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교양인’이 되려는 데 나온 지 20년이 넘은 이 책이 여전히 유효한가. 지식편에 대해서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며, 20년 사이에 추가된 정보들이 많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능력편은 여전히 필수적인 내용들이며, 사실 이보다 더 정확하게 교양인이라고 하는 집단의 본질을 꿰뚫는 책도 없는 것 같다. 그 집단의 규칙 중에는 물론 우스꽝스러운 것들도 많으며, 그 우스꽝스러움에 대해서도 제대로 말하는 매뉴얼이다.
‘가부라기 특수반 시리즈’와는 관련이 없는 별도의 작품. 배경은 미국이고 등장인물 중에 일본인은 없다. 그 설정이 좋았느냐 하면 재연 프로그램에서 한국인 배우들이 가발을 쓰고 외국인 역할을 하는 것과 비슷했다. 작가의 골프 사랑은 뚝뚝 묻어난다.
내게 계약금을 지급하지 않고, 인세를 누락하고, 판매내역 보고를 제때 하지 않고, 오디오북을 무단 발행한 SF 전문 출판사인 A 사가 5월 1일 오전 9시에 자기 회사 블로그에 사과문을 올렸다. 나도 30분쯤 뒤에 페이스북에 짧은 글을 올렸다. A 출판사의 사과를 받아들이며, 하지만 신뢰관계를 이어가기는 어려우니 책은 절판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런 인세 지급 누락이 한국 작가들에게 드물지 않으며, 정부가 나서 달라고도 썼다. 600억 원을 들여 국립한국문학관을 지을 게 아니라 인세 누락이나 저작권 침해 신고 센터를 만들고, 영화계처럼 작가들이 책 판매량을 알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해 달라고 주문했다. 내가 보기에는 그런 시스템이 없는 게 만병의 근원이었다.
사실 그런 시스템을 정부가 이미 준비 중이기는 하다. 올해 9월에 출범 예정인 출판유통통합전산망이다. 나는 그 글에 그 사실을 소개하며 출판유통통합전산망에 가입하지 않는 출판사와는 앞으로 계약하지 않겠다고도 적었다. 뭐, 이미 계약 상태인 원고가 8건이나 되니까. 그 원고 8건을 넘기면 출판유통통합전산망도 제 궤도에 올라 있겠지.
A 출판사의 사과문은 물론 큰 화제가 되었으나,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폭발력이 크지는 않았다. 조금 다행스럽기도 했다. 그 회사가 망하는 걸 바라지는 않았으므로. 주말 동안 기사가 10건 정도 나왔다. 그래, 이 정도면 됐지, 싶었다. 그 회사에 손해배상을 청구하지도 않았고 소송을 낼 마음도 없었다.
기자회견장이나 유튜브에서 눈물을 쏟으며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하고 A 회사에 대한 응징을 촉구하고 싶지도 않았다. HJ는 그래야 더 이슈가 될 거라고 했지만, 나와는 맞지 않는 일이다. 나는 종종 비겁한 사람이고, 교활한 궁리도 자주 한다. 하지만 동시에 퍽 점잖은 사람이기도 하고, 진심으로 품위를 추구하기도 한다.
이날 오후에는 새롱이를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서 심장사상충 약을 바르고 돌아오는 길에 산책을 시켰다. 부모님이 “네가 무슨 출판사에서 사과를 받았다며?” 하고 물어보셨다. 부모님 귀에까지 들어갔을 정도면 어지간히 소식이 퍼지긴 했구나 싶었다. 집에서 웨이트트레이닝을 했다.
언론 인터뷰 요청이 올까봐 전화기를 비행기 모드로 해둔 채로 주말을 보냈다. 월요일에는 HJ와 남한산성에 놀러갔다. 버스를 타고 산 중턱에 있는 남한산성전통공원까지 가서, 남한산성 행궁을 밖에서 둘러보고 수어장대와 남문까지 올랐다. 습하고 벌레가 많아서 나는 그다지 그 산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HJ는 좋아했다.
나는 A 출판사와 일이 마무리되어 홀가분한 마음이었는데 HJ는 그즈음 한창 우울한 상태였다. 실직 상태에 있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시 직장을 구하게 된들 이전과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하는 질문이 내면을 갉아먹고 있다고 그녀는 말했다.
