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눈먼 자들의 경제』(한빛비즈)는 필진의 명단만으로도 눈이 번쩍 뜨이는 책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퓰리처상 수상자인 도널드 발렛과 제임스 스틸, 『머니볼』과 『빅숏』을 쓴 베스트셀러 논픽션 작가 마이클 루이스, 논쟁을 몰고 다니는 경제사학자 니얼 퍼거슨……. ‘소문 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던데’ 하는 우려는 접어두시길. 이 책, 정말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어떤 단행본 기획이 이런 스타 작가들을 한 자리에 모을 수 있을까. 책의 주제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시작한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의 다양한 현장과 그 의미다. 아무래도 의미를 분석하는 글보다 현장을 전하는 르포와 인터뷰에 더 점수를 주게 되는데, 특히 미국 5대 투자은행이었던 베어스턴스의 몰락 과정이나 나라 전체가 망하다시피 한 아이슬란드의 모습은 옆에서 지켜보는 듯 생생하다.
월가의 거물들에 대한 초상도 흥미롭다. 세계 최대 보험사였던 AIG를 위기에 빠트린 조셉 카사노의 이야기는 블랙 코미디 그 자체다. 반면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 출신으로 금융위기 당시 재무장관이었던 헨리 폴슨에 대해서는, 정책에 대한 평가와는 별도로 그 처지나 판단을 둘러싼 고뇌가 충분히 이해가 가며 연민의 마음마저 인다. 번역본으로 708쪽인 이 책에서 4분의 1 가까운 분량이 버나드 메이도프 사기사건을 다루는데, 이 부분만 따로 떼어내 한 편의 입체적인 비극 작품으로 읽어도 손색이 없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금융위기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보다 더 큰 질문, 예컨대 ‘금융이란 무엇인가’, 혹은 ‘자본주의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까지 그 답변을 얻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이것 하나는 분명히 알게 된다. 거대한 숫자의 금액 앞에서 사람들은 현실감을 잃는다. 그래서 논리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 한심하고 기괴한 짓을 저지르고야 만다. 탐욕에 빠져 눈이 멀었다며 당사자를 비판하기야 쉽다. 그런데 우리의 경제 시스템 전체가 사람들을 탐욕에 빠뜨리며, 바로 그 탐욕에 의해 굴러가는 것은 아닌지.
자기 이름을 ‘핍’이라 소개하는 우리 주인공의 본명은 ‘퓨리티(순수)’. 씩씩하고 똑똑한 젊은 여성이지만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텔레마케팅 회사는 도무지 못 다니겠고, 유부남을 짝사랑하고 있고, 제대로 된 집도 없고, 떨어져 사는 어머니는 좋게 표현해서 괴짜인데 핍의 친아버지가 누구인지 절대로 말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핍은 위키리크스와 비슷한 무정부주의 해킹집단을 이끄는, 줄리언 어산지와 비슷한 사내로부터 기묘한 초대장을 받는다. 인턴 자리를 제안하고 싶다고? ‘젊은 여자들 불러서 재미 보려는 속셈인 거 아니까 썩 꺼져’ 하고 답장을 보냈는데 그런 거 아니란다. 태도도 정중하다. 아버지를 찾는 일을 도와달라는 조건으로 핍이 제안을 받아들일 즈음 독자들도 눈치 챘을 터인데, 그렇다. 핍에게는 어마어마한 출생의 비밀이 있다.
그리고 핍이라는 주인공 이름을 들었을 때 고전문학에 조예가 있는 독자들은 이미 알아차렸을 터인데, 그렇다. 조너선 프랜즌의 소설 『순수』(은행나무)는 찰스 디킨즈의 『위대한 유산』을 곳곳에서 노골적으로 인용한다. 디킨즈의 소설을 21세기에 조금 차갑게 다시 쓰면 이렇게 될까? 선량한 주인공의 수난과 성장, 뒤틀렸지만 아주 매력적인 조연 캐릭터들, 뜻밖의 전개와 흡인력.
“나는 평생 문학을 연구해온 사람이라 인간 심리에 대해 조금은 안다고 자부해. 내가 보기에 ○○○은 너에게 맞지 않는 여자고 걔도 그걸 알아.”
전체 828쪽인 이 소설이 80퍼센트가 넘어갔을 때 나오는 대사다. 『순수』가 프랜즌의 대표작으로 남을 것 같지는 않고, 그가 심오한 메시지를 고민하면서 이 작품을 쓴 것 같지도 않다. 인터넷과 정보 공개에 대한 고찰이 간혹 나오기는 하지만 내게는 저 위의 대사가 이 소설의 핵심으로 다가왔다. 저자의 의도였건 아니건 간에.
