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아쿠타가와 수상작 「파크 라이프」와 「플라워스」가 함께 실려 있다. 어떻게 이렇게 풍경을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지? 정말 감탄했고, 나중에 필사까지 했다. 천천히 문장을 옮겨 적으며 깨달은 사실은, 풍경 묘사는 심리 묘사와 함께 할 때 비로소 실감이 난다는 것.
술, 담배, 마약 등등의 기원을 무척 유머러스하게, 아마추어의 자세로 추적한다. 결론은 좀 이상하지만 내용은 아주 유쾌하고 재미있다. 무모한 실험 정신이 일품.
퓰리처상 수상자인 저자의 아들이 조현병에 걸린다. 읽는 사람이 몸이 아파질 정도로 절절하게 부모의 고통을 기록했다. 그리고 거기에 조현병을 둘러싼 치료와 탄압의 역사를 엮었다. 중간에 깜짝 놀란 전개가 있는데 스포일러가 될까봐 쓰지 않으련다. 매우 추천한다.
인간은 도대체 왜 이 모양일까? 우리는 왜 이렇게 행동할까? 신경과학자, 심리학자, 사회학자, 인류학자들이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 연구하고 분석한다. 인간 존재가 복잡하기에 그 연구 결과들도 아직까지는 하나로 모이지 않고 혼란스럽다.
1990년대 들어서 아주 야심 찬 ‘잡종 학문’(서울대 장대익 교수의 표현이다)이 생겨났다. ‘새로운 과학’을 자처하는 이 분야의 연구자들은 자신들이 인간의 마음에 관한 연구를 통합해 과학혁명을 일으킬 거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기존의 학문 경계가 잘못됐고 해롭다고까지 말한다. 듣기에 흥미진진한 만큼 반발도 많고 논쟁도 화끈하다. 진화심리학 얘기다.
736쪽짜리 책 『진화심리학』은 미국과 유럽의 여러 대학에서 입문서로 널리 읽히는 책이다. 저자 데이비드 버스는 진화심리학의 토대를 세운 인물이라고 한다. 우리 시대 가장 뜨거운 학문이 어떻게 출발했고, 어떤 관점으로 인간을 바라보며, 어떤 답안을 준비하는지 알고 싶다면 제일 좋은 교과서일 것이다. 다만 모든 교과서가 그렇듯,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많이 담지는 않았다.
전문지식 없이, 순전히 ‘뭐라는 건지 궁금하다, 지적인 재미를 맛보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책을 펼쳐든 나 같은 일반 독자에게는 선물 같은 물건이다. 전혀 어렵지 않다. 식사자리에서 화제로 꺼내면 사람들 이목을 모을 흥미로운 연구결과도 빼곡하다. 저자의 입담은 다소 심심한 듯하지만 워낙 소재가 선정적이니 넘어가자. 절반 정도는 섹스와 살인, 그리고 권력다툼 얘기다.
무엇보다 시선이 참으로 불경하다. 인간이 왜 이 모양이냐고? 그렇게 진화해서 그렇다. 이러저러한 폭력적, 성차별적, 기회주의적 본능이 그러저러한 경로로, 수만 년에 거쳐 우리 마음에 새겨졌다. 이 관점으로 주변을 둘러보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 ‘야, 말 된다, 그래서 이런 거였구나’ 하는 시원함도 맛보지만 ‘차별과 범죄행위에 과학의 이름으로 면죄부를 주는 것 같네’ 싶은 찜찜함도 따라온다.
“현상은 당위와 다르다”는 말은 충분한 항변이 될까? 수컷은 원래 암컷보다 양육에 신경을 덜 쓰는 존재라는 진술 앞에 냉철한 분별력을 발휘할 사람이 많을까, ‘그게 바로 불편한 진실’이라며 속으로 웃는 사람이 더 많을까.
나는 당위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일수록 진화심리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정한다고 사라질 움직임이 결코 아니기에. 좀 더 얇고 대중적인 책을 찾는다면 연세대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을 추천한다.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행복의 개념을 풀어쓴 교양서다.
저자는 대만의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작가라고 한다. 서러운 사연을 품은 다섯 여자귀신의 이야기를 마술처럼 푼다. 천명관의 『고래』와 비슷한데 좀 더 이국적이고 얌전하달까. 「불견천의 귀신」 편이 무척 슬프고 아름답다.
젊은 스타 작가의 공쿠르상 수상작. 술술 읽히는데 생각하게 만드니까 그런 면에서는 분명 좋은 책이다. 프랑스 맞벌이 부부의 육아 고민이 한국과 놀라울 정도로 똑같다.
30년차 통일부 공무원이 자기가 겪은 일화들을 엮었다. 이산가족 상봉 때 북한은 자기네 쪽 참가자들에게 200달러를 받는다고 한다. 북측 참가자는 남한의 가족들이 그 돈을 자신에게 줄 거라 기대한다. 돈을 준비 못한 남한 가족은 북측 친지에게 “괜히 나왔다”는 원망을 듣는다고 한다.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무책임한 인간과 한 배에 타면 안 된다는 교훈을 준다. 나는 이 소설이 불편했다거나 여기에서 신경질적인 매력을 느꼈다기보다는 솔직히 짜증이 났다. 아내는 읽다가 한 캐릭터 때문에 눈물을 흘릴 정도로 슬퍼했는데, 내가 무책임한 사람을 참 싫어하기는 하는 듯.
나 역시 포유류와 조류 애호가인 데다 은근히 인간 혐오자인지라, 거기에 잔혹한 이야기까지 즐기는 터라, 취향에 맞았다. 악취미라고 해도 할 말 없다. 하이스미스도 그런 기분으로 쓴 글들 아닐까?
2005년에 민음사에서 처음으로 하이스미스 선집이 나왔을 때 이 단편집 제목은 ‘골프 코스의 인어들’이었는데 몇 년 뒤 개정판을 내면서 표제작을 바꿨다. 하지만 11편의 작품 중 가장 뛰어난 것은 「단추」라고 생각한다. 평생 읽은 단편소설들로 추천 리스트를 작성해 보라고 해도 「단추」는 아주 높은 순위에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