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오늘 정신과 의사 선생님한테 “자랑할 일이 있으면 자랑 많이 하세요”라는 말씀을 들었다. 그래서 지난해 가장 기쁘고 뿌듯했던 날의 사진을 뒤늦게 올려봅니다. 민음사-서울대 라이터스쿨 1기 강의 마지막날, 수강생 분들이 깜짝 파티를 마련해주셨다. 나는 케이크와 롤링페이퍼, 말랑카우와 방석, 슬리퍼 같은 선물을 받고 너무 감격해서 급무표정해졌다(감격하면 필사적으로 표정을 감추려 함...). 수강생들 다들 굉장히 진지하고 성실히 참여해주셔서 나도 바짝 긴장하고 열심히 원고 읽고 조언할 게 있으면 최대한 전하려 했다. 다들 건필하시고 또 건강하시기를. 모두 감사합니다.
곧 나오리라 예상되는 신기술들을 소개하는 책. 소행성 광산업이나 바이오닉 맨처럼 당연히 등장하겠지 싶은 기술도 있고, 하늘을 나는 자동차처럼 개인적으로 글쎄다 싶은 기술도 있고, ‘착한 모기 만들기’나 ‘대통령 DNA 해킹하기’처럼 으스스한 이야기도 있다. 놀라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했던 것은 스테로이드에 대한 대목이었다. 책에 따르면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의 악명은 상당 부분 과장되었거나 아예 근거가 없다고 하는데 얼마나 믿을만한 얘기인지 모르겠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는』을 쓴 아시자와 요의 단편소설집. 『아니 땐…』과 달리 초자연적인 소재는 전혀 나오지 않지만 그 못지않게 어둡고 찜찜하고 인상적이다. 오랜 시간 따돌림을 당하거나 두려움에 사로잡혀 현명한 판단을 못하게 된 이들이 범죄에 휩쓸리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모습을 차갑게 그린다.
서울로 돌아와서는 HJ와 부동산 이야기를 한참 했다. 나는 서울을 떠나 부산이나 치앙마이에서 살자는 얘기를 했다가 면박을 들었다. 집을 살 궁리를 해야지, 무슨 소리를 하냐는 것이었다. 그렇지. 나도 반성했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사자. 세입자의 임기 기간이 끝날 때까지 따로 살자. HJ가 제안했다. HJ는 친정에서 살고 나도 부모님 댁에서 살거나 아니면 문학 레지던시들을 돌아다니면 되지 않을까. 듣다 보니 가능할 것도 같았다. 아이가 없고 내가 문학 분야 종사자인 점을 이참에 한번 이용해 보자는 마음도 들었다.
올해 연말에는 서울프린스호텔, 내년 상반기에는 연희문학창작촌, 내년 하반기에는 부악문원……. 그렇게 떠돌이 생활을 해보면 어떨까. 많이 힘들까? 그런데 우리가 가진 돈으로 서울에 집을 살 수 있기는 한가?
부동산과 투자 문제에 몰두해 있어서 단편소설은 마감을 어겼는데도 한참이나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현대문학〉이 단편소설 한 편에 매긴 고료가 80만 원이었다. 치솟은 전세 값 앞에, 도무지 동기 부여가 되지 않는 금액이었다.
내가 노트북 화면을 보며 미적대는 동안 HJ는 주식 투자로 소액을 벌었고 금도 매입했다. 암호화폐 투자도 고민하고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놀면서 마음이 불편했는데 점점 익숙해지는 중이라고 했다.
HJ는 한동안 배달 플랫폼에 등록해서 음식 배달을 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했는데, 주식 투자 쪽이 수익이 더 나았다. “아니, 그러면 배달하시는 분들은 주식 투자를 하지 않고 왜 배달을 하는 거야?” 내가 물었다. 그리고 그 답에 대해 생각하며 우리는 우울해졌다. 투자할 돈이 없어서겠지. 이건 뭔가 세상이 단단히 잘못된 것 아닌가?