맞지 않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거나 가족이 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뒤틀린 인물의 내면에 대한 깊이 있는 묘사를 문학을 통해 접하게 되면 정말 인간에 대한 이해도 깊어질까? 책 뒤표지에 나온 묵직한 해외 서평들에 주눅 들지 마시기를.
우울증은 흔하지만 이해하기 힘든 질병이다. 흔하다는 이야기부터 하면 3년 전 우울증 에피소드를 어느 산문에서 고백하고는 지인들로부터 “나도 약 먹고 있어, 힘내” 하는 연락을 많이 받았다. ‘아니, 이 사람도?’ 하고 놀라기도 여러 번. 얼마 뒤 한국인의 우울증 유병률이 36.8퍼센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라는 기사를 접했다.
이해하기 힘들다는 부분에 대해 말하자면 내가 이 병에 왜 걸렸는지, 어떻게 나았는지 나도 모르고 의사도 모른다. ‘그게 어떤 느낌이야? 오랫동안 낙담해 있는 것과 우울 장애는 뭐가 달라?’라는 질문에 정확히 답하는 것조차 어렵다. 속은 지옥인데 밖으로는 멀쩡해 뵈는 상황이 당사자에게도 난데없다.
1,028쪽에 이르는 분량에 우울증의 역사, 의학적 분석, 정치사회경제학적 접근, 과거와 현재의 치료법, 환자들의 투병기, 글쓴이의 경험을 담아내 이 분야의 고전이 된 책, 『한낮의 우울』(민음사)을 읽으면 우울증을 이해하게 되느냐. 저자 앤드루 솔로몬조차 아니라고 한다. ‘암흑의 핵심’은 여전히 깜깜하다.
그러나 암흑 주변부에도 의미 있고 유용한 사실들이 많다. 예를 들어 우울증이 결코 현대 선진국 중산층의 질병이 아니라는 것. 우울증은 오래 전부터 다양한 문화권에서 나타났고, 그만큼 다양하게 편견 어린 시선을 받았다. 우울증과 맞서는 데에 자존심이나 허영심이 때로 사랑보다 더 도움이 된다는 지적 역시 의미 있고 유용하다.
그럼에도 이 책은 ‘암흑의 핵심’에 있는 것을 언어로 최대한 붙잡고자 할 때 가장 빛을 발하는 것 같다. 목적의식이 없는 상태, 관점 자체가 없어지는 기분, 부식되어 가는 자신에 대한 증오와 환멸, 그 상황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절망감.
그리고 놀랍게도 암흑을 파헤치는 작업을 따라가다 보면 반대편에 무엇이 있는지를 점점 더 깨닫게 된다. 그것은 고통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우리는 ‘서툴지만 열정적인 저글링 곡예사’(734쪽)가 되어 ‘스트레스가 많고 매혹적인 삶’(〃)을 쫓아야 한다. 우울증에 관심이 없는 분께도 그런 이유로 이 책을 추천한다.
산 것과 죽은 것들 사이에 혼령의 세계가 있다. 태어나고 싶어 하는 혼령은 없다. 삶의 세계에서는 존재의 협소함과 무지, 채워지지 않는 욕망, 끝없는 부당함, 어지러운 사랑, 죽음을 겪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령 아이들은 만약 태어나게 되더라도 될 수 있는 한 빨리 혼령의 세계로 돌아오겠다고 약속한다.
나이지리아 소설가 벤 오크리의 장편소설 『굶주린 길』(문학과지성사)은 이러한 세계관을 소개하며 시작한다. 주인공 아자로도 태어나기를 원치 않았던 혼령 아이다. 하지만 자기 어머니가 된 여인을 위해 계속 살아가기로 한다. 맹세를 어긴 소년에게 혼령 친구들이 찾아오고, 아자로는 기이한 일들을 겪는다.
‘신비한 능력을 지닌 소년이 두 세계에 걸쳐 살면서,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초자연적인 위기 상황들을 이겨 낸다’고 적으면 어떤 분들은 해리 포터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굶주린 길』은 그렇게 단정하지도, 밝지도 않다. 주인공뿐 아니라 작품 전체가 현실과 환상 사이에 놓여 있다. 현실과 환상 양쪽 모두 한편으로 달뜨고, 또 한편으로 구슬프다.
한국 독자에게 아프리카 민담의 정서는 익숙하고도 낯설다. 동아시아에서도 밤은 강력하지만, 낮 아래 있다. 귀신은 생전의 한에 연연하며, 도술을 부리는 동물들이 인간의 삶을 동경한다. 『굶주린 길』의 밤은 낮 아래 있지 않다. 이곳에서 밤과 낮은, 서로 대화하며 하나의 거대한 꿈이 된다.
