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알라딘에서 ‘나를 살린, 책’이라는 주제로 여러 작가들에게 에세이를 청탁했고 저도 참여했습니다. 저는 존 메설리의 『인생의 모든 의미』를 꼽았어요. 원문 링크는 글 아래 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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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지인들 중에 나를 두고 ‘쟤는 언젠가 자살할 것 같아’ 하고 여기는 사람이 몇 있었다. 소설가가 되기 전부터 그랬는데, 친한 사람일수록 나를 더 그렇게 본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란 적이 있다. 딱히 내가 “죽고 싶다”고 말하거나 그와 비슷한 행동을 한 적은 없다. 그냥 그런 분위기를 풍기는 모양이다. 사람이 별로 씩씩해 뵈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솔직히 자살보다는 영생을 훨씬 더 바란다. 안전하고 저렴한 불로장생약이 개발된다면 먹을 것 같다. 언제든 자살을 선택할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그 약을 복용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가끔 자살에 대해 생각하기는 하는데, 내가 얽히는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상상은 아니다. 어떤 추상적인 개념, 철학적 문제로서 머리에 떠오른다. 카뮈도 그게 철학의 근본적 질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죽음에 대해서는 아주 자주 생각한다. 사람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 대개 진지해지는데, 그래서 나는 제법 진지한 기분으로 살아간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내가 자살하게 된다면, 그때 자살 사유는 ‘괴로워서 못 살겠어’가 아니라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가 아닐까 싶다. 그나마 지녔던 한줌의 씩씩함마저 나이가 들어 사라지면서 그런 질문에 빠지는 시간이 길어졌다. 아주 유독한 시간은 아니지만, 점점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는 밀폐된 방에 가만히 앉아 있는 듯한 기분도 든다. 다시 말해 천천히 자살하는 기분이다. 한편 나는 제법 진지한 사람이기에, 그런 때 ‘당신이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괜찮고 잘하고 있어’ 따위 조언은 답이 되지 못한다. 무성의한 농담처럼 들릴 뿐.
그래서 도서관에 가면 에세이가 아니라 철학 책들이 꽂힌 100번대 서가를 기웃거린다. 결국 답을 얻지 못할 것임을 알기에 그다지 씩씩하지는 못한 발걸음으로. 필로소픽 출판사의 ‘미닝 오브 라이프(Meaning of Life) 시리즈’를 그렇게 알게 됐다. 이 시리즈는 모두 19권이 나왔는데 책이 다 좋다. ‘나와 세계 그리고 삶의 의미’라는 출판사 모토도 좋다. 특히 14번째 책인 『인생의 모든 의미』를 좋아해서 되풀이해서 읽고 있다.
『인생의 모든 의미』는 철학자이자 컴퓨터과학자인 존 메설리가 쓴 교양철학서다. 100명이 넘는 사상가들의 주장을 짧게 요약한 책이긴 하지만 ‘금방 읽는 서양철학사’ 유의 구성은 아니다. 소크라테스, 데카르트, 칸트가 나오지 않는 대신 덜 알려진 현대 철학자, 소설가, 시인, 신학자, 생물학자, 심리학자, 미래학자, 물리학자, 컴퓨터과학자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생각들은 탄생 순이 아니라 답변의 범주 순으로 소개된다.
삶이 무의미하다는 답변들, 삶에 의미가 있다는 답변들, 삶에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는 답변들이 각각 한데 묶인다. 삶이 무의미하다는 답변들은 그래서 좋다는 답과 좋지 않다는 답으로 나뉜다. 삶에 의미가 있다는 답변들은 그 의미가 신을 필요로 하는지 아닌지, 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의미를 발명하는 건지 발견하는 건지로 구분할 수 있다. 삶의 의미에 대한 불가지론적 답변은 삶의 의미를 묻는 질문 자체가 무의미한 것인지, 질문은 의미 있지만 대답을 할 수 없는 것인지로 갈린다. 메설리는 각각의 답변 범주에 대해 적극적인 논평을 하고, 뒷부분에서는 자신의 결론도 제시한다.
