 나갔다.
그렇게 회국수, 해물파전, 전복돌솥밥, 전복해물뚝배기, 족발, 보말칼국수, 고기국수를 먹었다. 다 맛있었고 모든 가게가 친절했다. 회국수와 해물파전을 먹은 바닷가 식당은 전망이 끝내줬고 족발가게에는 젊은 해군 병사들이 벽에 남긴 낙서가 재미있었다. 제주 김만복김밥은 포장해 와서 숙소 테라스에서 먹었다.
주변에 딱히 관광 지점은 없어서 그냥 올레길을 따라 걸었다. 포구에 가보기도 하고 해군 기지 근처까지 가보기도 했다. 포구나 바닷가 바위 아래에서 내려다보면 몇 미터 바닥이 잘 보일 정도로 물이 맑았다. 체크아웃을 하는 날에는 멸치 떼가 해안으로 밀려 들어왔다고 했다. 관광객들이 바위 사이에 갇힌 멸치들을 잡고 있었다.
길을 걸을 때 우리는 다른 보행자를 앞지르지 않았고 다른 행인들은 우리를 부지런히 추월했다. 우리보다 걸음걸이가 느린 사람들은 딱 한 쌍 보았다. 저녁 시간에는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젊은 남녀가 많았고, 벤치에 앉아 혼자 기타를 치며 흘러간 옛 노래를 부르는 아저씨도 있었다. 개들은 경치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땅과 풀의 냄새를 맡는 데 열중했다.
우리도 석양을 바라보며 조용히 노래를 불렀다. HJ는 이곳에 와서야 제주공항에 내린 뒤 처음으로 시간이 남는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제주도 푸른밤〉을 여러 번 불렀다. 최성원 가수가 그 노래를 만들 때 살던 친구 집이 지금 서복전시관 자리라고 했다. ‘푸르메가 살고 있는 곳’라는 가사에서 푸르메가 그 집 딸 이름이라고 한다. 사실 ‘푸르매’가 정확한 이름인데 가사를 잘못 적었다고 한다.
제주도에서 해녀가 가장 많은 마을이라고 했는데 해녀들이 잠수복을 입고 물질을 하거나 길을 걷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다. 해녀들은 매우 자신감 있고 프로페셔널해 보였다. 소라 요리 전문 식당 주인이 걸어가는 해녀에게 “오늘은 미역이랑 해삼”이라고 말하면 그 해녀는 “미역이랑 해삼”이라고 말하며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마치 관제탑과 조종사의 교신 같았다.
야외 벤치에서 비어리카노와 남산 에일을, 족발집에서 테라를 마셨다. 비어리카노는 스타우트에 콜드브루 커피를 섞어서 만들었다는 맥주인데, 몇몇 호프집에서 선보이는 더치 맥주보다 더 낫다고 하기 어려운 맛이었다. 신제품 기획에 참여한 유동커피는 이중섭 거리에 있는 유명한 카페라고 한다. 그런 곳이 있는 줄도 모르고 그 거리를 걸었네.
‘나에게는 수천 번째 커피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원하던 한 잔의 커피일지 모른다.’ 비어리카노 캔 라벨에 그런 문구가 인쇄돼 있다. 이게 감동을 주자고 고른 문구인지, 웃자고 적은 패러디인지 알 수가 없다. 비어리카노라는 제품 이름도 좀 당황스럽다. 가끔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면 온갖 감성 글귀가 가득했는데 처음 몇 번은 재미있었지만 나중에는 느끼해서 어지러웠다.
커피 맛 맥주
시간 감각이 흐려지네
해녀 마을 느린 삶
일본의 정신과 의사인 사이토 사토루가 쓴 『나는 왜 나에게만 가혹할까』와 독일 뇌과학자인 게랄드 휘터의 『존엄하게 산다는 것』을 읽었다. 『나는 왜…』는 목차를 보고 마음이 동해 펼쳤는데, 막상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조언에 방점이 찍힌 책인데 내가 원한 것은 그 조언들에 대한 정신의학적인 근거였다.
책 앞부분에 죄책감 지수 자가 진단 테스트가 있다. ‘예, 아니오’로 답해야 하는 질문 19개에 대해 ‘예’라고 답한 횟수가 7개가 넘으면 문제가 있다고 한다. 나는 무려 17개에 해당했다.
『존엄하게…』는 뭔가 간질간질했다. 중요한 얘기를 할 것 같지만 끝까지 안 하는, 혹은 못하는 느낌. 통섭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기에는 모자란다. 같은 저자가 좋은 삶을 주제로 쓴 『우리는 무엇이 될 수 있는가』에도 실망한 기억이 있다.
1996년에 국내 첫 번역본이 나왔을 때 사서 읽었고, 바로 하이텔 과학소설동호회 시삽이었나 전 시삽이었나에게 넘겼다. 피자 배달하는 메타버스 검객 해커부터 시작해서 대부분의 설정들이 농담 같았다. 소설의 내러티브도 농담 같았다. 『뉴로맨서』의 엄숙함(후까시)에 대한 의도적 반발이라는 해석도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2020년대가 되어 메타버스라는 단어가 회자되고 이 소설이 다시 소환되는 모습도 좀 농담 같다.
옛 선사(禪師)들의 가르침을 소개하고 저자의 해석을 붙였다. 특정한 일화나 명언이 확 다가왔다기보다는, 인간은 참으로 답 없는 문제로 아주 오래 전부터 고민이 많았구나,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게 위안이 됐다.
도서관을 배경으로, 어쩌면 사서가 주인공일지도 모를 소설을 구상하면서 제목에 ‘도서관’과 ‘사서’가 들어가는 책들을 마구잡이로 읽다가 만난 전자책 단편. 내용은 딱히 특기할 만한 게 없다. 귀엽고 단순하다. 실제로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윌리엄 깁슨의 아이디어는 다 『도시와 별』에 이미 나왔던 거 아닌가?” 사이버펑크 유행을 싫어했던 어느 1990년대 한국 SF 팬이 분통을 터뜨렸고, 나는 별로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이버펑크란 아이디어가 아니라 스타일임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영화 《매트릭스》 1, 2편은 『뉴로맨서』보다 이 소설과 훨씬 더 닮았다.
영화 《코드명 J》의 원작인 「메모리 배달부 조니」와 『뉴로맨서』의 원형인 「크롬 태우기」 때문에 사서 읽은 책이었는데, 정작 시간이 지나도 계속 기억이 남는 것은 표제작이다. 그것도 설정이나 줄거리보다는 석유 시추업을 푼돈이라 비웃고 모차르트가 새로 써내는 팝송이야말로 돈벌이라는 한 등장인물의 마지막 대사 때문이다. 윌리엄 깁슨이 쓰거나 참여한 작품 중에는 뜻밖에도 「공중전」이 재미있었다.
요즘 누가 버추얼 아이돌과 결혼을 선언한다고 눈길이나 모을까? 그 버추얼 아이돌 기획사의 법무팀은 “또” 하고 한숨을 쉬며 대응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는 『뉴로맨서』보다 훨씬 더 정확한 예언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멋진 신세계』나 『1984』와 달리 수명이 다한 작품이라 느껴지는 건, 애초에 속알맹이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