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소련이 해체됐어도 『동물농장』에는 여전히 커다란 힘과 가치가 있다. 이 소설은 인간을 억압하는 체제가 어떻게 등장해서 사회를 지배하게 되는지 섬뜩하도록 생생하게 묘사한다. 특히 억압 체제를 타도하겠다는 이상이 어떻게 새로운 억압이 되어 가는지 그 과정을 보여준다. 나폴레옹은 행정가로서는 무능하지만 정치적 감각은 놀라울 정도로 탁월하다. 그는 물리적 위협뿐 아니라 심리적 위협을 능숙하게 활용하며, 심리적 위협의 효과가 훨씬 더 크다. 동물들은 나중에 사실상 그의 인질이 되어 버린다.
이 무시무시한 소설은 감시 기술과 권력의 끔찍한 결합 가능성을 단순히 그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권력이 그런 기술을 언제든 탐닉하고자 함을, 그것이 권력의 본성임을, 그리고 그 결합이 어느 단계에 이르면 굉장히 공고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오웰의 상상은 너무나 설득력이 있어서 읽다 보면 누구나 압도된다. 『멋진 신세계』는 현실이 되었고 『1984』의 예상은 빗나갔다는 말을 가끔 듣는데,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1984』는 이미 세상을 바꾸었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이 책을 읽은 모든 사람들이 겁에 질려서 이런 미래를 막아야 한다고 수십 년간 노력을 했다고, 그게 이 책의 힘이라고.
바둑을 사랑하는 기자의 바둑 에세이.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을 관전하며 생각하고 느낀 내용이 3분의 2 정도 되고, 바둑에서 배울 수 있는 리더십과 삶의 자세가 나머지 3분의 1 정도다. 이 9단이 5국 때 멋지게 이기고 싶어 과욕을 부렸다고 분석한다.
조선 선비들은 인격적 귀신을 부정하는 듯했지만 기록도 여럿 남겼고 나름의 귀신론도 몇 가지 펼쳤다. 조선시대 귀신 설화와 담론에 대한 분석도 흥미롭지만 연구자인 저자가 현대 한국에서 보고 들은 굿과 무속인 이야기도 재미있다.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읽다 보면 조금이라도 반드시 기분이 좋아지는 책’으로 분류하고 싶다. 아주 예쁜 책이기도 하고. 소설, 술, 삶은 모두 적당히 즐기기에는 괜찮은 것들 같다.
‘베이커가 특공대’로 일했다는 혼혈 소년과 어린 시절의 김내성이 평양에서 만나 함께 사건을 수사한다는 설정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 소설가 소설이자 메타픽션이기도. 주석까지 다 읽어야 한다. 윤해환은 조영주 작가의 필명.
이즈음에는 날씨가 너무 좋아서 HJ와 하루에 두 번, 그것도 길게 산책을 나가기도 했다. 그날 낮에는 새롱이가 지쳐 쓰러질 때까지 산책을 시키고, 해가 진 다음에는 HJ와 옆 동네 도서관에 갔다. 개는 씻길 때마다 가정폭력을 당하는 아이처럼 몸부림을 쳤고, 씻기고 나면 한동안 원망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읽어야 할 전자책이 많았으므로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HJ가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동안 나는 근처 편의점에서 왕돈가스 도시락과 맥주를 사 왔다. 커다란 도시락을 전자레인지로 데우고는 뜨거워서 제대로 들지 못해 쩔쩔 매며 도서관 옆 작은 녹지로 왔더니 HJ는 이미 벤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편의점 도시락을 먹고 맥주를 마시는 동안 HJ는 도서관에서 빌린 홍정욱의 신간 에세이를 읽었다. 해는 졌지만 가로등이 밝아서 책을 읽고 식사를 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공기는 선선했다. 나는 아무 근거 없이 홍정욱이 정치의 꿈을 버리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HJ는 책을 조금 읽더니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맛이 궁금했던 광화문 맥주를 먼저 한 캔 비우고 그 다음에 버드와이저를 마셨다. GS25는 몇 년 전부터 국내 양조장들과 손잡고 한국 지명을 붙인 맥주 시리즈들을 내고 있다. 남산, 동빙고, 서빙고, 경복궁, 해운대, 평창, 여수, 성산일출봉 등. 그런데 딱히 그 맥주들이 해당 지역과 깊은 관련이 있지는 않다. 바다처럼 시원한 맛이니까 해운대라는 식이다.
광화문은 그런 한국 지명 맥주 시리즈 중 처음으로 나온 상품인데, 역시 캔 라벨에 세종로 주변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다는 점 외에는 광화문 일대와 별 관련은 없다. 맥아는 독일, 덴마크, 네덜란드산이고, 홉은 미국과 독일산이다. 한약재인 맥문동이 들어갔다는데, 상품 개발자들의 고심이 느껴진다. 엠버에일이고 맛은 무난했다.
