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Ⅰ권에 비해 보다 인물과 에피소드 중심이라 읽기 편하고 재미있다. 현대과학의 철학적 파급력과 포스트모더니즘의 한계, 20세기 지성사를 서구의 승리로 정리한 결론이 매우 흥미롭다.
무시무시한 밀도로 원시시대부터 19세기까지 철학과 관념의 발전사를 훑는다. ‘현대 민주주의와 관련이 있는 것은 고대 그리스가 아니라 로마 공화정’이라고 딱 부러지게 정리하고, 불교의 화두수행에 대해서는 ‘순간적 깨달음이 가능하다고 봤기에 동원한 황당한 명상과 난감한 논쟁’이라고 풀이한다.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의 관점으로 보는 인간, 기계, 과학과, 그들이 어떻게 복잡하게 얽히는지에 대한 이야기. 인간과 비인간의 연결을 과학도 인문학도 흔히 놓친다고 지적한다.
장쾌하고 낙관적이고 너무 낙관적이어서 도리어 심란하다. 읽다 보면 ‘특이점 논의’에 저절로 참여하게 된다. 저자는 ‘비판에 대한 반론’이라는 장까지 내놓는다. 그 반론이 기술지상주의의 한계에 갇혀 있기에 책장을 덮은 뒤에도 비판적 독서는 이어진다.
저자 모터사이클에 올라 칸트를 비웃고 인도철학에 작별을 고하고 노자를 재해석하고 아리스토텔레스를 무너뜨리는 800쪽의 여정을 마치고 난 사람이 내릴 수 있는 선택의 폭은 매우 좁다. 동의든 거부든, 응답은 격렬하리라. 출간 40년이 지난 지금도 해외 인터넷에서는 재야 철학자들이 사이트를 만들어 이 책을 토론 중이다.
간혹 이 책을 ‘인간의 행동은 유전과 환경 양쪽으로부터 모두 영향을 받는다는 내용’이라고 소개하는 글을 본다. 그보다는 ‘유전이 진짜 중요하다니까! 제발 아닌 척 하지 말자!’가 더 제대로 된 요약이다. 몇몇 대목에서는 거의 울분에 찬 것처럼 보일 정도다. 핑커의 비판 대상에는 엘리트 예술이나 포스트모더니즘도 있다.
난해한 제목이고, 사실 내용도 어렵다. 번역본 기준 꼭 800쪽인 분량도, 세계를 이해하고 진리를 발견하겠다는 전투적 주제의식도 만만치 않다. 로버트 M. 피어시그의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은 소설의 형태를 취하고는 있지만 줄거리 요약이 큰 의미가 없는 소설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는 이 책의 줄거리를 요약하는 일이 책의 메시지를 배반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저자이자 화자가 마지막에 깨닫는 바에 따르면, 주체와 객체는 따로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주체와 객체를 나누는 이원론에서 현대 문명의 비극들이 시작된다. 유일하게 존재하는 현실은 주체와 객체가 만나는 사건뿐이다. 주체의 자리에 ‘독자’를, 객체에 ‘책’을, 사건에 ‘독서’를 넣어도 성립하는 말일 것 같다. 즉, 나의 내용 요약은 절대 당신의 독서를 대신할 수 없다.
그러니 내용 소개는 포기하고, 차라리 이 책이 내게 일으킨 사건을 이야기해볼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한 사람이 서양 철학 전체에 맞서도 된다는 사실을, 한 사람이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칸트를 비웃고 인도철학에 작별을 고하고 노자를 재해석하고 아리스토텔레스를 무너뜨리는 작업을 해도 된다. 세계와 진리에 대한 독자적인 사상을 펼쳐도 된다. 피어시그의 작업에 비하면 계몽주의를 비판하는 일 정도는 수월해 보였고, 나중에 나는 그런 철학을 설파하는 살인범이 나오는 소설을 썼다.
‘질(質)의 철학’은 동의하든 거부하든 격렬하게 응답할 수밖에 없는 거대하고 도발적인 주장이다. 솔직히 나는 크게 감명 받았다. 출간 40년이 지난 지금도 해외 인터넷에서는 재야 철학자들이 사이트를 만들어 이 책을 토론 중이다. 그 철학과는 관계없지만 문장은 내내 유려함을 넘어 아름답고, 책 출간 뒤 저자와 아들에게 벌어진 사건을 담담히 적은 후기는 무척 기묘하고 슬펐다.
장경렬 서울대 영문과 교수는 원문을 정확하게 한국어로 옮기기 위해 정비소에서 실제로 모터사이클을 분해해가며 기술용어를 배웠다고 한다(그는 “이 책을 사볼 여력이 안 되면 훔쳐서라도 읽어라”고 한다). 그렇게 번역을 마치는데 10년이 걸렸단다. 계약을 두 번이나 갱신하면서 더딘 번역 작업을 기다려준 문학과지성사도 대단하다. 번역가에게나 출판사에게나 ‘나는 10년쯤 지나도 여전히 위력적일 걸’ 하고 믿음을 주는 책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경찰 출입기자가 나오는 소설 중에 이보다 사실적인 작품은 보지 못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기자 초년병 시절 지방 경찰서 기자실에 가면 딱 이런 분위기였다. 한창 『재수사』를 쓰는 동안 읽은 소설인데 재미있었고, 감동 받았고, 응원과 위로도 얻었다. 징그러울 정도로 자세하게 현실적인 경찰의 모습을 그려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점, 집필 기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작품을 잘 써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경무, 인사, 비서, 감찰 등 경찰조직 내부를 배경으로 한 연작소설집. 이색소재도 눈길을 끌고, 미스터리물로서도 깔끔하다. 씁쓸하지만 개성 있는 어른의 맛과 향. 좋아하는 작가다. 일본 원서와 한국 번역서의 표지 분위기 차이가 굉장함.
개발독재는 필요악일까? 민주주의는 사치재일까? 상당수 한국 지식인, 어쩌면 현대 지식인들이 은밀히 품고 있는 위험한 질문일 것이다(아니, 이른바 ‘중국 모델’이라는 것의 부상 이후에는 입 밖으로 꺼내 이야기해야만 하는 질문 같다). 이 책은 적어도 민주주의가 기근을 막는 데에는 매우 효과적임을 보여준다. 기근은 식량이 부족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는 발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논의하지 않은 채 ‘선진(developed)국’들이 모두 비슷한 것처럼 뭉뚱그려 말하곤 한다. 정의론이나 인권 개념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도 흥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