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경찰 집안의 아들과 도둑 집안의 딸이 연인 관계인데, 때마침 벌어지는 살인사건. 루팡의 딸 시리즈 1권으로 일본과 한국 두 나라에서 모두 큰 인기를 모았고, 영화와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 책장이 술술 넘어가기는 하는데, 나는 좀 몰입이 어려웠다.
사와무라 이치는 단편을 훨씬 더 잘 쓰는 작가인가 보다. 수록작 일곱 편 중 처음 세 편은 그야말로 박수를 치며 읽었다. 특히 어린이의 시선에서 집단 괴롭힘 가해자의 가담 경위와 죄의식을 다룬 「아이들의 세계」가 탁월했다. 「인간이 제일 무섭다는 사람」을 읽고 나면 “귀신 따위는 무섭지 않고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말을 쉽사리 할 수 없게 되지만, 그래도 역시 사람이 제일 무섭다.
히가 자매 시리즈 3편. 나는 이 시리즈 1편 『보기왕이 온다』보다 2편 『즈우노메 인형』이 더 좋았고, 2편보다 이 소설이 더 좋다. 프롤로그가 진짜 무서웠고,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는 필력도 인상적이다. 결말은 깔끔하기도 하고 찜찜하기도 한데, 깔끔해서 좋고 또 찜찜해서 좋다.
히가 자매 시리즈 2편. 주인공은 히가 마코토. 과거 장면에서 히가 미하루가 나오며, 히가 고토코는 언급만 되다가 결말에 잠시 등장한다. 핵심 아이디어는 『링』에서 가져왔고, 작품도 스스로 『링』의 오마주임을 숨기지 않는다. 이야기는 무서웠고, 진상은 상당히 슬펐다.
부모님이 1박 2일 여행을 떠났고, 그 이틀 동안 내가 부모님 댁을 지키며 개를 돌봤다. 그 첫째 날 낮에는 HJ가 와서 새롱이와 함께 공원을 산책했고, 저녁도 부모님 댁에서 같이 먹었다. HJ는 내 부모님 댁에 두 번째로 온 것이었다. 명절에도 집안 대소사에도 부모님 댁에는 나 혼자 간다.
저녁을 먹으면서 물론 맥주도 마셨다. 이즈음에는 거의 매일 맥주를 마셨다. 술에 얼큰히 취해 마루에 누워 새롱이와 놀았다. 내게 달려드는 강아지를 팔로 밀쳐 냈더니 녀석은 그게 새로운 놀이인 줄 알고 신이 났다. 밀쳐내고 달려들고 밀쳐내고 달려들고……. 개가 잔뜩 흥분하자 털 아래 가려져 있던 붉은 성기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아이고, 저걸 잘라내야 한다는 건가.
다음날은 무척 바빴다. 이날 저녁에 구로구청에서 작은도서관 활성화 방안을 주제로 강연을 하게 되어 있었는데, 그 원고를 오전에야 겨우 다 썼다. 낮에는 어느 기업 강연 담당자와 만났다. 디자이너들을 위한 5회짜리 인문학 강연 프로그램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제안 받은 금액이 크지는 않았는데, 처음에는 그냥 글쓰기 강연인 줄 알고 수락했다. 여태까지 대학이나 글쓰기 센터에서 써먹은 강연 원고와 프로그램을 재활용하면 되니까. 그런데 회사의 요구사항이 의외로 까다로웠다. 담당자와 이야기하면서 강연 원고를 완전히 새로 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 강연 프로그램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약간은 분위기에 휩쓸려서이기도 했고 약간은 기업 강연 시장을 개척한다는 마음이기도 했다. 그동안 대학과 도서관에서 강연을 많이 해봤지만 기업 강연은 한 번 밖에 못해봤다. 인세로 풍족하게 먹고 살 수 있게 되는 게 가장 좋지만, 그게 안 되면 인문학 전도사의 길이라도 걸어야 하니.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기업 강연업계는 담당자들끼리 네트워크가 있어서 정보를 교환할 것 같다. 이번 강연 섭외 요청의 배경에도 누군가의 추천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렇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강사 평가는 꼼꼼하게 할 테고, 내 강연이 만족스러우면 다음해에도 부르겠지. 그리고 나도 이제껏 늘어놓던 소박한 얘기보다 더 거창한 내용을 떠들어도 될 것 같다.
