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작가 형사 부스지마』의 프리퀄. 아직 소설가가 아닌 부스지마가 모리어티를 염두에 두고 만든 게 아닐까 싶은 강력범죄 교사범 ‘교수’와 대결한다. 작중에서는 내내 불쾌한 독설가로 묘사되지만 이 정도면 최고의 직장 동료 아닌가? 어느 회사에서건 부스지마 같은 상사가 있으면 후배들이 줄줄 따를 것 같다.
문학상 심사위원도 살해당하고, 편집자도 살해당하고, 원로 소설가도 살해당하고, 작품 판권을 사간 방송사 프로듀서도 살해당한다. 그런데 이 사건들을 수사하는 사람은 베스트셀러 추리소설 작가로 투잡을 뛰는 형사. 문학계, 출판업계 종사자라면 그야말로 뼈 맞는 느낌으로, 그런데 너무 웃겨서 눈물을 흘리며 읽게 될 거다.
두 부부가 아이들과 함께 홈 파티 요리를 먹다 최근에 직장이나 동네에서 목격한 이상한 사건을 이야기하고 탐정 격인 한 남자가 ‘해답’을 내놓는 패턴의 반복. 코지 미스터리라고 하기에도 너무 코지한 거 아닌가 싶고, 추리도 억지스럽게 느껴지는 에피소드들이 있다. 그래도 심심풀이로 읽기에 나쁘지 않다.
푹 빠져들어 읽었다. 「불륜 연구소 취재기 」, 「바깥 세계 」, 「충청도에 있는 교회」가 특히 좋았고, 「흩어진 아이돌」은 대단했다. 천연덕스럽게, 때로 뻔뻔하게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일들을 재잘거리다 갑자기 우리의 인식 너머에 있는 것, 때로는 절대자에 대해 날선 질문을 던진다. 그 순간 독자들은 절대자의 의도와 가르침을 의심하게 되고 여운이 오래 가는 공포를 맛본다.
침팬지에게도 기초적인 도덕 감각이 있고, 인류의 종교적 행동은 기원이 최소한 수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데 유교, 도교, 힌두교, 불교, 그리스 철학, 이스라엘의 유일신교 같은 주요 종교와 사상은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즈음에 불쑥 세계 곳곳에서 나타났다. 이는 우연의 일치라기에는 너무 놀라운 현상이라 여러 분야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다. 카를 야스퍼스는 이 시기를 ‘축의 시대’라 이름붙이기도 했다.
수녀였다가 환속한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의 740쪽 짜리 저작 『축의 시대』는 이 시기를 깊이 들여다본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고, 농업 발전으로 인류가 먹고 살만해지자 비슷한 때 여기저기서 체계적인 교리가 나왔을 뿐’이라며 심드렁해 하실 분도 있겠다. 그런 분들께 나는 이 책을 두 가지 이유에서 적극 추천한다. 먼저 동서양 고전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크게 넓혀준다는 점에서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왜 지금도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가? 구약성서의 야훼는 왜 그토록 무섭고 혼란스러운가? 논어는 어떤 면이 혁신적인가? 암스트롱은 고대 사회의 역사와 삶의 조건을 상세히 설명하며 이런 질문에 답한다. 암흑시대를 경험한 그리스인들은 비극적인 세계관 속에서 ‘강렬한 삶’을 꿈꿨다. 구약에는 유대인들이 다신교 전통을 버리고 전쟁신인 야훼를 선택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공자는 우리 모두에게 완전한 인간인 ‘군자’의 잠재력이 있으며, 그 길은 하늘에 치성을 올리는 데 있지 않고 자기계발에 있다고 말했다.
이 책을 읽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종교가 아편이 아님을 깨닫게 해준다는 점이다. 해당 시대상황 속에서 바라보면 축의 시대 사상가들이 얼마나 급진적이었는지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종교의 창시자들은 전혀 종교적이지 않았다. 그들은 모든 것을 의심하며 질문을 한계까지 밀어붙였고, 맹신과 황홀경을 부정하고 행동과 생활감각을 중시했다. 이 통찰은 종교가 근본주의 신앙으로 퇴행하는 현대에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축의 시대』는 교양인 출판사의 대표작이자 스테디셀러다. 정영목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가 옮겼는데 작업에 4년 가까이 시간이 걸렸지만 번역 원고가 워낙 유려했다고 한다. 종교학자들의 추천과 독자들의 호평 속에 관련 분야에서는 필독서로 통하는 분위기다. 여러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될 정도로 깊이 있지만 일반 독자에게도 충분히 흥미로울 책이다.
나는 이 작품을 읽었다는 사실을 자주 까먹는다. 결말이 인상적이지 않았나 보다. 그래도 다시 읽을 때에는 ‘아, 이거 읽었었지’ 하고 바로 알아차리는데 도입부가 인상적이어서 그렇다. 중반에는 테러와의 전쟁을 빗대는 것처럼 보였는데, 후반에 가니 1차 세계대전 직전이 연상된다.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도 나오고.
노인의 전쟁 시리즈 외전. 같은 세계관이라도 여러 시점으로 진행되는 데다, 인물들이 대부분 회색지대에 있는 직업 관료들이고 모험의 성격도 복잡한 첩보극이라 새로운 박력이 있다. 클라이맥스가 아주 호쾌하다. 그런데 결말은 ‘다음 편에 계속.’
이 작품과 『마지막 행성』을 합쳐서 한 편으로 썼다면, 그리 고 ‘협상하는 용기’라는 주제를 여기에 쏟았다면 훨씬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번역자가 바뀌었는데, 전작 번역본들에서는 늘 존댓말을 썼던 히코리 디코리가 갑자기 반말을 써서 당황했다. 내용상으로도 말이 안 된다. 조이를 숭배하는 종족인데. ‘신경쇄약’ 같은 오자도 민망.
가족을 잃은 남자가 군인을 거쳐 정치 지도자가 되면서 새 가족을 다시 일구는 것으로 노인의 전쟁 3부작이 마무리된다. 뒷부분에서는 작가가 그 새 가족을 너무 편애하는 바람에 이야기가 종종 덜컹거렸다.
장엄한 비극이고, 노인의 전쟁 시리즈 작품 중 가장 뛰어난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특정 용도로 만들어진 도구였던 재러드 디렉과 제인 세이건이 인간성을 획득하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선악이 모호한 것도 높은 작품성에 한 몫 한다. 작가의 유머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의 어둡고 건조한 톤이 그 유머보다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