짧게나마 매니저 직무를 경험해본 그녀는 그게 매혈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회사는 매니저들에게 모든 시간을 바치라고 요구하고, 거기에 응할수록 생명력이 줄어들었다. 반면 매니저가 아닌 스태프 일자리는 주체성이 없었고, 40대 중반이 되자 쉽게 구하기도 어려웠다. 주체적으로 할 수 있으면서 시간을 자기가 관리할 수 있는 일은 자영업 정도?
나는 그녀의 진단에 동의했고, 그래도 열심히 찾아보면 숨어 있는 괜찮은 일자리를 기적처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했다. 자신은 없었다. 그러다 대화 주제가 남한산성에 대한 것으로 바뀌어 나는 조선에 천주교가 전래된 과정에 대해 한참 떠들었다. 신유박해와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형제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조선의 초기 천주교 신자들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늘 감동스럽다. 김훈의 『흑산』을 조만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수어장대에서 내려와서는 남한산성전통공원 옆 빈대떡 가게에서 해물김치전과 순두부를 먹었다. HJ는 막걸리를 마셨고, 나는 막걸리에 맥주를 섞어 마셨다. 방송사와 신문사, 인터넷신문사에서 각각 인터뷰를 요청하는 메시지가 왔다. 사양하거나 답신을 보내지 않았다. 인터넷신문사는 내가 보낸 거절 내용의 문자메시지까지 기사에 인용했다.
주중에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도서관에서 강연 일정이 하나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서울과기대 강연은 이번이 두 번째인데 갈 때마다 대단히 환영을 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그런데 학교가 지하철역에서 참 멀기도 하다. 비 오는 거리를 걸어가면서 전화 영어 수업을 받았다.
이번에는 도서관 강당에서 소규모 청중을 상대로 이야기하면서 줌으로도 강연 내용을 전송하는 식으로 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었다. 강연장까지 가야 한다는 게 단점, 그래도 강연을 듣는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강연 주제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일으킨 매체 혁명이었는데 학생들이 무척 수긍한다는 표정이었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도 내 가설에 동의한다는 사실에 자신감이 커졌다.
모처럼 오프라인 강연이고, 강연 뒤에 학생신문사와 인터뷰까지 하니 돌아오는 길이 무척 고단했다. 지하철역 근처 편의점에서 맥주 네 캔을 샀다. 밖에 나갔다 돌아올 때마다 이 편의점에 종종 들르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너무 친절해서 매번 황송하다. 결제를 하다가 불쑥 “제가 가본 편의점 중에 제일 친절한 곳이에요”라고 말했더니 아주머니가 무척 쑥스러워하셨다.
집까지 걸어오면서 맥주 한 캔을 해가 진 거리에서 다 비웠다. 홉 하우스 13을 마셨다. 기네스가 만든 라거인데,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홉 향을 강조했다. 이 제품이 처음 나왔을 때 나는 홀딱 반해서 드디어 인생 맥주를 찾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개성이 강한 녀석은 연달아 마시기 부담스럽다. 그리고 어떤 제품을 인생 맥주로 정하든 그것만 마시는 음주 생활은 풍성하지 못하다. 인생에도 적용되는 이야기겠지. 그렇게 돌고 돌아 맹탕이라고 욕을 먹는 미국식 페일 라거를 쌀밥처럼 찾게 된다. 집에 왔더니 HJ가 돼지고기를 구워 주어서 그걸 안주 삼아 계속 맥주를 마셨다.
비 오는 날 강연하고 오는 길
친절한 편의점에서 산 쌉쌀한 맥주
홀짝홀짝 마시며 집에 갑니다
홉이 강조된 맥주에는 숙취가 따라온다. 다음날 아침에는 두통에, 저녁에는 비염에 시달렸다. 감기 기운이 있나 보다 싶었지만 어쩌면 컨디션이 안 좋은 상태에서 새롱이와 가까이 있다가 원래 약하게 있던 개털 알레르기가 심해진 탓일지도 모른다. 동물병원에 새롱이를 데리고 가서 중성화 수술 때의 실밥을 풀고 돌아오는 길에 산책을 시켰다. 집에 돌아와서는 잡지에 실을 에세이를 썼다.