번역본으로 751쪽에 이르는 이야기는 뒤로 가면서 권투선수이자 정치인이 되는 아자로 아버지의 비중이 커진다. 부패하고 혼란스러운 아프리카의 정치 현실을 비판하는 듯싶지만 그 또한 환상이 섞여 있다. 아자로 아버지의 투쟁과 이상주의도 너무 괴상해서 아자로와 읽는 이를 두렵게 한다.
오크리는 30대 초반에 발표한 이 소설이 부커상을 받으면서 세계적인 작가로 떠올랐다. 어린 시절 참혹한 나이지리아 내전과 정치적 혼란을 겪은 그는 현실과 환상이 섞인 이 작품에 대해 “내가 본 현실을 전통적 문학 기법으로 묘사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쉽지 않지만 매혹적인 작품이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지 못했는데, 솔직히 엄두가 안 난다.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는 책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은 한 칼럼에서 애정 어린 어투로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과학책”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관장은 『종의 기원』 대신 『찰스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리잼)를 권하는데, 후자라면 나도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다. 180여 년 전에 출간된, 번역본 기준으로 900쪽이 넘어가는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술술 읽힌다. 과학 고전임을 의식하지 않고, 여행 에세이라고 여기고 펼쳐도 좋을 정도다.
사실 호기심 많고 지적인 20대 청년이 5년 동안 배를 타고 세계여행을 하며 쓴 일기가 재미가 없으면 이상하다. 지진과 쓰나미, 식인 풍습을 설명하는 원주민과의 대화, 구리광산 광부들의 극도로 위험한 삶, 조난당한 선원, 인광(燐光)으로 빛나는 밤바다, 뒷다리를 쳐든 채 꽁꽁 얼어 죽은 말 등등 신기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게다가 다윈은 글을 무척 잘 썼다. 읽다 보면 저자의 초상이 점점 뚜렷해지고, 거기에 깊은 호감이 생긴다. 그는 감탄을 구체적으로 잘 한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기쁘고 감사하게 받아들인다. 유머 감각도 있다. 젠 체 하지 않고, 주눅 들지도 않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 노예제에 거듭 분노하고, 처음 보는 동식물을 연구한다.
그리고 물론, 진화론이라는 위대한 아이디어의 싹이 트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갈라파고스 제도에 가기 전에 이미 다윈은 소의 한 품종이 가뭄에 매우 불리해지는 현상을 상세히 기록했다. 다른 소들은 나뭇가지를 뜯어먹고 연명할 수 있지만 문제의 품종은 입술 구조가 긴 풀을 먹는 데에만 적합했던 것. 옆에서 ‘적자생존’이라고 속삭여주고 싶은 기분이 든다.
『찰스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는 나한테는 여행 충동을 가장 불러일으킨 책이기도 하다. 다윈은 외딴 곳에서 대자연을 보며 얻는 장엄한 감동에 대해 썼다. 파타고니아 평원, 바다로 흘러내리는 빙하, 남반구의 별밤. 내가, 어쩌면 현대인 모두가, 놓치고 사는 게 많다는 생각을 한다.
저와 다른 소설가 13명이 한국 교육 현실을 주제로 쓴 짧은 소설을 모은 앤솔러지 『킬러 문항 킬러 킬러』가 나왔습니다. 저는 표제작 「킬러 문항 킬러 킬러」와 기획의 말을 썼어요. 월급사실주의 작가님들을 주축으로 한겨레신문에 연재를 한 뒤 그 글들을 다듬어 책으로 엮었습니다. 앞으로도 비슷한 작업을 좀 해보려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37131770
#킬러문항킬러킬러 #미니픽션 #짧은소설 #앤솔러지 #월급사실주의 #한겨레출판 #한겨레신문
『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황금가지)은 상당히 당혹스러운 책이다. 나는 크리스티가 인류 문명이 지속되는 한 계속해서 읽힐 불멸의 작품을, 한 편도 아니고 수십 편 이상 남긴 위대한 거장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이 대가가 어떻게 글을 썼으며, 문학이 뭐라고 여겼는지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책을 펴들면 곧 어리둥절해진다. 그런 내용이 없는 건 아니지만, 비중이 무척 적다.