이 회사는 스티브 잡스가 인문학을 강조한 뒤로 디자이너 직군 대상으로 인문학 강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한다. 농담 같은 얘긴데 농담이 아니었다. 담당자로부터 지난 5년 간 그 인문학을 강연했던 강사와 강연 주제 명단을 받았다. 다들 열심히 인문학을 팔아 돈을 벌고 있었구나.
강연 담당자와 헤어지고 바로 구로구청으로 갔다. 구청 청사 주변이 낯익다 싶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7년 전에 여기서 여권을 발급받았다. 그 얘기를 『5년 만에 신혼여행』에 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책을 읽은 구로구의 작은도서관 대표들이 내가 여전히 구로구민일 거라고 생각해서 초청했다고 한다.
구로구청 강연은 화상 앱으로 했다. 작은도서관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므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신 작은도서관이 지향해야 할 바에 대해, 그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이런 게 인문학이지. 강연 원고를 준비하면서 내가 펼치는 주장이 무척 마음에 들었는데, 청중들도 그렇게 느끼는 것 같았다. 몇몇 사람들은 감동한 기색이 역력했다.
실은 나 역시 내 강연 내용에 감동했다. 어떻게 이루어야 할지는 모르지만 내가 펼치는 비전은 멋졌다. 독서 토론으로 사람들이 친해지고 서로를 더 잘 이해하는 사회. 그 대화 내용을 모두 기록해서 그것이 거대한 책 추천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플랫폼. 전국의 작은도서관을 씨줄로, 큰 도서관을 날줄로 삼아 그런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다음날에는 동물병원에 새롱이를 데리고 가서 중성화 수술을 시키고 생체 칩을 이식했다. 불쌍한 강아지가 서글픈 수술을 받는 동안 HJ와 나는 근처 식당에서 닭갈비를 먹고 공원에 갔다. HJ는 책을 읽었고, 나는 공원 선베드에 누워 낮잠을 잤다. 그러다가 전화 영어 수업을 들었다. 병원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꽈배기를 사 먹었다.
고환을 제거당한 개는 병원에서 목에 깔대기 모양의 보호대를 달고 우리를 기다렸다. 혼이 나간 모습이었다. 나는 HJ와 헤어져 개를 꼭 껴안고 부모님 댁으로 갔다. 개는 부모님 댁에서도 한동안은 풀이 죽어 있었고, 넥카라를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맛있는 간식을 주며 달래려 애써 보았다.
다음날에는 집 근처 팬케이크 가게에 가서 브런치로 팬케이크와 해시브라운, 샐러드를 먹었다. 저녁에는 극장에 가서 얼마 전에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영화 《노매드랜드》를 보았다. 올해는 예년보다 영화를 꽤 자주 본다. 그래도 개봉관에서 본 영화는 올해 이게 첫 작품이다.
영화는 지루하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감동을 받았다. 감동이라는 말이 맞는 표현일까? 크고 낯설고 복잡한 감상이 들었다. 그 감상에는 애잔함과 아름다움도 있었고 스산함과 두려움도 있었다. ‘뭔가 아주 중요한 얘기다’라고 느꼈지만, 그 뭔가가 뭔지 선명하게 잡히지는 않았다.
물론 삶과 소유와 자유에 대해 색다른 이야기를 하는 영화다. 그러나 그보다 나는 이 영화가 우연찮게, 마치 예언자처럼, 인류의 미래에 대해 크고 우울한 비전을 보여준다고 느꼈다. 4차 산업혁명 이후 거대 기업이 세상을 장악하고, 지식 노동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노동이 무가치해지는 시대가 온다면, 그때 세계는 이런 모습 아닐까.
집에 돌아와 맥주를 마시며 잠들 때까지 영화에 대해 HJ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화가 은근히 유랑민들의 현실을 미화했을 것 같다고 우리는 짐작했다. 실제 그들의 삶은 저보다 훨씬 더 물리적 위협 속에 있을 것 같다. 특히 여성 유랑민은 더욱. 그리고 미국이니까 유랑을 하면서 저렇게 자연을 체험할 수 있지 한국 노숙자한테는 그런 것도 없다.