아내에게도 이 책을 적극 권했고, 아내도 결국 이 책을 사랑하게 됐다. 우리 집 거실 소파 옆에는 협탁이 있는데, 거기에 늘 이 책이 놓여 있다. 나는 가끔 이 책을 펼쳐 아무 페이지나 읽어보곤 한다. 어느 날은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합리적 결심만으로는 삶을 버틸 수 없고, 충분한 증거가 없어도 선의 궁극적 회복력을 믿어야 한다는 존 코팅엄의 주장을 마주친다. 어느 날은 대답이 불가능하도록 만들어진 질문은 무의미한 질문이며 따라서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묻는 행위 역시 무의미하다는 폴 에드워즈의 견해를 맞닥뜨린다. 나는 코팅엄이나 에드워즈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쉽게 반박하지도 못하기에, 그 자리에 서서 오래 생각한다. 큰 질문에 대해 숙고하는 시간이라는 점에서는 성서를 조금씩 읽으며 묵상하는 습관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
종이책을 무척 깨끗하게 읽는 나와 달리 아내는 책에 포스트잇을 많이 붙이고, 밑줄도 치고, 메모도 한다. 덕분에 아내가 인상 깊게 읽은 문장들이 뭔지 알 수 있다. 금욕적인 전사 성향인 아내는 빅토르 프랑클, 마이클리스 마이클, 피터 콜드웰을 좋아한다. 도발적인 생각들에 끌리는 나는 결국 인생의 의미는 원하는 바를 얻어 만족하는 것―그게 ‘빠른 자동차와 멋진 여자’라 할지라도―이라는 레이먼드 마틴의 주장을 곰곰 들여다본다. 밑줄은 치지 않지만.
아내도 나도 좋아하는 대목은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 『율리시스』가 나오는 부분이다. 테니슨의 오디세우스는 이타카를 떠나며 자신의 목적은 ‘죽을 때까지 항해하는 것’이라고 읊는다. 메설리는 ‘우리는 집을 발견할 희망 없이 싸우면서 우리 삶의 의미와 짜릿함을 발견한다. 율리시스에게 의미란 몸부림이다.’라고 썼다. 아내보다 좀 더 의심이 많은 나는 ‘정말 그럴까?’ 하고 고개를 갸웃하기는 한다. 그래도 멋진 항해까지는 아니더라도, 가파른 내리막길에서 나무 등걸을 붙잡고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려 몸부림을 치는 기분이 든다. 천천히 자살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기분이다.
https://tobe.aladin.co.kr/n/177662
‘천지는 어질지 않아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개처럼 여긴다(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는 구절을 좋아한다. 아내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무위(無爲)를 자유방임주의로, ‘법규가 많아지면 도둑이 늘어날 뿐(法令滋彰, 盜賊多有)’이나 ‘모두가 선하다고 하는 것은 알고 보면 선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는 구절을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것처럼 멋대로 해석해서 단편소설에 써먹기도 했다. 지독하게 냉소적인 문장들로 마무리지었다고 생각했는데, 다들 희망찬 결말이라고 오해했다.
휴대폰에 시집 전자책이 두 권 들어 있는데 한 권은 이 책이고 다른 한 권은 최승자의 『이 시대의 사랑』이다. 읽다 보면 이 시인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시집 가장 앞에 시인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쓴 유서가 있다. 가장 좋아하는 시는 역시 「네 감수성 정도는」이고 「그 다음은 내가 가장 예뻤을 때」이다. 「좀 더 강하게」가 실려 있지 않아 아쉽다.
엄청나게 심오한 고찰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의미심장한 변화를 적시에 포착하고, 그 변화 속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태도’가 퍼지면서 영화 제작 방식도 변한다. 팬과 소비자의 차이, 작품 감상과 콘텐츠 소비의 차이 등 생각해볼 거리도 여럿 던진다. ‘빨리 감기로 보기’ 역시 하나의 감상법으로 정착할지 모른다는 전망은 퍽 으스스하다.
금융화로 인해 현대 자본주의가 병들었다고 주장한다. 단순히 금융 산업의 규모가 커졌다거나 금융이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커졌다는 말이 아니라 ‘금융적 사고방식’이 기업과 경제의 모든 측면에 스며들었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는 주주중심주의, 주주행동주의 역시 의심의 대상이 되는데 재벌이 많은 나라에서 살아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한 관점이다. 경영학 교육에 대한 비판이 통렬하다.
○○일보 기자들과 만난 다음날 오전에 숙취로 고생하며 안과에 가서 인공눈물 처방을 받았다. 낮에는 부모님 댁에 가서 새롱이와 놀아주었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웹사이트에 실을 원고를 조금 썼다.
