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한창 하드보일드 추리물을 탐독할 무렵 기대없이 집어들었다가 반했다. 나중에 보니 나 말고도 팬이 많더라. 후반부의 긴박감도 대단했고, 주인공과 적들이 단순히 뒷골목 탐정이나 범죄자들이 아니라 전쟁 후유증을 앓는 사람들이라서 더 깊이 있게 느껴졌다. 한국 출판사와 번역자가 바뀔 때에도 번역 제목은 변하지 않았는데 ‘0시 1분’도 아니고 ‘미드나이트 플러스 원’도 아니고 왜 ‘심야 플러스 1’인지 모르겠다.
책의 내용인 ‘무지원 단독 남극 도보 횡단’에는 별 관심이 없는데, 순전히 작가의 전작 『플라워 문』에 반해서 찾아 펼치게 됐다. 필력은 역시 훌륭하지만 이야기 자체가 결말이 애매하다. 애초에 왜 이 소재에 저자가 끌렸는지 잘 모르겠다.
1920년대 미국 오클라호마 주에서 원주민들을 상대로 벌어진 끔찍한 연쇄 살인사건과 미국 연방수사국의 탄생. 흥미진진한 수사극이면서 불편한 과거사를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가를 묻는 진지한 논픽션이기도 하다. 읽으며 마틴 스콜세지가 정말 좋아할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판권을 샀다고.
대단한 야심작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인간의 심연보다는 폭력 그 자체를 붙잡으려 하며, 그것은 작가의 스타일이 된다. 생존자와 사망자를 예상하기 어렵고, 퇴장의 타이밍은 꽤나 공식에서 벗어나 있다. 그것은 작가적 고집이다.
마음챙김 명상에 호기심도 있고 뇌과학자가 썼다고 하니 영 허무맹랑한 얘기는 아닐 것 같아서 집어 들었으나 책을 읽어도 잘 모르겠다. 마음챙김 명상은 몇 달쯤 시도하다 포기하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기간제 교사들의 이야기. ‘쪼개기 계약’이라니, 21세기 대한민국에 기괴한 현장이 참 많다. 갑질 피해 사례를 읽다 보면 인간이 싫어진다. 저자는 전국기간제교사노동조합을 만들고 첫 위원장이 되었다. 2019년에 나온 책인데 그 사이에 얼마나 현장이 달라졌을지 모르겠다.
상큼하고 맛깔스러운 허브 에세이(?). ‘아무 거나 배불리 먹으면 그만’이라는 나 같은 사람조차 머윗잎, 시소잎, 방앗잎, 주키니호박, 샬롯, 갈랑갈, 구좌 당근, 크레송의 맛을 상상하게 만든다. 이 책 때문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 책을 읽은 뒤로 양배추나 양상추 등을 제법 열심히 먹고 있다.
소설가 15명이 ‘소설, 한국을 말하다’라는 제목으로 초단편 소설을 매주 한 편씩 문화일보에 연재합니다. 이승우 은희경 김연수 이기호 김금희 곽재식 구병모 김멜라 김화진 이서수 정보라 정지돈 조경란 작가님과 김영민 교수님 등이 참여하네요.
저는 프롤로그 성격의 1회를 썼습니다. ‘K-정신’을 소재로 한 글입니다. 제가 붙인 제목은 「소설, 한국을 말하다 2033」이었는데 문화일보에서 제목을 조금 수정했습니다.
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2023090401032412056001
제가 기획하고 참여한 앤솔로지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월급사실주의 2023』이 나왔습니다.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가 11명의 단편소설집입니다. 최근 5년 이내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현실적으로 발품을 팔아 취재해서 작품을 썼습니다.
저는 코로나 사태를 겪는 여행사 직원 이야기를 썼어요. 이번 단행본이 잘 팔리면 멤버를 더 모아 ‘월급사실주의 2024, 2025, 2026…’ 하는 식으로 소설가들의 눈으로 매년 당대 한국 사회와 노동을 다루는 소설집을 내고 싶네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22167985
제가 쓴 기획의 말 아닌 기획의 말을 옮겨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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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 말을 대신하여
이 글의 제목이 ‘기획의 말을 대신하여’인 이유가 있다. ‘월급사실주의’라는 문학 동인과 이 단행본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바는 있는데, 다른 참여 작가들도 그 생각들에 다 동의하는지 자신이 없다. 내가 대표로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표 같은 건 안 정했고 앞으로도 정하지 않으면 좋겠는데, 그 또한 내 개인 의견이다.
월급사실주의라는 이름은 다분히 1950~1960년대 영국의 싱크대 사실주의(kitchen sink realism)를 의식했다. 지난해 동인 참여를 제안하면서 작가 분들께 미리 말씀드린 문제의식과 규칙은 있다. 문제의식은 ‘평범한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사실적으로 그리는 한국소설이 드물다. 우리 시대 노동 현장을 담은 작품이 더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규칙은 이러했다.
① 한국사회의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는다. 비정규직 근무, 자영업 운영, 플랫폼 노동, 프리랜서 노동은 물론, 가사, 구직, 학습도 우리 시대의 노동이다.
② 당대 현장을 다룬다. 수십 년 전이나 먼 미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를 쓴다. 발표 시점에서 오년 이내 시간대를 배경으로 한다.
③ 발품을 팔아 사실적으로 쓴다. 판타지를 쓰지 않는다.
④ 이 동인의 멤버임을 알린다.
이런 문제의식과 규칙으로 동인을 만들어 책을 내자는 제안을, 글 잘 쓰고 비슷한 문제의식을 품은 듯한 소설가 스무 분 남짓께 보냈다. 공감하지만 여유가 없다는 분도 계셨고 참여하기로 했다가 건강 문제로 단행본 작업에서 하차한 분도 계셨다. 나를 포함해 참여 작가 열한 명을 모은 뒤 몇몇 출판사에 기획안을 보냈다.
