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원서가 출간된 건 알파고나 챗GPT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전인 2013년. 하지만 강(强)인공지능이 현실적인 위협이고, 우리가 무방비상태라는 책의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며, 오히려 전보다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금융시장의 컴퓨터 에이전트가 강인공지능으로 발전할 시나리오를 말한다. 이미 수많은 헤지펀드 알고리즘이 경쟁을 벌이고 자연선택과 비슷한 압력을 받고 있으며 가장 성공적인 알고리즘의 소유자는 이를 비밀에 부친다.
『아제아제 바라아제』의 작가이자 소설가 한강의 아버지인 한승원의 소설 작법서. 중간에 아버지가 본 딸 한강의 집필 스타일도 슬쩍 나온다. 소설뿐 아니라 소설가도 하나의 상품이라고 주장하며, 글 쓰는 사람들이 ‘신비로움’이라는 프리미엄을 누리고 싶어서 하룻밤에 썼다든가 퇴고를 안 한다는 등의 거짓말을 한다고 꼬집는다. 정반대 방향의 위장도 있겠지.
친절하고 재미있다. 현대 예술에 대해 타르코프스키는 ‘수상쩍은 사람들의 기이한 짓거리’라고, 에드워드 호퍼는 ‘대부분은 가짜’라고 맹비난했다고. 드라마를 ‘끝을 향한 힘’이라고 풀이한다. 파국에 대해 주인공이 책임을 지느냐 아니냐로 비극과 희극이 갈라진다고 한다.
괴로운 기분일 때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읽었다. 나를 괴롭히는 적과 싸울 때 둘이서 터놓고 대화를 해보라고 하고, 나를 모욕하고 무시하는 사람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호의를 보여주라는 식의 조언을 나는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내가 아직도 미숙한 걸까, 아니면 저 조언들이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얘기인 걸까. 알게 되는 날이 올까.
이 작품이 일본에서 발표되고 나서 출판사로 이게 실화냐고 묻는 전화가 많이 걸려 왔다고 한다. 기자나 서점 직원들의 문의도 있었던 모양이다. 작가를 비롯해 실제 인물과 지명이 등장하니 좀 순진한 사람들이 그런 걸 궁금해 했나 보지, 그걸 또 마케팅을 위해 과장했겠지…… 여겼는데 읽고 나니 그런 해프닝이 생길만 하다 싶다. 정말 실감 난다. 그리고 무섭고 찜찜하고 재미있다.
뮤지션 요조와 독서 팟캐스트를 진행한다. 두 MC와 제작진이 꼼꼼히 책을 읽고 온라인으로 독서토론을 한 뒤 그걸 바탕으로 방송한다는 게 우리 프로그램의 자랑이다. 월터 아이작슨의 720쪽짜리 평전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올해 3월 말에 출간되자마자 다뤘다.
처음에는 다들 조금씩 떨떠름해 하는 눈치였다. 월터 아이작슨? 『스티브 잡스』를 쓴 그 사람? 이 양반 참 두꺼운 책 많이 쓰네. 어휴 이걸 언제 다 읽어. 다빈치라니, 막 르네상스 나오고 인문학 나오고 어려울 거 같아. 그런데 이런 대천재 이야기를 읽는다고 우리 같은 사람한테 뭐 남는 게 있을까…….
아마 우리가 다뤘던 아이템 중 독서 전후로 느낌이 가장 달라진 책이 아니었나 싶다. 막상 펼쳐 보니 전혀 어렵거나 부담스럽지 않았다. 저자는 먼저 다빈치의 작품과 아이디어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그 작업을 하며 다빈치가 어떤 시도를 했고 어떻게 발전했는지, 그게 후대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매끄럽게 설명한다. 이 과정이 무척 흥미진진한 데다 글자도 크고 그림도 많아서 책장이 쑥쑥 넘어간다.
고백하자면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모나리자》에 대해 ‘저 미소가 뭐가 신비롭다는 거지, 한국인은 저렇게 어정쩡하게 웃는 사람 많은데’ 하고 시큰둥했었다. 그런데 다빈치가 시체를 해부해가며 인간 입술을 연구하고, 자신이 개발한 물감을 수십 번 덧칠해 빛이 여러 층에서 반사되도록 하고, 음영을 이용해 착시효과를 일으켰다는 설명을 듣고 나니 그림이 달리 보였다.
무엇보다 흥미롭고 좋았던 것은 저자가 그리는 인간 다빈치의 초상이다. 다빈치는 뭔가를 제대로 끝맺지 못하는 중도포기자였고, 늘 스스로를 이방인이라 여겼다. 그런 사실에 괴로워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예술적 자양분이 되었다. 한편으로 그는 15세기 밀라노와 피렌체라는 특이한 시공간의 산물이었다. 책은 다빈치를 둘러싼 신화 상당수를 걷어내기도 한다.
다빈치의 창의력을 배우겠다는 다짐 따위 없이, 아는 것 많고 입담 좋은 가이드와 함께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를 여행한다는 기분으로 ‘가볍게’ 읽으면 가장 맛있을 책 아닐까. 국내 번역서는 나오자마자 일주일 만에 1쇄를 다 팔았고, 2쇄와 3쇄도 일주일 간격으로 제작했다고 한다. 반년 동안 6쇄를 찍으며 꾸준히 호응을 얻고 있는데, 이 정도면 다빈치의 명성이나 저자의 이름값을 넘어 책 자체의 힘이 발휘된 게 아닌가 싶다.
스스키노 탐정 시리즈 2편. 이번에는 어라, 싶을 정도로 주인공이 필립 말로에서 멀어졌다. 많이 얻어맞고, 술을 마시면 추태를 부린다. 그래서인지 중반까지는 좀 심심하다 싶었다. 도입부도 그다지 흡인력이 없고 이야기도 너무 복잡한 것 아닌가. 하지만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게 되었다.
스스키노 탐정 시리즈 1편. 버블 경제기의 삿포로를 배경으로 20대 후반의 겉멋 든 백수가 사라진 여인을 찾는데, 필립 말로 흉내를 너무 심하게, 어울리지 않게 낸다. 필립 말로도 허세꾼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로서 헛웃음이 나오는 대목도 있었고, 작가의 유머 감각이 탁월해서 정말로 빵 터지는 문장들도 있었다.
나오키상 수상 작가의 미스터리 단편 걸작선. 3명 혹은 4명의 남녀가 어두운 정념으로 얽히고설켜 각자 계획을 꾸미다 다 같이 파멸하는 이야기들이 많다. 그 컴컴한 분위기가 내 취향에는 맞는다.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느와르물인 「베이 시티에서 죽다」가 굉장히 좋았다. 그런데 표제작은 다른 수록작에 비해 유독 수준이 떨어지는 것 같다.
추리소설 애독자들은 낄낄거리면서 빠져들 수밖에 없는 작품. 아, 심술궂기는. 똑같이 미스터리 소설의 규칙을 놀려 먹는 메타픽션이라는 점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명탐정의 규칙』도 떠오른다. 『미스터리 아레나』 쪽이 설정이 좀 더 뻔뻔한 거 같긴 하다. ‘고전적인 퍼즐 미스터리’라는 장르는 생명력을 다했다는 생각도 진지하게 한다. 그 생각을 나만 하는 것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