우리는 창업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나도 출판사를 차리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었다. 출판사를 차린다 해도 다른 작가의 책을 내거나, 내 소설이나 논픽션을 거기서 출간할 마음은 없었다. 나는 2017년에 재미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 소설을 소개하는 무료 서평집을 낸 적이 있다. 그걸 시리즈로 낼 계획이 있다. 2017년에는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문학 단행본을 낸 적이 없는 출판사에 외주를 줬는데 결과물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냥 내가 출판사를 차려서 만드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우리는 출판사뿐 아니라 북 카페도 차리면 어떨까 하는 얘기를 했다. HJ가 그런 공간을 꾸미는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매일 ‘오늘의 집’ 사이트에 가서 남의 집을 구경하고, 오설록 티뮤지엄에서 그런 공간과 사회공헌사업을 연결하는 일에 대한 희망을 밝힌 적도 있다. 우리는 북 카페를 차리게 되면 이름은 ‘그믐’으로 짓자고 얘기했다. 그 단어가 좋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입장문을 비판하는 짧은 글을 써서 페이스북에 올렸다. 별 얘기도 없었고 내용을 크게 고민하지도 않았다. 그 입장문에서 나에 대해 하는 말이 틀렸고, 출협도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며, 작가들에게 인세 누락이 결코 예외적인 일탈이 아님을 담백하게 지적했다.
그런데 이 글이 하루 사이에 소셜미디어와 여러 인터넷 게시판들에 어마어마하게 퍼졌다. 예상도 못한 일이었다. 젊은 세대가 출협을 이렇게 싫어했나? 각종 협회라는 조직들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도서정가제 탓이었을까? 출협에서는 내게 글을 내려달라고 요청했고 나는 거절했다. 자업자득이지, 뭐.
단행본 원고 납품이 늦어지는 데 대해 사과하고 계약을 해약해도 좋다고 메일을 보낸 출판사 6곳 중 4곳에서 답장이 왔다. 기다리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중 한 곳에 대해 내 쪽에서 해약을 요구했다.
장르소설 전문 출판사였는데, 전에 내가 계약한 원고의 청소년소설 버전을 보낸 적이 있다. 그에 대해 이 출판사는 그 원고가 좀비 소설의 규칙을 따르지 않았다며 길게 비판했다. 그때는 별 시답잖은 규칙도 다 있네 하는 정도로 그냥 넘겼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 출판사와 나는 문학적 지향점 자체가 다른 것 같았다. 앞으로는 내가 쓰려는 글의 방향을 이해하는 편집자와 일하려 한다. 그 정도 협상력은 갖춘 것 같다.
딘 버넷의 『행복할 때 뇌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읽었다. 앞부분은 심드렁하게 책장을 넘겼는데 뒤로 갈수록 정독하게 됐다. 결론에 이르러 저자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행복의 비결 같은 것은 없다고 주장한다. 사랑 역시 삶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여러 사람들의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공통 요소들은 있다. 집, 유머, 다른 사람의 인정, 성공 등이며, 사랑과 섹스도 그런 요소 중 하나다. 일과 돈도 어느 선까지는 중요하다.
〈현대문학〉에 보내야 하는 단편소설은 정말 더 늦으면 안 되는 최후의 순간에 겨우 다 썼다. 실제로 노트북 자판을 두드린 시간은 이틀 반 정도다. 마지막에는 새벽에 일어나서 겨우 마감했다. 다만 그렇게 벼락치기로 쓴 것에 비해 작품 자체는 썩 마음에 들었다. 확증 편향을 일으키는 기술들을 비판하는 SF 우화였다. 추리물 요소도 조금 첨가했다.
그렇게 소설을 탈고한 날 저녁 모 신문 문학출판 담당 기자들을 만났다. 몇 년 전부터 그 신문 북섹션에 〈장강명의 벽돌책〉이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데, 이번에 연재 담당자가 K 기자로 바뀌었다. K는 내 입사 동기다. 내가 수습기자로 경찰서에서 가장 먼저 만난 기자가 그녀다. 내가 소설가가 된 뒤에 내 인터뷰를 해주기도 했다.
