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경영대학원 교수 두 사람이 온갖 자기계발 지침을 매달 한 가지씩 1년간 시도하고 쓴 체험기. 기획은 좋은데, 저자들이 아이디어의 힘을 너무 과신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다 읽고 나면 ‘그걸 왜 한 거지’라고 묻게 된다.
작은 산 옆에서 매일 까치, 까마귀, 어치, 황조롱이를 보며 살 때 읽었다. 책 제목을 보는 순간 저절로 손이 갔고, 나는 만족스럽게 읽었다. 지금 사는 동네에는 꾀죄죄한 비둘기만 한두 마리 있다.
1회 시마다 소지 추리소설상 수상작. 2회 수상작은 바로 찬호께이의 『13.67』다. 이후 미스터 펫과 찬호께이는 함께 작품을 쓰기도 한다. 가상현실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이라는 소재 자체는 흥미롭지만, 설정 몇 가지가 도무지 납득이 안 돼 초반 몰입이 어려웠다.
노동시장이 변하고 있고, 개인 경력과 재정을 임시직(gig) 중심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내용. 괴짜(geek)가 아니라. ‘우리 모두 날품팔이가 된다는 뜻이구나’ 하고 시니컬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2018년에 읽었을 때에는 ‘당연한 얘기 아냐?’ 하고 툴툴거린 부분도 있었는데 이제는 너무나 생존과 관련된 문제가 된 나머지 그런 불만은 전혀 들지 않는다.
MIT 물리학과를 나와 철학자가 된 저자는 쾌락, 욕망, 행복, 자아실현, 목적은 삶의 의미와 거리가 멀다는 주장을 펼칠 때 대단히 논리적이고 빈틈이 없다. 그러나 삶의 의미에 있어서 ‘정서적 판단’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할 때에는 다소 흐릿해지고 중언부언한다. 나는 삶의 의미에 대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라고 타협하는 게 낫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운다.
워낙 잘 써서 읽다 보면 그 열정에 도리 없이 전염된다. 그럼에도 이 책의 태도나 ‘해커 윤리’ 양쪽 모두 솔직히 미심쩍다고 여기는 편이다. 지속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순수함을 미화하려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와이어드 수석 기자인 저자가 후기를 쓰기 위해 빌 게이츠를 다시 만났을 때, 게이츠는 ‘정보의 자유’를 이렇게 비꼰다. 20년 뒤 잡지 기자들은 낮에 (기계가 대체하기 어려운 인간 직장인) 미용실에서 일하고 밤에 기사를 써야 할지도 모른다고.
노을해안로 이후 숙소들은 관광지들에 있었고, 그곳에 숙박하는 동안에는 낮 시간을 어디서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우리는 다시 바빠졌다. 하지만 근사한 카페와 식당들이 모여 있는 애월리는 건너뛰었는데, 지난해 초여름에 2박 3일로 애월에 놀러간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제주 북서 지역에서 처음 잡은 숙소는 협재해수욕장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였다. 한번쯤은 게스트하우스에 묵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HJ가 고른 장소였다. 그래도 게스트하우스 중에서는 시설이 괜찮은 곳으로, 그 중에서도 개별 화장실과 샤워시설이 있는 2인실을 선택했다.
최근 10년 사이 제주도에는 게스트하우스들이 많이 들어섰고, 젊은 싱글 여행객들이 그곳에서 파티를 즐기고 데이트 상대를 찾는 문화도 함께 생겨났다. HJ는 파티를 하지 않고, 음주를 1인당 맥주 2캔으로 제한하며, 심지어 통금 시간까지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 해변에서도 약간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성이었는데, 손재주가 좋아서 게스트하우스의 가구와 실내 장식들 상당수를 손수 만들었다. 자전거 바퀴살을 이용한 천장 조명 기구 같은 것들이었다.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확실히 독특하기는 했다. 최근에 그는 스피커 제작에 푹 빠져 있어서 곳곳에 진공관 스피커가 있었고, 우리 방에도 블루투스 스피커가 한 대 있었다.
그는 젊은 숙박객들에게 넉살 좋게 말을 걸었고, 우리 부부가 어떻게 여행을 하고 있는지, 내 직업이 뭔지 무척 궁금해 했다. 나는 그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반대로 질문들을 그에게 던져댔다. 그는 내가 끝내 자기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고 공용 공간에서 노트북 자판만 두드려 대자 나를 IT 개발자로 오해했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서는 체크인 시간까지 짐을 맡기고 바다로 걸어갔다. 노을해안로에서 며칠 머물다 협재해수욕장을 보니 번화가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관광객이 별로 없어 가게들은 대체로 한산했다. 해변 뒤로는 작은 야영장이 있었는데, 캠핑족들에게 인기 많은 장소 같았다.
협재해수욕장에 있는 맘스터치 매장에서 점심을 먹었다. 가게에 직원이 안 보여서 처음에는 장사를 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주방에 있었다. 우리 말고는 다른 손님도 없었다. 제주도에서 여러 가지 특산 음식들을 먹었고 다 흡족했지만, 가장 맛있었던 것은 이날 먹은 사이버거 세트였다. 맥주도 파는 작고 특이한 매장이었다.
