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오이디푸스의 선택이 인간적이라고, 그의 퇴장이 숭고하다고 해석하면 얼마간 위로가 된다. 하지만 과연 비참한 상황에 애써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지, 신의 섭리라는 건 그냥 잔인한 장난에 불과한 게 아닌지 반문하고 싶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 벌어지는 비극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학대당하다 죽는 아이에게 숭고함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그런 죽음 앞에서 의미를 찾는 것보다 그저 말문이 막히는 게 마땅한 반응 아닐까? 진실은 얼마나 추구할 가치가 있는 걸까? 시한부 인생을 사는 어린아이에게 진실을 알려줘야 할까? 이오카스테는 진실을 먼저 알았으나 그 앞에서 멈추려 했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안티프래질』을 읽는 동안 20년 전 읽었던 제러미 리프킨의 『엔트로피』를 여러 번 떠올렸다. 내게는 두 책이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두 책은 모두 세상을 보는 관점의 전환을 촉구한다. 그 새로운 시각에 따라 삶의 자세에서부터 인간 조직과 사회 전반이 근본부터 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 책들을 어떻게 분류해야 할지 애매하다. 자기계발서인지, 사회과학서인지, 아니면 사상서일지. 상식에서 출발해 역설적인 결론에 이른다는 점, 저자의 강한 확신, 간혹 미심쩍게 들리는 비약,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가득한 통찰이 공통점이다.
차이점도 있다. 탈레브는 안티프래질이라는 신조어를 창안했고, 어마어마한 투자이익으로 자기 이론을 ‘입증’했다. 그리고 『안티프래질』은 『엔트로피』와 달리 756쪽에 이르는 두툼한 책이다.
그 756쪽의 주장을 거칠게 요약해보면 이렇다. 생명, 경제, 정치, 자연은 모두 유기체이며 복잡계다. 복잡계에서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파국이 반드시 일어난다. 균형과 항상성을 아무리 추구해도 붕괴는 기어이 찾아온다. 스스로 튼튼하다고, 충격에 철저히 대비했다고 믿을수록 더 파괴적으로 무너진다.
질서와 안정에 대한 추구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보호벽을 쌓아 올리고 예측가능한 세상이라는 환상에 빠질 게 아니다. 혼돈, 모험, 손실, 고통을 받아들이고 거기서 이익을 거두는 형태로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그 시스템은 강건함을 추구하지 않는다. 끝없이 부서지면서(프래질) 강건함을 뛰어넘는다.
복잡계인 금융시장에 대처하는 방법을 생각해보자. 전 재산을 중간 정도 리스크 상품에 투자하면 언젠가 시장이 붕괴할 때 반드시 망한다. 평소 이익이 대단할 리도 없다. 90퍼센트는 안전하게, 10퍼센트는 아주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편이 낫다. 그 10퍼센트의 손실은 겁내지 마라. 경제 정책도 마찬가지. 중산층에 초점을 두지 마라. 약자는 보호하되 기업에 자유를 주고 망할 기업은 망하게 하라. 성공을 원한다면 실패를 사랑하라. 명성을 바란다면 비난을 환영하라.
세계적으로 주목 받은 전작 『블랙 스완』의 후속작이라 국내 출판사들이 이 책 판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고 한다. ‘예측 불가능한 초대형 사건’(블랙 스완)에 대한 저자의 해법이 이 책인 셈. 탈레브는 “『안티프래질』이 중심이고, 『블랙 스완』은 보조 도서”라고 자평했다.
어떤 여행보다도 좋았던 산문집. 『검은 꽃』 홍보하러 뉴욕에 갔다가 허리케인 샌디를 만나 일정이 취소되고 에어비앤비로 구한 숙소에서 몇 주 동안 컴퓨터게임에 몰두한 일화가 짠했다. 나는 뉴욕을 가본 적이 없고 그리 가고 싶지도 않다. 인구밀도가 높은 곳을 싫어해서. 여행도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사는 동네를 못 참을 것 같은 기분이어서 내년에는 집을 떠나 사람이 드문 곳에서 머물 생각이다.
인권의 개념의 기원과 발전 과정뿐 아니라 철학적 근거에 대한 논쟁, 권리들 사이의 경합과 균형 문제까지 두루 소개한다. 인권을 어느 선까지 확장해야 하느냐를 둘러싼 논란이 흥미롭다. 인간 존엄성에 대한 논쟁은 ‘우리가 어떤 사회를 원하느냐는 선택의 문제와 결부된다.’
저자는 사교육 시장에서 20여 년 간 일했고, 대치동에서 학원을 운영하며 논술을 가르치고 입시 컨설팅을 했다. 적지않은 교사들이 학종으로 최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의 동아리 활동 동료를 만들기 위해 다른 학생들이 ‘들러리’ 역할을 하도록 부추긴다는 얘기에 정신이 멍해졌다. 정말일까. ‘돼지엄마’들의 몰락과 생존 전략, 대형 인강업체들이 아이돌 키우듯 스타성이 있고 외모가 빼어난 젊은 강사를 발굴해 육성한다는 이야기에도 크게 놀랐다.
작가는 실제로 피자 프랜차이즈 콜센터에서 일했고, 한경신춘문예 당선 소식도 콜센터에서 받았다.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는 너무 생생해서 초반에는 읽기 버거울 정도였다. 결말이라고 대단히 밝은 분위기는 아니지만. 이제 상당수 회사들은 콜센터 상담 내용을 녹음하고 민원인이 폭언이나 성희롱을 하면 상담원이 전화를 끊을 수 있게 한다. 간단한 개선인데, 그렇게 되기까지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이었나 싶다.
소설가를 꿈꾸는 1인 출판사 대표가 소설가와 시인들에게 어떻게 일하고 돈을 벌면서 글을 썼는지 에세이를 청탁해서 모았다. 대학 강사나 편집자, 플랫폼 노동자, 자영업자 같은 생업은 평범한 편이고 목장에서 말을 돌봤다거나 수목장에서 유골을 안치한 작가도 있다. 이원석 시인은 주짓수를 가르친다는데 글에 주짓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딱히 무슨 테마나 일관성 같은 건 없이 어디서 한두 번 들어본 듯한 서양의 유명 괴담 21편을 모았다. 그래도 선을 넘지는 않고 과학적인 추정을 곁들여주기도 한다. 저자가 독문학자이고 서양화를 소개하는 책을 많이 썼던 터라 독일 배경의 이야기와 그림 자료가 많다.
김동식 소설집 10권. 김동식 소설집은 10권으로 끝이라는데 작가가 글을 더 쓰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한다. 출판사와 계약한 분량이 종료되었다는 뜻일까? 「히어로와 빌런은 절대 서로를 죽이지 않는다」가 유쾌하면서 여운도 있었다. 같은 주제와 비슷한 소재를 다르게 변주한 「모두가 동의해야 탈출할 수 있다」와 「돈 나오는 버튼을 누를 것인가」로는 윤리학 토론을 벌여도 좋을 것 같다.
김동식 소설집 9권. 「나 대신 출근하는 공치열」과 「뺨 때려주는 인공지능 로봇」이 좋았다. 정말 우리 모두 인공지능에게 뺨을 미리 맞아둬야 할지도 모르겠다. 자주 등장하는 고유명사 ‘보그나르’가 ‘복날’을 변형한 단어임을 한참 나중에 깨달음. 저자가 처음 인터넷 게시판에 작품을 연재할 때 썼던 필명이 ‘복날은간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