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이상한 존』의 자매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주인공이 인간이 아니라 개이고, 그 개의 지능이 인간을 뛰어넘는 게 아니라 딱 똑똑한 인간 수준이기에 몇 가지 장점이 더 생긴다. 주인공의 처지가 더 처연하게 다가오고, 그의 관점이나 견해도 보다 설득력 있다. 세상에는 나처럼 픽션에 말하는 개만 나오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도 있고. 결말이 허망한 것은 작가도 시리우스에게 어떤 결말을 선사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은 아닐까.
초인을 다룬 최초의 소설은 분명히 아니다. 홍길동도, 전우치도 초인이었으니까. 이 작품의 매력은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의 눈에 인간의 사상이나 제도, 문화가 어떻게 보일지 냉담하게 상상해보는 데 있다. 물론 그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의 생각은 인간인 작가가 쓴 것이기에 등장인물의 철학이 작가의 철학을 뛰어넘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트랜스휴머니즘과 연관 지어도 이야기할 거리가 많을 듯. 실제로 스태플든이 트랜스휴머니즘 운동의 선구자로 꼽히기도 한다.
TV 시리즈 《덱스터》는 2시즌부터 억지 전개로 수준이 추락한다. 원작 2편은 TV 시리즈와 완전히 다른 내용인데 어느 쪽이 더 나은지 이야기하는 건 별 의미 없는 일이지 싶다. 드라마도, 소설도 그 다음 편들은 보지 않았다. 소설에서 벌어지는 엽기적인 범행은 어떻게 하면 인간을 가장 비참한 처지에 빠뜨릴 수 있을지 오래 상상한 결과물 같다. 실제로 당하면 정신이 버틸 수가 없을 듯.
내게 최고의 TV 시리즈는 《덱스터》 1시즌이었는데, 원작이 궁금해져서 찾아 읽었다. 결과는 실망. 연쇄살인마들을 죽이는 연쇄살인마라는 아이디어와 여러 가지 재치 있는 설정은 물 론 원작의 공이지만 이야기의 깊이가 완전히 다르다. 타고난 이방인으로서 ‘정상인’들을 부러워하고, 가면을 쓰고 살며 고뇌하는 주인공은 원작에 없다.
인류가 세상에 묻혀 있는 석유의 절반을 이미 뽑아냈는지 아닌지, 즉 석유 생산 정점을 지났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석유가 지하 어딘가에서 엄청나게 생성되고 있는 게 아닌 한 피크오일이라는 개념에는 반박할 수 없다. 현대 세계 경제가 석유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도, 대체 에너지가 석유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도. 석유 위에서 돌아가는 경제가 작동하지 않게 될 때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장거리 수송이나 도시 생활에서부터 교육, 도덕, 문화에 이르기까지 섬뜩하지만 설득력 있는 전망들을 펼친다.
왜 우리는 음악을 들으면 황홀해질까? 왜 어떤 곡은 감상적으로 들리고 어떤 곡은 지적으로 들릴까? 작곡은 왜 어려운가? 음악에 의미가 있다면 그게 정확히 무엇이며 의미를 이루는 어휘는 어떤 것일까? 음악, 생물학, 인류학, 미학을 누비는 교양서. 저자는 과학 저널리스트이자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이고, 역자는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와 그 부인으로 울산대 음대 학장을 지낸 채현경 교수다.
결론이 나지 않은 생각, 혹은 너무 거창한 주제에 대해서는 쉽사리 글로 쓰기 어렵다. 하지만 말로는 할 수 있다. 좋은 대화 상대가 있으면 더. 그래서 때로 잘 만든 인터뷰집은 다른 저술에서는 찾기 힘든 통찰, 혹은 통찰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는다. 그러면서 독자에게는 방대한 사상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멀게만 느껴졌던 석학들의 인간적 면모도 보여준다.
물론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내공 있는 인물들일 때 가능한 얘기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그래서 인터뷰집을 집어 들어 펼치기 전에는 인터뷰하는 사람이 누군지, 그가 만난 인사들이 누구인지 유심히 살핀다.
그런 면에서 엘리너 와크텔의 『오리지널 마인드』(엑스북스)는 추천하기에 부끄럽지 않은 책이다. 인터뷰이로는 제인 구달, 수전 손택, 조지 스타이너, 재레드 다이아몬드, 올리버 색스, 움베르토 에코, 노엄 촘스키가 등장한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데즈먼드 투투,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르티아 센도 인터뷰에 기꺼이 응했다.
캐나다의 문학평론가이자 라디오 방송 진행자인 와크텔은 장인과 같은 솜씨로 이들로부터 불꽃 튀는 답들을 이끌어낸다. 하나하나 큼직한 화두를 던지는 이야기들이다. 구달은 “곰곰 생각해 보면 과학적 사고의 많은 부분이 무척 비논리적”이라고 말한다. 스타이너는 “예술 비평은 삼류 학술 출판 산업이 됐다”며 환멸을 토로한다. 다이아몬드는 인간 예술의 뿌리가 동물들의 짝짓기 전술에 있을 가능성을 점치고, 에코는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는 같은 문화의 두 측면인데 양쪽에 모두 쓰레기가 있다”고 한다.
『오리지널 마인드』를 비롯해 국내에 출간된 와크텔의 인터뷰집 네 권은 모두 엑스북스에서 나왔다. 엑스북스의 임유진 주간은 “평소 영미권 작가들의 인터뷰를 많이 보다 보니 ‘최고의 인터뷰어’로 꼽히는 와크텔을 저절로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원고 분량도 많지만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깊이 다루는 내용이다 보니 번역 난이도가 높아 역자와 출판사가 함께 고생했다고 한다. 결과물은 바로 옆에서 듣는 대화처럼 자연스러우니, 독자로서는 감사할 따름이다.
고니시 유키나가 휘하의 무사 도모유키의 시선으로 보는 정유재란의 모습. 한국인 독자는 ‘우리 편’과 ‘나쁜 놈들’을 구분할 수 없고, 극중 도모유키 역시 비슷한 처지다. 그는 조선인 여인을 연모하지만 조선인을 많이 죽이기도 한다. 어린아이도 죽인다. 독자에게도 도모유키에게도 편안한 안식은 없다.
전운이 감도는 고려-거란 접경지대, 불길하고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고려군 정예부대가 사라지고, 환각을 일으키는 풀에 취한 장병들이 누군가에게 끔찍하게 살해당한다. 신력을 지닌 주인공 소녀는 고려와 거란 양쪽에 애정이 없고, 소녀의 여동생은 사람을 죽이는 병에 걸렸다. 원숭이탈을 쓰고 다니는 대원수는 믿을 수가 없다.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고 반전은 놀랍다. 시각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낯설면서 생생하고, 끔찍하면서도 매혹적인 귀주대첩 직전의 모습을 그려낸 작가에게 찬사를 보낸다.
‘아, 엄마가 좀비가 됐으면 이런 이야기들이 펼쳐지겠지’ 싶었지만 이야기가 꼭 그렇게 진행되지는 않아서 재미있었다. 주인공 소년은 문제아지만 공부를 잘하고, 아버지는 비록 바람은 피웠지만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있으며, 학교 일진도 처음부터 주인공을 괴롭힌 것은 아니다. 좀비는 가끔 제 정신으로 돌아왔다. 영상화 판권이 팔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