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지난해 서초구립양재도서관 사서 두 분과 시설직 담당자 선생님을 여러 차례 만나 취재했습니다. 양재도서관은 2022년 8월 중부지방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날 침수되어 지하와 1층이 물에 잠겼고, 이후 몇 달간 문을 열지 못했습니다. 이 도서관은 정말 비운의 도서관인데요, 2019년 11월에 개관했지만 몇 달 뒤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는 바람에 2년 이상 제대로 운영을 하지 못했고 코로나 사태가 끝나자 바로 수해를 입었습니다. 사서들 사이에서는 “개관할 때 고사를 안 지내서 그렇다”는 얘기까지 돌았다고 합니다.
이 도서관을 소재로 장편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뒤늦게 한 기사를 읽고 나서였습니다. 폭우로 도서관이 물에 잠겼다는 소식이 퍼지자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도서관에 찾아와 자원봉사를 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물에 잠기지는 않았지만 습기를 먹어 곧 눅눅해질 책들을 사서들과 주민들이 함께 위층으로 올렸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기후위기가 한 동네에 몰고 온 재난과 거기에 맞선 주민들의 노력, 그리고 도서관의 중요성을 담은 휴먼드라마를 막연히 구상했습니다. 취재 뒤에 생각이 바뀌었어요. 침수된 건물을 복구하는 작업은 몹시 까다롭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습니다. 주민들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고, 주인공은 사서여야겠더군요. 특정 장소를 배경으로 하는 힐링 소설 트렌드의 아류로 보이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특히 이거다, 싶은 얘기가 있었습니다. 고인 물을 여러 날에 걸쳐 빼는 동안 도난과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사서들이 밤을 새며 도서관을 지켜야했다는 얘기였습니다. 여러 사정상 한 사서 분이 거의 도맡아 그 일을 하시게 되었다고 하네요. 전기도 수도도 끊어진 커다란 건물. 책들이 가득한 서가 옆에서 혼자 보내는 밤들. 밤마다 쏟아지는 비. 더위와 습기. 낮밤이 바뀐 생활. 아래층에는 어두운 물이 고여 있고…. 그 당번 사서가 신경증이 있거나 말 못할 과거의 상처를 품은 사람이라면? 그가 황폐해지는 모습을 낮에 출근하는 사서가 눈치 챈다면? 밤에 서가에서 수상한 소리가 들리거나 이상한 형체가 나타난다면? 새로 지어진 도서관에서 일하게 된 사서들이 서로를 잘 모르거나 사이가 좋지 않다면? 이 도서관에 벌어진 여러 불운들이 그저 우연이 아니었다면?
아주 근사한 호러 소설 소재라고 생각했습니다. 제목은 ‘도서관의 유령’이라고 붙였고요. 그렇게 한창 원고 작업을 하던 중… 며칠 전 아내가 기사를 하나 읽어보라며 링크를 보내주었습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69/0000778340?sid=103 ). 문예지에 실리는 최신 단편소설을 소개하는 한국일보 문학면 연재 코너의 기사인데, 이번에는 대산문화 2023년 겨울호에 실린 정보라 작가님의 「도서관 물귀신」을 다뤘습니다. 비정규직 사서와 계약직 야간 경비가 도서관에 나타나는 물귀신의 정체를 추적한다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정 작가님의 소설을 읽지는 못했지만 제가 쓰고 있는 ‘도서관의 유령’과 설정이 많이 겹치지요. 도서관이라는 장소에서 유령 혹은 물귀신이라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밤에 나타나고 도서관의 직원 두 사람이 그 비밀을 쫓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저의 원고는 장편이고 2020년대 한국 도서관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리려는 반면 정 작가님의 소설은 단편이고 다소 가상적인 배경(도서관 전체가 노키즈 존이 됐으며 이용자가 줄어 지하 3층 한 층만을 쓰고 있음)에 물난리가 나오지는 않는 것 같다는 정도 차이점은 있는 듯합니다.
