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폭력은 인간 존재의 필요조건이며, 국가는 폭력을 바탕으로 성립한다고 역설. ‘폭력은 절대 안 된다’는 말이야말로 성찰 없는 입장 표명에 불과하다는 것.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내용은 여러 서평 기사에 너무 잘 요약이 되어 있는 바람에 그다지 새롭지 않았고, 엉뚱하게도 ‘경찰이 경범죄보다 금융권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대목에 가장 공감했다. 교도소 관련 데이터를 분석해야 한다는 제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관련 도서는 싱크대 사실주의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존 오스본의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싱크대 사실주의(kitchen sink realism)’라는 문예 사조가 있습니다. 1950~1960년대 영국 소설가, 극작가, 연출자들의 운동으로, 노동계급의 모습을 다룬 사회적 사실주의 사조입니다. 중요한 장면이 부엌에서 진행되는 작품이 많다 보니 저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한국에는 ‘월급사실주의’라는 소설가 동인이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현실적으로 이야기하는 한국 소설이 드물다, 우리 시대 노동 현장을 담은 작품이 더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 작가들의 모임입니다.
결성은 지난해 했는데 곧 문학동네에서 첫 소설집이 나옵니다. 아마 8월 말이나 9월 초쯤…? 단행본을 준비하면서 저희끼리 규칙을 만들었어요.
a. 한국 사회의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는다. 비정규직 근무, 자영업 운영, 플랫폼 노동, 프리랜서 노동은 물론, 가사, 구직, 학습도 우리 시대의 노동이다.
b. 당대 현장을 다룬다. 수십 년 전이나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대해 쓴다. ‘발표 시점에서 5년 이내 시간대’를 배경으로 한다.
c. 발품을 팔아 사실적으로 쓴다. 판타지를 쓰지 않는다.
d. 이 동인의 멤버임을 알린다.
원고는 다 모였고 2차 교정 중인데 책 제목은 아직 못 정했어요. 표제가 있고 부제는 ‘월급사실주의 2023’이라고 붙일 것 같습니다. 첫 단행본이 잘 되면 멤버를 충원해가며 ‘월급사실주의 2024’ ‘월급사실주의 2025’ ‘월급사실주의 2026’ 같은 후속작들을 내고 싶다는 바람을 부제에 담았습니다.
‘월급사실주의 2023’에는 글 잘 쓰시는 소설가 11명이 모였는데, 이런 분들이고 이런 작품을 이번에 선보입니다. 작가님 이름 순서대로 소개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김의경(한경신춘문예, 수림문학상) 「순간접착제」
; 코로나19로 여러 알바를 전전하는 청년 여성과 장애 가족을 돌보는 노인 여성의 생업 유지 분투기
* 서유미(창비장편소설상, 문학수첩작가상) 「밤의 벤치」
; 학습지 교사의 노동, 인연, 정처 없는 이방인으로서의 감각
* 염기원(황산벌청년문학상) 「혁명의 온도」
; 외로움에 노조에 애매하게 한 다리를 걸치게 된 군무원 이야기
* 이서수(황산벌청년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대상) 「광합성 런치」
; 직원들의 식대 인상 요구를 마주한 IT 회사 재무팀장의 고민
* 임성순(세계문학상, 젊은작가상) 「기초를 닦습니다」
; 초짜 현장소장의 건축 현장 관행 및 알력 싸움 체험기
* 장강명(한겨레문학상, 오늘의작가상) 「간장에 독」
;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여행사, 그속에서 살아남은 신입사원 이야기
* 정진영(조선일보판타지문학상, 백호임제문학상) 「숨바꼭질」
; 지방에서 상경한 신문 편집 기자. 내 집 마련은 꿈일 뿐, 전세살이조차 위태로운 현실
* 주원규(한겨레문학상) 「카스트 에이지」
; 코인 투자로 빚을 지고 배달 라이더 일을 하는 스무 살 청년의 하루
* 지영(수림문학상) 「오늘의 이슈」
; 태국에서 근무하는 한국어교사의 불안한 현재와 미래, 그리고 작은 희망
* 최영(수림문학상) 「이해와 오해가 교차하는 방식」
; 출판, 인하우스, 영상 번역가 3인의 동상이몽
* 황여정(문학동네소설상) 「섬광」
;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의 사고 이후, 무심코 쓰고 있는 단어들을 집요하게 곱씹게 된 교사의 이야기
낄낄거리며 페이지를 넘기는 재미는 있는데, 다소 산만하기도 하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 싶기도 하다. 닌자 얘기처럼 저자의 오해나 과장 아닐까 의심스러운 대목들도 있다.
성냥 공장 노동자 파업은 실제로 영국에서 있었던 사건이라고 한다. 책 뒤에 실제 성냥을 팔았던 당시 어린이와 성냥공장, 당시 하층 가정의 식탁 사진이 실려 있다. 성냥을 파는 소년은 맨발이다.
어느 사회에서 빈곤층이 겪는 가난의 수위는 그곳의 중산층 문화가 어떤지에 달려 있으며, 현대 사회는 빈곤을 일종의 질병으로 취급한다는 지적이 가슴 을 찌른다.
책을 다 읽고 저자를 단숨에 ‘내 마음 속 주목해야 할 젊은 한국 소설가 리스트’에서 제일 위에 올렸다. 문장도 좋고, 아이디어도 좋고, 아이디어를 풀어나가는 방식도 좋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단편은 「마음에 날개 따윈 없어서」. 수록작 8편 중 4번째로 실린 글인데 이 글 앞뒤로 책의 분위기가 다소 달라진다. 나는 뒷부분의 작품들에 더 매력을 느꼈다.
저자의 주장이야 ‘베블런 효과’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유명하고, 책 내용도 읽기 전부터 대충은 알고 있었다. 엄청난 촌철살인과 유머가 가득할 줄 알았는데 막상 글은 꽤 따분했다. 인종 문제와 관련해서는 깜짝 놀랄 정도로 황당한 말들이 적혀 있고, 여성 운동 관련해서는 역시 놀랄 정도로 시대를 앞선 진보적인 이야기들이 있다. 인문학과 고전이 유한계급의 장식품 역할을 하고 있다는 데서 혼자 웃었다.
우화이자 SF이자 사실주의 소설인 신기한 작품으로, 눈물을 핥아주는 개라는 멋진 개가 나오는 이야기로, 집단 강간을 그대로 집단 강간으로 쓴 글로, 그리고 문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배설물 냄새로 오래 기억할 책.
‘신곡’을 산문체로 바꾸고 한 권으로 축약. 구스타브 도레의 판화 121점이 함께 한다. 직역본을 보며 무슨 소리인가 했던 부분이 많았는데, 이 책 읽고 이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