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2013년에 문학동네에서 ‘HQ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가 절판되고 이번에 새 출판사에서 앞의 알파벳 두 개를 떼어버린 제목으로 다시 번역해서 냈다. 나는 문학동네 판으로 읽었다. 구성은 복잡하지만 술술 읽힌다. 1권을 읽을 때는 자꾸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것 같고 지나치게 미스터리가 많아 보여서 불안했는데 2권에서 아주 멋지게 마무리한다. 33년 전 수사가 부실했던 것 같기는 한데 그것도 1970년대라는 배경이나 진상을 알면 상당 부분 납득된다.
작가가 20여 년 동안 판매한 물건은 이러하다. 문구, 장난감, 풍선, 사과, 배추, 빵, 미루나무, 책, 크리스마스카드, 물비누, 더덕, 분쇄기, 냄비 세트, 압력솥. 주산학원과 신문 배달지국도 운영한다. 이 물품과 서비스들을 가게에서 팔고,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팔고, 5일장에서 팔고, 상가를 돌아다니며 팔고, 남의 사무실에서 팔고, 남의 공장에서 팔고, 남의 집에서 팔고, 아파트단지를 돌아다니며 판다. 기쁜 일, 슬픈 일, 서러운 일, 억울한 일을 겪고, 때로 체면과 건강을 물품 대금과 맞바꾸게도 된다. 그러나 그가 절대 팔지 않는 것도 있다. 선량함, 정직함, 가족, 자기 자신.
수사에도 승진에도 관심 없는 프라모델 오타쿠인 주인공이 시골 경찰서장으로 부임한다. 그런데 그 지역에서 자꾸 기묘한 범죄 사건들이 터지고, 주인공은 자기도 모르는 새 어처구니없는 방식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주변 형사들에게 전달하게 된다. 귀여운 열혈 형사들은 그걸 믿고 마침내 진범을 붙잡고, 오해는 쌓이고. 키득키득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100명이 넘는 철학자와 사상가들의 생 각들을 짧고 쉽게 늘어놓은 책인데, 제법 내실 있다. 윌리엄 클리퍼드가 주장한 ‘인식적 의무’라는 개념에 마음이 끌렸다. 증거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고 무언가를 믿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것. 이에 따르면 다정함이 무언가를 구할 것이라는 막연한 신념은 오히려 비도덕적이다.
오크리가 그려내는 나이지리아에서 밤과 낮은, 서로 대화하며 하나의 거대한 꿈이 된다. 태어나기를 원치 않았던 혼령 아이는 자기 어머니가 된 여인을 위해 계속 살아가기로 한다. 이야기는 뒤로 가면서 권투선수이자 정치인이 되는 아자로 아버지의 비중이 커진다. 부패하고 혼란스러운 아프리카의 정치 현실을 비판하는 듯싶지만 그 또한 환상이 섞여 있다.
동료 작가들이 자신의 작가 생활에 대해 쓴 에세이를 읽는 건 나에게 길티 플레저다. 내 작가 생활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읽으면 다 재미있다. 저자가 솔직하면 솔직할수록 재미있다. 그리고 내가 여태껏 읽어본 한국 소설가들의 소설가 생활 에세이 중 이보다 더 솔직한 책은 없었다. 이렇게 솔직하게 쓰시다니.
수명 연장과 노화 방지 연구를 소재로 하는 알찬 교양과학서. 저자가 입담이 좋고 ‘뭐 먹으면 오래 산다’ 유의 조언을 피하는 터라 신뢰가 간다. 절식을 포함해 여러 가지 좋다는 습관이나 음식에 대해 대부분 ‘영향이 명확하지 않다’고 설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하게 효과가 있는 것은 역시나 운동과 식이 섬유 섭취라고.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 도스토옙스키 소설의 무신론자들은 이런 사상에 빠져 파멸한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이 신 없이 도덕과 의미를 지닐 수 없다고 믿었다.
『도덕의 궤적』(바다출판사)은 이런 믿음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인류가 앞으로 종교적인 기반 없이 점점 더 나아질 것이라고 주장하는 문제적 저작이다. 작가는 리처드 도킨스 등과 함께 종교를 공개 비판하는 무신론자 지성인으로 유명한 마이클 셔머. 과학적 회의주의자들을 위한 잡지 《스켑틱》을 만든 바로 그 사람이다.
768쪽짜리 책의 앞부분은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와 내용이 겹친다. 인류 역사에서 폭력은 꾸준히 감소했고, 그런 진보의 동력은 종교가 아닌 과학과 이성이었다는 분석이다. 참고로 핑커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의 속편을 찾는다면 그게 바로 이 책”이라고 『도덕의 궤적』을 호평했다.
셔머는 거기서 더 나아가 인류의 도덕적 발전에 뚜렷한 방향성이 있다는 견해를 펼친다. 일부 계층에서 전체 인류, 더 나아가 동물에 이르기까지 ‘고통을 느끼는 모든 존재’를 포괄하려는 길로 우리가 구불구불 나아가고 있다는 것. 그는 문명의 단계별로 인간을 제어하는 힘이 기본 감정에서 원시적 정의감, 형사사법제도로 발전하며, 다음 목표는 응보가 아닌 회복을 추구하는 정의라고 주장한다.
인류 전체에 초점을 맞췄기에, 도스토옙스키가 고민한 ‘왜 나 개인이 도덕적으로 살아야 하나?’라는 질문에는 어물쩍 넘어간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치밀한 사유와 꼼꼼하게 수집한 근거들은 쉽게 반박하기 어렵다. ‘문명 2.0’과 외계인에 대한 논의까지 펼치는 말미에는 장쾌하다는 탄성도 나온다.
책을 펴낸 바다출판사는 한국판 《스켑틱》도 2015년부터 내고 있다.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왜 다윈이 중요한가』 등 셔머의 다른 저작도 출간했다. 김인호 대표는 “셔머의 합리주의, 이성주의가 우리 출판사의 지향성이고, 제 개인적인 지향점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책은 나온 지 한 달 만에 초판 1쇄가 다 팔렸다고 한다.
‘창조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질문을 놓고 20세기에 창조적 거장으로 이름을 떨친 인물들의 삶을 살핀다. 가드너가 뽑은 인물 7명은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피카소, 스트라빈스키, T. S. 엘리엇, 마사 그레이엄, 그리고 간디다. 활동한 분야나 성격이 제각각인 위인들도 찬찬히 뜯어보면 어떤 공통점들이 확실히 있기는 한데, 내게 가장 인상적인 개념은 ‘파우스트적인 계약’이었다. 이들에게는 위대한 성취를 위해 무언가를 희생하겠다고 단단히 각오한 시기가 있었다.
다중지능 이론의 창시자인 저자가 대중을 상대로 쓴 교양서. 다중지능 이론을 제안한 뒤로 벌어진 논쟁과 다중지능 개념에 바탕을 둔 교육 프로그램까지 설명한다. 가드너는 개인이 자기성찰 능력을 지능의 한 종류로 분류했지만 ‘영성지능’에 대해서는 부정한다. 대신 큰 ‘실존지능’을 새로운 지능 후보로 검토하는데, 이는 ‘큰 질문들과 관련된 지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