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잘 부서지는(fragile) 성질의 반대 특성은 무엇인가. 쉽게 무너지는 사람, 충격에 취약한 사회의 반대편에는 어떤 사람, 사회가 있는가. 개인의 삶에서 자본시장과 정치사회 영역까지, 실패와 충격을 통해 이익을 얻고 더 강해지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는 대담하고 참신한 주장. 근육은 정기적으로 무거운 물건을 들어 ‘망가뜨릴수록’ 더 튼튼해진다. 안티프래질한 조직은 불확실성과 스트레스, 시행착오를 오히려 반긴다.
작가가 자신이 평생 살아온 집들에 대해 쓴 이 유려한 에세이를, 나는 궁핍에 맞서 품위를 지키려는 이야기로 읽었다. 그것은 매우 어려운 투쟁인데, 일단 품위 자체가 저렴하지 않은 재화다. 그리고 궁핍한 상태에서 품위를 지키려는 사람은 같은 위치에서 품위를 중시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보다 불리한 처지에 놓인다. 때로 조롱거리나 화풀이 대상이 되기도 한다. 나의 공간과 서사, 품위를 고민해본다.
번식장, 보호소, 개농장, 도살장 등 ‘한국의 개 산업’ 현장을 구석구석 찾은 르포. 우린 아직 개들을 사랑할 준비가 안 된 것 같다. 신파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톤이 차분해서 다행이었다. 특히 영화 같은 도입부는 압도적. 뒤표지에 “동물이 대접받는 나라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는데, 나치 독일 같은 반례도 있다.
그 유명한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 이야기. 인간은 참 이상한 동물이다. 픽션을 던져주면 너무나도 성실하게 거기에 자신을 끼워 맞추려 한다. 흥미진진하고 매우 불편하다.
촘스키가 ‘온갖 문제 전문가’로 나서 발언한 강연 원고와 인터뷰, 에세이 모음집. 베트남전에서부터 문법교육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주제에 대해 말한다.
“문학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런 질문을 받으면 그냥 솔직히 말한다. “잘 모르겠습니다.” 삶이 뭔지 모르면서 살고, 문학이 뭔지 모르면서 쓴다.
어렴풋이 추측만 할 따름이다. 그건 언어로 하는 일이다. 사람을 사로잡고 뒤흔든다. 하지만 그 힘이 꼭 구원, 진리, 아름다움, 사회비판, 공감, 위로를 향하거나 거기에서 나오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기엔 예외가 너무 많다. 걸작들의 공통점은 오히려 ‘역겹고 소름끼치는 인물이나 장면이 반드시 있다’는 것 아닌가.
이문열 소설 『시인』에 젊은 김삿갓이 금강산에서 늙은 시인을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시는 이것도 아니요, 저것도 아니라는 노인의 말에 지친 김삿갓이 “그럼 시는 도(道)냐”고 따진다. 노인은 자신이 ‘덜된 중놈이나 엉터리 도사’가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시가 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캐롤 스클레니카가 쓴 집요하고 고통스러운 평전 『레이먼드 카버』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할까 고민하다 서설이 길었다. 카버가 누군가. ‘내가 바로 문학이다’라고 외치는 듯한 사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십대에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나이 오십에 죽을 때까지 글쓰기에 매달렸다. 알코올중독을 심하게 겪고 두 번 파산하는 동안 주옥같은 단편소설을 쓰고, 마침내 술을 끊고, 주옥같은 작품을 더 쓰고, 명성을 얻고, 미국 단편소설의 르네상스를 주도하고, 전설이 되었다.
깜깜한 밤, 가로등이 없는 길을 자동차가 달리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본다고 상상해보자. 길은 자동차 불빛의 궤적을 통해서만 제 모습을 잠시 드러낸다. 내게는 『레이먼드 카버』가 그런 자동차처럼 여겨진다. 한 작가가 평생에 걸쳐 추구했던 어떤 길, 그를 놔주지 않았던 ‘무언가’를 언뜻언뜻 보여주는 평전이다.
대작가가 아닌 우리는 그 힘의 형태를 이렇게 간접적으로만 볼 수 있는 것 같다. 카버 본인은 자기 공책에 이렇게 썼다.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 그걸 지금 원한다.’ 다른 공책에는 이렇게도 적었다. ‘이 모든 게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헛된 시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마지막에 이르면 그는 그 ‘무언가’를 어느 정도 이루고, 그것이 무엇인지 거의 깨닫는 것처럼 보인다.
솔직히 말하자면 무척 괴로운 책이다. 960쪽에 이르는 분량이 아니라 우상의 추락에 관한 얘기다. 카버는 그냥 술꾼이 아니었다. 그는 한동안 상습 가정폭력범이었고, 책에 묘사되는 폭력의 수위는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나는 423쪽에서 한동안 책 읽기를 멈췄다. 516쪽에 나오는 일화는 웬만한 공포영화 뺨친다. 읽으려는 분들은 꽤 각오해야 한다.
스티븐 킹, 클라이브 바커, 조지 R. R. 마틴, 닐 게이먼 등이 참여한 좀비 단편 앤솔로지. 소재를 한정하면 작가의 상상력이 더 자극된다는 좋은 증거 사례 아닐는지.
한 사조나 학자의 사상을 그 시대의 눈으로 한번, 현대의 관점으로 다시 한번 평가하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철학사 서적’에서 ‘철학 서적’이 된다.
이 뜨거운 학문이 어떻게 출발했고, 어떤 관점으로 인간을 보는지 알고 싶다면 제일 좋은 입문서이자 교과서. 다만 모든 교과서가 그렇듯,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많이 담지는 않았다.
혁명만을 생각했고, 혁명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던 냉혹한 마키아벨리주의자. 신념과 행동을 일치시켰고, 번민과 후회가 없었던. 소련은 레닌을 성인으로 만들기 위해 관련 자료를 기밀로 분류했고, 같은 시기 세상 다른 쪽에서 그는 사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