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2008년 금융위기를 수습했던 벤 버냉키, 티머시 가이트너, 헨리 폴슨 주니어가 함께 썼다. 불을 지른 사람을 도와주는 게 불을 끄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때 그렇게 해야 하는가. 저자들은 그렇게 했고, 가슴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도 어쩔 수 없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 금융 붕괴를 막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유일한 해법은 정부의 직접적인 개입이라고.
제목을 정말 잘 지었다. 저자는 도쿄알코올의료종합센터 센터장으로, 알코올 병동 전속 의사로 일한 경험이 17년이라고 한다. 당뇨병이나 고도 비만이 아닌 한 술을 마시는 것보다는 과자나 케이크를 먹는 게 나으니 금주 중일 때 단 것이 먹고 싶다면 그러라고 한다. 알코올 병동의 환자들은 밤늦게 과자 파티를 열기도 한다고.
저자는 학부에서 작곡을 전공했고, ‘예술 창작에서의 인공지능 수용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이제는 그 문제가 상상이 아닌 코앞의 현실 이슈가 되었다. 인공지능과 상관없이 흥미로운 질문들이 많았다. 아름다움은 얼마간 수학적인 문제일까? 창의성이란 새로움을 뜻하는 것일까? 규칙을 변형하는 방법도 학습할 수 있을까?
『순수의 시대』를 쓴 그 이디스 워튼의 괴담 단편집. 워튼은 어린 시절 몸이 약했고 몇 년이나 환각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래서 유령을 믿지는 않았지만 유령 이야기는 많이 썼고 이 책에는 8편이 실려 있다. 특이하지 않은 설정인데도 가슴이 죄이거나 찜찜한 느낌이 드는 작품들이다. 「기도하는 공작부인」이 강렬하고 「매혹」도 좋았다.
좀 부끄럽지만 나도 대변 마려운 걸 참다보면 왜 갑자기 괜찮아지는 순간이 오는지 궁금했다. 과민성대장증후군 때문에 밖에서 화장실 찾느라 고생한 적이 많아서. 자유낙하하는 놀이기구를 탈 때 이상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당연히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그 메커니즘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고 여러 가설이 있다고 해서 놀랐다.
가끔씩 이런 책들을 빠른 속도로 읽으며 과자 먹듯이 정보를 섭취하고 싶어진다. 그런 때 저자가 별로 안 궁금한 내용을 다루거나, 답을 모른다는 사실을 회피하면 정나미가 떨어지는데 이 책은 그러지 않아서 만족스러웠다. 멈춘 에스컬레이터를 걸어갈 때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게 나뿐 아니었구나. 불편한 자세인데 왜 몸에 좋은 자세라며 그렇게 서거나 앉으라고 하는지도 이제 비로소 납득했다.
지난해 발표한 논픽션 『당선, 합격, 계급』에서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에 나오는 한 일화를 인용했다. 원고를 쓰면서 『생각에 관한 생각』을 몇 번 들춰봤는데 그때마다 한참이나 책장을 넘기며 눈을 떼지 못했다. ‘역시 명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논픽션 원고를 다듬을 때쯤 『생각에 관한 생각』 개정판이 나왔다. 저자의 논문 두 편과 감수자의 추천사를 더하면서 분량이 728쪽으로 두툼해졌다. 무엇보다 번역을 다시 하면서 글이 훨씬 유려해졌다.
카너먼은 노벨경제학상을 탄 최초의 심리학자이자 행동경제학의 창시자다. 그리고 이 책은 카너먼이 행동경제학에 대해 쓴 유일한 대중교양서다. 나심 탈레브는 이 책이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과 동급이라고 극찬했는데, 내게는 그 말이 그리 과장 같지 않다.
다들 알다시피 인간은 그리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다. 고전경제학은 인간을 이성적인 존재라고 가정하기에 현실을 묘사하거나 정책을 세우는데 자주 실패한다. 경제학자뿐 아니라 인간을 연구하고 관찰하는 이라면 모두 우리 자신의 비이성적인 행동에 당혹감을 넘어 좌절감마저 느끼게 된다. 몇몇 성급한 이들은 급기야 이성 자체를 부정하기에 이른다.
카너먼은 인간이 어떤 상황에서 비이성적으로 행동하는지 분석하고, 그런 비이성적 행동에도 패턴이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빠르지만 거칠고 원시적인 ‘시스템 1’과 보다 정확하지만 느리고 게으른 ‘시스템 2’, 그렇게 두 가지 방식을 함께 사용해 생각한다는 것이다.
두 시스템의 특성이 각각 어떤지, 어느 때 발동하고 어떤 식으로 오작동하는지, 어떻게 길들일 수 있는지는 직접 확인하는 편이 좋겠다. 대학생 정도면 술술 읽을 수 있는 난이도로, 사실 상당히 재미있는 책이다. 책장을 덮을 때쯤에는 인간의 비이성을 드디어 우리가 제대로 다룰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희망도 생기고, 행복을 누리는 법에 대한 뜻밖의 통찰까지 얻을 수 있다.
국내에서는 2012년 초판이 나온 뒤 여태까지 12만 부가 팔렸고, 매년 1만 부씩 꾸준히 나가는 스테디셀러다. 원제는 직역하면 ‘빠르고 느리게 생각하기’(Thinking, Fast And Slow)인데, 김영사에서는 당초 카너먼이 원고에 가제로 붙였던 제목(‘Thinking About Thinking’)을 국내 번역서의 제목으로 삼았다. 개인적으로는 번역 제목이 원제보다 더 나은 것 같다.
‘외계 문명이 있는 것 같다, 이게 그 증거인 것 같다’고 주장하는 책 중 내용이 가장 과학적인 책 아닐까. 그런 글을 쓴 사람들 중 이 책 저자만큼 과학계에서 권위가 높은 사람도 없는 것 같고. 오무아무아는 인류가 처음으로 관측한 성간 천체인데 모양, 반사율, 속도 변화가 매우 이상하다.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얇은데 알차다. 저자의 이름은 필명이고, 아마도 ‘악어’에서 온 것 같다. ‘기억하는 인간, 기록하는 작가’라고 오웰을 정리한다.
오웰이 『카탈로니아 찬가』와 『동물농장』 사이에 쓴 소설이다. 냉소적인 입담이 일품이지만 전체적으로는 큰 감흥 없이 읽었다. 한때 한국 소설에서 많이 봤던 설정이라 익숙한 느낌마저 든다. 부조리한 시대 상황 속에서, 결혼 생활이 만족스럽지 않 은 중년 남자의, 사소하지만 퇴행에 가까운 일탈. 첫사랑도 만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