K와 후배 기자 두 사람과 함께 칼국수 가게에서 만나 보쌈과 파전을 먹으며 소폭을 만들어 마셨다. 우리는 장류진 작가의 신작과 암호화폐, 웹소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자리는 그 신문 문학출판팀 회식 자리이기도 해서, 원치 않게 그곳 선배 기자들에 대한 뒷담화도 많이 들었다. 후배 기자 두 사람은 모두 암호화폐 투자 경험이 있었다.
HJ가 아닌 사람들과 술을 마셔야 한다면 기자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가 제일 즐겁다. 기자들은 빠르고 직설적이다. 내가 원래 그런 대화를 즐겼던 걸까, 아니면 기자 생활을 하다가 그렇게 된 걸까. 기자들은 술도 빨리 마신다. 그 자리의 막내 기자도 소폭을 아주 빠른 속도로 만들어 돌렸다.
칼국수 가게에서 나와 맥주를 마시러 갔다. 근처에 있는 브루어리304라는 수제맥줏집에 가고 싶었으나 정기 휴일이었다. 그래서 생활맥주 서대문경희궁자이점에 갔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프랜차이즈다. 강남 페일에일과 소나무 IPA를 마셨다. 소나무 IPA를 마실 때쯤에는 이미 취해서 맥주 맛을 알 수 없는 상태였다.
전용 잔에 그려진
2호선 강남역 로고를 보면
맛있는데 어지러워요
장르문학이나 서브컬처의 몇 가지 클리셰와 사변을 엮어 (수식도 몇 개 넣고) 서사 없는 단편을 쓰는 일은 솔직히 내게는 그리 어렵지 않게 여겨진다. 이탈로 칼비노 급으로 해낼 게 아니라면. 거기에 발랄한 상상력이라든가 문학의 경계를 묻는다든가 하는 수식어가 붙으면 좀 간지럽다.
서울대 인문대에서 CEO들을 대상으로 개설한 답사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저자가 추가 답사를 해서 쓴 책이라고 한다.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했는데 조선은 왜 그러지 못했는가.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책은 조슈 번의 인물들, 특히 요시다 쇼인과 타가스기 신사쿠를 중요한 요인으로 제시한다. 한국 사회도 조선과 마찬가지로 대안이 되는 지방이 존재하지 않는 1극 체제라고 생각한다. 국토가 작아서 그런 걸까?
제목을 보고 ‘그러니까 짧 은 말을 멀리 해야 한다’는 이야기겠거니 하고 꺼내 들었다. 소셜미디어로 인해 긴 글이 사라지면서 사회 수준이 떨어지고 있다는 게 요즘 내 문제의식이기도 하고. 정작 책 내용은 사람들은 짧은 말만 기억하니 짧게 말하라는 것. 저자도 많은 히트작을 낸 카피라이터라고 한다.
현대인은 모두 정보 과부하에 시달리고 있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있어야 두뇌가 회복할 수 있다는 얘기는 매우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막상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 하니 그게 잘 안 된다. 어렸을 때는 멍하니 시간을 보낼 수 있었는데 지금은 가만히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 오히려 마음이 괴롭다. 명상도 못하겠고 안식년도 못 갖겠다.
손님들이 찾는 책을 구해주는 대신 수수료로 그 책을 찾는 사연을 묻는 헌책방 주인장의 이야기 30편. 딱 K-힐링 소설의 마케팅 문구인 것 같지만 이게 실화다. 세상에 정말 이런 공간이 있구나. 속편도 나왔다. 무신론자를 자처하는 사람으로서 좀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책이라는 물건에는 마법이 깃든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대형서점보다는 도서관 혹은 헌책방에서 더 강력하게.
올라프 스태플든은 스토리텔링이 빼어난 작가는 아니었다. 철학 박사였던 그의 소설들은 사변에 비해 서사가 약한데 이 작품은 그런 특징이 극대화되었다. 그렇다고 스태플든의 작품들에 담긴 사변의 깊이가 그 자체로 엄청난가 하면 ‘인간성을 낯설게 보기’라는 문구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한다. 최초의 아이디어와 경이감을 칭송하는 독자들은 높이 사겠지만 서사를 중시하는 독자는 이게 뭐냐고 할 테고 나는 후자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