우리는 빈털터리가 되는 일에 대해서도 대화했다. 어쩌면 그게 지금 우리가 두려워하는 만큼 절망스러운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다고. 그런데 차에서 살아야 한다면 적어도 발을 쭉 뻗고 잘 수 있는 크기의 SUV나 밴을 사고 싶다고 생각했다. 영화에서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내내 다리를 구부리고 자는 모습이 너무 불편해 보였다.
이날 저녁에는 나 혼자서 500밀리리터짜리 맥주를 다섯 캔 마셨다. 첫 번째로 마신 맥주는 더쎄를라잇브루잉 양조장에서 만든 쥬시후레쉬맥주였다. 세븐일레븐이 기획해 롯데제과와 손잡고 내놓은 제품이다. CU가 곰표 밀맥주, 말표 흑맥주를 내놔서 짭짤하게 재미를 본 것을 보고 따라 한 기획인 듯하다.
캔 꼭지를 딸 때만 해도 과연 껌 향이 맥주로 제대로 구현될지 궁금했는데, 놀랍게도 쥬시후레쉬 맛과 향이 그대로 났다. 그리고 그게 정말 역겨웠다. 단순히 맛이 없는 수준이 아니라 사람이 먹는 음료가 맞는지 의심스러운 지경이었다. 끝까지 마셔야 하는지 여러 번 고민했다. 껌 원액을 그대로 맥주에 담았다고 한다.
어이구 이건 아니다
재미로 소비하는 시대
난 못 따라가요
스크린셀러 판 2권에는 단편 6편이 실려 있다. 「칼날에 새긴 불사조」와 「주홍 요새」는 코난이 왕위에 오른 뒤의 이야기인데, 왕좌를 지키는 일도 참 힘들다. 호쾌한 주인공이 난장을 부리는 이야기들을 왕성하게 쓰다 서른 살에 자살한 작가는 어떤 삶을 살았을지, 어떤 스트레스에 짓눌렸을지도 궁금하다.
1982년도 영화 《코난 더 바바리안》을 굉장히 인상 깊게 봤고(속편 《코난 더 디스트로이어》는 별로였다), 코난 사가도 찾아 읽게 되었다. 문명인은 머리가 쪼개질 염려가 없어서 야만인보다 더 무례하다는 유명한 문장은 『재수사』에서도 인용했다. 한국어 번역본은 여러 출판사에서 나왔는데 나는 스크린셀러 판으로 읽었다.
흑마법 같은 소설. 사악한 이야기를 터무니없이 우아하게, 고혹적으로 들려준다. 어디까지 ‘진짜’인가, 이 궤변을 어떻게 반박해야 하나, 이런 묘사가 괜찮은가, 같은 생각들을 잊고 문장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푸틴이나 국제 정치, 고발 문학에 관심이 없는 분들께도 ‘예상하시는 그런 이야기 아니니 읽어보세요’ 하고 권하고 싶다.
원작 단편소설이 나쁘지는 않지만, 2003년도 일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비하면 깊이도 아름다움도 한참 못 미친다. 애서가들 중에는 ‘아무리 영화가 훌륭해도 원작 소설의 감흥을 넘지 못한다’ 같은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때마다 나는 이 사례로 반박하곤 한다. 그와 별개로 나는 「사랑의 관」이 잘 이해가 안 된다. 이모와 조카의 연애 이야기인데 등장인물들이 근친상간에 거부감이 없다. 죄의식은커녕 별 고민도 하지 않는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에는 국가정보위원회(NIC)라는 조직이 있는데 여기서 대통령 당선자를 위한 미예측 보고서를 만든다. 이 책 저자는 NIC의 분석국장 출신이고, 책도 그 보고서를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앞부분에 ‘이 책은 국가 비밀 정보 누설을 막기 위해 CIA의 검토를 받았다’고 적혀 있다. ‘성공 기회가 없는 최하층 계급의 탄생’을 우려하는 대목이 섬찟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