이날 오후에는 HJ와 새 집을 구하러 강남구 남쪽의 동네 두 곳을 찾아갔다. 서울 끝자락이라 해야 할 곳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비워주기 전까지 반 년가량 시간이 있지만 요즘 전세난도 주택난도 워낙 극심하다고 하니 미리 동네들을 살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부동산 매물을 확인하러 현장을 찾는 일을 투자자들은 임장(臨場)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얼마 전에 알게 된 용어다.
집 주인의 통보를 받고 나서 내가 HJ와 함께 임장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HJ는 혼자서도 임장을 다녔다. 어느 집이고 간에 부동산 투자는 남자보다 여자가 더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거 같다. HJ도 그 말에 동의했다. 그런데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여자들이 주거에 더 관심이 많아서?
지하철역에서 나와 거리를 걷는데 가장 먼저 눈에 띈 게 버스정류장 앞 좌판이었다. 먼지구덩이 속에서 나물이나 채소 같은 걸 땅바닥에 늘어놓고 팔고 있었다. 파는 사람은 보이지도 않았다. 강남도 끄트머리에 가면 강북이나 마찬가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렇게 낙후된 지역이니까 우리도 집을 살 수 있겠다는 희망도 생겼다.
우리는 거기서 아파트단지 세 곳을 둘러봤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옷차림새는 좋게 말해 수더분했다. 그리고 젊은 사람이 별로 없었다. 식당에서 파는 음식들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쌌는데, 어느 아파트단지 상가 지하식당에서는 5000원짜리 백반 메뉴를 팔고 있었다. 아주 낡고 축축한 기운이 드는 아파트단지였다.
그런 식당들 중 한 곳에서 식사도 했다. 오리불고기를 먹었는데, 하도 내용물이 부실해서 밥을 먹다가 오리탕도 주문했다. 그렇게 HJ와 둘이서 3인분을 먹었다. 맛있지는 않았지만 주인이 일하는 모습이 굉장히 성실하고 또 손님에게 깍듯해서 존경심마저 들었다.
부동산 중개업소에도 들어가서 상담을 받았다. 전세 매물은 씨가 말랐다는 것과 매매는 가끔 급매물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그간 모은 돈이면 갭 투자를 하기에 불가능하지는 않음을 알게 되었다. 설명을 듣다 보니 겨우 안도감이 들었다.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그런 대화를 하고 나오니 비로소 어른이 된 것 같았다.
그날 저녁에는 근처의 다른 동네에도 갔다. 두 동네를 잇는 공원을 걸었는데 자연스럽다기보다는 야생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배가 고파서 노점상에서 꽈배기를 사 먹었다. 노점상인이 “비트코인으로 결제하셔도 된다”고 해서 농담인 줄 알고 “혹시 아저씨도 비트코인 투자 하시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정말 한단다. 바야흐로 대투자의 시대구나. 그런데 그 꽈배기는 너무 맛이 없어서 다 먹지 못하고 쓰레기통에 버렸다.
HJ와 대화를 할 때면 주제는 거의 대부분 부동산이었다. HJ는 부동산 전문가가 되었고 나도 빠른 속도로 배워가는 중이었다. 전 국민이 이렇게 강제로 경제 공부를 하겠지. HJ는 전에 빚을 져서 아파트를 사지 않은 것을 정말 후회했고 억울해 했다.
나는 우리가 근로소득이 무의미해지는 시대에 들어섰구나, 노동의 종말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고 생각했다. 왜 노동이 끝나는가. 그 본질적 가치 자체가 미약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부(富)는 아주 창의적인 소수가 일으키는 혁신과, 그 소수가 이용해야 하는 자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오늘날 그렇게 커다란 부를 창출해내는 사람들에게 있어 평범한 사람의 노동은 아주 흔하고 쌀 뿐더러 기실 성가시다. 한번 고용하면 해고하기 어렵고 안전관리니 노사문제 같은 이슈도 발생한다. 그래서 고용이 줄고 있으며 이는 세계적인 흐름이다. 그 사실을 깨닫자 최근의 경제 상황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자산 가격이 치솟고 있구나.
서울프린스호텔 레지던스 입주 작가 공모에 응모했다. 등단한지 만 10년 이하인 작가만 응모할 자격이 있는데, 나는 아슬아슬하게 요건을 충족한다. 한겨레문학상을 2011년 7월에 받았으니. 서울프린스호텔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세금을 전혀 받지 않고 호텔 측에서 마케팅 목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라 마음의 부담도 없었다.
