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이번에는 그리스 신화와 SF의 결합. 그런데 젤라즈니의 전형적인 초인 주인공이 현재 시점에서 하는 일이 많지 않다. 젤라즈니가 신화나 설화, 종교를 차용할 때 그 밑바닥에 깔린 철학이 아닌 외피만을 가져온다는 비판을 할 수도 있겠다. 나는 그 외피도 중요하다고 (그리고 멋지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이는 것은 대단한 성취라고 보기에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절판된 시공사 판에는 단편 「프로스트와 베타」가 함께 실려 있었다.
얼마 전 ‘내 인생 최악의 실패, 최고의 교훈’이라는 주제로 짧은 에세이를 한편 청탁받았다. 어떤 상황을 가리켜 ‘인생의 최악’이라고 불러야 하는 걸까? 머리를 긁적이며 원고를 쓰는 동안 오쿠다 히데오의 736쪽짜리 소설 『최악』을 몇 번 떠올렸다.
『최악』의 주인공은 세 명이다. 작은 철공소를 운영하는 가와타니 신지로, 은행의 젊은 여성 직원 후지사키 미도리, 그리고 대책 없이 사는 건달 노무라 가즈야다. 엄청난 악인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선량하지도 않은, 내세울 것 없고 명민하지도 못한 인물들이다.
이들의 처지는 위태위태하다. 신지로는 불황과 주민 민원에 시달리고, 미도리는 직장에서 성추행을 당하며, 가즈야는 절도를 저질렀다가 야쿠자에게 협박당하는 신세가 된다. 세 사람은 그런 처지를 타개하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그럴수록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지기만 한다. 끈끈이에 달라붙은 곤충처럼. 그리고 그들은 서로 만난다.
읽기 힘들고 불편한데 책장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책들을 간혹 대한다. 그 책들에 대해 ‘재미있다, 가독성 높다, 흡인력 있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게 느껴진다. 『최악』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해야 할까? 사람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괴롭히는 가학적 쾌감을 주는 작품은 아니다. 훈훈하지는 않지만 매정하지도 않다.
읽는 내내 페이소스를 느꼈다. 그래, 인간이 이렇지, 우리 다 어리석지, 절박하면 다 이렇게 앞을 제대로 못 보게 되지…… 이런 이야기라도 인물들이 막판에 갑자기 절묘한 기지를 발휘하고 행운이 받쳐줘서 마술 같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게 좋을까? 아니면 완전한 절망, 지독한 파국으로 마치는 게 옳을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더 적지는 않겠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며 얻은 깨달음 하나는 밝혀도 괜찮지 싶다. 누군가 한 명언 중에 ‘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말이 있다. 최악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것은 과정이다. ‘더 나빠질 수 있다’는 불안과 두려움이다. 그토록 겁내던 것이 막상 현실이 되면, 우린 대개 적응한다. 어쩌면 거기서부터는 좋아질 일만 남는 건지도 모른다.
2008년 처음 번역서가 나온 이 책은 이후로 표지와 판형을 바꾸며 독자의 사랑을 꾸준히 받았다. 개정판을 두 차례 내면서도 출판사는 분권은 한 번도 고려하지 않았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초판의 코믹한 표지보다 책의 분위기를 잘 담은 지금의 표지가 훨씬 더 마음에 든다.
젤라즈니의 장기이자 시그니처 메뉴가 신화와 SF의 결합이다. 신화를 SF로 해석한다기보다는 SF를 신화처럼 썼다. 그 작업을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번, 그것도 거의 매번 매끈하게 성공했기에 그에게는 그 일이 무척 쉬웠던 것 아니었을까, 그만의 별난 요령이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물론 따라하려고 하면 매우 어렵다). 그런 결과물 중 대표작이 『신들의 사회』다. 여기서는 힌두교 신화와 불교 신화를 이용했다.
한 나라, 문명, 행성, 혹은 인류라는 종이 아니라 한 세계 전체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전부 멸망한다는 것을 가장 실감 나게, 또 압도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을 두 편 꼽으라고 하면 나는 앰버 연대기 5권과 『끝없는 이야기』를 꼽겠다. 두 소설은 세계의 멸망을 막기 위한 주인공의 노력이 가장 논리적으로, 긴박감 넘치게 펼쳐지는 작품들이기도 하다. 이 결말에 매우 만족한다. 마지막에 왕좌에 오르는 캐릭터에 대해서도.
세계의 비밀들이 밝혀지고, 믿어왔던 설정이 뒤집힌다. 미스터리가 너무 복잡하고 거창해서 관념적인 설명들이 많이 따라붙고, 그 바람에 연대기 전반부에서 보여줬던 속도감은 4권에 이르러 상당히 떨어진다. 그러나 한 세계의 멸망을 다루는 규모의 이야기를 책임지려면 이 정도 설명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4권 제목이 앰버 연대기 전체의 스포일러라는 얘기를 적어도 괜찮으려나.
나는 앰버 연대기를 1990년대에 출간된 예문판으로 읽었는데, 절판된 예문판과 현재 구입할 수 있는 사람과책 출판사 버전은 3권만 번역 제목이 다르다. 예문판 3권 제목은 ‘유니콘의 상징’이었다. 예문판이 나올 때 5권이 한꺼번에 출간되지 않았기 때문에 2권인가 3권까지 읽고 다음 권을 아쉽게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예문판도 처음에는 표지가 검은색이었다가 나중에 흰 색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합본판 원서를 소장하고 있다.
로레인이 나오는 에피소드가 하도 멋져서 따로 옮겨적기까지 했다. 코윈과 스트리걸드워가 싸우기 전에 주고받는 허세가 흥겹다. 특히 스트리걸드워의 위협을 받아치는 코윈의 긴장감 없는 대꾸들이. “조금 거북한 기색이던데 그래”라든가 “자긴 예쁘게 타고 있는 주제에” 같은(예문판 번역 기준). 젤라즈니 소설에서 제일 큰 매력이 그 멋지고 흥겨운 허세라고 생각한다.
반지의 제왕이나 어스시 연대기, 나니아 연대기보다 앰버 연대기를 훨씬 더 좋아한다(나니아 연대기는 끝내 완독하지 못했다). 대단한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앰버 연대기를 한없이 우습게 여기는 애서가가 곁에 있으니, 바로 다름 아닌 HJ. 그녀는 시리즈 첫 권인 이 책, 『앰버의 아홉 왕자』 결말을 납득할 수가 없다고 한다.
내향인인 저자는 1년 동안 외향적으로 살아보려는 노력을 제대로 한다.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즉흥 연기 수 업을 듣고, 데이팅 앱으로 사람을 만나고,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고, 디너파티를 주최한다. 그 좌충우돌 과정에서 느낀 점, 주변 사람들의 반응, 자신의 달라진 점을 상세히 적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다. 그리고 유머 감각이 무척 뛰어나다.
단순히 자기계발의 역사를 훑거나 현대 자조론의 우스꽝스러운 면을 놀리는 책이 아니다. 좋은 삶을 향한 탐구가 수천 년 동안 낸 답안과, 그 의지를 변질시키는 상업 논리의 허점을 정리한다. ‘현대 사회에서 고상한 욕구가 왜 그토록 푸대접 받고 저질스러운 응답만 얻는가’라는 질문은 분명 던져볼 만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