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결국 옛 어르신들이 하신 말씀이랑 결론은 같다. 행동하는 대로 마음이 따라간다. 실험 결과들이 설득력 있어서 이후로 낮은 강도라도 꾸준히 운동하고, 어깨 쭉 펴고 걸어 다니려고 노력한다. 혼자 있을 때에도 웃는 표정을 짓자는 다짐도 했다가 얼마 못가 포기.
쉬운 책 같아 보이는데 쉽지 않다는 게 함정. 그리고 ‘힐링’을 시켜주는 게 아니라 정신 차리라고 호통을 쳐준다. 질병이야말로 비관주의의 치유책이라고 하는데, 읽어 보면 이해가 가기는 한다. 그 말을 칼럼이나 인터뷰에서 몇 번 써먹기도 했다.
스터즈 터클의 『일』은 사뭇 감동적인 인터뷰집이다. 분량은 880쪽이나 되지만 콘셉트는 간단하다. 퓰리처상 수상작가인 터클은 직업인 133명을 만나 그들의 일에 대해 자세히 듣고 글로 옮겼다. 만난 사람은 다양했다. 농부, 기업 최고경영인, 환경미화원, 가톨릭 신부, 용접공, 요트 중개상, 야구 선수, 홍보전문가, 모델, 교수, 경찰, 웨이트리스, 회계사, 택시 기사, 재즈 뮤지션…… 심지어 성매매 여성도 있다.
그 많은 직업과 삶에 대해 읽다 보면 그 다채로움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몇 가지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는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는 점이다. 어떤 업계건 복잡한 세부사항과 의외의 난관이 가득하다. 그리고 업계 종사자는 거기에 감정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신문배달 소년조차 제멋대로인 배급소와 요금을 납부하지 않는 고객, 신문 도둑, 맹견으로 골치를 썩고 “배달을 하면서 사람과 개를 미워하는 법을 배웠다”고 고백한다.
다음으로 알게 되는 것은, 사람은 존경과 의미도 돈만큼이나 절실히 원한다는 사실이다. 자기 일이 만족스럽다는 전문직 종사자는 돈이 아니라 자존감과 보람을 말한다. 자기 일에 불만족이라는 일용직 노동자 역시 돈이 아니라 주변의 무시와 보람 없음을 토로한다. 많은 이가 돈을 위해 무의미를, 혹은 의미를 위해 가난을 얼마나 견뎌내야 하는지 고민한다. “일을 훌륭히 해내면 영혼이 편안해진다”는 중장비 기사가 있고 “사람을 온전히 담을 만큼 큰 직업은 없다”는 편집자도 있다.
깊은 감정을 품고, 주변 세계의 평가를 재평가하고, 내적인 가치를 찾아내고자 분투하면서 사람들은 모두 얼마간 철학자가 된다. ‘현장의 철학’이 생활 언어로 표현되는 순간은 감탄스럽다. 콜걸은 “사람은 수도꼭지처럼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라는 통찰을 들려준다. 어떤 인터뷰는 그 자체로 짧은 소설 같은 드라마다. 경찰관 출신 2년차 소방관이 자신이 전직(轉職)한 이유를 설명하는 편이 한 예다.
한국어로 번역된 터클의 책 네 권이 모두 이매진 출판사에서 나왔다. 이 출판사는 터클처럼 생생한 증언을 바탕으로 한 국내 저자의 논픽션도 의욕적으로 펴내고 있다. 정철수 이매진 대표는 “한국에서는 논픽션 작가와 독자층이 모두 얇아 아쉽다”며 “터클의 자서전을 출간한 뒤 본격적으로 국내 작가들의 인터뷰 책을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빅 히스토리라는 개념을 만든 역사학자 데이비드 크리스천, 국제 빅 히스토리 협회를 설립한 신시아 브라운, 세계사협회 회장을 지낸 크레이그 벤저민이 함께 썼다. ‘빅 히스토리라는 접근법이 왜 최근에야 나타났는가’에서부터 ‘왜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중요한 사건이 더 많은 것 같은가’, ‘가깝고 먼 미래에 계속될 추세는 무엇인가’ 같은 질문에도 흥미롭고 도전적인 답안이 준비되어 있다. 여성과 제3세계 역사에 대한 존중도 반갑다.
프랑스에서 20만 부 넘게 팔렸다는 그래픽 노블. 원작의 설정을 꼼꼼히 고증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낸다. 하지만 작품의 진짜 묘미는 이야기보다 그것을 보여주는 색다른 방식에 있다. 독자는 이 책을 읽다가 책장을 둘둘 말아야 하고, 불빛에 비춰야 하고, 사방팔방으로 눈을 돌려야 하고, 때로는 거꾸로 돌려봐야 한다.
화장실을 3분 이상 사용하면 불이익을 주겠다고 협박하거나, 희망퇴직을 거부하는 직원이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게 막거나, 휴게실이 없어 사람을 화장실에서 쉬게 하거나, 아니면 아예 화장실이 없거나…… 이것을 야만이 아닌 다른 어떤 단어로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읽는 내내 부끄러웠다.
‘용’은 진-한나라, ‘독수리’는 로마다. 비슷한 시기 출현해 이후 각각 동양과 서양의 모습을 상당 부분 규정한 두 제국은 비슷한 듯 달랐다. 그 닮은 부분에 대해서는 혹시 역사의 일반 법칙이 여기에 숨어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유가와 한나라를 비판하고 법가와 진나라를 높이 평가하는 저자의 관점도 흥미롭다.
양자물리학자가 쓴 과학 교양서. 우연이라는 열쇠말로 물리학, 생물학, 심리학, 천문학, 통계학, 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다채로운 이야기를 펼친다. 질문 형태인 제목에 대한 저자의 답변은 ‘아주 많이’다. 우주의 탄생에서부터 한 기업의 성공에 이르기까지 우연이 개입하지 않은 사건이 없고, 기실 인생 자체가 우연 게임이나 다름없다는 거다.
얇은 책인데 내용이 무척 알차다. 포퓰리즘의 핵심에는 ‘순수한 민중 대 부패한 엘리트’라는 피해망상적인 구분 짓기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구분 짓기는 이데올로기로서 홀로 설 정도의 중심이나 내용이 없다. 그래서 포퓰리즘은 ‘숙주 이데올로기’와 결합하며, 그때 좌파 포퓰리즘이냐 우파 포퓰리즘이냐 하는 구분은 무의미하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오이디푸스 왕』과 을유세계문학전집의 『오이디푸스 왕 외』에는 공통적으로 「오이디푸스 왕」과 「안티고네」가 실려 있다. 거기에 더해 민음사 판에는 「아이아스」와 「트라키스 여인들」이, 을유문화사 판에는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이 있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서 오이디푸스는 자기 운명에 대해 항변하며, 최후에는 구원도 받는다. 그 때문에 오히려 「오이디푸스 왕」이 애써 부여 받은 의미들이 퇴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