전체 808쪽인 이 자서전에서 ‘추리소설을 써야겠다’는 결심은 315쪽에 이르러서야 나온다. 그 앞까지는 즐거운 유년 시절, 가족, 여행, 연애, 결혼의 추억 이야기다. 딱 입담 좋은 할머니의 수다를 듣는 기분이다. 그런데 19세기에 태어난 이 할머니는 속으로 아주 단단하시다. 인생과 결혼, 교육에 대해 자신만의 견해가 확고하다. 살인범에게는 사형이 마땅하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315쪽 이후에도 여행, 친구, 딸, 두 번째 남편 이야기가 창작 과정보다 훨씬 더 길게 서술된다. 반면 집필에 대한 크리스티의 태도는 알수록 팬으로서 맥이 빠진다. 첫 작품을 발표하고는 ‘설마 책을 더 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소설을 애써 성취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글 쓰는 것은 바로 돈이 되어 좋았다고 한다. 마플 양을 어떻게 창조했는지 기억이 희미하고, 그렇게 성공한 캐릭터가 될 줄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고백에 이르면 감탄을 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천재였나?
내가 권유하는 이 책의 독서법은 다음과 같다. 저자가 위대한 소설가임을 잊고 읽어라. 그러면 세상과의 불화, 내면의 갈등, 창작의 고통이 나오지 않는다고 불평할 이유도 사라진다. 대신 사랑하는 이들에 둘러싸여 모험과 유머가 가득한 삶을 아주 재미있게, 또 주체적으로 살았던 여인을 보게 된다. 자기 인생에 대해 “나는 원하는 것을 했다. 여행을 한 것이다”라고 멋지게 선언하는.
누구나 그렇게 살고 싶으리라. 책장을 덮고는 삶을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들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물론 불행하면 재미없지만, 행복이 끝없이 이어진다고 재미있는 삶도 아닌 듯하다.
2005년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동부를 덮쳤다. 저지대인 뉴올리언스 지역이 물에 잠기고, 한 병원이 5일간 고립된다. 대피하지 못한 환자들을 돌보느라 의사와 간호사들은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화장실 변기에서 오물이 넘쳤고 대소변 냄새가 병원에 가득했다. 건물 내 기온은 43도까지 올라갔다.
밖에서는 총소리가 들렸다. 폭도로 변한 사람들이 병원을 노리는 듯했다. 비상 발전기가 고장 났고, 중환자용 생명유지장치가 멈췄다. 구조 헬리콥터는 너무 뜸하게 왔고, 아주 적은 수의 인원만 탑승할 수 있었다. 게다가 헬리콥터의 목적지인 대피소에도 환자를 돌볼 장비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절망 속에서 의료진은 무서운 의문에 사로잡힌다. 위중한 환자들이 과연 여기서 살아날 수 있을까. 비교적 상태가 괜찮은 환자들에 자원을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중환자들을 이런 고통 속에 방치하는 게 과연 옳은가. 피부가 다 벗겨져 신음하는 환자를 억지로 붙잡는 일이 고문과 뭐가 다른가.
720쪽에 이르는 셰리 핑크의 르포 『재난, 그 이후』(알에이치코리아) 전반부는 이렇게 의료진의 시선에서 진행된다. 후반부는 이 병원에서 벌어진 집단 안락사 사건을 조사하는 수사관들에 주로 초점을 맞춘다. 갑작스러운 시점 변경에, 그리고 두 관점이 모두 설득력 있음에 독자는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의료 윤리란, 정의란 무엇인가.
의사이자 기자인 저자는 메모리얼 병원에서 벌어진 참사를 다룬 심층 기사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수상 뒤에도 저자는 취재를 멈추지 않았고, 관계자 수백 명을 500번 이상 인터뷰했다. 책은 집필 계획만으로 뜨거운 관심을 모았고, 한국 출판사도 미국에서 도서가 나오기 전에 출간 계약을 했다. 결과물은 두 말이 필요 없는 걸작이다.
무게중심은 윤리적 딜레마에 실려 있지만, 재난 대비 시스템과 여론몰이에 대해서도 고민할 거리를 충분히 던져준다. 저자도 자기 홈페이지에서 관련 토론 공간을 운영한다. 메모리얼 병원의 비극은 근본적으로 미국 정부의 실패에서 기인했다. 지금 한국의 재난 대비 시스템은 어떤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 가족이 있어요. 목사님 집안이에요. 아버지가 ‘나 이렇게 힘들어’ 하는 이야기가 1장이에요. 2장은 둘째 아들이 ‘나 이렇게 힘들어’ 하는 이야기예요. 3장에서는 첫째 딸이, 4장에서는 첫째 아들이, 5장에서는 어머니가, 6장에서는 다시 아버지 이야기가 나와요. 그런 식으로 쭉 진행돼요. 배경은 1970년대 미국이고요.”
