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유미리는 30년 가까이 뾰족한 작가다. 하지만 작품보다 작가의 삶이 더 문제적, 혹은 문학적으로 다가온다는 점은 그다지 본받고 싶은 사항은 아니다. 자신의 삶이 세계와 부딪쳐야만 세계에 대해 할 말이 생기는 것 아닌가, 그것이 사소설의 한계 아닐까 하는 비약도 해본다.
이런 심리학 대중서를 자꾸 찾아 읽게 된다.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우리 모두 자기 자신을 포함해 인간 존재를 궁금해 한다. 이전 판의 제목은 ‘무엇이 사람을 움직이는가’였는데 개정판 제목이 훨씬 더 끌린다. 내 속을 털어놓으면 다들 도망가겠지.
‘사회전염 현상을 과학적으로 추적한 최초의 저서’라는 책 소개 문구에 끌려 집어들었는데 기대에는 다소 미치지 못했다. 설마 그 현상을 다룬 르포가 과연 이전에 없었을까 싶기도 하고. 중심 소재인 팰로앨토의 고교생 연쇄 자살 사건 취재에 보다 발품을 팔아서 더 상세하게, 더 깊이 파고들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연상되는가. 다섯 가지 외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다가 가끔 필요하면 근처에 있는 험악한 덩치들을 격투기로 순식간에 제압하는 현장 요원? 아니면 어두운 방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해외공작 계획을 짜고, 동시에 자기들끼리도 암투를 벌이는 양복 입은 백인 중년 남성들?
만약 그렇다면 2차 세계대전부터 조지 W. 부시 정부까지, CIA의 역사를 다룬 팀 와이너의 『잿더미의 유산』을 읽으며 여러 번 놀라게 될 것이다. 꼭 1000페이지인 이 책을 읽으며 나는 “헐, 이게 진짜야?”라고 혼잣말을 몇 번이나 중얼거렸다.
어떤 조직이 이렇게까지 무능하고 멍청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아서다. 놀라기는 미국 대통령들도 마찬가지였다. 닉슨은 CIA에서 올린 보고서 여백에 ‘쓸모없음. 신문으로 다 알 수 있는 내용’이라고 메모했다. 그 자신이 CIA 국장을 지내기도 했던 아버지 부시는 대통령이 된 뒤 “CIA보다 CNN이 더 낫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국 관련 에피소드 하나만 소개한다. 6·25 전쟁 당시 한국에 온 CIA 서울지부장이 자기 부하들이 어떤 사람인지 조사했더니 200명 중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CIA 서울지부는 한국인 대원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했는데, 이들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모두 사기꾼이었다. CIA의 공작 자금으로 풍족하게 살면서, 북한과 중국에서 만든 역정보를 보고하고 있었다.
CIA가 6·25 중 온갖 말도 안 되는 작전을 펼치고 번번이 실패한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CIA는 그때마다 의회에 ‘전략작전 수행’이라는 말로 얼버무리고 “북한 내 저항세력을 우리가 통제하고 있다”고 허풍을 쳤다. 이후 소련, 쿠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인 일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몇몇 에피소드에서는 읽는 독자가 부끄러워질 지경이다.
충격과 경악을 잔뜩 선사하는 책이지만 함부로 의심할 수가 없다. 저자는 뉴욕타임스 민완기자 출신이자 퓰리처상 수상자다. 게다가 서문에서 ‘익명의 소스나 루머는 전혀 인용하지 않았다, 오로지 공식 기록과 전현직 CIA 국장 10명을 비롯한 실명 취재원의 인터뷰로만 썼다’고 못을 박았다.
책이 그리는 CIA의 종합적인 이미지는 ‘통제받지 않은 채 국가 예산으로 황당한 짓거리를 벌이는 아마추어들’이다. 최고경영자가 비전이 없고 임원들이 무능할 때 대기업이나 공기업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주는 긴 우화처럼 읽히기도 한다. 문득 우리의 국가정보원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르네상스에서 종교 개혁까지, 대하 사극 시리즈를 보는 기분. 카테리나 데 메디치, 카테리나 스포르차, 안나 마리아 루도비카 같은 여걸들이 매력적이다. 그리고 역시 반듯한 모범생들보다 엇나가거나 모자란 인간들의 삶이 특히 재미있다. 권력자들의 이름은 잊혀졌는데 예술가, 사상가들의 이름은 불멸이 되었다.
징그러울 정도로 길고 자세한 평전. 영화가 아니더라도 예술 분야를 꿈꾸는 이들은 읽으면 힘을 얻을 것 같다. 그처럼 걸출한 작품들을 내려면 좌절하지 않고 끝없이 협상하고 타협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그런데 그게 전부일까? 트뤼포가 아니었더라면 히치콕은 지금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걸출한 명성을 얻으려면 평단에서 강력한 옹호자를 구해야 한다는 뜻일까?
진화 과정에서 기본 감정이, 집단생활에서 정의에 대한 감각이, 국가와 함께 형사사법제도가 싹텄다고 분석. 응보적 정의를 회복적 정의로 바꾸는 것이 다음 과제라고. 여태까지 도덕이 어떤 방향으로 확대됐다고 해서 그것이 앞으로 가야 할 방향까지 대답해주는가 하는 의문은 든다.
물리학 서적은 아니고, 시계, 달력, 일주일, 시대 구분 등 시간에 대한 인간의 인식이 어떻게 발전했는지에 대한 길고 자세한 이야기. 옛 그리스인에게는 연도라는 개념이 없었다고 한다.
세계적인 작가와 사상가 16명의 이야기를 담은 인터뷰집. 제인 구달과 올리버 색스는 즐겁고, 조지 스타이너와 해럴드 블룸은 다 동의하진 않아도 공부가 됐다.
자기계발서의 범주에 들어갈 책이고 앞부분은 그냥 그렇다. 후반부에 좋은 얘기들이 쏟아진다. 13장 ‘목표 상실의 법칙’은 청년에게, 14장 ‘동조의 법칙’은 우리 시대 모든 이들에게 도움이 될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