문학동네에서 기획안을 반겼고, 책 제목에는 ‘월급사실주의 2023’이라는 부제를 붙이기로 했다. 이 기획이 잘되면 멤버를 충원해가며 ‘월급사실주의 2024’ ‘월급사실주의 2025’ ‘월급사실주의 2026’ 하는 식으로 작업을 이어나가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한국 소설가들이 동시대 현실에 문제의식을 갖고 쓴 소설이 그렇게 쌓이면 멋지겠다.
월급사실주의 작가들의 합의는 여기까지다. 우리는 세부 이론이나 단체 규정을 만들지 않으며, 선언이나 결의문을 채택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소설을 쓴다.
‘이런 시대에 문학을 왜 읽어야 하느냐’ ‘문학의 힘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같은 질문을 종종 받는다. 문학계에 한 발 걸친 사람이라면 요즘 다들 비슷한 질문을 받는다. 문학의 힘이 잘 보이지 않으니 나오는 질문이다. 돈의 힘이 뭔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다.
내 귀에는 궤변처럼 들리는 답이 있다. ‘문학의 힘은 무력함에서 나옵니다’ ‘문학은 힘이 없기 때문에 힘이 있습니다’ 같은 이야기. 공허한 말장난 같다. 나는 문학에 힘이 없는 게 아니라 힘 있는 문학이 줄어든 것 아닌가 의심한다.
‘힘있는 문학’이라는 말을 들으면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가 떠오른다. 이 소설은 힘 있고 아름답다. 대공황을 이야기하지만 대공황만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대공황 시기 사람들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그럼으로써 시대를 초월한 무언가를 말한다.
『분노의 포도』는 대공황이 거의 끝날 무렵 나왔는데, 출간되자마자 격렬한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소설 속 묘사가 거짓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그때까지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겪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몰랐던 것 같다. 당시 그들은 미증유의 재난 속에 있었는데, 원래 거대한 사건은 안에서 평가하기 어렵고 처음 보는 일이라면 더 그렇다.
한국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했고, 이후 한국의 노동시장은 정규직 중심의 1차 노동시장과 비정규직 중심의 2차 노동시장으로 분리됐다. 이십년이 지난 2017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벌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8.8퍼센트가 외환위기의 영향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꼽았다. 비정규직이라는 단어 자체가 외환위기 이전에는 거의 쓰이지 않았다. 관련 정부 통계도 없었다.
2022년 비정규직 노동자는 815만 명이 넘었다. 이제 한국인 절반가량은 본인이 비정규직이거나 가족이 비정규직으로, 이것은 2020년대 한국 사회 불평등의 핵심 중 하나다. 그런데 나는 2000년대 들어 그렇게 비정규직이 늘어나던 시기, 한국 노동시장이 둘로 쪼개지던 때에, 그 실태나 증가세를 사실적으로 알리고 비판한 작품으로 한국소설보다는 드라마나 웹툰이 먼저 떠오른다. 백수나 시간강사가 등장하는 소설들을 놓고 노동시장 이원화를 지적한 거라고 주장하고픈 마음은 안 든다.
황석영 작가는 2010년대 중반 몇몇 언론 인터뷰에서 《미생》과 《송곳》을 높이 평가하며 “문학이 그런 서사를 다 놓치고 있다니!” “한국문학의 위기는 한국문학 스스로가 현실에서 멀어지면서 자초한 게 아닌가” “한국 젊은 소설가들이 바로 이런 당대의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도 동감이었다. 《미생》과 《송곳》 이전에 비정규직 문제를 다뤄 큰 호응을 얻은 드라마 《직장의 신》이 일본 드라마의 리메이크였다는 사실에 이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한국 소설 중에는 원작으로 삼을 마땅한 작품이 없었던 걸까. 과연 한국 소설가들이 탄광의 카나리아고 잠수함의 토끼 같은 존재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아름다운 노래가 재난을 당한 이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고 그것은 예술의 힘이다. 때로는 찢어지는 비명이 다가오는 재난을 경고할 수 있고 그것 역시 예술의 힘이다. 장송곡이 필요한 순간이 있고 사이렌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
지금 새로운 재난이 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게 뭔지, 거기에 어떤 이름이 붙을지는 잘 모르겠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 몇몇 천재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나 부동산에 매겨지는 가격은 가파르게 상승하는데 성실한 노동의 가치는 추락한다. 플랫폼과 인공지능이 노동시장을 흔든다. 일에서 의미나 보람을 찾는다는 사람은 드물다. 이런 현상들을 ‘자본가 대 노동 계급’이라는 과거의 틀로 파악하고 대처할 수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저 현상들의 한가운데 있으며 그 현상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원인도 모르고 대책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알고, 그 고통에 대해서는 쓸 수 있다. 후대 작가들은 알 수 없는 것, 동시대 작가의 눈에만 보이는 것도 있다. 스타인벡도 통화 긴축이 대공황을 불러왔다거나 재정지출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얘기를 소설에서 쓴 것은 아니었다. 이런 마음으로 기획안을 쓰고 작가들을 모았다.
치열하게 쓰겠습니다.
한겨레신문에서 소설가 10명이 한국 교육 현실을 소재로 한 초단편 10편을 격주로 연재하는 기획을 시작합니다. 저는 1회에 원고를 실었습니다. 제목은 「킬러 문항 킬러 킬러」라고 합니다.
이 시리즈에는 정진영 주원규 한은형 최영 정아은 지영 염기원 서윤빈 서유미 작가님이 참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0631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