기사를 읽고 지금까지 계속 끙끙 앓고 있습니다. ‘도서관의 유령’을 그대로 쓰면 표절 논란이 생길 거 같아요. 저는 ‘구조 표절’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표절은 표현에만 적용된다는 의견이고, 그런 내용으로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에 나옵니다). 하지만 대중의 반응이 다르다는 것도 압니다. 영화 《도둑들》과 《오션스 일레븐》, 《제니, 주노》와 《주노》 표절 논란 등에 대해 저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여기지만, 그런 논란은 실제로 벌어집니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건 내가 떳떳하면 그냥 간다는 주의였는데, 몇 번 예상치 못한 논란에 휩싸이다 보니 자세가 달라지더군요. 그리고 다른 글, 다른 논란도 아닌 장편소설의 표절 논란은 아무리 떳떳하더라도 제가 그 논란 자체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 원고를 접어야 할까요? 그냥 써도 될까요? 아니면 다른 묘수가 있을까요? 다른 분들, 특히 출판계 관계자 분들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갈피를 못 잡겠네요. 특정 출판사와 제목이나 내용을 알려주고 계약을 한 건 아닙니다. 저로서는 취재에 들인 노력보다는 아이디어가 더 아쉬운데, 바로 그 아깝다는 생각 때문에 판단을 그르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1월 1일에 가족이 사고를 당해 갑자기 입원한 가운데 이 문제까지 생겨 연초가 참 심란하네요. 양재도서관에 서린 기운이 원고에까지 영향을 주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고는 혼자 웃었습니다. (양재도서관 사서님들, 죄송합니다. 웃자고 하는 얘기입니다.) 당연한 말씀이지만 정보라 작가님께 원망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으며, 이 사연이 정 작가님께 폐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원작이라고는 하지만 이 짧은 소설에서 가져 온 것은 주인공 이름과 그 주인공이 엉뚱한 상상을 수시로 한다는 설정 정도다. 멍하니 있을 때 과거의 부끄러운 기억들과 실패를 곱씹는 반추 사고보다는 이편이 훨씬 더 나은 것 같다. 어렸을 때는 나도 그런 상상 많이 했는데.
우울증의 역사, 의학적 분석, 정치사회경제학적 접근, 과거와 현재의 치료법, 환자들의 투병기, 글쓴이의 경험을 1028쪽에 걸쳐 읽으면 우울증을 이해하게 되느냐. 저자조차 아니라고 한다. ‘암흑의 핵심’은 여전히 깜깜하다. 그래도 아름다운 문장들이 많았다. 우울증이 현대의 질병도 아니고 선진국에서만 생기는 질병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됐고.
『우울할 땐 뇌 과학』의 실천편에 해당하는 책인데 하라는 게 너무 많아서 읽다가 체념.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을 때에도 나는 이걸 다 할 정력은 없었어. 그래도 뇌 속의 선조체를 한 마리 개라고 생각하고 훈련을 시키고, 간식도 주고, 시간을 두고 변화를 기다리라는 조언은 새겨들었다.
우울증으로 고생할 때 우울증에 대한 책들을 여러 권 읽었는데 그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책이다. 신경생물학의 관점에서 우울증을 살핀다. 아마존 독자 서평 중에 ‘지금까지 읽어본 우울증 책 중 가장 헛소리를 하지 않는 책’이라는 글이 있다는데 나도 동감이다. 최근에 만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우울증에 대해 아는 것은 우울증 극복에 도움이 안 된다, 행동하고 실천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웃더라만.
주인공 와토 형사에게는 기묘한 슈퍼파워가 있으니, 바로 근처에 있는 사람들의 추리력이 높아진다는 것. 설정도 당황스럽지만 와토가 겪는 사건들 역시 뭐 이런 사건이 다 있나 싶게 황당한 내용들이다. 가볍게 킥킥거리면서 읽기 좋다.
그림 그 자체가 추리의 도구가 되는데 방법이 정말 신선 하다. 그리고 으스스하다. 그림도, 이야기도. 억지스러운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처음에 뿌린 떡밥들을 다 깔끔하게 회수한다. 작가는 복면을 쓰고 활동하는 오컬트 콘텐츠 크리에이터 겸 유튜버라고.
꺾이고 쪼였던 젊은 영혼만이 전해줄 수 있는 생생한 실감이 있다. 해방, 용기, 치유의 기록이자 바다, 햇빛, 서핑에 대한 책이고, 어쩌면 그 단어들은 다 같은 걸 달리 부르는 건지도 모르겠다. 서핑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 들었지만 나 같은 몸치는 안 될 거야, 아마.
한국인 사진 기자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자가 쉽고 맛깔나게 푼 사진 이야기. 우리 시대 사진이란 하나의 언어이며, 제대로 읽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맥락에서 심령사진, 누드사진, 셀카, 사진 포즈, 권력자의 사진이 말하거나 거기에 담긴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설명한다.
다섯 편이 다 어쩌면 이렇게 여운이 남을까. 요코야마 히데오의 소설은 모두 정말 현실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취재도 많이 하는 것 같고, 건조한 문체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그렇게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인물들의 마음속 울렁거림을 기가 막히게 잘 잡아내서이기도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