햄버거를 먹고는 협재해수욕장을 지나 그 옆의 금능해수욕장까지 갔다. 금능해수욕장은 협재해수욕장보다 더 조용하고 주변 시설이 별로 없었으며 정말 깨끗했다. 썰물 때였는지 바다가 멀리까지 곳곳에 바닥을 드러냈는데 서해와 달리 바닥이 뻘이 아니라 밝은 색의 모래였다. 우리는 신발을 벗고 그리 들어갔다.
물이 아주 맑고 턱없이 얕아서 바다 쪽으로 한참 걸어가 모래사장으로부터 꽤 멀어졌는데도 발목만 겨우 잠기는 수준이었다. 물 아래 모래 바닥에는 파도가 만든 줄무늬 자국이 있었다. 그 무늬는 의외로 단단해서 밟아도 모양이 뭉개지지 않았다. 그 자국들을 내려다보며 걷다 보면 외계행성 위에 있는 것 같았고, 조금 어지러웠다.
바다에서 나와서는 옆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전망이 끝내주는 곳이었다. 아래에서는 어떤 남자가 그 얕은 바다에서 카이트 서핑을 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다 체크인 시간에 맞춰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 협재에서 유명하다는 보틀샵에 들러 구경했다.
보틀샵은 슈퍼마켓과 민박을 겸하고 있었는데, 내가 서울에서 찾아가는 보틀샵들보다 구비한 맥주 종류가 많았다. 이런 곳이 집 주변에 있으면 좋겠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제주도에 와서 보틀샵에서 수입 맥주를 여러 병 사 마시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가을과 겨울에도 손님이 있을까. 맥주는 유통기한도 길지 않은데.
탐라에일에서 만든 한라까마귀 포터를 샀다. 탐라에일은 서귀포에 있는 작은 브루어리인데, 전에는 펍도 운영하고 양조장 견학 프로그램도 운영했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서귀포에 있을 때 제주약수터에서 탐라에일의 대표 제품인 곶자왈 IPA를 살짝 맛본 바 있다. 한라까마귀 포터는 포터 치고는 가벼운 느낌이었고, 커피향이 두드러졌다.
얕고 환한 바다
까마귀라니, 이름 참 잘 지었지
길을 걸으며 마셨네
오디오북을 무단 발행한 출판사에게 한 달 반 만에 연락을 했다. 그만하면 시간을 충분히 줬다고 생각했다. 계약서 초안까지 내 판권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만들어줬는데 그걸 검토하는데 한 달이 넘게 걸린단 말인가. 내가 이 출판사의 사정을 도대체 어디까지 봐줘야 한단 말인가. 큰 문제였고, 그걸 지적한지 1년이 넘지 않았는가.
그 사이에 내 마음이 정리된 것 같았다. 뭐였을까, 그 한 달 사이에 사라진 감정이? 연민? 상대가 망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일을 크게 만드는 데 대한 부담감? 결심이 서자 그간 내가 얼마나 쪼다처럼 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인세가 지급되지 않았다고 따지자 ‘아, 바빠서 못했는데 이달 말에 드릴게요’ 하는 식으로 퉁명스럽게 대답했던 곳이었다. 계약금 지급을 누락했을 때에는 그런 말조차 없었고.
게스트하우스에 돌아와서는 밀린 빨래를 했다. 별별 희한한 가구를 만든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빨래 건조대만큼은 하나도 만들지 않았고, 우리는 그가 수건을 너는 빨랫줄 중 한 줄을 빌렸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빨래를 일일이 집게로 잡아줘야 했다. 다음날에도 또 빨래를 했다.
저녁에는 다시 협재해수욕장으로 나가서 태국 요리를 먹고 맥주를 마셨다. 아버지와 딸이 함께 운영하는 가게였다. 돌아오는 길에 뮤직바에 들렀다. 분위기는 좋았으나 음악 소리가 너무 작았다. 뮤직바라면 귀청이 떨어지게 크게 음악을 틀어줘야지.
만화칼럼니스트 선정우가 오쓰카 에이지와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했다. 일본 순문학에 대해 ‘축소된 문화가 이미 수명이 끝났음에도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고 있’으며, ‘만화나 라이트노벨 같은 서브컬처에 얹혀감으로써 살아남는 것을 선택’해 라노베를 축소재생산 중이라고 주장한다. 생산하는 오타쿠가 사라졌다거나 모든 문화가 국경을 넘는 순간 서브컬처가 된다는 얘기, 설정에 모순이 많아야 2차 창작이 활발해진다는 주장 등은 생각해볼 거리다.
카라바조에서부터 살아 있는 국내 작가의 작품까지, 회화와 사진 80여 점을 짧은 설명과 함께 소개. 뻔한 ‘명화’는 피하면서 나 같은 문외한도 접근하기 쉽게 꾸몄다. 잭 베트리아노의 그림을 한참 보았다.
복잡계 이론을 이용해 사회구성 원리를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짜보자는 아이디어가 눈길을 끈다. 복잡한 조세법을 단순한 규칙 몇 개로 재정리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