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가택연금형을 받은 저자는 너무 무료한 나머지 글을 쓰기 시작했고 주제는 자기 방을 여행하는 방법이었다. 깊이보다는 재치가 있다. 이 저자가 21세기에 활약했다면 소셜미디어 스타가 되지 않았으려나. 그런데 18세기 유럽 하인들은 주인이 급료를 주지 않으면 그저 기다렸구나.
원제는 ‘Future Crimes’. 새로 등장한 범죄유형과 옛 범죄조직의 진화, 신기술을 가진 정부와 대기업의 범죄행위, 이미 등장한 로봇 범죄, 그리고 낡고 엉성한 우리의 방어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한다. 프롤로그 제목이 ‘모든 것이 연결되면서 모두가 위험해졌다’인데 그 뜻을 계속 곱씹게 된다.
자음과모음 출판사는 설립 이후 20년 동안 책을 3000종 이상 펴냈는데, 그 중 가장 두꺼운 책이 오늘 소개할 이 책, 한스 요아힘 슈퇴리히의 『세계 철학사』라고 한다. 『세계 철학사』는 자음과모음에서 절판하지 않고 현재 판매 중인 단행본 중 가장 비싼 책이기도 하다. 정가는 3만9900원.
1208쪽이면 동서양 철학의 역사를 요약 정리하기에 넉넉한 분량일까? 동양철학 부분이 충분치 않다는 지적은 할 수 있겠다. 중국철학 전체를 다룬 분량이 이마누엘 칸트 한 사람이 차지한 페이지 수에 못 미치니 말이다. 그러나 내용이 헐겁다는 얘기는 못한다. 서양 저자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색다른 관찰도 눈길을 끄는데, 예컨대 모든 중국철학은 정치학 또는 사회철학이라는 진단이나, 정치사상가로서 맹자를 루소에 비유하는 대목 등이 그렇다.
서양철학 부분에서도 그런 날카로운 평가와 비판이 재미있다. 많은 철학 입문서들이 한 사조(思潮)의 한계를 논할 때 바로 다음 세대 철학자의 주장을 빌려오곤 한다. 『세계 철학사』는 그런 쉬운 접근방식을 지양하고, 대상이 되는 학자의 시대 안에서 한번, 그리고 독자가 있는 현대의 관점으로 다시 한번 그 사상을 살핀다.
어떻게 보면 책의 구성 자체가 소크라테스의 산파술과 조금 닮았다. 예를 들어 플라톤의 사상을 소개한 뒤 이렇게 묻는 식이다. 플라톤은 도덕적인 양자택일에 몰두해 찬란했던 고대 그리스 문화와 예술을 무시했던 것 아닌가? 플라톤이 꿈꾼 ‘전능한 국가’는 전체주의의 시조 아닐까? 저자는 따로 설명하지 않으며, 독자가 답변을 궁리하는 동안 이 책은 ‘철학사 서적’에서 ‘철학 서적’이 된다.
말미에 이르면 책의 질문은 철학과 철학사 자체를 향한다. 지금 철학은 어떤 일을 할 수 있고,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여태까지의 모든 윤리학은 인간중심적이었던 것 아닐까? 이제 우리에게는 동물이나 환경에 대한 책임도 있지 않을까? 신경과학과 컴퓨터공학이 인간 의식이라는 수수께끼에 맹렬하게 달려드는 시대에, 논리학과 인식론의 몫은 뭘까?
어려운 주제들이 마술처럼 쉬운 언어에 실려 있다. 철학박사이면서 출판 편집자로 오래 일한 저자의 이력 덕분인 듯하다. 본국인 독일에서는 60만 부가 팔린 스테디셀러이고, 20개국으로 번역됐다. 한국에서도 누적 판매량이 2만 부가 넘는다고. 매끄러운 번역과 함께 만화풍의 친근한 일러스트가 그려진 한국판 표지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인생은 한 방이다’라는 부제가 붙은 ‘성공의 속성’ 챕터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교 평준화, 실력주의는 차별을 없애지만 불평등을 강화한다는 주장과 ‘전략적일 수 없다면 철학적이기라도 해야 한다’는 문구도 인상적이었다. 내가 책을 읽고 얼마 뒤 저자는 정치에 뛰어들었고, 대통령비서관이 되었다. 좀 뜻밖이긴 했다.
부실 판정을 받은 지방 사립대에서 벌어지는 암투와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 굉장히 독한 소설이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정말 현실이 이런가’ 하고 여러 번 중얼거렸다. 모르고는 쓸 수 없을 정도로 내용이 구체적이고 저자가 지방대에서 교직원으로 오래 근무한 경력이 있는 터라 안 믿을 수가 없긴 하다.
삶의 의미를 다루며, 철학책들이 다 그렇지만 ‘무엇이 정답이다’라는 얘기보다 ‘무엇은 정답이 아니다’라는 얘기가 더 많다. 특히 삶의 의미를 각자의 주관적인 가치판단에만 맡길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재수사』를 쓸 때 많이 참고했다.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했고, 우생학을 옹호해 학계에서 퇴출당한 제임스 왓슨의 자서전. 공격적으로 솔직하다. 그가 구성하는 내러티브는 여대생들을 짝사랑하던 너드가 노벨상을 타고, 마흔에 19세 여대생과 결혼하는 이야기인가 보다. 역시나 싶은 위험 발언도 꽤 나온다.
테드 강의를 책으로 펴낸 시리즈 중 한 권이고, 그래서 아주 얇다. ‘우리는 노력을 기울이는 만큼 결과물을 사랑하게 된다. 결과물을 자신과 동일시하게 되면서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소설가들이 그래서 다들 쪼잔할 정도로 비판에 민감하고 자기객관화를 못한다. 나도 예외일 리 없고.
읽는 동안 내가 저질렀던 자잘한 부정행위들이 생각나 몹시 부끄러웠다. 다른 사람들도 많이들 그런다는 말이 별로 위안이 되지는 않았다. 그 모든 것이 어떤 인지적 자원에 대한 인간의 통상적인 반응이라는 설명을 들으면, 그냥 인간에 대한 기대를 많이 접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도 아내와 내 평가가 갈렸던 작품이다. 요시다 슈이치의 다른 작품은 무척 좋아하는데도 이 소설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려웠다. 마음이 싸늘해서 그런가? 범인에 대해서는 ‘이런 인물이 있을 순 있겠다’는 정도로만 납득했다. 범인을 따르게 되는 캐릭터에 대해서는, 이런 사람은 절대로 없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