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대학 교재이지만 교양서로 읽어도 손색이 없다. 인간의 사회적 행동에는 사람, 상황, 그리고 사람과 상황의 상호작용이라는 세 요소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여러 대목을 스크랩하며 읽었는데, 나중에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 대한 논픽션을 쓸 때 참고하려고 잘 간직해두고 있다.
사반세기 전에 나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 책이다. 출간 시점에는 얼마나 시대를 앞섰다는 말인지. 단순히 정보통신 기술 분야를 넘어 세계와 미래를 보는 시각 자체를 흔든다. 챗GPT와 관련한 원고 청탁이나 코멘트 요청을 받았을 때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유용하게 잘 써먹었다.
과학기술이 삶과 사회 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가끔은 진지한 위협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나는 민주사회에서는 이제 과학기술사회학이 시민의 필수 교양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중등교육 과정에서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믿는다. 대학원에 가서 제대로 공부해볼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훌륭하고 재미있고 아름다운 생물지리학 논픽션. 다윈과 월리스의 깨달음에서부터 ‘섬 생물지리학’의 발전과 보호구역 크기 논쟁까지. 생생한 르포와 유머가 함께.
토머스 호켄베리 박사는 미국 인디애나대학 고전학과 학장이고, 전문 분야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다. 그는 2006년 암으로 사망하는데, 수천 년 뒤 부활한다……. 트로이 전쟁이 한창인 고대 그리스를 꼭 빼닮은 세상에서.
그를 부활시킨 건 올림포스의 신들이다. 이 세계에는 아폴론, 아테나, 아프로디테와 같은 신들이 정말로 있고, 호켄베리 박사는 그들을 위해 종군기자 비슷한 역할을 맡게 된다. 그런데 그리스 신들의 초능력은 아무래도 나노테크놀로지를 비롯한 미래 과학의 산물인 것 같고, 그 신들은 『일리아스』의 내용을 알기는커녕 글자도 읽지 못한다.
댄 시먼스의 대작 SF 소설 『일리움』의 도입부다. 이 책에는 세 가지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는데, 그 중 하나가 이렇게 시작한다.
두 번째는 자신들이 하늘에 있는 ‘후기-인류’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고 믿는 ‘고전-인류’의 얘기다. 이들은 순간이동장치로 세계 곳곳에서 화려한 파티를 즐기며 소일한다. 질병도 노화도 없는 낙원 같은 세상이다.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화성이 갑자기 지구화한 것을 의아하게 여긴 목성의 유기체(有機體) 로봇들이 탐사를 떠난다. 이 로봇들은 마르셀 프루스트와 셰익스피어 애호가들이기도 하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로 연결되며, 세 이야기는 중반부터 한데 섞인다. 아킬레스와 오디세우스의 모험 사이에 마법사 프로스페로와 괴물 캘리반이 끼어드는 식. ‘도대체 이런 세계가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라는 질문이 바로 작품의 핵심 미스터리다.
가볍고 정신없는 패러디로 여긴다면 오산이다. ‘인간성이란,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담은 묵직한 소설이다. 실제로도 무겁다. 1부에 해당하는 『일리움』은 942쪽, 2부인 『올림포스』는 1088쪽이고, 두 권 모두 하드커버라 합하면 무게가 3킬로그램이 넘는다.
읽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로저 젤라즈니를 떠올리게 된다. 신화와 SF를 결합한다는 아이디어, 교양을 현란하게 과시하는 스타일, 미국식 유머와 마초스러운 분위기, 폭력성과 선정성이 두 작가의 공통점이다. 댄 시먼스가 덜 우아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일리움-올림포스』는 각각 그리스와 인도 신화를 소재로 삼은 젤라즈니의 『내 이름은 콘래드』나 『신들의 사회』보다 야심이 훨씬 더 크다.
원래 벽돌책들은 모두 야심작이다. 소설과 비소설에 다 해당하는 얘기다. 야심작에는, 깔끔하고 완벽한 소품에는 없는 박력이 있다. 그 힘을 맛보려고 벽돌책을 찾아 읽는다. 『일리움』과 『올림포스』의 박력으로 말할 것 같으면, 분노한 제우스가 내리치는 천둥 수준이다.
내가 이해하는 잡스는 본받을 만한 인물은 아니다. 아이폰이 소아마비 백신이나 3점식 안전벨트에 견줄 수 있는 발명 같지도 않다. 하지만 잡스의 일대기는 흥분을 불러일으킨다. 모든 시스템이 촘촘해지고 개인은 왜소해지는 시대에, 그는 우리가 꾸는 꿈이다. 홀로 운명에 맞서 기어이 자기 뜻대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
살만 루슈디의 자서전. 1981년에 발표한 『한밤의 아이들』로 부커상을 받았고, 1988년에 『악마의 시』를 냈다. 1989년 호메이니가 그를 죽이라는 칙령을 내렸다. 루슈디는 10년 넘게 도피 생활을 했고, 2012년 이 자서전을 냈다. 그리고 10년 뒤 강연장에서 결국 칼에 찔렸다. 소설가의 표현의 자유가 우선이냐, 타 종교에 대한 존중이 먼저냐. 내게는 물어볼 필요도 없는 질문.
최근 세미 비건이 되기로 결심했다(두 번째 시도다). 채식과 동물권에 대한 에세이를 아마 쓰게 될 것 같은데, 그때 이 책을 다시 읽어보려고 한다. 갑각류가 고통을 느낀다 하더라도 그것은 갑각류가 마음을 가졌다는 의미는 아니며, 꺼림칙하게도 갑각류의 자리에 보다 고등한 동물을 넣어도 그 진술은 성립할지 모른다.
『괴델, 에셔, 바흐』보다 훨씬 쉽고 『사고의 본질』보다 훨씬 재미있다. 몸과 머리를 분리한 상태에 대한 사고실험은 SF 단편 「당신은 뜨거운 별에」의 아이디어로 이어지기도 했다. 「아스타틴」을 쓸 때도 조금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정체성을 가지고 노는 이야기이니.
30대 초반에 석 달가량 붙들고 읽었다. 내용도 형식도 충격이었다. 이 책에 나오는 기묘한 아이러니 하나를 『뤼미에르 피플』의 한 단편에서 써먹기도 했다. 국내 번역서가 원래 두 권짜리였는데 1,100페이지가 넘는 한 권으로 개역판이 나왔다. 한번 더 읽고 벽돌책 칼럼에서 소개하고 싶은데 엄두가 안 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