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역사는 발전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최고의 답이라고 생각한다. 홀린 듯한 기분으로 읽었고, 최근 나온 역사학자들의 반론 『우리 본성의 악한 천사』도 언젠가 읽어보려 한다. 소주제도 흥미로운 것들이 많았다. 1960년대를 비문명화 시대로 본다든가, 자본주의가 전쟁을 몰아낸다는 주장, 인간 본성이 최근 생물학적으로 진화했을 가능성 등. 소설의 힘을 다룬 부분은 자못 감동적.
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하는데, 최악이라는 감정 역시 결말이 아니라 추락하는 과정에 있다. 두려워하던 일은 막상 실제로 일어나면 견딜만 할 지도 모른다. 죽지 말자. 살자.
15세기 말, 16세기 초 이탈리아를 박식하고 친절한 가이드와 함께 여행하며 멋진 그림을 보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듣는 기분. 두께도 내용도 포만감이 든다.
조금 과장하면 한 학문의 시조인데 재미도 있다. 책장을 덮을 때쯤 인간의 비이성을 이제 제대로 다룰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희망이 생기고, 행복에 대한 뜻밖의 통찰도 얻는다. 초판 번역이 상당히 문제가 많은 터라 꼭 개정판으로 읽기를 권함.
대화형 인공지능과 시인, 기술 분야 작가가 함께 내놓은 책. 인공지능이 얼마나 글을 잘 쓰는지 궁금해서 읽었다. 인간이 쓴 책이었다면 집어 들지 않았을 잠언집(긔리고 모든 잠언집에는 잠꼬대 같은 얘기가 있다). 인공지능이 인터넷에서 수집한 정보로 가장 쉽게 쓸 수 있는 주제가 ‘인간의 삶에 대한 답일 거라는 점도 역시 아이러니하다. 기획자들이 사용한 대화형 인공지능은 정확히는 챗GPT는 아니고 GPT-3 버전인데 큰 차이는 없다고 한다.
역사의 시초부터 전쟁이 있었고, 그 발생은 필연적이었고, 문명과 전쟁은 공진화했다고 한다. 기병을 유지하기 위해 봉건제가 등장했다는 분석 등이 눈길을 끈다. 후속작인 『전쟁과 평화』가 더 흥미로워 보이지만 당장은 읽지 않기로.
내 인생 책 중 한 권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친구에게서 빌려 읽었고, 보름가량 이 책을 병처럼 앓았다. 정말로 어딘가에 ‘끝없는 이야기’라는 책이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책을 펼치면 책 속으로 들어가서 어린 왕녀를 만나고, 모험을 벌이고, 나의 우주를 건설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 소설을 읽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 건 아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소원이 수십년 만에 매우 기묘한 방식으로 이뤄진 것 같다는 생각은 가끔 한다. 읽고 쓸 때에는 아무것도 남지 못할 감각의 세계를 떠나 의미와 영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그렇게 어린 왕녀를 만나고, 모험을 벌이고, 내 세상을 세운다. 마침내.
독서가들을 위한 최고의 판타지 아닐까. 문학을 향한 찬미가 가득하고, 작가들의 운명과 출판계에 대한 야유도 한 사발이다. 웃기면서 장엄하고, 희극적이면서 비극적이다. 그리고 책과는 관련 없는 얘기지만 주인공이 공룡이라는 점도 너무 좋다.
한 인터넷서점의 서평집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다. 제목은 ‘끝내주는 책.’ 장르소설 애호가인 작가, 번역자, 편집자들이 자신이 사랑하는 작품에 대해 짧은 에세이를 한 편씩 쓰게 한 것이다. 뒤늦게 고백하자면, 그거 쓸 때 꽤나 기합이 걸렸더랬다. 취향에서 글 솜씨까지, 다른 필자들과 바로 비교가 될 테니. ‘내가 놀림감이 되는 건 괜찮지만, 내 인생의 소설이 무시당하는 건 참을 수 없다’는 비장한 각오로 임했다.
나중에 결과물을 보니 다른 저자들 역시 나와 같은 심정이었음이 훤히 보여서 웃음이 났다. 행간에 애정과 자존심, 자부심이 뚝뚝 묻어났다.
이 프로젝트의 규모와 수준을 확 넓히고 높여서, 지금 활동 중인 세계적인 추리소설가 100여 명에게 그들의 ‘인생 작품’에 대해 한 편씩 글을 써달라고 하면 어떨까? 성사되기만 한다면 정말 굉장한 물건이 나올 것 같지 않은가?
존 코널리와 디클런 버크가 엮은 『죽이는 책』이 바로 그 물건이다. 제프리 디버, 리 차일드, 요 네스뵈, 엘모어 레너드, 데니스 루헤인 등 그야말로 쟁쟁한 올스타 멤버 119명이 참여했다. 대가들이 차례로 연단에 올라 땀을 뻘뻘 흘리며, “여기 이 소설로 말씀드릴 거 같으면…… 몇 쪽만 읽어도 세상 근심걱정 싹 다 사라져버려! 내 말 믿고 한번 펼쳐봐!”라고 외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이런 구경거리를 놓쳐서야 되겠는가. 당신이 ‘읽고 쓰는 공동체’의 일원이고, 특히 추리소설을 좋아한다면 말이다.
게다가 특급 작가들의 독서 에세이다. 문학이란 무엇이고 장르란 무엇인가, 여성 작가들의 이름은 어떻게 지워졌나, 나는 왜 소설가가 되었나, 작가와 작품은 분리해야 하는가와 같은 근사한 질문과 답변이 가득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죽이는 책』이 소개하는 걸작 중 국내에 번역된 작품은 절반 남짓에 그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내게는 그것도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읽지 않은 책에 대한 서평을 읽는 일은 그만의 묘미가 있다. 뭔가 보르헤스 소설 속에 들어온 기분도 들고.
옮긴이는 격월간 〈미스테리아〉의 김용언 편집장(‘끝내주는 책’ 저자 중 한 사람이다)인데, 원고에 나오는 대상 작품의 과거 번역을 확인하려고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절판된 구간들을 사 모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출판사의 번역 청탁을 고사했다는 그는 “개인적인 욕심을 못 이기고 받아들였는데, 작업하다 정말 죽는 줄 알았다”고 웃는다. 엄청 길고(816쪽), 각 나라 고유명사가 무진장이고, 여러 문장가들의 문체를 다 살려야 하니, ‘번역자를 죽이는 책’이기도 했을 듯하다.
과학철학자와 저널리스트 등 국내 필진 8명이 사이보그, 소셜 로봇, 가짜 뉴스, 마이크로워크 등의 키워드로 쓴 글을 모았다. 출판사인 아카넷은 ‘포스트휴먼 총서’와 ‘포스트휴먼 사이언스 총서’를 펴내고 있는데 책들이 다 흥미로워 보인다. 이 책은 총서의 일부는 아니지만 궁금해서 읽었는데 무척 만족스러웠고 아카넷의 다른 포스트휴먼 관련 도서들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