조너선 프랜즌의 872쪽짜리 소설 『크로스로드』(은행나무)를 독서모임 회원들과 함께 읽었다. 먼저 진도를 나간 내게 다른 회원이 책 소개를 부탁했고, 나는 저렇게 설명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진짜 우울해요. 읽다 보면 마음이 아주 한없이 가라앉아요. 그런데 정말 재미있고 이거 걸작 아닐까 싶어요.”
그런 감상은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도 이어졌다. 후반부가 더 흥미진진했고, 중반까지 품고 있던 우려도 결말에 이르러 완전히 사라졌다. 나는 모든 인물들이 서로에게 악영향을 주며 함께 몰락하는 기하학적이고 가학적인 구조를 작가가 짜놓지 않았을까 두려웠다. 기우였다. 그렇다고 해피엔딩이라는 말은 아니지만.
『크로스로드』는 잘 짜인 구조나 치밀한 심리묘사 이상의 소설이다. 이 작품은 뭔가 거대한 것을 이야기한다. 삶, 가족, 현대, 붕괴 같은 것들을. 그래서 1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에 걸친 서민층 가족의 서사임에도 불구하고 묵직한 대하소설 같은 기분이 든다. 그 ‘거대한 것들’을 계속 고민하게끔 독자를 이끈다. 삶이란, 가족이란 뭘까. 현대는 어떤 곳인가. 우리는 왜 불행한가.
후속편에서는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이 나올까.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된 『크로스로드』는 그 자체로 완결성 있게 마무리되는 소설이지만, 3부작의 첫 작품이기도 하다. 1959년생인 저자는 필생의 역작을 남긴다는 기분으로 이 연작을 준비한 듯하다.
2부와 3부는 미국에서도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은행나무 출판사는 3부작 모두 번역서를 자신들이 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담당 편집자는 『크로스로드』 번역서를 만들며 등장인물의 나이와 호칭, 사건들의 날짜를 한국 기준으로 계산하고 확인하느라 꽤 애를 먹었다고 한다.
미처 몰랐다. 『침묵의 봄』을 쓴 레이철 카슨이 그토록 뜨거운 사랑을 했다는 사실을. 상대는 유부녀였고, 그때 카슨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음을. 천왕성은 윌리엄 허셜 혼자가 아니라 허셜 남매의 공동 발견이며, 키가 130센티미터밖에 되지 않았던 여동생 캐럴라인은 온갖 차별 속에서도 혼자 새 혜성을 8개나 찾아낸 위대한 천문학자였음을.
불가리아 출신 작가이자 문화비평가인 마리아 포포바의 『진리의 발견』(다른출판사)을 읽는 내내 기분 좋게 당혹스러웠다. 내가 얼마나 여성 과학자와 작가, 특히 그 중에서도 성소수자인 인물들의 삶과 업적에 무지했는지 깨닫는 독서여서 그런 면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 책 뭐지, 싶은 독특한 구성과 진행 때문이기도 했다.
땅에서 멀리 떨어진 무언가를 열렬히 쫓고 고통스러워 한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이기는 한데, 그들을 뭐라 불러야 할지 적절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간질간질했다. 과학자만 모은 책도 아니고, 작가만 모은 책도 아니다. 여성과 성소수자를 중요하게 다루지만 그들만 다루지는 않는다. 그 삶들을 특정 테마에 따라 깔끔하게 정렬하지도 않았다.
책은 애초에 선별 기준과 순서 따위가 뭐가 중요하냐는 태도다. 한 사람을 이야기하다 과거나 미래의 인물로 훌쩍 건너뛰고, 다시 돌아오기를 거듭한다. 평전이라고 해야 할까, 에세이라고 해야 할까. 어떤 경계 안에 자기 글을 가둘 생각이 없는 저자는 운문의 영역까지 호시탐탐 노리는 듯하다. 어떤 부분은 끝까지 명쾌하지 않지만 그래서 독특하게 아름답다.
영어 원제는 ‘Figuring’이다. 이 애매한 단어를 한국어로 어떻게 옮겨야 할까. 한국 출판사가 바랐던 번역 제목은 ‘전복자들’이었다. 하지만 표지 디자인과 관련해서도 구체적인 지시를 내린 저자는 한국 출판사에 단어의 뉘앙스를 꼼꼼히 물어보면서 여러 후보를 검토한 끝에 ‘진리의 발견’을 골랐다. 글쎄? 나는 이 책 번역 제목에 사랑, 혹은 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다른 단어가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리를 향한 사랑, 생명을 향한 사랑, 천재들도 꼼짝 못한 에로틱한 사랑.