희망 입주기간에 1지망으로는 11월 중순부터 연말까지, 2지망으로는 12월 한 달을 적어 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전세 계약이 11월 중순에 끝난다. 연희문학창작촌 레지던시는 10월에 공모를 시작하고, 거기에 뽑힌다 해도 입주는 내년 1월부터다. 만약 서울프린스호텔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떨어지면 보름, 어쩌면 한 달 반 동안 부모님 댁에서 살아야 한다.
새롱이를 보러 부모님 댁에 가서 저녁을 함께 먹으며 그 문제를 말씀드렸다. 부모님은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였다. 겨울에 두 분이 함께 제주나 남해에 한 달가량 여행을 하고 싶었는데 새롱이 때문에 집을 비우는 게 걱정이었다고.
동생과 함께 부모님 댁에서 새롱이 털을 깎았다. (전에 쓴 대로, 개가 가위를 너무 두려워해서 미용을 하러 애견 숍에 데려갔다가 포기하고 왔다.) 내가 강아지를 붙잡고 있는 동안 동생이 반려견용 미용가위를 사용해 눈을 덥수룩하게 가리고 있던 털만 간신히 잘라냈다.
원주 토지문화관에 입주할 날짜가 다가왔고, 백업용 외장하드를 암호화했다. 혹시 내가 밖에서 하드디스크를 잃어버리더라도 데이터를 분실할 염려는 없도록. 원주에 가서는 반드시 『재수사』 원고를 마치고 오겠다. 가을에 출간하는 게 목표다.
이날 낮에는 HJ가 만들어준 소시지 계란부침과 밥을 먹었고, 저녁에는 라면과 즉석 만두를 먹으며 맥주를 마셨다. 1866 블론드를 마셨다. 프랑스에서는 생맥주로만 파는 맥주였는데, 한국에 수출하기 위해 캔 제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큰 특색 없이 탄산 맛으로 마시는 라거라서 라면과 먹기 좋았다.
요즘은 부동산 생각만
탄산이여, 이 답답함 해결해주오
파리도 문제 심각하다던데
노아 루크먼의 『플롯 강화』를 읽었다. 다소 딱딱할지는 모르겠지만, 육감이나 손맛을 믿지 않는 저자들, 작법서의 아리송한 표현에 질린 예비 소설가들에게 도움이 될 책이었다. 아주 상세한 매뉴얼이었다.
강력계 형사인 백현호의 작은 집에 괄괄한 어머니, 은둔 작가 지망생 첫째 누나, 결혼을 세 번한 둘째 누나가 들이닥쳐 같이 살게 된다. 그리고 그 집 근처에서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일어나고 어머니의 옛 비밀도 천천히 드러난다. 조금 억지스러운 구석이 없지 않지만 유쾌하다. 드라마로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고, 처음부터 그걸 노리고 쓰지 않았나 싶다.
콩쥐는 사라지고, 나무꾼은 선녀의 시신을 발견한다. 범씨 성을 가진 사내가 밤길에 나타나 떡을 달라고 하고, 아무래도 막내딸이 구미호인 것 같다. 전래동화들로 만든 미스터리 단편집인데 일단 재미있고, 뻔하지 않다. 수위가 상당히 높고 뒤틀린 유머가 많은데 내 취향에는 꼭 맞았다. 이 작가의 작품들을 계속 찾아 읽어볼 생각.
책 앞부분에 저자는 세 가지 질문을 던지는데, 이런 것들이다. 우리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기술이 없다면 과연 더 행복할까, 행복은 어떤 모습일까. 좋은 질문인데 대답은 충분치 않다고 느꼈다. 저자가 제시하는 전략들은 다 옳은 말이지만 몰라서 실천 못하는 내용들은 아니다.
로스앤젤레스의 대표적인 흑인 타운인 사우스센트럴에서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흑인 여성을 노리는 연쇄살인 사건이 10건 벌어졌다. 20년 이상 붙잡히지 않은 범인에게는 ‘그림 슬리퍼’라는 별명이 붙었고 이 책은 그 살인마에 대한 논픽션이다. 1980년대 로스앤젤레스의 살인사건 발생 건수는 매년 평균 800건 가까웠는데, 그중 절반 이상이 사우스센트럴에서 일어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