최악의 황사가 한국을 덮쳐 서울에 위기경보 주의 단계가 발령된 날 나는 종일 밖에 있었다. 일정이 두 건 있었다. 이날 서울 공기 오염도는 베이징이나 상하이, 뭄바이, 델리보다도 더 높았다. 집에 돌아올 때쯤에는 눈이 따갑고 목이 매캐했다.
이날 낮에는 서래마을에서 L 선배와 만나 브런치를 먹었다. 오므라이스를 먹었다. L 선배는 동아일보에서 내가 아주 존경하던 기자이고, 그 역시 나를 무척 아꼈다. 그와는 법조팀에서 함께 일했다. 그가 회사를 그만두고 얼마 뒤에 나도 사표를 냈다. 그 해에 회사를 그만둔 동료가 많았다. 이후에 나는 L 선배와 1년에 한두 번씩 만난다.
L 선배는 저널리즘스쿨 교수직을 둘러싼 퇴직 기자들의 처절한 경쟁에 대해 들려주었다. 입이 떡 벌어지는 얘기들이었다. 연줄을 잡고 유지하기 위해 그토록 유치하고 좀스러운 경쟁을 벌이고들 있다니.
L 선배와 헤어져서는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블러썸크리에이티브의 스튜디오에 갔다. 블러썸크리에이티브는 연예인 매니지먼트 회사인 블러썸엔터테인먼트의 대표가 차린 작가 매니지먼트 회사다. 김영하, 김중혁, 김초엽 등의 작가가 소속되어 있다. 블러썸크리에이티브는 자이언트북스라는 출판사도 얼마 전에 설립했다.
그 출판사에서 NC소프트와 제휴해서 소설집을 만들 예정이었는데, 나도 거기에 참여했다. 게임회사가 단편소설집을 내는 것도 신기했지만, 그 책 저자로 블러썸크리에이티브 소속 작가들에 더해 나까지 원고 청탁을 받은 것도 의외였다.
NC소프트는 꽤 큰돈을 들여 이 소설집을 홍보하려 했다. 아니, 문학출판계에서나 그 돈이 큰 금액으로 보이는 것이지 게임회사 입장에서는 푼돈인 걸까? 아무튼 NC소프트와 블러썸크리에이티브는 책을 홍보하기 위해 작가들의 인터뷰 영상과 사진을 만들고자 했다. 나는 그 촬영을 하러 고양시의 스튜디오에 간 것이었다.
열 명도 넘는 스태프들과 인터뷰 영상을 찍고 스틸 사진을 촬영하고 홍보 멘트도 녹화하고 북트레일러 영상도 제작했다. 네 시간쯤 걸린 것 같다. 나는 스태프들의 지시를 충실하게 따랐지만 마음속에 별 열정은 없었는데, 그들 탓은 전혀 아니었다. 내가 쓴 단편소설이 별로여서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촬영장에서 K 작가를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K 작가는 내가 A 출판사의 인세 누락을 고발한 것을 환영했고 나는 좀 머쓱해졌다. 옆에 있던 블러썸크리에이티브 소속 편집자도 그게 편집자 사회에서 큰 화제가 됐다고 얘기해줬다.
정작 내가 관심이 있었던 것은 블러썸크리에이티브라는 회사와 작가 매니지먼트 사업이었다.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블러썸엔터테인먼트-블러썸크리에이티브의 대표가 나를 디지털미디어시티역까지 차로 태워다주겠다고 했다. 그녀의 레인지로버 조수석에서 나는 블러썸크리에이티브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친구이자 애니메이션 감독인 H가 강원도의 투자를 받아 만들려는 VR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개발을 다시 부탁해 왔다. 전에도 거절했던 건인데, 이번에는 금액까지 명시하면서 정식으로 요청해 왔다. 하지만 나는 친구와 돈 거래를 하고 싶지도 않았고, 애니메이션 시나리오에 대해 알지도 못했다.