이제는 잘 안 가네, 광화문
청춘 10년을 거기서 보냈죠, 뜨겁게
좋은 추억이 훨씬 더 많아요
A 선배와는 서울시청 근처의 이나니와 우동 전문점에서 만났다. 이나니와 우동은 이날 처음 먹었다. 사누키 우동, 이나니와 우동, 미즈사와 우동이 일본의 3대 우동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흔히 먹는 면발이 통통한 우동은 사누키 우동이고, 이나니와 우동은 소면처럼 생겼다. 350년의 전통이 담긴 음식이라지만 값비싼 요리는 아니다. 우리로 치면 잔치국수쯤 되는 걸까?
나는 냉우동을 먹었다. 12시가 되기도 전에 가게 앞으로 길게 줄이 늘어섰고, 미쉐린 가이드에서 빕 구르망으로 선정된 가게이기도 하지만 특별히 맛있다고 느끼지는 못했다. 생소한 음식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고, 오랜만에 만난 A 선배와 즐겁게 수다를 떠느라 식사에 집중하지 못해서이기도 했다.
나는 A 선배와 세 번이나 같은 팀에서 일했다. 사회부 사건팀, 정치부 여당팀, 정치부 야당팀. 사실 그 여당팀과 야당팀은 같은 팀이었다. 17대 국회에서는 여당이었던 당이 19대 국회에서는 야당이 되었을 따름이다. 야당팀에서 일하다가 나는 회사를 그만뒀고, A 선배는 야당팀장을 거쳐 정당팀장이 되었다. 선후배들의 근황을 듣던 중 내가 내심 존경하던 K 선배가 모 의원 캠프로 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놀랐다.
나로 말하자면 몇 년 전부터 여러 대선 주자 캠프로부터 도망 다니는 중이었다. 제안들은 다양했다. 만나자거나 자문 전문가 모임에 참여해 달라거나 대담을 하자거나 책을 같이 내자거나. 그런 때 중간 다리 역할을 아는 기자가 맡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정치권으로 갈 거냐는 내 질문에 A 선배는 손사래를 쳤다.
그가 식사를 샀고, 내가 커피를 사기로 했다. 근처의 스타벅스 매장에 갔는데 손님이 너무 많아서 앉을 수가 없었다. 테이크아웃으로 음료를 받아 나와서 어디에 갈까 주위를 둘러보다가 덕수궁에 들어갔다. 입장료 1000원이 전혀 아깝지 않은 멋진 도심 공원이었다. 아주 조용하고 쾌적해서, 덕수궁에 들어간다는 아이디어를 낸 자신을 칭찬하고 싶었다.
석조전을 지나 덕흥전, 함녕전 방향으로 걸어가면서 우리는 구한말에 대해, 또 요즘 정치인들에 대해, 세대론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가 친하게 지냈거나 높게 평가한 몇몇 정치인들의 근황에 대해 내가 물었고 A 선배가 대답해주었다. 선배의 설명은 명쾌했고 납득이 갔다. 하지만 그의 세대론에 대해서는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주말은 첫째 조카의 생일이었다. 동생 부부의 초대를 받아 부모님 댁에서 연 생일 파티에 참석했다. 조금 멋쩍긴 했다. 이 아이의 돌잔치에도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물 대신 현금만 보냈다. 둘째 조카 돌잔치에도 불참했다. 그때는 돈은 보냈던가?
그러고 보면 새롱이를 키워서 가장 혜택을 본 사람은 우리 부모님이다. 몇 년 동안 발길이 뜸했던 장남과, 최근 들어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지 않게 된 큰 손녀를 그 강아지 덕분에 자주 보게 됐으니. 개를 키우는 데 필요한 비용은 물론 전부 내가 댄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모님의 건강에도 새롱이가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큰 조카에게는 선물로 애견 이동 가방을 사주었다. 하지만 똑똑한 아이는 대뜸 그 선물이 그녀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삼촌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알아차렸다. 생일 파티를 치른 뒤에는 새롱이를 데리고 나가 산책을 시켰다. 돌아와서 씻기고 말릴 때 개는 또 흥분해서 날뛰었다. 그러다 결국 내 손을 피가 나도록 물었다.
이제 한국에서 가장 흔한 가구 형태가 1인 세대다. 시네마 침대는 내게는 그다지 유혹적이지 않고 개들과 함께 갈 수 있는 바는 많이 생기면 좋겠네. 인용된 문구 중 ‘사회적 가면을 모두 벗기면 진정한 자아가 아니라 방어능력이 없는 인간이 남을 뿐’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고전에서 요즘 한국 소설까지 작품의 첫 문장과 그에 대한 단상을 엮었다. 나로 말하자면 몇몇 유명한 문장은 그 자체로 의미심장하다기보다는 작품의 후광 덕분에 역으로 유명해진 거 아닐까 의심한다.
‘공글리다’가 사투리인 줄 알았는데 표준어였다. ‘삐지다’를 ‘삐치다’와 같은 뜻으로 쓸 수 있고, ‘개지랄하다, 쌔다’도 표준어라고 해서 놀랐다. 처음 보는 단어도 많았는데, 굳이 내 글에 쓰지는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