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당신 틀렸다’고 혼내지 않아서 좋았다. ‘한국어 문장은 영어와 달리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구조라 문장 요소들 간의 거리가 일정해야 읽기 편하다’는 가르침만으로도 집은 보람이 있다.
인간으로서, 개인으로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커다란 비극들이 벌어진다. 전쟁이 일어나고, 난민들이 바다에 빠져 죽고, 바닷물의 온도가 오르면서 독을 품은 물고기들이 나타난다. 쥴퓌 리바넬리는 복잡한 현상과 섬세한 감정을 단순하지만 우아한 문장으로 포착해 전달하는 명수다. 이 소설에는 마법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고, 마법을 부리는 사람도, 현실에서 불가능한 사건도 없다. 하지만 책장을 덮을 때 마법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찬가지로 구원이라는 단어 역시 나오지 않지만, 마법처럼 구원을 말하는 소설이다.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이 기획한 대중 강좌를 엮었다. 제목이 좀 깨긴 한다. 한상진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의 ‘공동체와 사회: 개인도, 이념도, 서구도 아니다’를 주의 깊게 읽었다. 인권을 개인의 권리로만 파악하는 관점의 한계를 지적하고, 정서적 친밀성을 인권친화적 공동체의 기반으로 제안한다.
아주 얇은 책. 현대사회는 병을 앓고 있는데, 그것은 ‘긍정성의 과잉’이다. “하지 마라”가 아니라 “할 수 있다”가 문제인 것이다. 그 결과 새로운 상황을 시작할 수 있는 강력한 분노의 에너지조차 사라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2016년에 출간된 책인데 한국 문학장은 그 이후 꽤 바뀌었다. 2000년대 작가들이 가까이에서만 겨우 보이는 스타일의 차이를 추구하고, 평론가와 마니아들이 폐쇄적으로 그 ‘차이’를 소비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고 비판하는 대목에 밑줄.
한국이라는 특수한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에 특수한 세계인식을 지니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예를 들어 한국인들은 밤거리에 대한 두려움이 다른 나라 국민보다 옅은 것 같다. 전쟁에 대해서도 그렇다. 한국인 대부분은 전쟁을 경험한 적도 없으면서 자신들이 전쟁 중인 국가에 있다는 말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자주 들었다. 그러다 보니 전쟁을 별 것 아니라고 여기는 듯하다.
이번 칼럼을 쓰기 위해 아자 가트의 『문명과 전쟁』을 다시 들춰보다 든 상념이다. 이 1064쪽짜리 벽돌책을 읽다 보면 문명의 기본 상태가 전쟁과 휴전의 반복이며, 종전은 천국이나 완전고용처럼 개념으로만 존재하는 단어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종전 선언에 대해서도 우리가 혹시 과한 기대를 품는 건 아닐지 의심하게 된다.
책의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면 아마 ‘문명과 전쟁은 서로를 만들며 공진화(共進化)했다’ 정도겠다. 그러나 이런 요약은 별 의미 없는 것이며, 책의 묘미는 방대하고 꼼꼼한 ‘어떻게’에 있다. 책은 무려 200만 년이라는 기간을 원시사회, 전근대, 근대 이후라는 세 부분으로 나눠 다룬다.
텔아비브대학 석좌교수인 저자는 인류의 초기 상태가 결코 평화롭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거의 필연적이라고까지 보이는 원시 전쟁의 원인들을 하나하나 거론한다. 저자는 쉽게 탄식하는 대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유기체가 동족과 폭력적으로 경쟁한다’고 냉정하게 지적한다. 동시에 책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들 간에는 전쟁이 잘 벌어지지 않는다는 가설을 세심히 점검하면서도 섣부른 낙관은 경계한다. 기마병이라는 신무기가 봉건제도를 낳았다는 등의 흥미로운 분석들이 그 사이를 빼곡하게 채운다.
빅뱅에서 시작하는 이른바 ‘빅히스토리’ 도서들이 우주에서 굽어보는 지구를 보여주려 한다면, 이 책이 그리는 풍경은 대략 성층권 정도에서 내려다 본 인간 사회일 것 같다. 그리고 그 높이에서만 포착되는 진실도 있다. 같은 이스라엘 저자인 유발 하라리의 책들과 비교하면 좀 더 딱딱하고 전쟁이라는 한 주제를 보다 깊이 파고드는 편이다.
무지막지한 두께와 쉽지 않은 내용에도 불구하고 국내 출간 2년도 안 돼 9쇄를 찍었다. 교유서가 출판사의 최연희 실장은 “밀도와 열량이 높은 책”이라며 “팀을 짜서 세미나 형태로 읽고 소화하는 독자들이 많다”고 전했다. 벅찬 상대를 만나면 인간은 협업한다. 전쟁도, 독서도.
참 이상한 동화다. 은하철도를 타는 과정도 그렇고, 은하철도에서 겪는 일들도 그렇고, 결말도 그렇고. 슬픈 꿈을 꾸고 나서 슬픈 소식을 듣는데, 주변 사람들이 그걸 알고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실제 이 책의 내용도 그러하다. 평범하지 않았던 작가의 삶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이 든다.
기즈키 겐타로 할아버지가 주인공이며, 그가 어떻게 하반신 장애을 겪게 됐는지, 미사키 요스케와 어떻게 만났는지가 나온다. 시즈카 할머니는 나오지 않는다. 나카야마 시치리는 2020년에 매달 책을 한 권씩 쓰는 프로젝트에 도전해서 성공했다는데, 그저 부러울 따름.
시즈카 할머니 시리즈 3편. 할머니가 나고야에서 도쿄로 이사하는 것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겐타로 할아버지가 안 나오나 싶었지만 바로 등장해주신다. 음악 미스터리 시리즈의 주인공 미사키 요스케도 깜짝 등장한다. 미사키가 본격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펼치기 전, 사법연수원생일 때 시즈카 할머니의 제자였다는 설정.
시즈카 할머니 시리즈 2편. 1편인 『시즈카 할머니에게 맡겨줘』가 상당히 황당하게 끝나는데, 2편은 프리퀄이라 전편의 결말에서 이어지지는 않는다. 1편의 가쓰라기 기미히코와 고엔지 마도카 커플이 나오지 않지만 대신 『안녕, 드뷔시』의 고즈키 겐타로 할아버지가 나온다. 겐타로가 바로 휠체어 탐정. 머리 좋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미스터리를 척척 풀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