마음이 무거워져서 돈은 받지 않고 자문 비스름한 역할을 맡아주겠다고 답장했다. 그러면서 그가 보낸 구상안에 내 의견을 보탰다. 기본적으로 H의 아이디어가 좋았다. 그런데 내가 답장을 너무 늦게 하는 바람에 그 사이에 H가 다른 작가를 구했다. 외부 작가가 작업을 마치면 내가 한번 보고 의견만 이야기하기로 했다.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를 배우는데 기타 선생님이 김광석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김광석이 살아 있을 때에도 인기가 많았느냐, 서태지나 신해철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였느냐, 이문세와 김광석 중에는 누가 먼저냐 등. 내가 김광석과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무척 신기한 모양이었다.
내친 김에 우리는 이문세의 노래도 연습해보기로 했다. 기타 선생님이 어떤 곡을 좋아하느냐고 물어서 “〈그녀의 웃음소리뿐〉이요”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상대가 그 명곡을 몰라서 내가 도리어 놀랐다. 기타 선생님은 곧바로 유튜브로 〈그녀의 웃음소리뿐〉을 검색했는데, 곡을 듣더니 “엄청 좋은 노래네요” 하고 입을 벌리며 감탄했다.
노리즈키 린타로의 첫 단편집. 작가 후기가 노벨스판과 문고판 두 종류로 실려 있는데, 노벨스판 후기에서 린타로는 “단편 「토요일의 책」이 『요리코를 위해』의 해피엔딩 버전”이라고 설명한다. 이 작품을 쓰게 된 경위도 재미있다. 문고판 후기에는 ‘도서관 시리즈’를 이어가지 못한 이유가 길게 실려 있는데 소설가로서 꽤 고민되는 문제다. 표현의 자유, 창작의 자유를 주장해야 할까?
어찌 보면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사연이고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결말인데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이 있다. 마음속에 지옥을 품고 사는 인물들의 고통에도 공감하게 만든다. 노리즈키 린타로는 일본의 추리소설가이자 평론가인 야마다 준야의 필명. 엘러리 퀸이 작가 팀의 필명이자 그 이름으로 쓴 소설 속 탐정의 이름이기도 한 것처럼, 노리즈키 린타로가 작가 이름이기도 하고 소설 속 탐정 이름이기도 하다. 엘러리 퀸의 오마주도 많다.
무시무시하게 많은 책을 출간한 조르주 심농은 1930년부터 매그레 시리즈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 소설은 1953년에 발표했다. 짧고 따라가기 쉬운 줄거리에 적당한 속도감과 사회성. 스케일은 소박하다. 영국, 프랑스, 벨기에, 러시아,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TV 드라마로 만들어진 것도 그런 요소들 때문 아니었을까 혼자 멋대로 상상해본다.
러브크래프트, 로버트 E. 하워드와 함께 《위어드 테일스》의 3인방이었다는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의 단편들을 모았다. 러브크래프트와 비슷한 듯하면서 다른 정취. 앞보다 뒤에 수록된 단편들이 더 마음에 든다. 간혹 이상하게 안 읽히는 작품도 있다. 「지트라」와 「마법사의 미로」가 좋았다.
이 책이 나온지 꼭 10년이 되는 올해 여름에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지질과학총회에서 ‘인류세’가 공인될 전망이라고 한다. 시인이자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인류세 곳곳의 풍경들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전한다. 읽는 이의 죄책감을 과하게 자극하지 않는다. 의외로 희망적인 대목도 많다.
아주 재미있게 잘 쓴 과학 논픽션이다. 주제는 고양이. 고양이 애호가에게는 매우 추천하고 고양이가 싫은 사람에게는 더 추천한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데 대한 면죄부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과학책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추천한다. 톡소플라즈마 곤디에 대해 알게 되었고 단편 「사이보그의 글쓰기」에서 써먹었다.
장르를 농촌코믹엽기미스터리라고 불러야 할까? 범죄 없는 마을에서 시체가 발견된다. 군더더기 없이 진행하고 유쾌하게 잘 마무리한다. 소를 판 사람 이름은 소팔희, 양식장 주인 이름은 양식연. 신한국, 왕주영, 우태우 같은 이름도 범상치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