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귓불이 없는 사람들이 괴상하지만 동시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초능력을 어느 날 갑자기 얻는데 이들은 실은 인간 철학자와 마족 공주의 후손들이었다. 인간과 마족들이 1001일 동안 전쟁을 벌이는데 마족 공주와 후손들은 인간 편에 서서 마족과 싸운다. 이렇게 줄거리를 적어 놓으면 무슨 웹소설이냐 하겠지만 살만 루슈디의 2015년작 장편소설.
포퓰리즘도 파시즘도 모두 규정하기 어려운 개념이고, 흔히 우익 포퓰리즘은 거의 파시즘과 같은 뜻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저자는 그 둘을 구분하는데, 우익 포퓰리스트 운동은 팽창에 대한 야심이 없으며 국내 문제에만 집중한다는 이유다. 그런 구분이 일리는 있지만 우익 포퓰리즘의 위험성을 다소 얕잡아 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좀 들긴 한다. 미국의 젊은 유권자들은 공약의 현실성보다는 정치 혁명의 가능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에 버니 샌더스를 지지했다고 분석한다.
신좌파의 아버지이자 68세대의 영웅이었던 마르쿠제는 개인적인 매력이 상당했고 대중매체도 잘 활용했다. 막상 그의 책을 읽은 학생들은 많지 않았지만 학생들은 그가 자신들의 대변인이라고 여겼다. 나는 기존 질서를 파괴해 급진적 유토피아를 추구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언제나 두렵다.
1962년 민주사회학생연맹이 만든 강령은 ‘우리는 대개 그런대로 편하게 자라서 지금 대학에 다니며, 우리가 물려받을 세상을 불만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세대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대개 편하게 자란 대학생들이었기 때문에 이상주의에 경도되기 쉬웠고, 아직 세상을 물려받지 못한 지라 세상을 물려받는 자가 지녀야 할 책임감을 몰랐다.
몽골에서 출토된 대형 육식공룡 타르보사우르스의 화석이 2012년 뉴욕의 경매장에 나와 100만 달러가 넘는 가격에 팔린다. 몽골은 공룡 화석을 국유 재산으로 규정하고 거래를 금지하는데 도대체 이 화석은 어떻게 뉴욕까지 간 것인가? 몽골 정부는 반환 소송을 벌이고 밀거래 과정이 드러난다. 공룡 화석은 돈 많은 수집가들이 탐내는 아이템이고, 잘 보존된 화석은 엄청나게 비싼 가격에 팔린다고 한다.
외환파생상품인 키코(KIKO)에 가입했다가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이 900여 곳, 피해액은 20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책의 저자는 키코 공동대책위원장을 지낸 피해 당사자 기업인. 기자 시절 만나 인터뷰했었고, 이후에도 몇 번 연락을 주고받았다. 나도 은행이 중소기업을 속였다고 생각한다.
머리를 비우면 행복해진다는 이야기는 이제 그렇게 새롭지 않은데, 뇌전증이나 치매, 전신마비 환자가 오히려 평온과 고요를 느낄 수 있다는 주장은 놀라웠다. 실제로 저자는 감금증후군 환자의 뇌에 센서를 부착해 이를 증명하기도 했다. 별 노력 없이도 쉽게 멍해질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이 그립다.
저자에 따르면 대형 유인원이 대체로 갖는 협력 성향을 마찬가지로 지니고 있었던 초기 인류는 협업 파트너를 선택하면서 상호 존중의 감각을 키웠다. 그것이 ‘자연적인 2인칭 도덕’이 됐고, 이후 부족 집단이 등장하며 ‘우리’라는 개념이 발명되었다고 한다. 문화 규범이 체계화되면서 객관적 도덕 개념이 출현한 것은 훨씬 나중이라는 설명. 이렇게 기원이 다른 도덕들 사이에는 여전히 긴장이 있고 종종 그 양립 불가능성이 도덕적 딜레마의 원인이 된다.
일화 1: 고대 로마에 해시계가 도입된 건 기원전 3세기경이다. 당시 희극에서 어릿광대가 시계의 발명자를 저주하며 불평을 터뜨린다. “전에는 내 배가 세상 무엇보다 정확한 시계였는데, 이젠 아무리 배가 고파도 시계의 허락 없이는 한 입도 못 먹는다.”
일화 2: 소인국에 포로로 잡힌 걸리버의 주머니에서 회중시계가 나왔다. 회중시계를 처음 본 소인들에게 걸리버가 “그것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소인들은 시계가 신(神)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알렉산더 데만트의 하드커버 『시간의 탄생』(북라이프)은 물리학이나 우주론에 대한 책은 아니다. 고대사 전문 역사학자인 저자는 시간과 인간이 맺어온 관계를 728쪽에 걸쳐 소개한다. 읽다 보면 위의 사례들처럼 일견 소소해 뵈지만 한편으로는 묵직한 에피소드들을 거의 모든 페이지에서 접하게 된다. 과연 우리는 시간의 주인인가, 노예인가. 달력과 시계는 우리 삶을 알차게 만드는 유용한 도구인가, 우리를 쉴 새 없이 다그치고 내모는 채찍인가.
책 자체는 특정 주인공이나 일정한 줄거리 없이 다소 뻣뻣한 백과사전적 구성이다. 그래서 이 밀도 높은 인문서는 단기간에 통독하기보다는 책장에 꽂아두고 ‘시간’ 날 때마다 빼들어 천천히 진도를 나아가는 게 오히려 괜찮은 독서법이 되지 않을까 싶다. 꼭 목차대로 소화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흥미로워 보이는 챕터부터 펼치는 것도 방법이다.
개인적으로는 시대, 시대정신, 종말론, 영원, 역사 등의 개념을 다룬 13장이 가장 재미있었다. 후기산업시대의 ‘후기(後期)’와 신자유주의의 ‘신(新)’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왜 지금이 후반기이며, 무엇이 새롭다는 것일까? ‘전환기’라는 표현은 한 시대를 그 자체의 상징과 특징이 없다며 깎아내리는 의미 아닐까?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은 현대에 올수록 점점 더 자주, 짧은 주기로 일어나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의 호들갑일까?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사람은 시간과 공간을 알아야 자신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 시간에 대한 다양한 통찰을 접하다 보면 자기 인식도 한 뼘 더 깊어지지 않을까.
니혼게이자이 신문에서 40명이 넘는 기자가 1년 넘게 참여한 인공지능 기획기사를 책으로 펴낸 것. 사장이 하는 일이 대부분 반복 업무이기 때문에 ‘AI 사장’이 곧 등장할 거라든가, 퇴사 가능성이 큰 직원을 AI로 파악할 거라는 전망을 쉽게 반박하기 어렵다. 살아 있는 곤충에 AI를 결합해 만든 ‘생체 드론’은 이미 등장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